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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蓮)을 말하다

대법제자

【정견망】

1. 연화(蓮花)의 상징의미

연화(蓮花)란 인간세상의 연꽃인 하화(荷花)가 아니다. 연화는 원래 불가(佛家)의 상징이며 인류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보는 하화는 사실 연화와 아주 비슷한데, 어떤 이는 하화는 인간세상에서 연화 상징의 체현이라고 한다.

불가는 연화를 상징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연화의 상징의미는 무엇인가?

인류는 하화(荷花)를 통해 “더러운 진흙에서 나왔지만 성결한(出污泥而聖潔)” 이치를 인식한다. 다시 말해 사람은 가장 복잡하고 가장 더러우며 가장 썩은 환경 속에 있지만 세속을 초탈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좋고 더더욱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대단한 생명이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가장 성결한 생명이다.

한 생명이 그의 일생 중에 끊임없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높은 층차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고 승화하는 과정이 바로 수련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더러운 진흙에서 나왔지만 성결한” 하화로 불법수련(佛法修煉)의 도를 펼쳐내는 이유이다.

형태적으로 보자면 연화(蓮花)는 단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층차가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알다시피 수련에는 층차가 있다. 심성(心性)이라도 좋고 공(功)이라도 좋은데 모두 표준이 있고 층차의 구분이 있다. 한 수련인이 도달하는 층차가 높을수록 원만 후 그가 증득(證得)하는 과위(果位) 역시 높다. 이것이 바로 연화 ‘층차’가 상징하는 함의다.

분명한 것은 불법수련 중에서 연화가 펼쳐내는 내함은 바로 가장 복잡하고 가장 썩은 환경 속에서 닦아내는 것이고, 수련에는 층차가 있는데 층차가 높을수록 과위가 높다는 것이다.

2. ‘연(蓮)’에 담긴 함의

‘연(蓮 lián)’이란 글자는 “艹, 車, 辶”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의 초(艹)는 연화(蓮花)가 식물인 것을 뜻하고 “착(辶)”은 과정을 대표하며 수련의 승화와 원만과정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차(車)’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연(蓮)’이란 글자의 핵심은 바로 이 ‘차’에 있다.

차는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아주 익숙한 교통운반수단이다. 다시 말해 ‘차’의 내함이 펼쳐진 것이 바로 ‘운반(運載 또는 적재)’이다. 그렇다면 불법수련을 대표하는 ‘연(蓮)’에 왜 ‘차(車)’가 들어 있을까? 왜 ‘운반’이란 내함을 담고 있을까?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사람 이 공간에서는 인체가 수련하지만 수련 원만할 때는 수련인의 다른 공간의 진체(真體)가 떠나가는데 바로 사부가 받아간다. 그렇다면 사부가 제자를 받아서 떠나는 상태의 체현이 바로 ‘운반’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수련원만을 대표하는 연에 ‘차’를 사용하는 원인이다.

그런데 ‘차’는 단지 ‘운반’이란 뜻뿐만 아니라 ‘법도(法度)’의 체현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진시황의 진조(秦朝)가 6국을 통일하면서 수레의 궤도를 통일시켰고 다시 말해 수레의 표준을 정했다. 특히 인류에게 기차가 출현하면서 동일한 궤도가 필요해졌고 오늘날 각종 다양한 자동차 역시 ‘차’의 기본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차’에는 ‘운반’ 외에도 ‘도량형의 통일’이란 의미가 있고 또 ‘법도’란 내함이 담겨 있다.

그럼 여기서 세인들에게 계시(啓示)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공간에서 어느 한 국가 또는 어느 한 지방에서 다른 나라나 다른 지방에 가려면 차를 사용하고 배를 사용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인류라는 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가려면 반드시 사람에게 가는 방법과 가는 도리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시 말해 반드시 ‘법(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도법(道法)이고 이것이 바로 불법수련(佛法修煉)이다.

