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서유기》 삼승(三乘) 해법 (3-1)

글/ 능오(淩悟)

【정견망】

(11)

‘심원의마(心猿意馬 마음은 원숭이처럼 움직이고 뜻은 말처럼 날뛴다는 뜻)’란 성어가 있다. 즉 심사(心思)가 전일(專一)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다른 마음과 뜻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심원(心猿)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의마(意馬)는 종횡으로 움직인다. 손오공은 기왕 뛰어난 수단을 지녔다. 그렇다면 이 백룡마는 “이 계곡은 천만 개의 구멍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파도가 이렇게 심한 것”이다. 제15회에서 마음 원숭이가 이미 바로 잡혔기 때문에 의마(意馬)는 틀림없이 말고삐가 당겨져 제압될 것이다. 그가 사는 응수간은 이미 아주 맑아서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것은 그의 생명 본원을 상징한다.

[역주: 필자는 사람의 마음에 수많은 뜻이 있는 것을 천만 개의 구멍을 지닌 계곡으로 비유했으며 일단 마음이 바로잡히면 뜻이 정해지기 때문에 계곡이 깨끗해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계곡에는 원래 삿된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물이 깊고 넓으며 물빛이 바닥까지 투명하고 맑아 까마귀, 까치가 날아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맑은 물에 자기 모습이 비칠 때 같은 무리의새로 착각해 종종 물속에 몸을 던졌기 때문에 응수두간(鷹愁陡澗)이라 불렀지요.”

마음 원숭이는 본래 오망방자한 약점이 있어서 백룡마를 통제할 때 자못 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 원숭이놈은 오직 자신이 강한 것만 믿으니 어찌 남의 말을 들으려 하겠느냐? 이제 다시 가다 보면 귀순하는 자가 또 있을 것이다. 만약 물어보거든 먼저 경전을 가지러 간다[取經]는 말을 해주어라. 그러면 애쓰지 않고도 자연히 복종할 것이다.”

내심의 겸손과 사려 깊은 예의는 마땅히 수련인이 반드시 갖춰야 소질이자 함양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백룡마를 거둔 후 마음이 편안해졌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당삼장을 보호해 서천에 취경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제15회에서 처음으로 상사(上師)인 관음보살이 파견한 호법신(護法神)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육정육갑(六丁六甲), 오방게체(五方揭諦), 사치공조(四值功曹), 18 호가가람(護駕伽藍)이다. 진정한 의미의 수련이란 사실 첫 시작부터 사부의 법신(法身) 내지 호법신 등이 시시각각 수련자를 돌보고 있다. 수련이란 극히 엄숙한 일이므로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일념(一念)이 바로 잡히는 것에 달렸다.

물론 또 사마(邪魔)의 교란이 있어 성명(性命)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줄곧 자신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련할 때까지 상사나 사부의 전면적인 보호가 없다면 수련이란 아예 불가능한 것이다.

(12)

당승 사도 두 사람이 관음선원(觀音禪院)에 도착했을 때, 손오공의 과시심이 또 올라와 금란가사(金襴袈裟)를 꺼내 금지(金池) 장로에게 보여주었다. 결국 270년을 살아온 그가 갑자기 간사한 마음과 탐욕스런 생각이 올라와 눈물을 흘린다. 또 두 사손(師孫) 광모(廣謀), 광지(廣智)와 협력해 당승 사도를 죽이려는 악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결국 “나이 많은 노승은 죽어 마땅했고 관음선원은 재로 변했다!”

