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道生)
【정견망】
5. 문자와 주역
이 장에서는 사례를 들어 주역팔괘와 중화문자의 연원과 현기(機機)를 함께 탐구해보고자 한다.
팔괘가 주역을 낳다
《주역·계사상》에서는 말한다.
“이런 까닭에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서로 갈리고 팔괘(八卦)가 서로 섞여 우레로 고동치고 바람과 비로 적시며”[1]
팔괘란 천지 만물이 보다 고층에서 정련해 낸 8개의 큰 상(八大象)이다. 팔괘가 서로 섞이면 즉 팔괘의 상태가 서로 추동하고 연화하면 각종 운동변화가 생겨나 64상(象)을 만들어내는데 세간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이치를 포함한다.
아래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리괘(離卦 ☲)와 진괘(震卦 ☳)를 위아래로 충첩해 상리하진(上離下震)이 되면 곧 서합괘(噬嗑卦䷔)가 된다. 이를 화뢰서합(火雷噬嗑)이라 한다. 서합이란 깨물고 씹는다는 뜻이다.
팔괘에서 매 하나의 괘는 모두 하나의 상(象)으로 특정한 한 사물을 지칭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만물을 포함하며 64상보다 내함(內涵 안에 담긴 함의)이 더욱 크다.
예를 들어 리괘(離卦)는 불, 태양, 전기, 광명(光明 빛), 눈, 여름, 남쪽, 문명 등등을 상징하는데 만물을 포괄하기 때문에 전부 다 열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번 대표성을 지닌 한 가지 사물이나 특성을 골라 이 괘상(卦象)을 분명히 드러내고 해독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번개(電)’를 골라 리괘를 대표하고 ‘우뢰(雷)’로 진괘를 대표해 한 가지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해보자.
우선 서합괘에 대해 문왕은 괘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합은 형통하니 형벌을 씀이 이롭다.(噬嗑,亨,利用獄)”
즉 서합괘는 순조로우니 형벌을 쓰거나 법령을 정돈하기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공자는 상사(象辭)에서 “우뢰와 번개가 서합이니 선왕(先王)은 이를 보고 형벌을 분명히 해서 법을 집행했다”고 풀이했다.
개인적인 해석: 번개는 리괘를 나타내고 우레는 진괘를 나타낸다. 리괘가 위에 있고 진괘가 아래에서 서로 결합해 서합괘의 상(象)을 형성하니 이는 마치 우레와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우레와 번개가 치는 천상(天象)은 하늘이 인간의 죄악을 다스리고 인류에게 경고하며 천도(天道)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을 대표한다. 악인은 우레와 번개가 치는 천상 아래에서 일반적으로 놀라 두려워한다.
이에 고대 성인과 선왕은 천지자연을 본받아 이 상(象)에서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마땅히 형벌을 사용해 죄악을 다스리고, 또한 법령을 엄하고 분명하게 해서, 은혜와 위엄을 나란히 사용해 군왕의 위엄을 세움으로써 악인을 다스리고, 선량한 이들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인간세상 정도(正道)를 수호해야 한다….”
이외에도 《주역·계사하(系辭下)》에서는 서합괘를 이렇게 풀었다.
“(신농씨가) 낮에 시장을 열어 천하 백성이 이르게 하고 천하의 재화를 모아 거래하며 물러나 각자 살 곳을 얻게 하니 이는 서합괘의 괘상에서 취한 것이다.”[2]
이에 대해 다시 개인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리괘의 상(象)에는 번개, 불, 광명, 태양, 눈, 문명 등의 사물을 포함하는데 앞에서는 번개로 풀었고 여기서는 광명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 진괘는 우레, 진동, 위엄, 발(足部), 동방 등의 사물을 대표하는데 여기서는 위엄이란 뜻을 취했다.
그러므로 이 괘상은 우레와 번개가 교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레 소리가 시방(十方)을 진동시키면 위엄은 있지만 아직 광명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광명이 없는 위엄은 잔혹한 폭력으로 나갈 수 있다. 반면 번개가 천지를 비추면 큰 광명은 갖췄지만 위엄을 갖추지 못하는데 위엄이 없는 광명은 너무 연약해서 절도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레와 번개가 더해져 서로의 속성이 교환되고 서로 보완하니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조화롭고 완벽함에 도달했다.
우레는 번개의 불을 통해 광명해지고 번개는 우레의 위엄을 통해 시방에 떨치니 양자가 결합해 위엄과 광명이 동시에 존재한다. 즉 은혜와 위엄을 나란히 사용하니 천지만물이 우러러보고 경외(敬畏)하게 하여 완벽한 조화에 도달한다.
