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진(李道真)
【정견망】
15. 도덕의 근원
지금까지 필자는 장구한 중화(中華) 역사의 발전과정에 근거해 역사상 제가(諸家)의 치국(治國) 모델을 통합하고 제련해 중화 치국의 최종 모델을 도출해냈다. 즉 도덕(道德)을 핵심으로 하고 예악(禮樂)을 중층(中層)으로 하며 형법(刑法)을 표층(表層)으로 하는 3층의 입체 모델이다.
이 모델의 세 층은 서로 연결되어 층간의 운행을 형성하는데, 안에서 밖으로 일출(溢出)하는 법칙이 층층을 관통해, 한 가닥 안에서 밖으로 끊임없이 일출하며 운행하는 추세를 형성한다. 때문에 이 모델의 운행 방향은 반드시 늘 도덕이란 핵심층면을 향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일출을 통제할 수 있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고 가장 표층의 법률마저 더는 백성을 제약하지 못하게 될 때 훼멸의 날이 곧 도래한다.
법률이란 가장 표층의 층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말해서, 다른 층면에 비해 죽은 조문(條文)으로 그것은 상(象)을 갖추지 못했다. 반면 사람은 살아있는데 살아있기에 반드시 상(象)이 있다. 만약 인류가 일출추세[溢出之勢]에 따라 줄곧 표층 방향으로만 발전해 일률적으로 법률을 완벽하게 만들고, 법률을 중시하며, 도덕을 무시한다면 이는 죽은 것으로 산 사람을 제약하는 셈이다. 즉, 인류의 상(象)이 서서히 봉쇄되어 죽어 가고 인류는 완전히 생존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끊임없는 일출(溢出)을 만들어 내는데, 인류는 끊임없이 방종하며 법의 빈틈을 파고들 것이며, 법률이 끊임없이 개선되고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악순환이 형성되어 인류가 활동할 공간이 갈수록 더 줄어들고, 갈수록 더 작아져서, 최후에는 그 어떤 출로(出路)도 없이 법률에 의해 산 채로 봉쇄되어 죽을 것이다.
지금의 법률은 갈수록 더 완벽해지고 있고, 법률 조문은 이미 계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으며, 또 매년 증가하고 있어서 세계의 그 어떤 변호사나 판사도 다 기억할 수 없다. 그것은 인류 생활의 거의 모든 방면을 포괄하는데, 마치 하나의 우리처럼 인류를 가두고 있고, 아울러 법률 조문은 여전히 미친 듯이 증가하고 있다. 인류의 활동 공간은 갈수록 작아지는데 이런 추세로 발전해 내려가면 인류는 결국 스스로를 가두어 죽게 만들고 그 어떤 출로도 없게 될 것이다. 인류의 그 어떤 활동도 법률에 저촉될 수 있으니 늘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며 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법을 어기고 있는데 자신이 법을 어겼는지 모른다. 심지어 변호사들조차 모른다. 이는 인류가 스스로를 훼멸하는 길이다.
법률이란 그저 순수하게 사람을 다스리는 수단일 뿐이며 상(象)이 없고 심법(心法)이 없다. 때문에 법률은 절대 단독으로 고립시켜 적용해서는 안 되며, 법은 영원히 단독으로 일가(一家)를 이룰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법(邪法)이 된다. 반드시 심법(心法)에 의지해야 하며, 반드시 법률에 도덕의 내함을 불어넣고 상(象)을 주입해 살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가(道家)에서는 무도(無道)한 자를 토벌할 것을 말하는데 천도(天道)를 준칙으로 삼는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기지만 빠짐이 없기에, 무도하면 반드시 망하는데 이는 도가의 천법(天法)이다.
인간의 법률은 천법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주역》의 서합괘(噬嗑卦)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천법이 인법(人法)을 낳은 과정이다. 유가는 예(禮)에서 나와 형(刑)으로 들어가는데 예와 형을 결합시켜 법률을 유가 예의(禮義)의 기초위에 귀속시켰다. 이렇게 하면 법률은 보다 깊은 층면에 의지해서 상(象)이 있을 수 있는데 즉, 살아있게 된다. 따라서 무한한 발전공간이 있어서 사문화 되어 인류를 막다른 골목에 가두지 않을 수 있다.
