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真愚)
【정견망】
‘악(樂)’은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니는데 그럼 악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내함(內涵) 및 역할은 또 무엇일까? 아래에서는 고대 문헌을 통해 사전(史前)시기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세본(世本)•제계편(帝系篇)》에 이런 기록이 있다.
“여와씨(女媧氏)는 아릉씨(娥陵氏)에게 명령해 도량관(都良管)과 반관(斑管)이란 두 가지 악기를 만들어 천하의 음률(音律)을 통일하고 또 우주에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법칙을 본받아 그것과 상응해 《충악(充樂)》이란 악무(樂舞)를 창작했다. 악무의 악보가 만들어진 후 천하 만물이 모두 교화되고 바로잡혀 만사만물(萬事萬物)이 가장 미시적인 곳에서부터 개변되지 않는 게 없었고 대도(大道)에 동화하게 만들어 일체가 조화롭고 질서가 있었다.”[1]
이상은 《충악》이 창작된 배경이자 과정이다. 이 기록에서 보면 여와씨의 악무는 자연과 우주 및 천도(天道)의 운행규칙에 대응해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생겨난 후 역할은 만물의 심층(深層)과 미시적인 곳에서 만물을 화육(化育)해, 모든 것이 다 자연에 조화롭고 천도(天道)에 순응해 천하가 크게 다스려지게 한 것이다.
《여씨춘추》에 이런 기록이 있다.
“사전(史前)시기 주양씨(朱襄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바람이 많이 불어 양기(陽氣)가 쌓이자 만물이 흩어지고 떨어져서 과일이 영글지 않았다. 그래서 사달(士達)에게 다섯줄의 슬(瑟)을 만들어 음기(陰氣)를 불러오게 함으로써 천하 중생을 안정시켰다.”[2]
같은 책에 또 이런 기록도 있다.
“음강씨(陰康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 음기가 많아서 막혀 쌓이고 백성들의 기운도 막히고 적체되어 근육과 뼈가 수축되어 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도(舞蹈 춤)를 만들어 백성들의 기운이 소통되도록 터주었다.”[3]
이상 두 기록에서 볼 수 있다시피 원고(遠古) 시기에 음양이 고르지 않아 만물이 대도(大道)에서 벗어나 자연법칙이 파괴되는 상황이 나타나자 악무를 창작해 음양을 평형 시키고 만물을 소통시키고 인도해 자연스럽게 조화로운 상태로 되돌아가 천하가 다시 대도로 되돌아갈 수 있게 했다.
원고시기 악무(樂舞)에는 이처럼 강력하고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번 차례 중화문명의 오제(五帝)시기 악무에서도 이런 신기한 에너지가 여전히 아주 분명했다.
황제(黃帝) 때는 대형 악무 《운문대권(雲門大卷)》을 창작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황제의 《운문대권》은 요제(堯帝)의 《대함(大咸)》, 순제(舜帝)의 《대소(大韶)》, 대우(大禹)의 《대하(大夏)》, 상탕(商湯)의 《대호(大濩)》, 주나라 무왕의 《대무(大武)》와 함께 상고 시기 유명한 6개의 악무로 불린다. 《주례(周禮)》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육대(六代)악무’라 부른다.
주대(周代)의 귀족자제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반드시 이 6곡의 악무를 필수로 배워야 했으며 이를 배우지 않으면 사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주조 때는 또 전문적으로 대사악(大司樂)이란 대형 음악기관을 만들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런 악무들을 가르쳤다.
육대의 악무는 모두 제사에 사용되었다. 《운문대권》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쓰고, 《대함》은 땅에 제사를 지냈으며, 《대소》는 사망(四望)에서 제사를 지냈고, 《대하》는 산천에, 《대호》는 선친에게, 《대무》는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데 사용되었다.[4]
황제는 또 상고(上古) 신곡(神曲) 《화서인(華胥引)》과 《청각(清角)》을 창작했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가 꿈에 복희씨가 출생한 고향인 화서신국(華胥神國)에 다녀온 후 치국(治國)과 양신(養身)의 대도를 깨달아 28년의 노력 끝에 천하가 잘 다스려져 반인반신(半人半神)의 나라를 만들자 《화서인》을 창작해 기념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화서인》의 유래다.
