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능오(淩悟)
【정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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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涇河)용왕은 원수성(袁守誠)의 점술이 정확하고 비의 양과 시간을 정확히 맞춘 것에 대해 질투심에서 하늘 법을 어겼으니 반드시 처형되어야 했다. 그러나 원수성은 큰 자비심을 내어 그에게 위징의 처형을 피하려면 당왕(唐王 태종)을 찾아가 간청하라고 했다. 태종은 꿈에 용왕의 청에 동의했지만 인간 세상과 저승은 별개라 칼에 죽을 운명이었다. 결국 경하용왕은 과룡대(剮龍台 용을 죽이는 단)에서 위징에 의해 참수당했다. 이에 귀신이 된 경하용왕이 삼라전의 염라왕을 찾아가 태종이 자신을 구해주기로 약속하고 실행하지 않았다고 고소했다.
결국 당왕(唐王)은 정관(貞觀) 13년 영혼이 저승의 관아로 내려가게 된다. 직접 망혼(亡魂)과 지옥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이승에 돌아가면 수륙대회를 열어 망혼과 원귀(冤鬼)들을 초도(超度)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당왕은 정말 이승에 돌아온 뒤 20년간 수륙대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당왕은 약속을 지켜 즉시 하늘을 공경하고 예불하며 중생에게 어진 덕을 베풀어 천하에 태평성세를 가져왔다. 당왕은 관음보살의 뜻에 따라 또 진현장(陳玄奘)을 서방 여래불께 보내 불경을 가져오게 해서 대승불법(大乘佛法)을 널리 펼치고 선한 인연을 지닌 중생을 널리 제도하게 했다.
여기서 필자가 분석해 보고자 하는 요점은 이렇다. 우선 이 일의 발생은 경하용왕의 질투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사람이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남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데 독성이 아주 강해서 피해가 심원(深遠)함을 알 수 있다. 한 수련자로서 반드시 우선 이 질투심을 제거해야 한다. 또 최판관이 당왕에게 20년의 수명을 더해주었는데, 이는 이후 연장된 생명은 불법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할 한 차례 분명한 증거이자 보장이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든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든 무릇 삼계(三界) 지구에 들어간 사람의 일체 생명은 다 법을 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정말 대단히 소중한 것으로 인생에 20년이 몇 번이나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또 당왕은 불법(佛法)의 진정한 주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바로 주불(主佛)께서 최후 시기 동토 중원에서 단을 열어 대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다시 전한 한 차례 견증이다. 당승은 바로 이런 노력의 결과다.
마지막으로 당현장(唐玄奘)을 말해 보자. 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두 번째 제자인 금선자(金蟬子)로 불호는 선음(仙音)이다. 그는 법을 제대로 듣지 않아 인간 세상으로 쫓겨났고 관음보살의 인도하에 진광예(陳光蕊) 가문에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유복자가 되어 어머니에 의해 강에 버려졌다. 다행히 금산사(金山寺) 법명(法明)화상에 의해 구출되어 강류(江流)란 이름으로 성인으로 자랐다. 나중에 부모를 대신해 깊은 원수를 갚았다.
이것이 바로 본서에서 말하는 구구 팔십일난에서 앞 4가지 난(難)의 개략이다. 제12회 시에서는 당현장의 출신과 처지를 말하면서 “나면서 운명은 떨어진 붉은 별처럼 물결 따라 파도 따라 끝없이 흘러갔다네(出身命犯落紅星,順水隨波逐浪泱)”라고 했다. 여기서 ‘떨어진 붉은 별’이 일으킨 법난(法難)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비록 설자(楔子 중국 전통 소설에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에서 따로 설명하는 절)이지만 보다 큰 범위에서 법난의 구실이자 연장이 됨을 암시한다.
[역주: 필자는 이 단락에서 ‘떨어진 붉은 별’을 공산당의 상징으로 보고 공산당이 현대에 들어와 큰 법난을 일으키다 몰락함을 암시한다고 본 것이다.]