그럼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차(車)’란 글자의 배후 내함은 사실 바로 법선(法船) 즉 사람을 구하는 법선이다. 사실 ‘차(車)’는 한 가지 아주 중요한 내함을 펼쳐주는데 그것은 바로 가공하고 조각하는 것이다. 이는 수련의 내함을 체현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다시피 ‘하(荷)’와 ‘연(蓮)’은 본질적으로 내함이 다르다.

‘하(荷 hé)’에서 ‘하(何)’는 확정되지 않은 의문인데 이는 바로 ‘사람’의 상태를 체현하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대체 무엇인가? 하(何)는 ‘人+可’이고 하화(荷花)는 또 불가에서 연화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하(荷)’가 펼쳐내는 내함은 바로 사람은 수련할 수 있고 불법 수련을 통해 원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荷)’와 ‘연(蓮)’에 담긴 함의를 통해 이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본질은 바로 수련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蓮)은 바로 ‘가는(辶)’ ‘차(車)’를 말한다. 물론 이미 수련 원만했거나 또는 원만 과정 중의 상태를 표현한다.

3. 연(蓮)의 발음

주지하다시피 한자(漢字)에눈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데 바로 같은 발음을 지닌 동음(同音)자가 많이 존재한다. 한자에는 대략 400여 개의 발음이 존재하는데 발음이 같은 매 조마다 몇 개에서 심지어 몇 백 개에 이르는 동음자들이 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법리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한자는 발음이 같으면 기원이 같다. 다시 말해 동음자는 모두 하나의 공동 내원을 지니기 때문에 비록 각기 해석은 달라도 배후 더 높은 경계(境界)에서는 반드시 같은 한 가지 이치를 말한다. 즉 한 가지 이치가 다른 각도에서 전개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연(連 lián)과 발음이 같은 글자들을 살펴보면 련(蓮), 련(煉 liàn), 련(練 liàn), 검(臉 liǎn), 련(戀 liàn), 련(憐 lián), 렴(簾 간체는 帘 lián), 겸(鐮 lián), 련(連 lián), 련(聯 lián)이 있다.

앞서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시피 ‘연(蓮)’이 펼쳐내는 내함은 바로 “더러운 진흙에서 나온 성결함”과 층차 제고 및 수련 원만이다. 그렇다면 연(蓮)과 같은 발음을 지닌 글자들도 바로 이 이치를 둘러싸고 수련 중의 부동한 상태를 펼쳐낼 것이다.

(1) 얼굴—검(臉 liǎn)

‘검(臉)’은 사람의 얼굴을 말하는데 한자에서 검에 부여된 함의는 사람의 체면으로 드러난다. 체면이란 물론 표면적인 것이고 사실 바로 허영심이다. 수련인으로서 닦아버려야 할 사람의 집착심이다. 그런데 한자 검에는 또 보다 깊은 내함이 들어 있다.

검(臉)은 월(月)과 첨(僉 qiān)의 결합인데 첨이란 ‘모두’나 ‘전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또 서명한다는 뜻의 첨(簽 qiān)과 발음이 같다.

다시 말해 한자 ‘첨(僉)’이 표현하려는 뜻은 사람마다 모두 무언가를 서명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파룬따파 법리가 알려주다시피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절대 다수 부동한 층차의 고층 생명이 세상에 내려온 것으로, 모두 인류 최후 시기에 우주의 법을 전하기 위해 서약을 맺고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검(臉 얼굴)’이 체현하는 ‘체면’ 배후에 담긴 함의는 사실 한 생명이 세상에 내려오기 전의 약속이다. 이것이 바로 한 생명의 진정한 얼굴이고 가장 큰 체면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질은 바로 수련해야 하며 세상에 내려올 때의 약속을 위배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허영심을 버리고 각종 사람마음의 집착을 제거해 세상에 내려올 때의 약속을 이행하고 이 역사적인 큰 소원을 완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체면을 잃지 않는 것이고 이것만이 진정으로 면목이 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자 ‘검(臉)’에 담김 부동한 층차의 내함이 전개된 것이다.

(2) ‘련(連)’과 ‘련(聯)’

“련(連)”은 일체로 녹아들어가거나 결합한다는 뜻이고 ‘련(聯)’이란 병렬로 결합해 일체가 되는 것이다. ‘련(聯)’은 일체가 된 상태 속에서도 각자의 독립성을 잃지 않는다.

