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암암리에 정해져 있다: 외생질에게 달린 벼슬길

덕혜(德惠)

【정견망】

북송 연간에 무림(武林 지금의 항주)에 적유강(翟惟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었을 때 바로 그 지역 문단에서 좀 명망이 있었다. 18-9세 때 경성에 올라가 과거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본 후 자형 집에 머물렀다. 그의 자형은 개봉부의 추관(推官) 심부(沈扶)였다.

심부는 자가 ‘직부(直夫)’ 인데 역사적으로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동생 심괄(沈括)은 아주 유명해서 《몽계필담(夢溪筆談)》을 저술했다. 당시 그의 누나는 이미 회임을 하여 산달이 거의 다 되었다. 그래서 적유강은 누나가 출산할 때 필요한 약을 사러 밖에 나갔다.

적유강이 약을 산 후 상국사(相國寺)를 지나가는데 부근에 운명을 점치는 맹인이 있었다. 관상과 목소리를 듣고 운명을 점치는데 뛰어난 사람이었다. 적유강이 자기 과거 시험의 앞길을 점쳐 달라고 했더니 맹인이 물었다.

“당신 손에 든 것이 무엇이요?”

적유강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앞길을 봐달라고 했는데 내 손에 든 것을 묻는가?’ 그래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맹인이 또 말했다.

“손에 든 것이 분만 촉진약이 아니오? 이 부인은 반드시 사내아이를 낳을 거요. 남자아이는 보통이 아니며 앞길이 원대할 것이고 또 당신의 벼슬길과 매우 큰 관계가 있소이다. 이 아이가 고관이 될 때 당신은 비로소 그 덕으로 관직을 얻고 벼슬길이 열릴 것이오.”

적유강은 그 말을 듣고 불가사의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 고향에서 유명한 청년 인재인데 내 벼슬길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이건 절대 불가능하다. 너무 황당한 말이구나!’

그래서 그를 한번 비웃어주고 떠났으며 다른 일을 묻지도 않았다.

얼마 후 적유강의 누나는 아이를 순산했다. 사내아이를 낳아서 이름을 심구(沈遘)라 지었으며 자는 문통(文通)이라 했다. 심구는 자란 후 과거에 붙어 한림(翰林)이 되었고 황제의 시종이 되었고 재주가 뛰어나고 다스림에 밝아 이후 관운이 열렸다.

그는 먼저 월주(越州), 항주(杭州) 등지에 지부(知府)로 나갔으며 가는 곳마다 은혜와 위엄을 병행하며 법을 엄격히 지키고 치적을 많이 세웠다. 이에 백성들이 “이분이 항주의 심공이다.”라며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적유강은 오히려 내내 과거에 붙지 못하다가 송나라 신종(神宗)이 등극했을 때 심구와 함께 공물과 축하 선물을 가지고 경성에 들어가 입조했다.

새 황제는 은혜를 베풀어 그에게 태묘재랑(太廟齋郎)을 시켰는데 태묘재랑이란 태묘에 제사지내는 일을 주관하는 하급 관리였다. 그래서 옛날 맹인의 예언이 영험한 것이었다. 적유강은 과연 외생질의 빛을 받아 비로소 관직을 얻었다.

원풍(元豐) 연간 적유강은 《투할록(投轄錄)》의 저자인 조부(祖父)와 같은 조정에서 관리가 되었고 그가 이 일을 상세히 말했다. 왕안석 문집에 심부의 아내 적부인의 묘지명을 기록해 놓았는데 그 속에 이런 말이 있다.

“금상께서 즉위하시니 한림이 항주를 지켰는데 유강이 공물을 바치러 들어왔다가 벼슬길에 올랐다.”

바로 신종이 즉위할 때 적유강이 외조카인 심구 덕분에 입경해서 조정에서 관직을 얻은 일을 말한 것이다.

자료출처: 《투할록》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