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화인(鍾華人)
【정견망】
5. 중화의 동화력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잘 알다시피 중화문화는 강력한 동화력(同化力)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문화가 아무리 휘황찬란하다 해도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만이족(蠻夷族)이 침입해 그들의 전체 문화를 순식간에 멸망시키는 것이다. 서방 역사에는 이에 관해 아주 많은 교훈들이 있다.
하지만 중화 역사에서는 비록 몇 차례 만이의 침입이 있었지만, 특히 원(元)・청(淸) 두 조대에 그랬지만 중화문화를 멸망시키지 못했으며 도리어 이들을 교화해 그들이 중화민족의 일원이 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들 스스로 자기 고유의 민족문화를 포기하고 망각해 중화문화에 동화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중화문화의 강대한 동화력이다.
도가는 진(真)을 수련하고 단독 수련을 말하며 무도(無道)한 자들을 토벌하는데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비교적 선별적이며 외도(外道)를 거부한다. 때문에 도가 문화는 어느 정도에서 자신의 순정함을 유지할 순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민족의 문화를 포용하거나 외도를 수용할 수 없다. 이 역시 도가 순정(純淨)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요소이다.
때문에 동주(東周) 이전 중화문화는 그다지 큰 동화력이 없었고 그때는 정말 만이가 침입하면 그럼 중화문화는 정말로 하루아침에 훼멸당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때는 춘추대의(春秋大義)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강조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중화문화가 강대한 동화력을 지니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삼대(三大) 요소를 갖춰야 한다.
첫째, 우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용량과 감당력으로 일체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문화는 반드시 박대한 내함(內涵)과 아주 심원(深遠)한 연원을 갖춰야 한다. 내함과 연원이 박대하고 심원할수록 용량이 더욱 커지며 문화의 감당능력도 더욱 커진다.
둘째, 반드시 자아(自我)를 정화(淨化)시킬 수 있는 기제(機制)를 갖춰 대자연과 마찬가지로 일체를 포용해서 자신의 순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아울러 끊임없이 정화・여과・침전시켜 최종적으로 순정(純淨)한 문화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반드시 아주 고도의 문명을 수립해 사방의 만이들이 우러러보면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오랑캐라 부르면서 천조(天朝)를 우러러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일본, 한국 등 이웃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우리 화하(華夏)문명을 우러러보며 천조라 불렀고 스스로를 만이(蠻夷)라 부르며 화하문명의 거대한 감화력에 굴복해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제자라 칭했다. 아울러 줄곧 중화문명을 모방하고 학습해왔으며 서서히 중화에 동화되었다.
지금에 이러러 그들은 줄곧 우리 중화에서 배워간 문명을 자신의 국보(國寶)로 자랑스레 여기며 과시한다. 애석한 것은 당당했던 우리 중화가 오히려 이를 부끄러워하고 전통문화를 단절시켜 스스로 마르크스-레닌 마교의 노예가 되길 자처해 조상의 묘를 파헤치고 자신의 문명을 스스로 파괴한 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마치 자연의 강이나 호수, 바다의 정화 능력과 같다. 자연은 물을 받아들여 순환하고 정화시킬 수 있다.
중화심법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중화문명은 “바다의 모든 강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거대한 포용력”을 중시하는데 완전히 충분한 용량과 박대한 내함을 지녀 다른 그 어떤 문화든 다 받아들이고 뛰어넘을 수 있다. 유석도(儒釋道) 삼가의 심법은 또 서로 보충하고 서로 의존하는 동시에 또 일체(一體)를 이루는데 마치 태극오행과 마찬가지로 순환을 이룬다.
우리 중화문화는 그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함으로 외래문화를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소화시킨 후 다시 중화문화의 자아정화 기제를 통과시켜 외래문화를 정화하고 선별해서 침전시키고 순환에 끌어들여 최종적으로 중화의 일원이 되도록 완전히 동화시킨다.