현대의 법률은 모두 일출 추세에 따라 표면으로 향하는데 완전히 사람을 다스리는 목적에서 이익을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도덕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법률이 존재하는 의미에서 빗나간 것이다. 이런 추세로 계속 나아가면 법률은 갈수록 더 많아지고 갈수록 더 엄해지지만 범죄율은 오히려 갈수록 높아지고 사회문제 역시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사실 정말 이러한데, 현대 인류는 모두 이 쓴 열매를 맛보고 있고, 뒤로 갈수록 더욱 두렵다.
노자는 말한다.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은 더 가난해지고, 수단이 많을수록 나라는 더 어지러워지며, 기교가 많을수록 사도(邪道)는 더욱 성행하고, 법률제도가 더욱 많고 가혹할수록 도적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이를 통해 보자면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치국의 정도(正道)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법률은 영원히 도덕의 보조 수단이자 임시 수단일 뿐이며 결국에는 반드시 천하를 도덕의 층면으로 이끌어야 한다.
법률이 도덕의 임시 보조 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반드시 도덕이란 핵심 층면을 에워싸고 움직여야 하며, 도덕을 심법으로 삼기에, 결코 빗나가지 않는데 이것이 법률의 정도(正道)이다. 마치 제방이 물길을 단단히 둘러싸면 홍수가 생기지 않지만 물길을 벗어나면 제방이 그 의미와 역할을 잃는 것과 같다.
법률의 제정은 반드시 대도(大道)를 마루로 삼고 도덕 수호를 근본으로 삼아 악(惡)을 처벌하고 선(善)을 선양하는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이익을 핵심으로 삼아선 안 되며, 손해와 이익의 크기를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되며, 사회도덕에 끼치는 영향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법률이란 생명의 이익상에서 공정(公正)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인심 도덕의 공정을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때문에 법률은 반드시 인류 도덕 층면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하며 한 사람의 기본 도덕품행에 대해 판단하고 제재할 수 있어야 하며 인류 도덕을 아예 건드릴 수 없는 죽은 조문이 되어선 안 된다.
중화 치국의 3층 입체모형은 예로부터 늘 안에서 밖으로 층층 일출하는 일종의 ‘추세’를 형성했다. 바로 안에서 밖으로 운행하는 ‘추세’에 의해 이 입체 모형이 층층 운행할 수 있게 한다. 이 모델에서 인류는 이런 일출 추세에 따라 추동되면서 운행하는데 다시 말해 끊임없이 표면으로 일출된다. 최후에는 가장 표층마저 인류의 지속적인 일출을 제약할 수 없게 되는데, 이때 인류는 곧 종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 모델에서 반드시 일출 추세를 거슬러 되돌아가서 핵심의 도덕적 측면을 향해 역행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인류 사회는 끊임없이 승화되고 되돌아오며 점점 더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무한히 밝은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어떻게 해야만 이렇게 강력한 일출 추세를 역행할 수 있을까? 필자가 찾아낸 답은 도덕의 근원을 도입해, 도덕 근원의 강력한 힘을 끌어들여 안에서 밖으로 일출하려는 인류의 추세에 저항해 흐름을 되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의 근원이란 무엇인가? 바로 천지신령(天地神靈)에 대한 인류의 바른 믿음[正信]으로 인류의 도덕은 바로 여기서 발원한 것이다. 이는 우주 고층에서 인간세상으로 유입된 것으로 신령(神靈)이 인류를 인도하는 것이다. 오직 도덕 원천에서 나오는 신앙(信仰)의 힘만이 인류를 정화(淨化)시키고 일출 추세를 상쇄해 인류를 신(神)의 품으로 되돌려, 선천의 순진무사(純真無邪)한 본성으로 되돌릴 수 있다. 이 외에는 그 어떤 힘도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며, 이것만이 인류가 유일하게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다.
도가(道家)의 입세(入世) 부분은 치국(治國)과 사람됨을 말하고, 출세(出世) 부분은 진(真)을 닦아 신선이 됨을 말한다. 때문에 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천지신령과 일체가 되어 도덕의 힘을 끌어들여 수천 년간 중화문명을 유지해왔다. 서한(西漢) 시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남북조(南北朝) 시기 전성기로 발전해 중화 문화체계에 녹아들어오면서 중화문명 도덕을 유지하는 또 다른 기둥이 되었다.