《한비자》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옛날 황제가 귀신을 태산 위에 집합시켰을 때, 상아로 장식한 수레를 탔는데 여섯 마리 교룡이 수레를 끌었고 나무의 신 필방(畢方)이 수레 옆을 지켰으며, 치우(蚩尤)는 앞에서 길을 열고, 풍백(風伯)은 땅을 쓸었으며, 우사(雨師)는 길에 물을 뿌리게 했다. 범과 이리떼가 앞장서서 길을 열었고 귀신들이 뒤를 따랐으며 등사(騰蛇)는 땅위에 엎드려 기어가고 봉황은 하늘에서 춤을 추었다. 이렇게 귀신들을 크게 모은 뒤에 《청각》을 만들었다.”[5]
즉, 황제는 이 당시 귀신대회 소집을 기념하기 위해 《청각》을 창작했던 것이다.
사서(史書)의 기록에 따르면 춘추시기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악사인 사광(師曠)에게 《청각》을 연주하도록 강요하자 큰 바람이 불어와 기와가 날라 가고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3년간 토지가 황폐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청각》은 함부로 연주할 수 없고 또한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배후에 함축된 에너지가 너무 강력해서 대덕지사(大德之士)가 아닌 일반인이 들으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이상은 황제(黃帝)의 음악이다. 이어서 다시 오제(五帝) 시기 다른 악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여씨춘추》에 이런 기록이 있다.
“제곡(帝嚳)이 재위 할 때 함흑(咸黑)에게 명령해 《구초(九招)》, 《육렬(六列)》, 《육영(六英)》 등 몇 가지 악무(樂舞)를 창작하게 했다. 또 유수(有倕)란 사람이 작은 북(鼙), 북(鼓), 종(鍾), 반(盤), 취령(吹苓 고대 관악기), 관(管), 훈(塤), 저(篪), 도(鞀), 추(椎) 등의 악기를 발명했다. 제곡이 사람들에게 이런 악기들로 앞에 언급한 악곡을 연주하게 하자 봉황과 천계(天鷄) 등 신조(神鳥)가 날아와 나풀나풀 춤을 췄다. 제곡이 크게 기뻐하며 이들 악곡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천제(天帝)의 덕을 찬송하게 했다.”[6]
《여씨춘추》에는 또 이런 기록이 있다.
“요제(堯帝) 시기 질(質)을 악관(樂官)에 임명했다. 질은 대자연의 산림과 계곡 소리를 본받아 《대장(大章)》이란 악곡을 창작했는데 《대장》은 또 《대함(大咸)》이라고도 한다. 6대 악무의 하나로 하지(夏至)에 땅에 제사 지낼 때 사용했다. 이 악곡을 연주하면 온갖 짐승들이 음악을 듣고 따라서 춤을 추었고 자연만물이 서로 조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7]
이외에도 《상서·고요모(皋陶謨)》와 《제왕세기》 등 고서에 이런 일이 기재되어 있다.
“순이 사람을 시켜 《대소(大韶)》라는 음악을 창작하게 했다. 《대소》는 6대(代) 악무의 하나로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구소(九韶)》 또는 《소소(簫韶)》로 불렸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순이 사람들에게 《대소》 악무를 연주하게 하자 9장 공연이 끝난 후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며 알현했고 온갖 짐승들이 이 음악을 들은 후 모두 따라서 춤을 추었다.”[8]
이로부터 2천년이 지난 후 공자가 제나라에서 운 좋게 《대소(大韶)》악무를 관람했다. 공자는 감상을 마친 후 마음을 빼앗겨 무려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를 정도였는데 당시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음악이 이런 경계(境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노라!”