반면 만이(蠻夷)의 문화, 특히 초기(初期) 만이의 문화(후기 만인 문화는 중화문화를 흡수해서 서서히 문명화된 것이다)는 기본적으로 무슨 맥락이나 내함이 없어서 인맥(人脈)을 형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 민족은 기본적으로 모두 전쟁 전략과 조직으로 일어났는데 더 명백히 말하자면 바로 전쟁을 위해 성립된 것이다. 폭력과 수성(獸性)으로 건립한 일종 금수(禽獸)의 나라로 인의도덕(仁義道德)이 무엇인지 몰랐다. 때문에 그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는데 사람고기를 먹었고 동족간에 난륜했는데 대단히 두려웠다.
대표적인 것이 동진시기 오호(五胡)였다.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오직 약탈만 있었고 문명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때문에 중화문명을 흠모하고 스스로 신복(臣服)했던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 중화민족을 괴롭혔지만 그렇다고 오랫동안 싸울 수는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안정되고 생산을 발전시켜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가 해체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로는 금수의 나라만 건설할 수 있었을 뿐 신주대지(神州大地)에서 고도로 문명화된 중국인을 정복하고 사회를 조직할 능력은 없었다. 때문에 중원에서 발을 딛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중화문화에 동화해야 했으며 이것이 유일한 출로였다.
오호가 중원을 어지럽힌 것은 그 반대 사례다. 그들은 한인(漢人)문화를 파괴하고 동화(同化)를 선택하지 않았으며 만이의 수도(獸道 짐승의 도)를 실행했다. 결국 염민(冉閔)이 오랑캐들을 학살하는 살호령(殺胡令)을 내리자 모든 한인들이 일제히 반격에 나서 업성(業成)에서만 20만 명의 호인을 죽였고 전체적으로 백만 명이 넘는 호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일부 호족(胡族)들은 이때 직접적으로 멸종되었고 일부는 중원을 탈출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최후에 선비(鮮卑)족은 중화문화에 동화하길 선택했기 때문에 북방을 통일해 대대로 지속해 화인의 일부가 되었으며 수조(隋朝)의 통일을 위한 기초를 다져주었다.
6. 중화 마란(魔亂)
동화와 마란(魔亂 마귀의 혼란)은 별개의 개념이다. 이민족(外族) 문화에 대해 그들을 정화해 중화문화 체계 순환에 포함시키는 이것이 바로 동화다. 이민족 문화는 우리 중화심법을 마란시킬 수 없는 것으로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민족의 문화도 이런 힘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때문에 마란은 반드시 내부적인 것이지 이민족의 것이 아니다.
마치 진시황이 책을 불사르고 사학(私學)을 없애 오직 전제와 우민에 필요한 서적만 남긴 것과 같다. 그것은 문화를 파괴한 것으로 문화를 정화(淨化)한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진(秦)은 본래 법가라는 사설(邪說)을 따라 그것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다.
역사상 몇 차례의 거대한 마란이 있었는데 매 차례 마란은 사람의 문화와 사회도덕에 대해 모두 아주 큰 파괴였다.
마치 매 조대(朝代)의 기수(氣數)가 소진하려 할 때 반드시 마란이 나타났다. 혹은 황제가 황음무도하거나 폭력적으로 전정(專政)하거나 농민 기의(起義)가 도처에서 일어나는 등이다. 예를 들면 하의 걸왕이나 상의 주왕 수조(隋朝)의 양제(煬帝) 등과 같은데 이는 조대의 기수가 장차 소진되려 할 때 마귀가 조정을 어지럽힌 것이다.