하지만 예부터 신앙은 모두 출세(出世)와 입세(入世)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출세 부분은 도덕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문턱이 극히 높아서 오직 사회적으로 극소수만을 대상으로 하며, 반면 입세 부분은 문턱이 아주 낮지만 힘이 너무 작아서 도덕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단지 어느 정도 일출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도가에서 출세(出世)해 선(仙)을 닦는 부분은 단독 수련을 중시하며, 사람의 오성과 근기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아서, 일반적인 보통 사람이 이런 근기와 오성이 없으면 도를 얻을 수 없다. 도를 얻지 못하면 그 도가에서 도덕이 회귀하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사회는 일반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진정으로 근기가 좋고 오성이 높은 대덕지사(大德之士)는 사회에서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도가는 어쩔 수 없이 문턱을 낮춰 입세(入世) 부분을 발전시켜 일반 대중에 부합해 사회 인심을 규범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가(儒家)다. 즉 유가와 도가는 원래 한 몸으로 출세 부분이 도(道)가 되고, 입세 부분이 유(儒)가 되는데, 이를 외유내도(外儒內道)라 한다.
유가의 궁극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제례(祭禮)는 바로 천지신령(天地神靈)에 대한 신앙의식이다. 유가의 천인합일관(天人合一觀) 역시 천지신령에 대한 신앙이다. 도가가 문턱을 낮춘 입세 부분이 바로 유가이지만 도덕의 힘이 크게 약화되어 그저 어느 정도 일출 추세를 억제할 수밖에 없고 일출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불교(佛敎)는 비록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강조하지만, 사람이 출가해서 전업(專業)으로 수련할 것을 요구하며, 사람의 근기와 오성에 대한 요구가 마찬가지로 아주 높아서,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설령 출가해도 수련 성취할 수 없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출가해서 전업 수련을 한다면 인류사회는 곧 해체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해선 안 된다.
때문에 불교는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하기 적합하도록 출가해서 전업 수련하는 승려와 입세(入世) 해서 신앙하는 세속 신도 양 갈래의 큰 부분으로 나뉘어 발전했다. 하지만 그 세속적인 부분은 도덕을 되돌릴 힘이 없으며 역시 어느 정도 일출 추세를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와 같은 역사상의 다른 정교(正敎) 신앙 역시 모두 이와 마찬가지였다. 세속적으로 광범위한 중생을 겨냥해 전반적인 도덕의 회귀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류 도덕이 갈수록 패괴(敗壞)됨에 따라 이런 유형적인 종교 형세는 끊임없이 패괴한 인류에 의해 파괴되어 말법(末法)으로 나아갔고 심지어 결국에는 사교(邪敎)로 발전한다.
석가모니가 생존해 있을 때 제자들에게 불교의 미래에 패괴 현상이 나타나 말법에 들어가고 더는 사람을 구도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언한 바 있다.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 아난에게 명확히 알려주었다.
“정법(正法)은 불과 오백 년밖에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또 명확히 말하길, 불교가 5차례 500년이 지나면 즉 2천 500년이 지나면(바로 지금을 말한다) 불교는 장차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승려들은 “내 법(法) 속에서 비록 머리를 깎고 가사를 몸에 걸치지만”, 그들은 “계율을 깨뜨리고 행동이 법에 따르지 않아” 모두 “가짜 비구”가 될 것이다.
불교 중에는 또 석가모니와 마왕 파순(波旬)의 일화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석가모니가 막 열반할 무렵 파순이 석가모니에게 말했다.
“당신이 살아 있을 때는 내가 당신의 불법(佛法)을 파괴할 수 없었지만 당신이 열반한 후에는 내가 내 제자와 자손들을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하고, 당신의 절에 들어가 당신의 가사를 걸치고, 당신의 경서를 읽으며 당신의 불법을 파괴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석가모니는 그저 눈물만 흘렸다.
