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중국 요(遼)나라 때 자현(賢賢)이란 법명을 지닌 고승이 있었다. 그는 본래 중인도 마갈타국 스님으로, 천하를 운유하다 중국 북부 거란에 왔다. 다시 말해 거란 민족이 세운 요조(遼朝)에서 국사(國師)로 추앙받았고 일부 불교 전적(典籍)을 번역했다. 당시 중원 및 남방 지역은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자료에서 자현을 오대 시기 고승이라고도 한다.
자현은 원적한 후 불괴(不壞)의 육신을 남겼고, 하북성 무안(武安)시 활수향(活水鄉) 구상촌(口上村) 정혜사(定慧寺)에 모셔졌다. 후세인들이 여러 번 그를 위해 금으로 몸을 만들어주었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2017년 7월 무안시 전문 인력이 정혜사에서 전문적인 X선 기기로 현장을 검사해보니 전두골, 안와골, 구강, 치아, 갈비뼈, 척추 등 곳곳의 인체조직은 물론 관절 구조까지 완전했고 골밀도도 좋았다. 심지어 사후 가장 부패하기 쉬운 뇌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현대과학으로 불괴의 육신을 실증한 것으로 불법수련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륙 언론에서도 여러 번 보도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현에 관한 기록은 너무 적다. 그러나 민간 전설에 의하면, 자현은 일찍이 신적을 보인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자현법사가 인도에서 처음 북방에 왔을 때, 향당산(響堂山) 일대에서 수련했다. 당시 요태종(遼太宗) 야율덕광(耶律德光)이 요나라 대군을 이끌고 중원을 침입해 후진(後晉) 왕조와 싸웠는데 도중에 늘 대대적으로 살육을 했다.
그의 대군이 향당산 부근에 주둔할 때, 태종이 친위부대를 이끌고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한 노스님을 만나자 호령하며 물었다.
“너는 머리가 몇 개나 되느냐? 감히 아직도 여기서 다니며 내 길을 막다니, 설마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노스님은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 부처님께선 자비로우신데, 시주께선 왜 무고한 이들을 함부로 죽이려 하십니까?”
요 태종은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어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과인은 천하를 소탕해 평정하려 하는데 내 길을 막는 승려에게 거리낄게 뭐 있겠느냐?”
그의 표정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고 한 마디만 부합하지 않아도 당장 칼을 들어 죽일 기세였다. 하지만 노스님은 지긋이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민심을 얻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 태종이 이 말을 듣더니 마음이 움직여 선념(善念)이 일어났다. 이에 자세를 좀 낮추고는 물었다?
“그대는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그러자 노스님이 말머리를 돌리면서 말했다.
“노승은 그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발 디딜 땅 한 조각만 있으면 되고 시주께서 온전히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태종은 속으로 비웃으며 생각했다.
‘원래 역시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범부가 말로 사람을 희롱한 것이로군.’
이에 말했다.
“말해보라, 얼마나 큰 땅을 원하느냐?”
노스님이 싱긋이 웃으며 한 손을 내밀며, “크지 않습니다. 크지 않아요. 손바닥만 하면 충분합니다.”라고 했다.
태종이 냉소하며 말했다.
“좋다.”
그런데 이 말을 끝내자마자 노스님의 신체가 갑자기 산보다 훨씬 높아졌고 온몸이 금빛으로 번쩍였다. 오른손을 내밀어 아래 산을 가리니 향당산 사방 약 백 리가 손바닥에 가려졌다. 손바닥의 손금은 장하의 두 갈래의 큰 강을 덮었다. 또 수중의 지팡이 소리가 건곤(乾坤)을 진동시켰다.
요 태종과 여러 군사들이 이 광경에 진감(震撼)을 받아 모두들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렸다. 그러자 노스님이 신통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향당산 석벽에 산의 그림자와, 손도장이 바닥에 석장을 깊은 구덩이에 남긴 것을 보았다. 바로 이 스님이 자현이었다.
요 태종은 이에 공손하게 그를 법사(法師)로 청해 군대를 따라 다니며 불법을 설명하게 했고 아울러 살육을 줄이라고 명령했다.
얼마 후 요 태종의 대군이 개봉(開封)을 함락시키고 후진을 멸망시켰다. 그러자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했다. 처음 불법을 믿은 요 태종이 성루에 올라가 중원 백성들에게 말했다.
“나도 사람이니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 너희들을 폭정 아래서 벗어나게 해주겠다.”