이외에도 또 역사적으로 각종 사설(邪說)과 사교(邪敎)가 나타나곤 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사회동란이나 농민기의 때 나타난 것이다. 무슨 일관도(一貫道), 백련교(白蓮敎), 무생노모(無生老母), 불도동수(佛道同修) 등이다.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사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부류다. 각종 왜곡된 이론과 삿된 설로 정통문화를 마란 시키고 중화심법을 파괴해 중화에 재앙을 끼치는데 나중에 서방의 마왕(魔王)이 중화에 침투할 길을 깔아준 것이다. 그러다 마왕 마르크스가 나타난 후 이런 마귀들은 비로소 활동을 멈추고 마왕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앞에서 불교문화를 검토할 때 말했다시피 마왕 파순은 석가모니 부처의 불교를 파괴할 수 없자 결국 온갖 궁리를 다한 끝에 석가모니 부처에게 나중에 자기 자손들이 사람으로 태어나 출가해서 화상이 되고 몸에 가사를 걸치고 손에는 불경을 들고 불교 내부에서 불법을 파괴하겠노라고 말했다. 결국 석가모니 부처는 눈물을 흘렸는데 마귀의 내부파괴에 대해 그로서는 어찌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화문화의 극도로 강력한 동화력은 외부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으며 유일하게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내부에서 파괴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문화 마란이다.
오늘날의 중국은 이미 중화문화와 완전히 단절되었고 염황(炎黃 신농과 황제)에 대한 향불은 이미 끊어져버렸다. 지구상에서 유사(有史) 이래 가장 사악하고 가장 폭력적인 사교(邪敎)집단인 공산사당(共產邪黨)이 중국에서 세력을 이루고 중국을 점령하자마자 그것은 즉시 중화심법을 파괴했다.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오래된 모든 문화를 파괴하고 실전시켰으며 심지어 중화문자조차 개조해 중국인들을 중화문화와 완전히 단절시켜 버렸다.
그 후 대대적인 우민(愚民)정책을 실시해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었고 중화백성들을 염황의 자손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조상을 망각하고 그것들을 따라 지옥과 멸망의 심연으로 나아가게 했다. 중공은 현재까지도 민생은 전혀 돌보지 않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천재가 끊이지 않는다. 신(神)이 노하고 사람이 미워하며 귀신조차도 그것에게 분노하게 만들었다!
공산사교(共產邪教)는 중화심법과 중화문화를 파괴한 후 중국인맥을 파괴하고 중화 신룡(神龍)의 진(陣)을 흩어버리고 신룡의 체내에 기생해 중화 신룡을 잔혹하게 죽여버렸다. 동시에 그것은 또 신주(神州)의 풍수를 대대적으로 파괴해 호수를 메워 밭을 만들고 삼림을 파괴했으며 강을 단절하고 산을 뚫어 환경을 오염시켰다. 중화인맥과 대응하는 지하 용맥도 동시에 파괴했고 우주고층과의 대응을 단절시켜 중화민족의 뿌리를 끊어버렸다. 이는 자손을 끊어버리는 일이니 이 얼마나 악독한가!
그렇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중화를 점령하고 강력해질 수 있었을까?
문화적으로 보자면 주로 다음 2가지 원인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역조역대(歷朝歷代)의 마란이 그것에게 길을 닦아주고 기초를 다져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중국을 점령할 때 순조로울 수 있었다. 그것은 역조역대 폭군들의 전제와 폭정 경험과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며 우민화시킨 것을 총결해 그것의 폭정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때문에 수십 년간 억지로 강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역조역대 농민 기의와 사교(邪敎) 기의에서 교훈을 흡수해 중국 소농민(小農民)들의 심리를 잘 알았고 이를 통해 “농촌에서부터 도시를 포위”해서 세력을 이뤘다. 물론 이것은 단지 한 가지 방면의 원인에 불과할 뿐이며 보다 많은 원인들이 있다. 분량의 제한 때문에 여기서는 일단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대신 여러분들에게 《9평 공산당》이란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공산당의 본질을 아주 명확하고 깊이 있게 폭로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선풍을 일으켰으며 수억 명이 중공 관련 조직에서 탈퇴하는 탈당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인이라면 모두 한번 읽어보길 추천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더는 그것에게 우롱당하지 않고 똑똑히 살아갈 수 있다.
