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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를 거꾸로 탄 장과로

【정견망】

장과로는 전설에 나오는 팔선(八仙)의 하나다.

장과로는 인류의 도덕이 날로 추락해 속세 사람들이 공명(功名)과 이록(利祿)에 미혹되어 있으면서도 갈수록 좋아진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인간세상에서 놀면서 천고에 유전되는 수많은 전설들을 남겨놓았다.

지금껏 그의 내력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장과로란 인물이 확실히 있었다.

그는 당대에 항주(恒州) 조산(條山)에 은거하며 늘 분진(汾晉, 산서 태원지역) 사이를 왕래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에게 장생불로(長生不老)의 법(法)이 있다고들 했다. 노인들은 “우리가 어린 아이일 때 그를 보았는데 당시 자신이 이미 백 살이 넘었다고 했다. 백성들은 모두 그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신선은 본래 범부와 다르니 장수와 재상 왕과 신하는 모두 범부에 불과하기에 신선을 만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당 태종과 고종이 여러 차례 불렀지만 그는 따르지 않았다. 나중에 측천무후가 그를 부르자 할 수 없이 출산했으나 그는 투녀묘(妒女廟) 앞을 가다가 병을 가장해 죽었다.

당시 한여름이었는데 시신은 순식간에 썩어 구더기가 득실거렸다. 관리가 이를 무후에게 보고하자 모두들 그가 죽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항주의 산중에서 그를 본 사람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장과는 늘 흰 당나귀 한 마리를 타고 다녔는데 하루에 수만 리를 갈 수 있었다. 멈추면 나귀를 종이처럼 얇게 접어서 상자 속에 넣었다가 나귀를 타고 싶을 때는 물을 뿜으면 다시 나귀로 변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재밋거리로 전했다.

개원 23년, 현종이 통사사인(通事舍人) 배오(裴晤)를 파견해 수레를 타고 항주에서 그를 영접하여 경성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장과는 배오 앞에서 기절하더니 죽어버렸다. 배오는 분향을 하며 천자가 구도하고 싶다는 간절한 성의를 알렸다. 잠시 후 장과는 천천히 깨어났다.

배오는 감히 그에게 가자고 말을 못하고 곧 말을 달려 상주했다. 현종은 중서사인(中書舍人) 서교(徐嶠)에게 명해 성지를 휴대하고 맞이하라고 했다. 장과는 서교를 따라 동쪽 낙양에 도착했다. 집현원(集賢院)에 머물게 하고 가마를 타고 궁궐에 들어가 조정의 예우를 받았다.

현종이 장과로가 늙고 노쇠한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선생은 득도하신 분인데 어째서 머리카락과 이빨이 그렇게 노쇠했습니까?”

장과로가 대답했다.

“나이가 많아 노쇠해지면 그 어떤 도술(道術)도 소용없지요, 때문에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다 없애버린다면 좀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현종이 보는 앞에서 머리카락을 뽑고 망치를 꺼내 이빨을 두들겨 빠지게 하자 온 바닥에 피가 흥건히 떨어졌다.

현종이 깜짝 놀라 급히 말했다.

“선생은 돌아가서 좀 쉬시죠, 잠시 후 다시 이야기합시다.”

얼마 후 다시 장과를 불렀는데 이미 까만 머리카락에 하얀 이빨이 다시 자라 마치 장년처럼 보였다.

어느 날 비서감 왕형질(王迥質), 태상소경(太常少卿) 소화(蕭華)가 함께 장과를 찾아갔다. 당시 현종은 공주를 장과에게 시집보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때 장과로가 갑자기 두 사람에게 말했다.

“공주를 아내로 맞는다면 너무 겁나는 일이지요!”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잠시 후 궁에서 현종이 사자를 파견해 장과로에게 말했다.

“황상께서 옥진(玉真)공주가 어려서부터 도를 좋아하였으니 선생에게 시집보내려 합니다.”

장과가 크게 웃더니 명을 받들 수 없다고 했다. 왕, 소 두 사람은 그제야 그가 방금한 말뜻을 알아들었다.

당시 많은 공경대신(公卿大臣)들이 그에게 가서 부탁하며 신선의 일 등을 물어보았고 장과로는 늘 교묘한 말로 대답하곤 했다.

그는 늘 “나는 요임금 때 병자(丙子)년 생이요.”라고 말했지만 당시 그 누구도 진위를 판별할 수 없었다.

그는 또 “내가 요임금 때 시중(侍中)을 맡았는데 태식술에 능해 수일간 밥을 먹지 않았소. 밥을 먹을 때 술 한 잔과 누런 환 몇 개만 먹었답니다.”라고 했다.