때문에 신농씨는 천하 백성들로 하여금 천하의 물건들을 모아 서로 교환해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게 하여, 각자 잘 만드는 물건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충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남는 물건으로 자신의 부족을 보충하게 하여 천하 물건들은 모두 서로 보완하고,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했다. 이것이 바로 신농씨가 ‘서합’이란 상(象)에서 깨달아낸 도리다.
물론 ‘서합’의 상(象)은 아주 큰 것으로 여기서는 단지 두 가지 사물을 취해 깨달은 것을 예로 든 것이다. 모든 예를 다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람마다 자신의 오성(悟性)에 따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데 세간의 도리가 모두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만약 주역 64상을 모두 투철하게 깨달아낼 수 있다면 그럼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계에 이르러 세간 만사(萬事)가 존재하고 변화하는 이치를 볼 수 있으며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다.
기타 괘를 두 개씩 중첩해 64상을 형성하는 것도 역시 이런 기전과 이치가 되니 더 열거하지 않겠다.
문(文)이 자(字)를 낳다[因文生字]
‘문자(文字)’는 지금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지만, 옛날에는 문(文)과 자(字)가 별개의 개념이었다.
‘문(文)’의 원래 뜻은 무늬나 결을 뜻했고 ‘자(字)’는 본래 임신이나 출산을 의미했다.
여기서는 주역팔괘의 이치를 결합해 문자에 대해 풀어보자.
《자설(字說)·서(序)》에서는 말한다.
“문(文)이 자(字)를 낳으니,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낳는 것과 같다. 이것은 팔괘를 추연(推演)해 64괘를 낳는 기전과 마찬가지이며 그 성률(聲律), 구조, 함의 등은 모두 자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범인(凡人)의 지혜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여기서 자는 문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즉 문이 먼저고 자는 나중에 나왔다는 뜻이다. 문이 자를 낳는 기전은 팔괘에서 64상을 만든 것과 기전이 같다.
허신은 《설문해자·서(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창힐이 애초 자(字)를 만들 때 상형의 방식으로 만든 것을 문(文)이라 했고, 문(文)을 서로 조합해 만든 것을 자(字)라 했다.”[4]
《효경원신계(孝經援神契)》와 《문자론(文字論)》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문(文)은 할아버지고, 자(字)는 자손(子孫)이니 모두 자연히 생긴 것으로 문리(文理)를 겸비하는데….”
이상 기록에서 알 수 있다시피 문(文)이란 가장 원시적인 글자로 대부분 상형(象形)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창힐은 속인과 다른 신안(神眼)을 이용해 천지만물을 꿰뚫어보고 만물에서 신운을 뽑아낸 후 간단한 신(神)의 선으로 그 의상(意象)을 분명히 표시해 문(文)을 만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月();山(
);水(
);鳥(
,
);馬(
,
);牛(
);羊(
);鼻(
);目(
);草(
);門(
,
)…….
여기서 다시 문으로 자를 만드는 사례를 들어보자.
원래 마(馬)와 문(門)은 각기 다른 물상(物象)을 대표하는데 마치 팔괘에서 서로 다른 두 괘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부동한 상(象)을 대표한다. 만약 이것을 하나로 조합해 말을 문 안으로 집어넣고 말과 문을 서로 합하면 새로운 상(象)이 생겨난다. 이는 마치 팔괘를 두 개씩 중첩해서 64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데 이 괘상의 이름이 바로 ‘틈(闖)’이다.
이 상(象)이 대표하는 것은 말이 문안에서 밖으로 뚫고 나오는 것처럼 맹렬하고 무모하게 일하거나, 생계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거나, 용감하게 전진해, 출로를 개척하는 등등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틈(闖)’의 뜻인데 다시 말해 ‘틈’이란 글자의 자상(字象)으로 이 상(象)은 내함이 아주 넓고 온갖 것들을 포함한다. 말이 문안에서 뚫고 나오는 모양(形)을 취해 이 상(象)으로 대표한 것이다.
또 ‘마(馬)’와 ‘우(又)’를 결합해 보자. 우(又)는 갑골문에서 한 손의 형상[]으로 원래 뜻은 손으로 무엇을 쥐거나 통제하는 것이다. 이를 말과 결합해 새로운 상을 만들면 ‘어(馭)’가 되는데 말을 훈련시켜 부리거나 노역시키고 통제하거나 통치하고 희롱한다는 등의 뜻이 된다. 즉 ‘어(馭)’라는 글자가 나타내는 상은 바로 말을 통제하는 형상이다.
