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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 대한 고금의 논설 5: 유빙(劉憑)

이각(李覺)

【정견망】

유빙(劉慿)은 패(沛) 지역 사람이다. 군사적으로 공을 세워 금향후(金鄉侯)에 봉해졌다. 직구자(稷丘子)에게 도(道)를 배워 늘 석계영(石桂英)과 중악(中嶽 숭산)에서 나는 석유황을 먹었다. 3백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젊었고 특히 숨을 잘 참았다.

일찍이 유빙이 장안(長安)에 간 적이 있는데 여러 상인들이 그의 도술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보호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유빙이 말했다.

“가능합니다.”

이에 100여 명이 그를 따랐는데 여러 재화를 지녀 합하면 만금(萬金)의 가치가 있었다.

가는 도중 산 속에서 수백 명의 도적떼를 만났다. 도적들은 칼을 들고 활을 당겨 들고는 유빙 일행을 에워쌌다.

그러자 유빙이 도적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사람이 되었으면 마땅히 온량(溫良)해야 한다. 만약 재주를 펼치고 덕행을 베풀어 관리가 되어 봉록을 받을 수 없다면 마땅히 부지런히 일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뻔뻔스런 낯으로 승냥이처럼 악독한 마음을 품고 도적이 되어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것이냐? 지금 나의 이 법술(法術)은 시체를 저잣거리에 늘어놓아 까마귀와 매에게 먹이로 줄만큼 대단한 것이니 너희들의 활과 화살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지만 도적들은 그의 권고에 따르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화살을 쏘았다. 그런데 화살들이 도리어 도적들의 몸으로 되돌아 발사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큰바람이 나무를 꺾고 모래가 휘날리며 흙바람이 일어났다.

유빙이 크게 외쳤다.

“이런 미천한 것들이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천병(天兵)들이여 먼저 두목을 죽여라!”

이 말이 끝나자마자 도적들은 일시에 땅에 엎드려 팔을 등 뒤로 하고 움직일 수 없었으며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는 것이 곧 죽을 것 같았다. 그중 두목 세 사람은 코에서 피가 나오더니 머리가 깨져 죽었다. 남은 자들이 겨우 입을 벌려서 간청했다.

“저희를 놓아만 주시면 악행을 고치고 선량하게 살겠습니다.”

이때 일행들 중 도적들을 베어 죽이려던 이가 있었는데 유빙이 이를 제지시키고는 도적들을 꾸짖었다.

“본래 너희들을 모두 죽일 작정이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진 못하겠다. 지금 너희들을 놓아주면 계속해서 도적이 되겠느냐?”

그러자 도적들이 모두 목숨을 구걸하면서 “당장 고치고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유빙이 천병들에게 놓아주라고 명령하자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고 모두 풀어주었다.

한편 어느 백성의 아내가 귀신에 홀리는 병에 걸려 여러 해 동안 낫지 않았다. 유빙이 칙령을 내리자 집 옆에 있던 샘물이 저절로 말랐고 그 안에 교룡(蛟龍) 한 마리가 말라죽어 있었다.

또 어느 오래된 사당에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나무 위에서 늘 빛이 났다. 이 나무 아래에 머물던 사람들이 여러 명 급사했다. 새들도 감히 이 나무에 둥지를 틀지 못했다. 그런데 유빙이 칙령을 내리자 한여름에 나무가 말라죽었고 7~8장이 되는 큰 뱀이 나뭇가지에 걸려 죽어 있었다. 이후로는 더 이상 우환이 없었다.

한편, 유빙 고모의 아들이 남과 땅을 놓고 다투다 소송이 걸려 태수(太守)에게 불려갔다. 고모 아들은 무리가 적고 상대방은 무리가 많아 친지와 고을 사람들이 서로 직접 도와주니 거들어주는 사람이 40~50명이나 되었다. 유빙이 한참을 주저하다가 문득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너희들이 감히 이렇게 굴다니!”

