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紫韻)
【정견망】
2017년 션윈(神韻)순회공연 프로그램에 노자 이야기가 무대에 올라와 《도덕경》이 책으로 나오게 된 역사적인 진상(真相)을 예술의 형식으로 세상에 보여주는데 그 속에 담긴 뜻이 아주 깊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현묘하고 또 현묘해서 뭇 오묘함의 문(玄之又玄,眾妙之門)”이란 한 구절이 2500년 도가 전승(傳承)의 문을 열었다. 공연에서 보여준 것처럼, 노자가 도덕경을 글로 쓸 때, 천문(天門)이 활짝 열리며, 여러 신선들이 분분이 찾아와 다퉈가며 전해 읽었고, 천계(天界)가 진동했으며 온 하늘이 함께 경축했다.
인간세상에서도 관방(官方) 세력을 건드렸는데, 돈으로 매수하고 권력으로 핍박해 《도덕경》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승진하고 부자가 되는 도구로 삼으려 하자 천상인간(天上人間)에 정사(正邪) 대전(大戰)을 일으켰다. 이 세상에서 오직 수련 법문(法門)만이 정권과 무관하다는 것을 몰랐는데 왜냐하면 누가 정권을 잡든 수련인의 표준은 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짧은 생명을 기나긴 역사와 비교해보면 무슨 미련을 가질 가치란 아예 없으며, 모든 정법문(正法門) 수련의 첫걸음은 바로 생사(生死)를 돌파해 끊임없이 생명을 연장함으로써 보다 고층의 도법(道法)을 깨닫는 것이다.
수련에서 중시하는 것은 오성(悟性)과 근기 및 수지(修持)하는 심성(心性)이다. 금전 이익은 바로 수련인이 버려야 할 것인데, 이것을 어찌 온몸에 정욕이 가득하고 이욕에 눈이 먼 속인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유혹에 성공하지 못하자 반목해서 원수로 여기고 제거해야만 통쾌하다고 여긴다. 노자는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관직을 버리고 책을 갖고 나가 수도(修道)의 문(門)을 전승할 수 있는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역사를 두루 돌아보면 거의 모든 수련일화는 놀라울 정도로 다 비슷하다. 첫 시작부터 정사(正邪) 대결이 동반하는데 오늘날 발생한 일체와도 대응한다. 대법(大法 파룬따파)은 전해져 나오면서부터 탄압을 받았고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은 지 이미 20년에 가까워졌지만, 심층(深層)에서 표면에 이르기까지 천지인(天地人)과 우주를 관통해 전면적으로 세인들에게 진상을 펼쳐낸 것은 오직 션윈(神韻)뿐이다.
그렇다면 정법에서 션윈이 일으킨 역할에 대해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진정으로 깨달았는가? 2016년부터 대륙제자들도 더는 션윈 CD를 다운로드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적인 깨달음은 수련과 중생 구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반 수련과정에 대해 전체 국면을 관통하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션윈은 이미 정법의 주선(主線)이 되어 정법노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마 많은 제자들이 겉으로는 션윈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아도 법리적으로는 오히려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아주 많은 이들이 션윈을 예술로 여기며 감상했는데, 법의 층면(層面)을 깨닫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예술적인 각도에서조차 션윈의 의미를 모르며, 마음속으로 션윈을 중시하지 못했다.
션윈의 총감독은 사존(師尊)이신데 사존께서 예술의 형식으로 설법하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수인(手印)이 설법의 한 가지 형식인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오직 신(神)의 일면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수련이 귀위(歸位)의 층면에 가까워질 때는 또한 신(神)의 일면이 각성해서 작용을 일으킬 때인데 늘 사람의 층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은 일념만 움직여도 사람이 손발을 써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만약 이때도 여전히 사유가 손발을 써서 일을 하는 데 머물러 있다면 아무리 큰 능력이 있어도 쓰지 못한다. 그 한 층면의 지혜가 있어야 그 한 층면의 능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념(正念)이 바로 신(神)의 능력이다. 정념이 일단 나오면 아무리 사악한 장애와 저애력이라도 모두 우뚝 솟은 거대한 산이 순식간에 얇은 종이처럼 변한다. 힘이 세서 산을 가를 수 있다는 것은 신화(神話)가 아니며 신(神)의 그런 순정(純正)한 일념에서 내원하는데, 가장 표면의 인간 세상으로 오면 오직 사람의 일면이 손가락을 흔들기만 해도 된다.
진정으로 우리 정법노정을 저애하는 것은 사람마음과 관념임을 알 수 있다. 사존(師尊)께서는 일맥(一脈)이 백맥을 이끄는 이치를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자신이 담당한 범위에서 세 가지 일을 잘 하면 바로 맥을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개인에서 전체 국면에 이르기까지 백맥이 다 관통될 것이다. 마치 현관(玄關)이 설위(設位)하는 것과 같은데 그리 적절하지 않은 비유를 들자면 션윈은 바로 현관과 흡사하고, 중국대륙은 무수한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 단전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중국에서 전해져 나와 세계에 널리 알려 졌으며 결국에는 또 중국으로 귀위(歸位)해 정법과정을 원만히 마쳐야 한다. 때문에 션윈이 신전문화(神傳文化)의 본고장인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다. 대륙 제자들은 더는 션윈을 외국 제자들의 항목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다. 지금부터 시작해 션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법리적으로 깨달으면 저항이 적어진다. 전체 정법노정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한 모든 일들은 최후의 순간에 성취되는데, 션윈은 전반 법의 내함(內涵)을 세인들에게 보여주고 있고 아울러 인간 세상에서 예시된 모든 것을 실현할 것이다.
지금은 이미 2017년이 끝나가고 있고 2016년부터 션윈은 더 이상 대륙에서 시디로 제공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에게 중생이 마땅히 극장에 앉아 션윈을 봐야 하며, 제자들의 머릿속에서 반드시 시디에 대한 의존을 없애고 대륙에서 션윈 순회공연을 맞이할 기제(機制)를 일으켜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션윈은 기다리고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매 사람이 다 전체 국면을 관통하는 각도에서 다그쳐 진상을 알리고 주동적으로 션윈을 맞이해 오는 것이다.
대법은 현묘하고 수승(殊勝)하며 내함(內涵)이 끝이 없어서 인류의 문자언어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아주 어렵다. 원래는 아주 간단한 이치이지만 한정된 문자 속에 관통시키려니 정말이지 우주를 계란에 담는 것처럼 답답하고, 장편의 논문을 쓴다 해도 투철하게 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명을 이행하고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역주: 이 글은 원래 2017년 10월 6일 발표되어 현재 시점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이를 감안해서 읽기 바랍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9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