또 ‘마(馬)’와 ‘빙(氷 얼음)’을 조합하면 ‘풍(馮)’이 된다. 빙(氷)의 갑골문 자형은 []인데 나중에 빙(冫)으로 변한다. 이 글자가 대표하는 뜻은 말이 얼음이 언 강을 건너거나, 걸어서 강을 건너거나, 말이 빨리 달리거나, 의지하거나 기대는 등이다.
또 ‘일(日)’과 ‘월(月)’을 합하면 ‘명(明)’이 되고 ‘목(木)’과 ‘목(木)’을 합하면 ‘림(林)’이나 ‘삼(森)’이 되며 ‘인(人)’과 ‘목(木)’을 합하면 ‘휴(休)’가 되는 등등이다. 이런 것들에는 모두 같은 이치가 있다.
이상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문(文)이 자(字)를 낳는 것은 마치 팔괘에서 64괘를 만드는 이치와 서로 통하는데 이것이 바로 ‘역(易)’의 이치다. 중화신전문화의 이치는 또한 모두 서로 통하는 것으로 이는 범인(凡人)의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신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중화문자에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을 6가지로 분류했다. 즉, 상형(象形), 지시(指示), 전주(轉注), 가차(假借), 형성(形聲), 회의(會意)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분류 방법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고 또 중화문자의 오묘함과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본다.
필자는 갑골문 등 고문자(古文字)에 대한 연구를 통해 중화문자는 사실 ‘상(象)’에 대한 운용이며 ‘역’의 이치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본다. 비록 현재 한자 중에 소위 ‘형성자(形聲字)’가 아주 많긴 하지만 ‘형성’으로 글자를 만드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 문자는 기본적으로 표음(表音)문자이지만 한자는 음(音 발음)・형(形 형태)・의(意 의미)가 삼위일체가 된다. 즉 한자는 형(形)으로 상(象)을 표현하고 의(意)를 표현하는 동시에 또 형의(形意)로 음(音)을 통제해서 표음(表音)의 기능을 갖고 있다. 이는 인류의 다른 언어 문자들은 갖추지 못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한자 속에 대량의 ‘형성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령 발꿈치를 뜻하는 ‘종(踵)’은 형성자에 속한다. 《설문해자》에서는 ‘종(踵)’에 대해 족(足)으로 형태와 뜻을 나타내고 중(重)은 뜻과는 무관하게 발음을 나타내는 형성자로 본다. 사실 종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종의 원래 뜻은 바로 발꿈치를 표시하는데 사람이 직립할 때 온몸의 체중을 기본적으로 발뒤꿈치로 감당한다. 때문에 ‘중(重)’으로 이런 뜻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서 신체의 체중을 감당한다는 것을 표시한다. 그런데 발꿈치는 발의 일부기 때문에 ‘족(足)’을 부수로 삼고 이를 ‘중(重)’과 결합시켜 ‘종(踵)’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형성’이란 한자가 지닌 음(音)·형(形)·의(意) 삼위일체(三位一體) 특징이 나타난 것에 불과할 뿐 글자를 만드는 방법에는 속하지 않는다. 중화문자는 역사 발전과정 중에 몇 차례 큰 변형을 거쳐 왔다. 만약 모든 문자를 가장 오래된 갑골문과 대응한다면 비교적 원시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중화문자는 ‘역’의 이치란 기초위에서 ‘상’을 운용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중화문자는 매 한 글자가 바로 하나의 상(象)이기 때문에 내함(內涵)이 박대정심(博大精深)하고 고심막측(高深莫測)해서 천지신령과 서로 통하고 우주 고층(高層)과 상응하는 것으로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에서 단어로[文字生詞]
한조(漢朝)에 《역림(易林)》이라고도 불리는 《초씨역림(焦氏易林)》이란 책이 있었다. 총 16권으로 서한(西漢)의 저명한 역학(易學)대가 초연수(焦延壽)의 저술이다. 초연수는 요전점괘법[搖錢占卦法 즉 육효납갑법(六爻納甲法)]의 원조인 경방(京房)의 스승이다. 《역림》은 《주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역 64괘를 기초로 둘 씩 조합해 최종적으로 4096괘를 낳는데, 각 괘마다 하나의 괘사(卦辭)를 썼고 효사는 없다. 《역림》은 주로 점복(占卜)에 사용되는데, 주역보다 더욱 구체적인 상이고, 괘상(卦象)이 더욱 작아서, 이해와 응용이 더욱 쉽다.