불교의 발전은 앞서 석가모니의 예언과 마왕 파순이 말한 것처럼 진행되었고, 지금에 이르러 승려들이 앞장서서 불교 내부에서 불법을 파괴하고 있다. 불교를 이용해 검은 돈을 벌고, 승려가 정부(情夫)를 두며, 명예와 이익을 위해 경서를 왜곡해 제멋대로 해석하고, 고기를 먹고술을 마시며 도박과 매춘 등을 저지르며, 내부에서 불교를 패괴시켰다. 지금 사람들이 사찰에 가서 부처님께 예불하는 목적은 더는 성심성의껏 부처님을 공경하고, 도덕을 제고시키며 경계(境界)의 승화를 추구해 생명이 가장 아름다운 귀착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불(神佛)의 보우를 비는 목적이 모두 재난을 없애고, 승진해서 부자가 되거나, 좋은 배필과 자식을 얻는 등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사실 다른 정교(正敎) 역시 모두 이와 같다. 왜냐하면 이들 종교는 모두 너무 작고, 갖춘 힘이 너무 작아서, 일반 대중을 겨냥할 수 없고, ‘대도무형(大道無形)’에 도달할 수 없었다. 때문에 전체 인류사회 환경을 수련장소로 삼을 수 없고 인류로 하여금 세속을 떠나지 않고, 사회 각 분야에서 도덕을 회귀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대중을 겨냥해 인류가 세속에서 제고하고 회귀할 수 있게 하는 신앙은 과연 존재하는가?
고대 인도의 《베다본집》과 불교 역사 속에 모두 이런 예언이 존재한다.
“우주 만왕(萬王)의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장차 인간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전륜성왕의 특징은 집에서 출가하지 않고 성불(成佛)하며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 수련하는 것이다.”
《법화문구(法華文句)》에는 “우담바라 꽃은 신령하고 상서롭다는 말이며 삼천년에 한번 나타난다(優曇花者,此言靈瑞,三千年一現).”[107]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혜림음의(慧琳音義)》에는 “우담바라 꽃은 상서롭고 신령한 느낌을 주는데 하늘의 꽃이며 인간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만약 여래가 세상에 나오고 금륜왕이 세간에 나타나면 큰 복덕과 힘으로 비로소 이 꽃이 나타난다.(優曇婆羅花爲祥瑞靈異之所感,乃天花,爲世間所無,若如來下生、金輪王出現世間,以大福德力故,感得此花現)”[108]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담바라 꽃은 1997년 한국 청계사(淸溪寺)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고 지금은 세계 도처에서 활짝 피었다. 사실 필자의 집에도 여러 번 피어났는데 흙이나 물도 필요 없고 세상의 그 어떤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아도 수정처럼 맑으며 또 맑은 향이 있다.
전륜성왕은 바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을 가리키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의 가장 주요한 경서가 바로 《전법륜(轉法輪)》[역주: 전법륜을 직역하면 법륜을 굴린다는 뜻으로 즉 전륜(轉輪)이다.]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을 중시하기에 그 어떤 종교형식도 없고 완전히 세속에서 수행하며, 인류사회 전체를 수련장소로 변화시켜 수련자들은 사회 다양한 업종의 다양한 계층을 포함한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우주 최고 특성 ‘真(쩐)・善(싼)・忍(런)’을 수련 표준으로 삼고 간단하면서도 우아한 다섯 가지 공법을 보조로 삼아 수련자들이 세속의 각종 사회업종 중에서 세속의 다양한 환경을 이용해 자신을 제고시켜 끊임없이 승화해서 원만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1992년 5월 중국 장춘(長春)에서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에 의해 전해졌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중국 전역에 널리 전파되어 당시 중국에서만 약 1억 명의 사람들이 파룬궁(法輪功)을 배웠다. 한순간에 당시 중국사회의 도덕표준이 되살아났고, 사람들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 두목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은 극심한 질투심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해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잔혹한 박해를 일으켜 “석 달 안에 파룬궁을 소멸시키겠다”고 선포했다. 이때부터 중공은 전체 국가 기구를 동원해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무너뜨리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수천 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집을 수색당하거나, 납치되어 판결을 받았으며 또한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고문수법을 총동원한 혹형으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수련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했다. 이에 수백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고문으로 죽거나 다치게 했고, 심지어 마취제조차 투여하지 않은 채 산 상태로 수련생들의 장기를 적취해 폭리를 취했다. 이런 일들은 이미 국제적으로 폭로되어 사실임이 입증되었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중공은 파룬궁을 쓰러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파룬궁은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퍼져 수련하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반대로 중공은 이번 박해 속에서 멸망을 향해 나아갔고, 동시에 그것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류의 바른 신앙[正信]을 광적으로 박해하면서 중국인들의 마지막 남은 도덕마저 송두리째 훼멸시켰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들은 이 기간에 생명의 위험과 엄청난 압력을 무릅쓰고 박해를 제지하며,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세인들에게 진상(真相)을 알려 갈수록 더 많은 중국과 세계 각국의 정의롭고 선량한 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세계 6개 대륙의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퍼졌고, 주요 저서는 이미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세계 각국과 각 민족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각국 정부에서 앞 다퉈 상장을 수여하거나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또 ‘파룬따파의 달’, ‘파룬따파의 주’, ‘파룬따파의 날’ 등을 선포하는 형식으로 지지를 표시했다.
