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북송(北宋) 철종 원부(元符) 무인년(戊寅年 1098년), 목주(睦州)에 황사업(黃司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건덕(健德) 출신이다. 목주는 옛날 지명으로 대체로 오늘날의 항주(杭州) 건덕시(建德市) 및 주변 지역을 말한다. ‘사업(司業)’이란 국자감(國子監)의 부장관으로 요즘식으로 말하면 공립학교 부교장에 해당한다. 이 황사업에게는 4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보물처럼 사랑했다. 뜻밖에도 이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황사업은 슬퍼하며 밤낮으로 울었다.
어느 날 그는 선명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죽은 아들이 그에게 말했다.
“저는 이미 환생했으니, 아버님은 더 이상 저를 그리워하지 마세요. 제가 전생에 재상이 되었을 때 좋은 사람을 모함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 집으로 좌천되어 단명 하는 악보를 받았는데, 또 다른 잘못으로 몇 리 떨어진 방십사(方十四) 수재의 집으로 좌천되어 다시 환생했으니, 앞으로 관운이 좀 있을 것입니다. 금생 이후 제 원신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황사업은 깨어나 헛된 꿈이 아니라 죽은 아이의 원신이 탁몽(托夢)한 거라고 생각했다. 검증을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방수재의 집을 찾아갔다. 과연 방수재가 막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도 12월 1일에 태어났다. 즉 자기 아들이 죽은 날이었다. 황사업은 방수재에게 아이를 데려와 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황사업을 보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정말 손발을 춤을 추듯 했다. 물건을 주면서 놀렸으나, 아이는 전혀 낯을 가리지 않고, 손을 들어 가져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황사업은 자기 아들이 환생했음을 깨닫고 집에 돌아와서는 더 이상 아들이 보고 싶다며 울지 않았다.
방십사 수재의 이름은 방일(方逸)이고, 나중에 관리가 되어 관직이 조청랑(朝請郞)에 이르렀다. ‘조청랑’은 정7품 문관이다. 한편 방수재가 낳은 아들의 이름은 방서(方序)로 남송 소흥(紹興) 12년(1142년) 과거에 합격해 상산현[常山縣 지금의 절강 구주(衢州)시 할현(轄縣)] 현승(縣丞)이 되었고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 일은 홍매의 친구 여문이 특별히 이야기한 것을 홍매가 《이견지(堅志志)》에 기록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황사업의 아들이 단명한 것은 전적으로 전생에 재상으로 있을 때 좋은 사람을 모함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전생에 죄를 지었으니, 다음 생에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아무리 큰 관직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절대 인과응보의 법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방수재의 집으로 환생한 것도 아직 갚지 못한 죄업 때문에 상대적으로 벼슬길과 수명이 짧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재상에서부터 단명한 어린이, 그리고 방서에 이르기까지 3세(世) 윤회 과정을 사람의 생명은 끊임없이 전생(轉生)하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갚아야 하는데, 평생 다 갚지 못하면 다시 전생해서 이어서 갚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갚아야만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자료출처: 《이견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