이 소리가 끝나자마자 뇌성벽력이 치며 붉은 빛이 집안을 가득 비췄다. 그러자 상대방 사람들이 일시에 땅에 엎드려 인사불성이 되었다.

태수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부디 위엄을 거둬주십시오. 제가 마땅히 순리대로 판결해 실수가 없게 하겠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모두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한무제(漢武帝)가 이 말을 듣고 그를 불러 시험해보았다.

“대전 아래에 수십 명의 요괴가 있는데 진홍색 옷을 입고 머리를 산발한 채 촛불을 들고 줄줄이 말을 타고 다니는데 그대가 다스릴 수 있겠는가?”

유빙이 말했다.

“하찮은 귀신에 불과합니다.”

밤이 되자 무제가 사람을 시켜 요괴 흉내를 내게 했다. 유빙이 대전 위에서 부적을 던지자 수십 명이 땅에 얼굴을 박고 넘어졌고 불을 가져다 대도 숨을 쉬지 않았다.

황제가 크게 놀라서 말했다.

“이들은 귀신이 아니오. 짐이 그대를 시험하려 했을 뿐이오.”

이에 유빙이 도술을 풀어주었다. 나중에 태백산에 들어갔다가 수십 년 후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예전보다 더 젊어졌다.

자료출처: 《신선전》

【평가】

1. 공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유빙이 신통(神通)을 펼쳐 보인 것은 수련이 아니며 인류에게 바른 신념을 남겨주고 수련문화를 남겨주기 위한 것이다. 대법 수련자는 정념(正念)이 확고한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공능이 있을 수 있으나 어떻게 쓰는지 보아야 한다. 악인이 악행을 저지를 때 대법제자는 유빙과 마찬가지로 악인을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유빙처럼 천둥번개가 치진 않는데 이는 오늘날 수련방식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우러나오면 대법제자는 여전히 많은 신적(神跡)을 펼쳐보일 수 있다. 명혜망에 이를 입증하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여기서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2000년 어느 대법제자가 모 경찰서에 납치되었다. 경찰이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는 온갖 고문을 저질렀다. 의자 모서리로 제자의 매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씩 짓눌렀다. 악인들은 극심한 통증을 주는 이런 고문을 오히려 ‘쾌감’으로 여겼다. 경찰은 한참을 고문한 후 이 제자를 방구석에 버렸다.

이때 그녀가 서서히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제인(結印)하자 서서히 몸이 떠올랐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모두 이를 보고는 멍해졌고 그녀를 경찰서에서 공손하게 내보냈다. 당시 그녀의 마음속에 미움은 전혀 없었고 적(敵)도 없었다.

수갑이 자동으로 풀리고 전기충격기가 부서졌으며 정념으로 나갔다. 그녀와 인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후회하고 구도되었다. 고집스레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물론 많았지만 또 깨달은 이도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복이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한 차례 경험이 있다. 세뇌반(洗腦班)에서 발정념을 해서 TV에서 방송 중이던 사악한 영상을 틀지 못하게 했다. TV가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다른 채널은 다 정상이었지만 유독 사악한 영상만은 틀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고쳐봤지만 안 되었다. 나중에 TV를 바꿔도 안 되었고 층을 바꾸고 방을 바꿔도 안 되었다. 나중에 결국 ‘고쳐’졌다.

문제는 제자 자신에게 있었다. 상태를 통제하는데 집착해 공능이 도리어 사악의 심리적인 암시에 의해 타파된 것이다. 하지만 제자는 필경 일부 공능을 펼쳐냈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능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자연스레 “특이공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악의 비판을 현장에서 타파했다.

2. 인과응보

유빙이 “한동안 주저”하거나 “불을 입에 가져댄” 것은 인연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해” 본 것에 불과하다. 이 속에 담긴 현묘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만 유빙이 사람처럼 시비곡절을 고려하고 판단한 것이고 사람이 귀신 흉내를 낸 것을 몰랐다고 여길 뿐이다.