사실 1999년 7월 중공이 발동한 파룬궁 박해는 역사적으로 이미 일찍이 예언된 바 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세기》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예언을 했다.
“1999년 7월
앙골모아(Angolmois) 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공포의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
그때를 전후로 해서 마르스(Mars)가 천하를 통치하는데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을 획득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999년 미국 우주항공국 NASA의 위성이 악마의 얼굴을 한 지구 사진이 찍혔을 때 당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굳이 이 사진을 복사해 교황과 여러 종교 지도자들에게 보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놀라운 일치다. 예언에서 말하는 ‘공포의 대왕’은 바로 공산주의이고, ‘마르스’는 마르크스다. 그것이 만든 공산사교(共產邪教)는 공산국가들에만 해악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전면적으로 전 세계에 침투해 모든 학교, 지역사회에 침투했고 가정을 파괴하고 있으며, 세계 인류의 신앙과 도덕을 파괴하고 있다!
소위 진보주의, 환경운동, 페미니즘 등은 사실 모두 가면을 쓴 공산주의다. 그러므로 그것이 천하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가면을 쓰고 거짓말로 인류를 현혹시킨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데 실질은 인류를 만겁(萬劫)에도 돌아올 수 없는 지옥으로 이끌고 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장차 미래 신인류(新人類)의 심법(心法)이 되어 인류와 우주를 갱신(更新)하고 생명의 경계(境界)를 완전히 새로운 높이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일부 예언에서는 지금 인류는 바로 우주 대갱신(大更新)이란 가장 특수한 시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데, 매 생명마다 모두 이 특수한 시기에 반드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정(正)과 사(邪)를 똑똑히 간파하고, 이성을 지켜내며, 도덕과 양지(良知)에 따라 사악한 공산 마귀의 조직에서 탈퇴해 마귀와 한패가 되지 말고, 자신을 위해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필자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 발전의 맥락과 중화 치국 모델을 모두 정련하고 정리해 내어 세인들이 똑똑히 볼 수 있게 했다. 오늘날의 인류에게 각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가장 중요한 이 역사적인 시각에 자신을 위해 과감하고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깨닫고 선택하면 그래도 마지막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일단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게 되면 장차 영원히 미래를 잃을 수 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사실 신(神)이 일찌감치 미리 배치한 것이다. 매 조대마다 모두 그것의 기수(氣數 정해진 운명)가 있었다. 사실 최종적으로 정해진 결과는 속인은 그 누구도 좌우할 수 없다. 때문에 고대 제왕들은 모두 밤마다 천상(天象)을 관측하며 하늘의 뜻을 받들어 행했을 뿐 감히 하늘을 거스르지 못했다. 누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행하면 신(神)은 곧 그에게 영광과 힘을 준다. 이는 동시에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반면 고집스레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죽게 되는데 천지신령(天地神靈)의 버림을 받아 무생지문(無生之門)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무생지문(無生之門)이란 더는 되돌아올 수 없는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들어가는 문을 말하는데, 사람의 진정한 생명이 영원히 훼멸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
107. 《法華文句》四上:「優曇花者,此言靈瑞。三千年一現,現則金輪王出。」
108. 《慧琳音義》卷八:「優曇花,梵語古譯訛略也,梵語正雲烏曇跋羅花。此雲祥瑞靈異,天花也。世間無此花。若如來下世,金輪王出現世間,以大福德力故,感得此花出現。」
참고문헌:
《春秋緯》
《風俗通義》
《管子•真法篇》
《春秋運鬥樞》
《白虎通義》
《帝王世紀》
《列子•黃帝篇》
《淮南子》
《洛書》
《說文解字》
《高士傳》
《尚書大傳》
《神奇秘譜》
《宋書•符瑞志》
《太平經》
《春秋》
《孟子》
《呂氏春秋》《淮南子》
《新論•王霸第二》
《尚書•禹貢》
《漢書•元帝紀》
《道德經》
《禮記》
《太公六韜》
《左傳》
《大學》
《中庸》
《論語》
《後漢書》
《韓非》
《商君書》
《法華文句》《慧琳音義》
(동방편 완결)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42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