다시 말해 ‘련(連)’이 본질적인 개변이고 서로 통한다면 ‘련(聯)’은 형식적인 개변으로 본질적으로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두 글자의 배후에는 어떤 내함이 있는가?

‘련(連)’을 식물의 형태로 펼친 것이 바로 ‘연(蓮)’으로 불법수련을 대표한다. 분명한 것은 ‘연(連)’의 배후 내함은 바로 인연 있는 사람이 법을 얻고 수련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전의 인연과 연계해 수련으로 ‘들어가’ 진정으로 불법수련에 녹아 들어가 불리(佛理)로 자신을 개변하는데 다시 말해 법에 동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개변과 관련된 일체는 마땅히 다 이 ‘련(連)’을 써야 한다.

반면 ‘련(聯 간체는 联)’은 확실이 ‘연합(聯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결합하긴 했지만 구별이 있는 형식적인 결합으로 근본적으로 자아를 개변하지 않는다. ‘련(聯)’에서 ‘귀(耳)’가 대표하는 것은 듣는 것으로 즉 듣고 안다는 뜻이다. 사(糸)는 가는 실을 말하는데 배후에 담긴 뜻은 사람을 생생세세 이끄는 인연이다. 또 관(丱 guan)은 어리다는 유(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내함은 어리석어서 잘 모르고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광물을 가리키는데 채굴할 수 없는 매장된 광물을 말한다. 배후에 담긴 뜻은 사람의 대뇌가 70% 잠겨 있으며 법을 얻지 않고 우주 대법의 법리를 모르면, 다시 말해 미혹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련(聯)’을 배후의 내함과 결합시켜 해석해보면 현재 많은 이들이 법을 얻고 수련하러 온 인연 있는 사람들로 파룬따파의 진상을 듣고 대법을 접촉해야 한다. 하지만 각종 원인으로 진정하게 명백해지지 못했고 아직 수련에 들어오지 못했거나 혹은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아직 미혹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생명과 불법(佛法) 사이에 관계 상태가 바로 ‘련(聯)’이다.

‘련(連)’과 ‘련(聯)’에 담긴 뜻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이 두 한자가 보여주는 것은 사실 역사적으로 불법(佛法)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오늘날에 이르러 마땅히 법을 얻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부동한 상태와 부동한 선택을 표현한다.

(3) ‘련(煉)’과 ‘련(練)’

‘련(煉)’의 본래 뜻은 바로 ‘불’로 단련하는 것이다. 속담에 “진금(真金)은 불의 단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련(煉)’이 체현하는 내함은 바로 수련은 반드시 엄격한 것으로 ‘진짜 칼과 진짜 창’의 고험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열악한 환경 하에서나 그 어떤 고험에 직면해서도 늘 반드시 정념(正念)을 지키고 관(關)을 넘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진정한 수련이다.

물론 불 ‘화(火)’자에는 또 사당(邪黨)이 꾸민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의 의미도 있는데 왜냐하면 인류가 생긴 이래 인간세상에서 가장 큰 ‘불’이기 때문이다.

한편, ‘련(練)’이란 한자의 해석에서 체현되는 것은 바로 표면, 형식이며 실질적인 것을 건드리지 못하는 표면적이고 기계적인 동작인 ‘형(形)’의 체현이다.

‘련(煉)과 련(練)’ 같은 음의 두 글자를 같이 결합해서 보자면, 수련에는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으며 낮은 층차의 것으로 법의 지도가 없고 엄격한 고험을 거치지 않는 것은 모두 진수(真修)가 아니라 당연히 원만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알려준다.

(4) ‘련(戀)’과 ‘련(憐)’

‘련(戀)’이란 한자의 표면적인 해석은 떼어내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분명 사람의 정(情)을 의미한다. 하지만 ‘련(戀)’의 배후 내함은 이렇다. 서약을 하고 내려 온 고층 생명이 생생세세 윤회 속에서 시종 자신의 서약을 잊지 않고 오늘날 파룬따파가 전해져 나온 후 다시 이 인연과 연결(連)되는 것이다.