지금 사람들은 오직 사람마음을 써서 생각하는데 만약 그가 우물 속에 교룡이 있고 나무 위에 뱀이 있는 줄 몰랐다면 어떻게 칙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 고모의 아들을 위해 사적인 복수를 하고도 신선이 될 수 있는가? 황제의 시험을 어찌 믿게 할 수 있는가? 이는 장계취계(將計就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지 않은가. 사람이 집착하는 것에 따라 그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믿도록 한다. 생각해보라 천병(天兵)이 유빙의 지령을 따르는데 시시한 태수나 황제 따위가 그의 눈에 찰리 있겠는가? 굳이 명령을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이는 단지 생명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들을 각성시키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생명들은 층층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 속에 수많은 용서받지 못할 죄들을 저질렀다. 구우주의 생명이 보기에는 이미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 이미 과거처럼 신통을 크게 나타내는 방식으로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제도 받게 할 수 없다. 오직 그들의 본성에 의지해 고만한 ‘선(善)’을 점화하고 깨닫게 한 후 그들이 구도받을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신구(新舊) 우주가 교체되는 그 시기는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진상을 아는 대법제자들은 자신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 청성해지길 얼마나 희망하는가?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은 천리이며 진선인(真善忍) 바른 믿음에 의지해야만 이 겁난(劫難)을 지나갈 수 있다. 지나갈 수 있는가 여부는 일념(一念)이 미래를 정할 것이다.

3. 사람은 모두 자신의 위치를 놓고 있다

유빙의 위력 하에서 도적에서 제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의 위치를 놓았다. 그것은 강대한 힘 아래에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오늘 대법제자들은 진선인을 이용해 세인들에게 내심 깊은 곳의 양지(良知)를 불러일으키고 자각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놓게 한다. 이는 완전히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강제적인 협박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층층마다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오늘날 우주정법(宇宙正法)을 하려는 것이다. 내심에서 우러나와 위로 향하고 선을 향해야만 아름답고 원용(圓容)한 신우주를 개창할 수 있다.

유빙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지만 왜 다른 공간의 교룡이나 뱀으로 변한 생명은 용서하지 않았을까? 분자로 구성된 우리 공간보다 입자가 작은 공간의 생명은 인류보다 미시적이고 당연히 인류보다 층차가 높은데(육안으로 볼 수 없음) 왜 도리어 죽음을 당하는가?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인류는 미혹 속에 있어서 무지(無知) 속에서 죄를 지을 수 있지만 도덕의 속박이 있어서 일단 도리를 알고 나서 회개할 수 있기 때문에 도적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공간의 생명은 미혹이 없어서 무엇이든 다 볼 수 있다. 동물은 또 도덕이 없기 때문에 분명히 나쁜 짓을 하는 줄 알면서도 하늘의 이치를 해친다. 하늘이 그것을 죽이려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틀림없이 그렇다. 과거에 “하늘이 내리는 벌은 피할 수 있어도 자신이 지은 죄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이점에서 말하자면 도적 두목을 반드시 죽어야 한 것 역시 필연이다. 오늘날 정법(正法)에서도 마찬가지로. 악행을 지시한 자들은 반드시 멸(滅)한다. 만약 태수가 눈감아주지 않았다면 상대방이 법정에서 큰소리를 낼 수 있었겠는가? 또 유빙이 위엄을 보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지금 법관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태수의 말을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도리를 똑똑히 아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하는데 도덕이란 절대로 없어선 안 된다. 이것이 있어야지만 인간세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신우주 역시 마찬가지다.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도덕표준을 파악해야 한다. 어느 한 층차의 덕(德)을 지녀야만 그 한 층차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느 한 공간의 도(道)를 지녀야만 그 공간의 과위를 얻을 수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아주 어려우며 미혹 속에서 대도(大道)를 깨달을 수 있다. 위치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한편 유빙(劉憑)이란 한자에 담긴 뜻을 풀자면 ‘남으려면(留)’ 이것에 ‘의지해야(憑)’ 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오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이란 없으며 오직 필연만이 있다. 사람들이여, 진실로 오늘날 역사에 담긴 깊은 뜻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0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