팔괘는 64상을 낳고, 이를 계속해서 조합하면 4,096상(象)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우주의 탄생과 발전 및 변화의 ‘역(易)’에 대응한다. 더욱 표면으로 갈수록 더 구체적이고 더 번잡하지만 내함은 더욱 작아진다. 같은 이치로, 문(文)이 자(字)를 낳은 후 계속해서 단어(詞)와 단어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 역시 ‘역’의 이치가 관통된 것으로 전반 우주의 탄생, 발전과 변화와 합일(合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용한다.
단어가 고정된 후 상(象) 역시 상응해서 작게 변하지만 단어를 문자로 쪼개서 자세히 음미해보면 마치 64상을 쪼개 팔괘로 해석하는 것처럼 그 에너지가 방출되어 나올 수 있다.
가령 ‘유예(猶豫 주저하거나 망설인다는 뜻)’란 단어를 보면 우리는 그 뜻이 단순히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한다는 것밖에 알 수 없다. ‘망설임’은 ‘유예’라는 이 괘(掛)의 괘사(卦辭)처럼 단지 고정적이고 죽은 의미밖에 남지 않는다. 지금부터 우리 그것을 분해해서 직접 깨달아보자!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따르면 ‘유(猶)’란 코가 길고 꼬리가 긴 유인원 종류의 동물로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다고 한다. 또 ‘예(豫)’란 원래 코끼리와 비슷한 동물인데 상고 시기 중국 하남(河南) 지역에는 코끼리가 아주 많았다. 이는 상조(商朝) 갑골문에 많은 기록이 있다. 지금 하남성을 한 글자로 줄여 ‘예(豫)’라 부르는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각각의 글자 설명을 보면 이 단어가 왜 이런 뜻을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즉 ‘유’와 ‘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로 모두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고 진퇴(進退)가 일정하지 않다. 때문에 의심이 많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유예(猶豫)’한다고 하는 것이다.
원래 분해해서 보면 단어 안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들어있고, 이렇게 큰 에너지가 있으니 그야말로 별천지다. 하지만 단어로 고정시켜 새로운 상(象)이 생기면 원래의 상(象)은 축소되고, 그 안에 담긴 내함(內涵)도 봉폐되어 죽어 버리며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다시 ‘영향(影響)’이란 단어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 ‘영향’이란 단어는 그저 어떤 사물이 미치는 효과만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내원을 찾아보면 《상서(尙書)·대우모(大禹謨)》에서 “惠迪吉,從逆凶,惟影響”라 했다. 풀이하면 천도(天道)를 따르면 길하고 천도를 배반하면 위험한데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는 것처럼 영향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 ‘영(影)’이란 그림자를 말하고, ‘향(響)’이란 메아리를 가리킨다. 신체가 움직이기만 하면 그림자가 몸을 따르고, 소리가 나기만 하면 바로 메아리가 따라서 울리는데 이것을 가리켜 영향이란 한 것이다. 이렇게 한 단어를 분해해 보면 느낌이 금방 달라지는데 나중에 이 단어를 쓸 때도 그것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더는 죽은 단어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봉쇄되어 죽은 단어를 더 높은 상(象)으로 분해시켜 해석하는 것으로, 그것에 다시 내함을 주입해서 서서히 살아나게 만들고, 보다 큰 에너지를 내보내게 할 수 있다.
주:
[1] 《周易系·辭上》:“是故剛柔相摩,八卦相蕩,鼓之以雷霆,潤之以風雨”
[2] 《周易·系辭下》說:“日中爲市,致天下之民,聚天下之貨,交易而退,各得其所,蓋取諸《噬嗑》。”
[3] 《字說》:文者,奇偶剛柔,雜比以相承。如天地之文,故謂之文。字者,始於一二,而生生至於無窮。如母之字子,故謂之字。其聲之抑揚開塞,合散出入,其形之衡縱曲直,邪正上下,內外左右,皆有義,皆出於自然,非人私智能爲也。與伏羲八卦,文王六十四,異用而同制,相待而成《易》。
[4] 《說文解字·序》:倉頡之初作書,蓋依類象形,故謂之文。其後形聲相益,即謂之字。字者,言孳乳而浸多也。
[5] 《文字論》曰:文字者,總而爲言。若分而爲義,則文者祖父,字者子孫。察其物形,得其文理,故謂之曰文;母子相生,孽乳寢多,因名之爲字。
《孝經援神契》:文者祖父,字者子孫,得之自然,備其文理。象形之屬,則謂之文;因而滋蔓,母子相生,形聲、會意之屬,則謂之字。字者,言孳乳寢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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