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정견망】
금조(金朝) 시기 단하사(丹霞寺)에 ‘의방(義方)’이라는 법명을 가진 장로가 있었다. 의방 장로는 자가 ‘지도(志道)’로 하남 개봉 위씨현(尉氏縣) 사람이다. 이 의방 장로는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는데 일찍이 금대 최고의 시인이자 문인인 원호문(元好問)이 직접 그의 전생을 언급한 바 있다.
의방 장로에 따르면 전생의 이름은 류소이(柳小二)로 역시 위씨현 사람이었다. 금 세종(世宗) 대정(大定) 초년(1161년, 남송 소흥 31년) 세상이 어수선했다. 당시 전 황제였던 완안량(完顏亮 역주: 금의 4대 황제인데 폭정으로 폐위당해 해릉양왕이라 불린다)이 대군을 동원해 남송(南宋)을 정벌했으나 작전에 실패해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정에서는 급히 완안옹(完顏雍)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렇게 황제가 교체되면서 조정이 혼란한 시기 류소이를 비롯한 50여 명이 상국사(相國寺) 삼문(三門)에 불을 지른 뒤 혼란을 틈타 관청의 군자금 창고를 약탈하려 했다.
여기서 말하는 상국사는 바로 북송의 수도 개봉의 대상국사(大相國寺)다. 대상국사는 북송 제일의 사찰로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또 아주 유명해서 수많은 문학 작품들에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수호전》에서 노지심이 오대산을 크게 소란스럽게 만들자 지진(智真) 장로가 그를 개봉의 대상국사에 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들의 계획에서 류소이는 또 다른 사람과 불을 질러 혼란을 조성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는 상국사에 불을 지르기에 좋은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던 중 웅장한 절을 보고는 생각했다.
‘이 절은 전(前) 왕조가 국력을 기울여 지은 것으로 이 대문만 해도 크기가 거대한 자금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 문을 태운다면 원래 모양으로 재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사찰을 짓는 것은 얼마나 큰 공덕(功德)이고, 얼마나 큰 선연(善緣)인가. 정말 불로 태워버린다면 애석하구나, 애석해, 정말 애석하다.’
류소이가 이렇게 감탄하는 사이 관병들에게 발각돼 쫓기다가 마침내 주교(州橋) 위에서 생포돼 붙잡힌 뒤 고문으로 죽었다. 내 생각에 아마 그들이 계획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관아에서 미리 알았을 것이다. 류소이가 죽은 후, 그의 원신(元神)은 위씨현 진(陳) 씨 집 태에 들어갔다. 예닐곱 살 때부터 전생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전생의 부·모·처·자를 찾아가서 말했는데 하는 말이 다 맞았고, 전생에 매장했던 재물의 소재도 모두 알려주었다. 이렇게 전생과 금생의 가족들 모두 그가 류소이의 환생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훗날 그는 전생 가족들의 지지와 공양을 받아 법운사(法雲寺)에서 출가하여 법주(法鑄) 화상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여러 해 후 단하사에서 장로가 되었다.
자료출처: 원호문 《속이견진(續夷堅志) 권3 방장로전신(方長老前身)》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3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