당삼장은 대덕(大德)을 지닌 인물로 당왕이 맡긴 위대한 지시와 거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다. 바로 서천에 가서 불법진경(佛法真經)을 얻어오는 것이다. 이번 차례 인류의 최후에 대법이 널리 전해짐에 지울 수 없는 위대한 공적을 수립했다. 인류의 모든 역사는 신불(神佛)에 의해 이미 잘 배치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불께서 세상에 내려와 법을 바로잡고 사람을 구도하시니 수많은 신불이 따라서 세상에 내려와 법을 실증하고 수련하고 사람을 구함 역시 모두 아주 오랜 연대 이전에 세밀하게 잘 배치된 것이다.
우리는 《서유기》에서 이 점을 깊이 느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안에 담긴 함의는 확실히 필연적이다. 이것은 모두 인류 최대 연극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가리키고 있다. 그 의미는 500년 전 노스트라다무스가 《제세기》에서 예언한 “1999년 7월 공포의 대왕이 세상에 내려옴”을 뜻한다.
(9)
제13회 당삼장이 정식으로 출발하기 직전 법운사(法雲寺)에서 여러 승려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삼장이 대답했다.
“마음이 생기면 각종 마(魔)도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각종 마도 멸한다. 나는 이미 화생사에서 부처님께 홍대한 서원을 발했으니 이로 말미암아 이 마음을 다하지 못할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이번에 가면 반드시 서천(西天)에 이르러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해 우리 법륜(法輪)이 돌아가게 하고 부디 성주(聖主 당 태종)께서 다스리시는 강토가 영원하길 바란다.”
이곳이 바로 소설의 ‘서안(書眼 책의 눈)’이 즉 바로 관건적인 곳이다. 작가의 집필 의도와 작가의 심층 해석을 가장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드러내고 확인하는 곳이다.
동시에 이를 통해 취경이란 이런 수련방식의 성공은 또한 본인 자신이 발한 홍원(洪願 거대한 소망)임을 알 수 있다. 취경 과정은 또한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한 실천이자 실현 과정이다.
당현장은 또 이런 서원을 세운다.
“가는 도중에 사찰을 만나면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만나면 예배드리고, 불탑이 있으면 청소를 하겠습니다.” 이 역시 막 수련의 길에 들어선 수련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신조다.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며 자신의 내심을 시시각각 깨끗이 청소해야 하는데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야지만 비로소 진정으로 용맹정진할 수 있다. 또 당승이 여행을 떠난 시간은 정관 13년 9월 12일이다. 여기서 ’13’이라는 숫자는 갑자 윤회의 수목(數目)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후 회에서도 이 숫자가 나타나면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당삼장이 처음 서천으로 취경하러 떠날 때, 두 시종과 한 필의 백마가 따라갔다. 그들이 막 장안을 떠났을 때 첫 번째 고난을 겪는다. 바로 쌍차령(雙叉嶺)에서 호랑이 요괴에게 잡혀서 두 시종은 호랑이 요괴, 곰 요괴, 들소 요괴에게 잡아먹혔다. 또 백마 역시 이어지는 줄거리에서도 백룡마에게 삼켜졌다.
상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수련이란 개인의 일이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이런 외재적인 시종과 백마는 바로 사람 마음을 밖으로 추구한 표현이다. 사람 마음이 취약하고 의지력이 약하면 수련자의 의지를 하루아침에 파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괴와 백룡마에게 잡아먹힌 것은 확실히 참으로 경축할 일이다. 수련은 오직 자신의 정념(正念)과 본성에 대한 깨달음(覺悟)이 필요하며, 신사신법만이 영원히 신(神)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보장이다.