그러자, 백관이 투항했고 민중들도 안정되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이 지방 절도사들이 투항했다. 하지만 중원의 풍요에 대한 태종의 욕심이 강해져서 끝내 민심을 얻으려는 선념(善念)과 불법에 대한 신심을 넘어섰다.
그는 이에 자현법사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병사들에게 말을 기른다는 명목으로 도처에서 약탈할 수 있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것을 “타초곡(打草穀)”이라 하는데 사실상 약탈을 허용한 것이다. 이에 낙양, 개봉 인근 수백 리에 걸쳐 아무것도 없게 만들었다. 또 군대를 접대한다는 명분으로 엄한 명령을 내려 모두 재물을 바치고 돈을 내게 했다. 이렇게 얻은 재물은 모두 요 나라로 반출해갔다.
그러자 중원 민중들이 분분히 일어나 저항했다. 태종은 살인명령을 내려 분풀이를 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점점 더 통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민심을 얻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민심을 다 잃어 더 이상 통치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생각했다.
‘계속 살육하는 것보다 빨리 군대를 철수시켜 요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
이에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자현법사도 그의 대군을 따라 철수했다. 그런데 철군 도중 추격병들의 매복 공격을 당했다. 요 태종은 작은 성 안에 포위되어 아주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그는 매우 후회하여 자현법사를 불러 말했다.
“내 목숨은 끝났습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니 법사를 대요(大遼)로 데려가 불법(佛法)을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현법사는 그가 참회하는 마음이 생긴 것을 보고는 말했다.
“저는 이미 대왕께 이런 겁수(劫數)가 있을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왕께서는 애초 향당산에서 살육을 멈추려는 선념을 지녔고 또한 법을 널리 알리려는 마음을 품으셨기 때문에, 우리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저를 보내 당신을 구하러 왔던 것입니다.”
이에 자신이 신던 짚신 한 켤레를 벗어 주며 말했다.
“이 짚신을 북쪽 성문에 걸어두면 오늘 밤 위험에서 벗어나실 수 있을 겁니다.”
요 태종은 자현대사를 굳게 믿고 그가 시킨대로 짚신을 성문에 걸어두었다. 한밤중이 되자 하늘색이 급변하더니 북쪽 성문에 천병천장(天兵天將)들이 대거 나타났다. 포위한 병사들이 이 기적을 보고는 퇴로를 열어주었다. 요 태종은 이렇게 곤경에서 벗어났고 대군을 이끌고 퇴각할 수 있었다.
살육과 약탈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요 태종은 끝내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귀국 도중 난성(欒城,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 난성구)에서 병사했다.
요나라에서 새 황제인 도종(道宗)이 즉위했고 몇 달 후 대군은 무사히 요나라 수도로 돌아갔다. 신 황제도 자현법사의 사적을 듣고는 그를 만나보려 했다.
그런데 한 대신이 말했다.
“제가 듣기에 도를 얻은 사람은 반드시 광대하고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폐하께서 그를 시험하여 그가 얼마나 수련을 잘했는지 밝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 도종은 자현법사에게 내일 들어오되 궁문을 통과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자현법사는 성지를 받고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약속한 시간이 되자 자현법사가 궁성 밖에 도착했다. 내외 궁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본, 자현법사는 신통력을 발휘해 공중으로 날아올라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 수위가 자객으로 의심해 큰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왜 무단으로 금궁(禁宮)에 들어오느냐?”
그러자 자현이 말했다.
“소승 자현, 성지를 받들어 입궐했습니다.”
이에 황제가 급히 수위를 물러나게 하고는 자현법사에게 말했다.
“법사님, 하늘에서 들어오셨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성과(聖果)를 얻은 이는 하늘로 올라가고 땅에 들어가는 일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황제가 또 물었다.
“왜 도를 얻은 성인은 이렇게 적고 범부는 이렇게 많습니까?”
자현법사가 웃으며 말을 하지 않고는 찻잔을 손에 들어 물이 넘칠 때까지 부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법사가 말했다.
“대체로 범부는 번뇌와 어리석은 견해로 가득 차 있으니 바로 이 찻잔처럼 물이 차면 자연히 물을 담을 수 없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번뇌를 받들고 내려놓지 않으니 어찌 성현의 교화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탄복했다! 새 황제는 즉시 자현법사를 삼장법사(三藏法師)로 책봉했다. 이때부터 자현법사는 요나라에 머물면서 불법으로 중생을 교화했고, 그의 제자들이 다섯 대에 걸쳐 불법을 널리 알리고 백성을 교화하며 북방에 불교를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료출처: 민간전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