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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 대한 고금의 논설 6: 여공(呂恭) 믿음과 선택

이각(李覺)

【정견망】

여공(呂恭)은 자(字)가 문경(文敬)이다. 젊어서부터 복식(服食)을 좋아했다. 남녀 하인 한 명씩을 데리고 태항산(太行山)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 문득 골짜기 안에서 세 사람을 만났는데[한사람은 여문기呂文起, 다른 두 사람은 손문양孫文陽과 왕문상王文上이었다. 이들은 모두 태청(太淸)과 태화(太和)부의 신선들이다.]

그중 한 사람이 여공에게 물었다.

“그대는 장생(長生)의 일을 좋아하는가? 고생을 겪어내고 어려움을 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공이 대답했다.

“진실로 장생을 좋아하지만 애석하게도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 이런 약을 캐서 복용해 작은 이로움이라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문기가 말했다.

“그대가 마침 이때 약초를 캐러 왔으니 마땅히 새로운 삶을 얻을 인연이 있는 것이오. 그대는 또 나와 성이 같고 자(字)도 한 글자가 같으니 장생할 운명이 있는 것이오. 만약 우리를 따라 약초를 캔다면 그대에게 불사의 처방을 알려줄 것이오.”

그러자 여공이 즉시 절을 올리며 말했다.

“다행히 선인(仙人)을 만났지만 우둔하고 죄업이 많아서 가르침을 받기에 부족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만약 저를 도제로 거둬 주신다면 그야말로 재생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인을 따른 지 이틀 후 선인들이 여공에게 비방을 하나 주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대가 여기에 온 지 2일이지만 인간세상에서는 이미 2백년이 지났소.”

여공이 집에 돌아오니 빈집만 남아 있고 자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이에 그 마을의 몇 대 후손으로 조보(趙輔)라는 사람을 만나 물어보자 조보가 말했다.

“당신은 대체 어디서 오셨기에 그렇게 오래 전 사람의 일을 물으십니까? 제가 전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과거에 여공이란 분이 남녀 하인 한명씩을 데리고 태항산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는데 결국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아마 범이나 늑대에게 잡아 먹혔을 겁니다. 그로부터 이미 200년이 넘었습니다. 여공의 몇 대 후손 중 여습(呂習)이란 이가 성 동쪽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사는데 도사가 되어 신봉자가 많다고 합니다. 역경(易經)을 추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공이 이 말을 듣고 곧 여습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하인이 나와 어디서 오신 분인지 묻자 여공이 말했다.

“이곳은 내 집이라네. 전에 내가 선인(仙人)을 따라간 후 지금까지 200여 년이 되었군.”

이 말을 들은 여습이 깜짝 놀라고 또 기뻐하며 달려와 절을 올렸다.

“선인께서 돌아오셨으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여문경은 여습에게 신방(神方)을 전수해준 후 떠났다.

여습은 이미 80이었는데 약을 먹고는 곧 젊어졌다. 200살이 넘어서 산에 들어갔으며 자손들이 대대로 장수했다.

자료출처: 《신선전(神仙傳)•여문경(呂文敬)》

【평가】

1. 믿음

많은 사람들이 여습을 신봉했는데, 여습의 세간에서 직책이 ‘도사(道士)’로 역경(易經)을 추산해 사람의 근심과 난을 물리치도록 도와주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의 조상인 여문경과 비교하면 차이가 이미 아주 크다. 하지만 이익과 득실을 쫓는 세인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아주 컸다.

여공이 집에 돌아오자 여습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곧바로 맞이해 절을 올린다. 이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훨씬 순박했음을 알 수 있다. 믿음을 기초로 하는 고층생명이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여습은 전수받은 처방에 따라 꾸준히 약을 먹었고 후손들도 모두 이를 따랐기 때문에 혜택이 자손에게까지 미쳤으며 집안 전체가 이익을 얻었다. 만약 여습이 여문경을 믿지 못했다면 비록 여습에게 신선이 된 조상이 있고 좋은 근기를 지녔다고 해도 꼭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사람들은 의심(疑心)이 병이 되어 오직 권세만 중시하고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는다. 비록 대법 사부님께서 위에 계시고 대법제자들이 옆에 있어 사람마다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 도리가 좋음을 알아 감히 반대하진 못한다. 하지만 또 위세에 눌려 감히 긍정하지도 못한다. 사람에게 정의감이 없다면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만약 미래 우주가 이를 표준으로 삼는다면 이런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는가?

총명한 사람들은 여문경의 후인에게서 한 가지 계시를 받을 수 있는데 바로 믿음이 있어야지만 미래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들은 늘 5자 진언(真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알려주는 것이다.

과학의 이치에 따르면 이런 ‘양성(良性)정보’는 사람이 좋은 사람을 배우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도덕수준을 제고하면 미래세계로 진입할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이렇겜 말하면, 아마 어떤 사람은 그럼 대법(大法) 외에는 좋은 사람이 없는가?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사람’은 그런 ‘좋은 사람’이 아니며, 구(舊) ‘좋은 사람’이 신(新) ‘좋은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양자의 표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좋은 사람은 아마 나쁜 사람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악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공이 없었다면 여습이 어떻게 2백 살 넘도록 살 수 있겠는가? 또한 도사 여습에게 비록 많은 신봉자들이 있었다 해도 이를 대도(大道)의 실천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이 그를 신봉했지만 그는 무엇 때문에 2백 살 넘게 살고 추종자들을 버리고 홀로 산에 들어갔는가?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은 역경으로 추산한 눈앞의 현실이익에 불과할 뿐이니 장생(長生)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역경은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높은 것이지만 장생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럼 신선(神仙)과는 더욱 비교할 수 없다.

여습의 뜻이 추종자들의 아첨이나 떠받들림에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스스로의 무게를 가늠할 줄 알았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2. 선택

말세(末世)의 번화하고 시끄러운 속에서 우리가 정법수련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람 속에서 뛰쳐나오려는 바람(願望)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여문경이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려고 한 것과 같다. 이 바람을 중시했기에 사부님과 고층생명이 비로소 우리를 선택해 무조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이는 여문경이 마침 그 때를 만난 것과 같다.

속세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고생을 겪으면서 참아내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이 점은 고층생명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면 장차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세 신선은 여문경에게 자신의 약속을 실증하라고 하지 않았고 따라서 약초를 채취하게 하고는 처방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쉽게 법을 얻은 것 역시 이와 같다.

계곡에서 만난 세 사람이 정말 신선이었는지 여부는 여문경이 알 수 없었다. 또한 신선을 따르면서 약을 채취하면 장차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순결한 마음으로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으니 바로 생로병사를 벗어나 공(功)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다. 오직 당신을 만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며 “단지 자신이 어리석고 업이 커서 가르침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의심하고 주저하며 관망하고 거부하면서 위험과 힘든 것을 두려워하며 고생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은데 바로 이 때문에 장애에 봉착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 하나의 ‘선택’을 잘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중요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