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文正)
【정견망】
중국은 유구한 역사와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지니고 있 있다. 우리보다 이전 세대에 전해 내려온 귀에 익숙한 이야기들이 바다처럼 많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단지 육신(肉身)이 사망한 것으로, 사람의 원신은 다시 전생한다. 심지어 천 년 후 전생할 수도 있다. 다음은 우리 지역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청조(淸朝) 건륭제 연간에 양주면(楊周勉)이란 서생이 과거를 보러 북경에 갔다. 어느 날 도중에 사천(泗川) 나강현(羅江縣) 백마관(白馬關)을 지나는데 이날 폭우가 쏟아져 교외에서 비를 피했다. 그는 당시 몸에 병이 있어서 병색이 역력했다. 마침 옆집에 이(移)씨 성을 가진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양주면이 불쌍해보여서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쉬게 하며 먹을 것을 주었다. 양주면은 연속 며칠을 묵으면서 마음속으로 감격해서 노파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마침 노파의 집에는 수백 근의 곡식을 담을 수 있는 대나무로 만든 그릇이 있었다. 양주면은 글씨를 잘 썼기에 많은 글씨를 써서 그릇 안에 넣었다. 양주면이 노인에게 앞으로 누가 글씨를 사려고 하면 글자 하나를 쌀 한 말과 바꾸라고 말해주었다. 이후 양주면은 장원급제하여 나강(羅江) 현령에 봉해졌다.
한 현(縣)의 수장이 되니, 현에서 명망 있는 향신(鄕紳)들이 인사차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양주면이 할머니에게 글씨를 써준 이야기 역시 점차 세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사신(士紳 선비와 향신)들이 와서 글씨를 사갔는데 한 글자 당 쌀 한 말이었다. 이 한 바구니의 글씨로 바꿔온 쌀이 너무 많아서 몇 개의 방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노파는 이 쌀을 돈으로 바꿔 민간에서 곤경에 빠진 여자들을 수용하는 숙소를 지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가암(移家庵)이라 불렀다.
그런데 양주면이 나강 현령이 되고 나서 매일 밤마다 같은 꿈을 꾸었는데 늘 자신이 물속에서 자는 꿈이었다. 속으로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관아를 나와 한가로이 지역을 돌아보았다.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이 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떤 노인이 대답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큰 다리 모래사장 아래에 일찍이 한 사람을 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모래와 돌을 파보니 돌비석이 하나 나왔다. 비석에는 제갈무후(諸葛武侯 제갈량)가 쓴 글이 있었는데 “장임이 양주면으로 전생해 자신의 시체를 거둔다.[張任死轉楊周勉 各人屍骨各人撿]”
양주면은 이에 의문이 풀렸고 걱정거리를 해결했다. 알고 보니 천 년 후에, 다시 이곳에 와서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원주: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따르면, 장임(張任)은 삼국시기 명장으로, 낙봉파(落鳳坡·사천 나강현 백마관)에서 봉추(鳳雛) 선생 방통(龐統)을 활로 쏘아 죽였다. 장임은 나중에 제갈량에게 사로잡혀 나강 금안교(金雁橋)에서 죽임을 당했고, 금안교 아래에 묻혔다.
바로 이와 같다.
장임이 죽어 양주면으로 전생해
자신의 시신을 자신이 거뒀네.
천 년 후에 가죽을 바꾸니
제갈신후에겐 묘책이 있었구나!
張任死轉楊周勉
各人屍骨各人撿
千年之後換皮囊
諸葛神侯有妙算
[역주: 《삼국연의》에서 장임이 등장하는 대목을 정리해보면 주로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유장과 유비가 만나 연회를 열 때 위연이 방통의 지시를 받고 춤을 추다 유장을 죽이려 하자 장임이 위연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함께 검무(劍舞)를 추며 유장을 보호했다.
둘째, 유비가 낙성을 포위 공격할 때 장임이 숲속에 매복해 유비군을 공격했다. 마침 유비의 말을 타고 온 방통이 활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
셋째, 장임이 제갈량의 계책에 당해 성을 빼앗기고 금안교에서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다. 유비는 장임이 용맹하고 충성심이 강한 인물임을 알고 투항을 설득하지만 장임은 “충신은 죽더라도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며 완강히 거부하다 죽임을 당한다.
한마디로 말해 장임은 주군인 유장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의지사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제갈량이 천년 뒤의 일을 안배해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5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