‘련(戀)’에서 ‘언(言)’은 일찍이 맺은 서약을 말하고 사(絲)는 가는 실인데 단단히 이어진 그 연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련(戀)’이 세인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정을 내려놓고 다시 이전의 연분에 연결해, 마음속으로 세상에 내려올 때의 서약을 굳게 지키며 법을 얻고 수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련(戀)’에 포함된 의미다.

한편 ‘련(憐)’이란 불행한 사람을 동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가장 불행한가? ‘련(憐)’에 바로 그 해답이 있다. 우선 ‘미(米)’의 표면적인 의미는 바로 식량이지만 배후의 내함은 바로 생명이 세상에 내려올 때 맺은 서약이다. 또 ‘천(舛)’은 잘못이나 위배를 말한다.

여기서 잘못이란 당연히 일부 생명이 세상에 내려올 때 최후 법을 전할 때 부면(負面)작용을 일으키도록 선택한 것을 말하는데 이는 바로 잘못된 선택이다. 위배란 일부 생명은 본래 법을 얻어 수련하기 위해 왔지만 생생세세 윤회 속에서 방향을 잃고 완전히 속세에 빠지거나 일부는 심지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악인(惡人)이 된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모두 도태되는 생명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므로 구도할 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가장 가련하다. 이것이 바로 ‘련(憐)’에 담긴 배후의 내함이다.

마치 ‘련(煉) vs 련(練)’과 마찬가지로 ‘련(戀) vs 련(憐)’은 오늘날 우주 대법이 전해질 때 2가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운명의 상태가 있음을 표현한다.

(5) ‘렴(簾)’과 ‘겸(鐮)’

‘렴(簾)’은 발이나 주렴으로 차단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가장 큰 차단은 무엇인가? 지금 세상의 세인들은 대부분 인류 최후에 우주 대법을 위해 온 것으로 이는 전반 인류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법을 얻음을 차단하고 세인이 우주진상을 아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차단이 아닌가? 그러므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중공사당(中共邪黨)이야말로 인류의 악마이며 바로 인류의 시선을 차단하는 가장 큰 ‘렴(簾)’이다.

한편 렴(簾)을 구성하는 ‘렴(亷)’은 또 공산사당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렴(廉)은 ‘產+兼’인데 ‘겸(兼)’이 바로 공동이란 뜻이니 즉 ‘공(共)’이다. 그렇다면 ‘產兼’은 바로 ‘공산(共産)’이란 뜻이 된다. 또 ‘렴(廉)’의 뜻은 청렴인데 이는 곧 무산(無産)을 뜻하기에 배후에 담긴 함의는 마찬가지로 공산(共産)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 렴(廉)은 염가 또는 가격이 싸다는 뜻이다. 그럼 중공의 당단대(黨團隊)에 가입한 이들은 현재 중국 대륙에서 가장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다 가입할 수 있고 모든 청소년들은 모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그러므로 ‘렴(廉)’의 배후에 담긴 뜻은 바로 중공사당을 암시한다.

한편 낫을 뜻하는 ‘겸(鎌)’은 공산사당의 표지로 더 명백하게 중공사당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렴(簾)과 겸(鎌)’을 통해 중공사당의 형상과 작용 및 본질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연(蓮)’과 같은 발음을 가진 한자 해석을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수련인으로서 수련에서 성취하려면 반드시 연꽃이 “더러운 진흙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의 정을 내려놓고 사당의 박해와 탄압이란 저애를 돌파해야 한다.

가장 복잡하고 가장 열악하며 가장 더러운 이런 환경 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수련해 나와야지만 비로소 가장 위대하고 가장 성결한 생명이 될 수 있다.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으면 그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으며, 보다 높은 층차의 과위를 얻을 수 있다.

인류 이 공간의 연꽃인 ‘하화(荷花)’가 다른 공간의 ‘연화(蓮花)’와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련인이 원만 귀위한 후 이 공간의 몸 역시 다른 공간의 고급생명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연(蓮)’이 인류에게 펼쳐내는 천기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12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