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명나라 때 소주(蘇州) 호구산(虎丘山) 뒤에 장탕촌(長蕩村)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장주현(長州縣) 관할에 속했다. 호구산은 지금의 소주시 서북쪽에 있는데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지세가 험하다. 장주현은 바로 지금의 소주시다.
이 장탕촌에 전(錢)씨 집안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 집안은 가풍이 선량해서 자제들이 모두 덕을 쌓고 선한 일을 했다.
가정(嘉靖) 연간(1522-1566) 장탕촌 전 씨 가족 중 전용봉(錢湧峰)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눈병을 앓아서 두 눈이 마노처럼 빨갰다. 겉으로 보면 아주 이상했다. 요즘 서양의학으로 말하면 아마 고질적인 결막염에 해당될 것이다.
어느 날 그가 하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친척을 만나러 나갔다. 운하(運河)부근의 호서관(滸墅關)을 지날 때 선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날이 밝으면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배가 얼마 가지 않았는데 언덕에서 큰 대나무 상자를 지고 흰옷을 입은 노인이 손짓을 하면서 배를 태워 달라고 했다.
하인들은 모두 이 지방은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데 상대방 사정을 모르니 상관 말고 빨리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전용봉은 원래 노인을 존중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강제로 배를 언덕에 대라고 명령해 노인을 부축한 후 배에 태웠다.
그 때 새벽안개가 점점 흩어지고 언덕의 경치가 드러났다. 전용봉과 백의 노인은 선창에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용봉은 노인의 말투가 범상치지 않고 태도가 뛰어난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분은 절대 평범한 무리가 아니다 하며 더욱 속으로 존경하여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저와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노인이 좋다고 하자 술을 내어왔다. 원래 보통의 술이었는데 상등의 붉은 도화로 만든 미주(桃花佳釀)로 변해 있었다. 그 맛도 마치 신선의 샘물로 빚은 것 같았다.
전용봉은 아주 기이하게 생각했고 노인이 비범한 사람임을 더욱 확신하고는 공경하게 물었다. “어르신 식사를 드시겠습니까?”
노인이 그러겠다고 하자 하인이 밥을 차려왔다. 열기와 김이 무럭무럭 나며 마치 방금 지은 새 밥 같았다. 하지만 이 밥은 사실 어젯밤에 남은 것을 다시 데워 온 것이다. 배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신적(神跡)을 보았으나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술과 식사를 다 마치자 노인이 물었다.
“당신 눈병은 어찌 이렇게 심합니까?”
전용봉이 대답했다.
“오랫동안 고질병이 되어 아무리 해도 낫지를 않습니다.”
노인이 대나무 상자를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손으로 막 방금 마셨던 도화가주를 찍어서 손가락으로 붓을 대신하여 간단히 한번 대충 그리자 한 마리 선학(仙鶴)이 되었다. 전용봉에게 주며 말했다.
“집에 돌아가거든 신당(神堂)에 모시게.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네.”
그리고는 갑자기 말했다.
“노부(老夫)는 다 왔네.”
그리고는 작별하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전용봉이 배 위에서 노인을 전송하고 나서 보니 갑자기 언덕 숲속에서 오색구름이 솟아오르더니 노인이 구름 위에 서서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하늘에 오른 후 비로소 천천히 먼 곳으로 사라졌다.
전용봉은 크게 놀라 문득 노인이 바로 신선이었음을 깨닫고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절을 하고 명령을 내려 즉시 돌아가자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당으로 달려가서 그림 속의 선학을 잘 표구해 걸어놓고 공양했다. 아침 저녁으로 향이 끊이지 않으며 매일 경건하게 참배했다.
이때부터 그의 안질이 금방 치료되었다. 집도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50년간 그의 재산은 수만에 이르렀고 이후 평생을 편안하게 살았다. 마침내는 오래살고 잠들었다. 그가 죽은 후 어느 날 신당(神堂)에 갑자기 불이 나서 재가 되었다. 그날 온 마을의 사람들이 전씨 집 신당의 뜨거운 불속에서 한 마리 붉은 선학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자료출처: 명조 전희언(錢希言) 《회원(獪園)》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