현종은 그를 내전에 남겨놓고 술을 하사하자 그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술이 약해 두 잔밖에 못 합니다. 하지만 제자가 하나 있는데 한 말을 마실 수 있습니다.”

현종이 기뻐하면서 그를 불러오라고 했다. 잠시 후 작은 도사가 처마에서 날아내려 왔는데 나이가 16,7세 정도이며 자태가 영준하고 풍도가 우아했다. 현종에게 절을 올렸는데 말이 시원시원하고 예모를 두루 갖추었다.

현종이 그에게 앉으라고 권하자 장과가 말했다.

“제자로서 늘 옆에 시립해 있어야 하니 그를 앉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현종은 볼수록 더 좋아했다. 그래서 어린 도사에게 술을 내렸다. 도사는 한 말을 다 마시고도 사양하지 않았다.

장과로가 대신 나서 사양하며 말했다.

“더 마시면 안 됩니다. 도가 지나치면 반드시 실수할 것이니 성상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현종은 그래도 계속 술을 마시라고 강권했다. 도사가 술을 다시 마시자 갑자기 그의 정수리에서 술이 뿜어져 나오더니 쓰고 있던 도관이 바닥에 떨어졌고 술 뚜껑으로 변했다. 현종과 비빈들은 모두 재미있다고 하하 대소를 금하지 못했다. 다시 그 도사를 보니 이미 보이지 앉았고 그저 술 단지가 하나 바닥에 있었는데 그 속에 있는 술을 쏟아보니 딱 한 말이었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집현원에 있던 술단지였다.

장과는 여러 차례 선술(仙術)을 연기했는데 일일이 적을 수 없다.

당시 사야광(師夜光)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귀신을 볼 줄 알았다. 현종은 장과를 앞에 불러 놓고 사야광에게 보라고 했다. 사야광이 어전에 이르러 말했다.

“장과로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으니 잘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장과로는 진작 어전에 앉아 있었는데 사야광은 시종 그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현종이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한번은 독이 든 술로 그를 시험해보려 했다.

장과로가 큰 잔으로 연달아 세 잔을 마시자 얼굴이 마치 취한 것처럼 벌겋게 되더니 옆 사람에게 말했다. “이건 별로 좋은 술이 아니군요.”

그리고는 곧 누워 잠이 들었고 한식경이 지나 깨어났다. 갑자기 거울을 들고 자기의 치아를 보니 모두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는 즉시 시동에게 쇠망치를 가져오라 하더니 입안의 이빨을 두드려 하나도 남김없이 빼어서 포대 속에 거두어 넣고 천천히 옷을 열어 품속에서 반짝이는 고약을 꺼내어 잇몸에 발랐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다. 한참 후 그가 깨어나 다시 거울을 비쳐보니 이빨이 다시 모두 다 자라나 있었는데 더 희고 단단했다.

현종은 이에 그의 신통을 더욱 믿었다.

한번은 현종이 함양(咸陽)에 가서 사냥을 하다가 큰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 사슴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요리사가 그것을 잡아 요리를 하려고 할 때 장과로가 보고는 말했다.

“이것은 선록(仙鹿 신선의 사슴)인데 이미 천 살이 되었소. 옛날 한 무제 원수(元狩) 5년에 내가 시중을 지냈을 때 무제께서 상림원에서 사냥을 했지요. 당시 이 사슴을 산채 잡았는데 놓아 주었습니다.”

현종이 말했다.

“사슴은 얼마든지 있고 시대는 바뀌었는데 그 사슴이 아직도 사냥으로 잡히지 않았단 말이요?”

장과로가 말했다.

“한 무제께서 사슴을 놓아주실 때 표시로 동패를 왼쪽 뿔 아래 걸어놓았습니다.”

현종이 사람을 시켜 검사해보니 과연 두촌 길이의 작은 동패가 있는데 글자는 이미 모호해져 있었다.

현종이 말했다.

“원수는 어느 해인가? 현재까지 몇 년이 되었는가?”

장과로가 대답했다.

“그때 계해년(癸亥年)이며 무제께서 막 곤명지(昆明池)를 파기 시작한 해입니다. 올해는 무술년이니 이미 852년이 지났습니다.”

현종이 태사에게 명하여 달력을 조사해보니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현종이 이에 조칙을 내려 장과로를 은청광록대부( 銀青光祿大夫)에 봉했다.

장과로는 나중에 또 항주 산 속으로 돌아갔다. 천보 초기 현종이 다시 장과로를 불렀으나 이 말을 들은 후 홀연히 죽어버렸다. 그의 제자가 그를 묻었지만 나중에 관을 열어보니 원래 빈 관이었다. 때문에 장과로가 어떻게 끝 마쳤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료출처: 《구당서》, 《명황잡록(明皇雜錄)》)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6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