중화의 양심을 위해 호소하자면 중공과 관련된 일체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해 조상을 똑바로 찾아야 한다. 당신과 나는 중화의 자녀이자 염황의 자손으로 적을 부모로 여기고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마르크스 레닌의 자손이 되면 마왕의 자손이 되는 것으로 외족 사교를 도와 우리 중화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구천(九泉)에 있는 조상들이 통곡할 일이다!
둘째, 앞서 중화심법을 논의할 때 언급한 것처럼 중국 사회도덕의 타락으로 인해 서서히 삼가(三家) 사상의 요구에 더는 부합할 수 없게 되었고 삼가의 사상 심법이 비록 개량을 거치며 끊임없이 표준을 낮췄지만 청말(淸末)에 이르러 더는 표준을 낮출 수 없게 되었고 더 이상은 민심(民心)을 교화할 수 없어 서서히 효력을 상실했다.
중화심법이 영험하지 못하게 되자 서방의 극히 낮은 문명이 전해져 들어왔고 점차 중화문화를 대체했다. 그것들은 중화문화보다 아주 낮아서 당시 사람들의 타락한 사회도덕에 부합했고 때문에 중화문화를 대신할 수 있었다. 이 중서(中西)문화의 혼전(混戰)에서 사람마음이 공허하고 미망한 시기에 물을 탁하게 한 후 고기를 잡는 것처럼 공산 마교의 교의가 비로소 시장을 얻게 된 것이다.
셋째, 중국인의 인피(人皮)를 쓴 한 무리 마르크스-레닌 마귀의 자손들이 중국에 공산사당을 세워 중국 내부에서 중국인의 신분으로 중화문화를 마란(魔亂) 시키고 마르크스-레닌 교의를 보급했다. 이는 마치 파순의 자손들이 불교를 마란 시킨 것과 마찬가지인데 인체의 암세포가 인체를 파괴하는 것처럼 미혹성이 아주 강하고 파괴력이 대단히 컸다. 게다가 당시 혼란한 세상이라 열강들이 중국을 침략했는데 이런 난세에 물이 흐려진 기회를 교묘하게 붙잡아 세력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상의 원인들 때문에 공산 마교가 마침내 중화를 점령한 것이니 슬프기 그지 없다!
7. 중화예술
중화예술은 중화인맥 중 술(術)의 부분으로 중화심법의 기초 위에서 각종 다양한 정통예술(正統藝術)과 사회의 각종 전통업종을 포함한다.
사실 인류의 모든 예술은 종교에서 내원한 것이다. 술(術)은 심법(心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심법이 없는 술(術)이란 내함(內涵)이 없는 한 세트 표면형식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사람에게 영혼이 없고 단지 육체만 있는 것과 같다.
술이란 한 세트 기제인데, 한 세트 향상하는 기제로 이 기제를 통해 경계(境界)를 향상하고 도덕을 제고해 비교적 높은 층차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화예술은 중화인들의 단순히 오락을 위해 남겨진 것이 아니다. 중화예술은 중화인들에게 남긴 이유는 인류 도덕을 유지하고 인류의 경계를 향상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은 원래 다 심법이 존재하지만 중화인들이 이 한 세트 예술을 전승(傳承)하는 과정에서 심법을 잃고 그저 술의 부분만 남겨졌다. 때문에 중화심법은 비록 석도유(釋道儒) 삼가로 나뉘지만 예술은 오히려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즉, 어떤 예술은 유가에 속하고 어떤 예술은 도가 또는 불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어떤 심법으로 예술 창조를 지도했다면 그럼 이 예술은 바로 그 한 가(家)에 속하는 것으로 그 한 가의 내함(內涵)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이 형식으로서 일종의 향상하는 기제라면 심법(心法)은 예술의 내함이자 의경(意境)이다. 예술이 어느 경계까지 도달하고 어떤 내함을 담는가는 전적으로 그것의 창작을 지도한 심법에 따라 결정된다.
동시에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창작하는 사람의 도덕 경계와 기법의 숙련정도다.