이것이 바로 《논어》에 나오는 저 유명한 공자가 석 달 간 고기 맛을 몰랐다는 일화다. 공자는 또 이 음악을 평가하면서 “《대소》의 음악은 진미(盡美)하고 또 진선(盡善)하다”[9]고 했다. 이 일화는 또 진선진미(盡善盡美)란 성어가 생긴 근원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다시피 악무에 함축된 에너지는 의외로 대단히 강력해서 직접적으로 신적(神跡 신의 자취)을 펼쳐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귀신을 호령하고 대자연의 공명을 불러 일으켜 선계(仙界)의 금수(禽獸)를 불러올 수 있으며 온갖 짐승들이 음악을 듣고 일어나 춤추게 만들며 천하가 조화롭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사실 악무가 펼쳐내는 신적은 역사발전 과정 중에 줄곧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다만 후대로 갈수록 인류의 물질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끊임없이 욕망과 집착에 속박되어 정신에너지가 갈수록 퇴화되었다. 때문에 이런 신적의 전개 역시 갈수록 더 은폐되었고 더는 원고시기처럼 그렇게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표현되지 않을 따름이다. 하지만 마음을 써서 찾아본다면 여전히 음악 배후 깊은 곳에 감춰진 원고의 신력(神力)을 감응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世本•帝系篇》:「女媧氏命娥陵氏制都良管,以一天下之音,命聖氏為斑管,合日月星辰,名曰充樂。既成,天下幽微,無不得理。」
[2] 《呂氏春秋·古樂篇》載:昔古朱襄氏之治天下也,多風而陽氣畜積,萬物散解,果實不成,故士達作為五弦瑟,以來陰氣,以定群生。
[3] 《呂氏春秋·古樂篇》載:「昔陰康氏之始,陰多滯伏而湛積,陽道壅塞,不行其序,民氣鬱閼而滯著,筋骨瑟縮不達,故作為舞以宣導之。」
[4] 《周禮·大司樂》:乃奏黃鐘,歌大呂,舞《雲門》,以祀天神。乃奏大蔟,歌應鐘,舞《咸池》,以祭地示。乃奏姑洗,歌南呂,舞《大韶》,以祀四望。乃奏蕤賓,歌函鍾,舞《大夏》,以祭山川。乃奏夷則,歌小呂,舞《大濩》,以享先妣。乃奏無射,歌夾鍾,舞《大武》,以享先祖。凡六樂者,文之以五聲,播之以八音。
[5] 《韓非子》:昔者黃帝合鬼神於西太山之上,駕象車而廣蛟龍,畢方並轄,蚩尤居前,風伯掃進,雨師灑道,虎狼在前,鬼神在後,騰蛇伏地,鳳凰覆上,大合鬼神,作為《清角》。
[6] 《呂氏春秋》:帝嚳命咸黑作為聲歌──九招、六列、六英。有倕作為鼙鼓鐘磬吹苓管塤箎鞀椎鍾。帝嚳乃令人抃或鼓鼙擊鐘磬,吹苓展管箎。因令鳳鳥、天翟舞之。帝嚳大喜,乃以康帝德。
[7] 《呂氏春秋》:帝堯立,乃命質為樂。質乃效山林溪谷之音以作歌,乃以麋置缶而鼓之,乃拊石擊石,以象上帝玉磬之音,以致舞百獸。
[8] 《尚書·皋陶謨》:夔曰:「戛擊鳴球、搏拊、琴、瑟,以詠。祖考來格,虞賓在位,群後德讓。下管鞀鼓,合止柷敔,笙鏞以間。鳥獸蹌蹌,《簫韶》九成,鳳皇來儀。夔曰:「於!予擊石拊石,百獸率舞,庶尹允諧。」
《帝王世紀》:烝民乃粒,萬邦作乂,庶績咸熙,乃作《大韶》之樂,《簫韶》九成,鳳凰來儀,擊石拊石,百獸率舞。故孔子稱《韶》盡美矣,又盡善也。(《太平御覽》引)
[9] 《論語》:子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曰:『不圖為樂之至於斯也!』
《論語·八佾》:子謂《韶》盡美矣,又盡善也。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38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