당승의 첫 번째 난(難)은 쌍차령에서 일어났는데, 상징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이는 막 수련을 시작하면서 사람과 신이 분리되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 요괴는 사람에게 존재하는 쟁투심과 탐욕심을 상징하는 인장군(寅將軍)이고, 곰 요괴는 사람의 웅심(雄心)과 야심, 소심한 마음이 혼합된 곰 산군(山君)이며, 들소 요괴는 특처사(特處士)로 그는 오만하고 완고하며 처세에 뛰어난 교활한 사람이다. 이 세 가지 요괴는 바로 사람 마음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며 또한 처음부터 제거해야 할 것이다. 즉, 집착을 내려놓으면 바로 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쉽사리 다시 사람의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10)
당승은 달단(韃靼)과의 국경에 이르러 오행산에 500년 동안 눌려있던 손대성(孫大聖)을 구출해 그를 도제로 받아들인다. 손오공이 오행산을 떠날 때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졌는데, 이는 그의 몸 안에 있던 단(丹)이 명문(命門)을 진동해 열었으며 이미 개오(開悟) 또는 반개오(半開悟) 상태에 있음을 설명한다. 공능에서 변화해 이미 신통(神通)의 수단이 된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어(定) 바로잡으니 이를 통해 대도(大道)를 진수(真修)하는 길에 올랐다. 이 역시 양계산(兩界山)에서 그를 거둔 표지인데, 사람과 신의 경계가 나눠짐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또 대당과 국경을 접한 ‘달단’에는 ‘밤을 지새워 새벽이 온다’는 뜻도 있다. 《황제음부경》에서는 “삼일 밤낮을 거슬러 수련하면 용사(用師)가 만 배가 된다.”고 했다. 이는 당승이 주인이자 주원신이고, 손오공 역시 주인공이자 부원신이 됨을 보여주는 동시에 공동으로 정진하는 정도의 표지가 된다.
손오공은 마음이 바르기 때문에 안간희(眼看喜),이청노(耳聽怒),비취애(鼻嗅愛),설상사(舌嘗思),의견욕(意見欲),신본우(身本憂) 여섯 도적을 만났을 때 이들 여섯 심마(心魔)를 단 번에 때려죽인다. 사실 이는 불가(佛家)에서 요구하는 ‘신구의(身口意)’다. 동시에 우리는 보아도 못본 듯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 듯 해야 하는데 다시 말해 자신의 육근(六根)이 청정해야만 여섯 도적이 사라질 수 있다.
대도(大道)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우며 직지인심(直指人心)이다. 수련이란 마음을 닦는 것으로 사람의 각종 집착심을 모두 닦아버려야만 공성원만해서 금신정과(金身正果)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마음의 주인공인 손오공을 반복적으로 두드러지게 묘사하는데 의미는 당승이 오직 이 본심(本心)의 공(空)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수련과 취경에서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자의 고심한 마음 씀씀이와 깊은 은유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불문(佛門)에 귀의함은 진정으로 수련이란 대도에 오르는 것으로 심성이 안정되어 한 쌍의 초범혜안(超凡慧眼)을 지녀야만 육식(六識) 외마(外魔)의 침입을 식별할 수 있고 그것을 때려죽여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그 후 육안범태(肉眼凡胎)를 아직 벗지 못한 당승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의 사상과 사람의 이해가 수시로 뛰쳐나와 취경 과정에 영향을 주는데 그가 이 일 때문에 손오공을 훈계할 때 충분히 폭로되어 나온다.
심원의마(心猿意馬)인 손오공 역시 마음속 불평 때문에 당승 사부의 가르침과 속박을 떠난다. 그가 당승을 떠나 가장 먼저 간 곳은 의외로 동해 용왕을 찾아가 회포를 푼 것이다. 큰 바다의 물은 생명의 기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손오공의 이 행동은 그가 확실히 이 문제에서 안으로 찾았고 길이 옳음을 설명하는데 다만 아직 화후(火侯 역주: 원래 단을 만들 때 화로의 불을 조절하는 요령을 말함)가 부족할 뿐이다.
또 용왕의 한 차례 가르침은 그가 스스로 개규(開窺)하고 마음의 매듭을 열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된다. 상사(上師)인 관음보살은 그들 사도(師徒)가 더욱 합심해서 극히 어려운 이 수련의 길을 완수할 수 있도록 특별히 당승에게 긴고주(緊箍咒)를 내리고 손오공 행자의 머리에 긴고테를 씌웠다. 이 역시 한 행자로서의 그의 외부적인 특징을 완전히 이뤄준 것이다. 의미는 나쁜 일을 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하며 사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면 곧 머리가 아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한 수련자로서 흔히 겪게 되는 일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56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