그러므로 예술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예술의 기제다. 예술의 기제는 천고(千古)에 불변하는 것으로, 변했다면 더는 이 한 문(門)의 예술이 아니다. 곧 이 한 문의 예술을 파괴하는 것으로 그것의 향상 기제를 파괴한 것이다. 마치 정밀 기계처럼 그것의 부품을 파괴하면 기계는 곧 작동하지 않는다.
둘째, 예술을 지도하는 심법이다. 심법은 반드시 올발라야 하는데 심법의 층차가 더욱 높고 더욱 박대(博大)할수록 그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경계와 내함도 더욱 박대해져서 신작(神作)을 탄생할 수 있다.
셋째, 창작자의 도덕과 수양이다. 여기에는 창작자의 도덕 경계와 예술 기법에 대한 숙달 정도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직접적으로 작품의 경계가 높고 낮음을 결정한다. 창작자의 경계가 높고 기법이 더욱 성숙할수록 창작한 작품의 경계가 더욱 높고 내함이 더욱 박대해진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경계를 통해서 보자면 조대(朝代)가 내려갈수록 거의 이전 조대만 못해졌다. 비록 기법은 끊임없이 완벽해졌지만 경계는 점점 더 낮아졌는데 이는 인류의 심법이 낮아지고 인류 도덕 경계가 타락한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물론,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일반적인 현상일 뿐이며 당연히 조대마다 예외가 존재한다. 매 조대마다 개별적으로 도덕이 아주 고상하고 경계가 아주 높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창조한 작품은 경계가 대단히 높아서 전대(前代)를 훨씬 뛰어넘기도 한다. 때문에 앞에서 말한 보편적인 현상으로 일률로 가늠해선 안 된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모두 보편적인 현상일 뿐 특수한 사례를 포함하지 않는다.
오늘날 중화예술은 대부분 실전되어 계승하는 사람이 없다. 비록 현재 또 국학(國學 중국학) 연구가 흥성하고는 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중화심법의 지도를 잃어 단순한 기술로 되었으며 심지어 사당(邪黨) 교의에 오염되었다. 무슨 경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중화예술의 내함을 상실해서 마치 걸어 다니는 시체와 같다. 가령 “삼개대표사상으로 돼지 도살을 지도한다”고 말하는데 도살 업종조차 이렇게 타락했다. 무슨 국학의 흥기를 말하지만 사실은 스승을 속이고 조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지금 진정한 중화예술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은 오직 미국 션윈(神韻) 예술단의 예술 공연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바른 것이라 늘 공산사당이 용납할 수 없다. 때문에 션윈이 전 세계 순회공연을 하면서 국제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거대한 호응과 찬사를 받았으며, 심지어 각국 상류 인사들도 다투어 공연을 보려 하고, 보고 나서는 또 영광으로 여기며, 션윈 예술단이 순회공연을 하는 곳마다 티켓을 구하기 힘들지만 유독 공산사당의 통치 하에 있는 중국에서만은 션윈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고 또한 중국인들이 션윈을 보러 나가는 것조차 저지했다. 가령 션윈이 홍콩에서 공연할 때 중공은 공연을 저지하고 예술단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해 공연을 무산시켰다. 이 때문에 홍콩 시민들이 항의에 나서기도 했다.
필자는 션윈 공연을 여러 번 봤는데 크게 경탄했고 또한 안타까웠다. 이는 중화예술의 진수(真髓)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중화 역사상 그 어떤 조대나 그 어떤 시기의 예술 경계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전무후무한 신적(神跡)이다. 필자의 층차에 한계가 있어 감히 션윈에 대해 불경하게 평론할 수 없는데 이렇게 신성한 예술에 대해 불경하거나 모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 필자는 또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이 글은 필자가 대법(大法)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열려 수련인의 각도에서 중화 역사를 종관(縱觀)한 후 총괄한 일부 결론이다. 필자의 견해가 꼭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보다 좋은 의견들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이다.
이외에 보다 많고 보다 고층차의 것을 알고 싶다면 여러분 스스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책을 읽어보고 스스로 깨닫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238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