여기서 인물의 이름에는 풍자의 뜻이 담겨 있다. 먼저 금지 장로는 긍지심[矜持 역주: 金池와 矜持의 중국어 발음이 같다]의 표현이다. 허영심과 질투심이 그를 질투에 불타오르게 했고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게 했으니 남쪽 벽을 볼 때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담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렸다. 그의 두 사손인 광모(廣謀)와 광지(廣治)는 지모(智謀)가 광대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 마음과 사념(邪念)이 장난을 치면 시비(是非) 원칙의 순간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흔히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악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수련인의 재물에 대한 집착 특히 불가(佛家)의 보물에 대한 집착은 마땅히 버려야 할 탐심(貪心)이다. 반면 손오공은 광목천왕(廣目天王)에게서 벽화조(辟火罩 불을 피하는 덮개)를 빌렸지만 잘 반납해 수련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하지만 또 자기 때문에 가사를 잃었다. 과거 삼성동 보리조사에게 있을 때도 과시심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큰 나무로 변했다가 조사에게 쫓겨나지 않았는가! 수련인은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한 무더기 집착심을 언제나 다 잘라낼 수 있겠는가? 수련에는 시간 제한이 있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파도가 한번 닥치더니 잇따라 닥쳐왔다. 곰 요괴가 야음을 틈타 다시 가사를 훔쳐간 것이다. 이 요마(妖魔)는 한 도인(道人) 및 백의 수사(秀士 선비) 차림의 사람들과 ‘불의회(佛衣會)’를 개최해 경축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손오공이 갑자기 들이닥쳐 단번에 백의 선비를 때려죽이니 원래 백화사(白花蛇 꽃무늬가 있는 흰 뱀)였다.

우주 중에는 동물이 수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이치가 있다. 왜냐하면 동물이 수행하여 정령(精)이 되면 나와서 사람을 해치고 나쁜 일을 하며 정법(正法)을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곰 정령인 흑대왕(黑大王)은 역시 인도(人道)로 수련 성취한 곰의 정령이었다. 그것은 종종 절에 와서 금지 장로에게 경전을 강의하고 또 정신을 기르고 복기(服氣)하는 몇 가지 술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둘이 서로 친구처럼 지냈다.

곰 정령의 이 심마(心魔)는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야심과 일을 하려는 마음을 상징한다. 소위 사람의 야심이란 사람의 일부 작은 뜻을 세간에서 실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은 비록 세상을 구제할 수는 있어도 사람을 구할 수는 없으며 결국에는 해악이 무궁하다. 만약 금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왕 불문에서 수행한다면 바로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가 있다. 만약 그 자신이 방문외도(旁門外道)를 끌여 들였다면 사법(邪法)을 섞어서 연마한 것과 같다. 때문에 자신의 몸마저 불태운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불의(佛衣) 가사를 탐하는데, 이는 출가 수련인의 집착하는 큰 금기다. 속인의 일체 집착을 모두 닦아버리는 동시에 왜 수불(修佛)하고 수도(修道)하는 물건에 이렇게 집착하는가? 정반대로, 제98회에서 아난과 가섭이 당승이 취경하러 온 것을 볼 때마다 반복해서 선물을 요구했다. “당 삼장은 바칠 물건이 없자 사승에게 자금(紫金) 발우를 꺼내 두 손으로 바치게 했다.”

여기서는 후세 신자들이 승려나 비구니를 공양하는 시범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실, 수련의 최후에 작은 사람 마음의 집착마저 모조리 닦아내 누락이 없어야 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결국 관음보살이 곰 정령을 굴복시켜 산을 지키는 대신(守山大神)으로 삼았다.

“보살은 또 웅비를 데리고 큰 바다로 돌아갔다.”

여기서 큰 바다란 바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눈물이 변화해서 생긴 것이다. 보살은 자비 속에서 와서 다시 자비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손오공은 남아서 흑풍동을 불태웠고 이렇게 하나의 관난(關難)을 끝냈다.

(13)

당승 사도 두 사람이 고로장(高老莊)에 이르러 운잔동(雲棧洞)에서 오공이 저오능을 제압했다. 저오능은 원래 천봉원수(天蓬元帥)였지만 술에 취해 항아를 희롱하다 하계로 쫓겨났다. 바로 그 자신이 말한 것과 같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심성이 졸렬해서 끝없이 한가함을 탐하고 게으름을 피웠다.”

속세에 내려와서 또 혼인의 인연이 있어 고(高)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필경 그는 혜근(慧根 지혜의 뿌리)이 얕지 않아 이런 큰 연분이 있었으니 관음보살의 눈에 들어 당삼장의 두 번째 도제가 되었고 법호를 오능(悟能)이라 했다. 그는 사실 사람의 진실한 본능(本能)으로 사람의 지혜(智慧)·지력(智力)의 진실한 생각과 체현이다. 또한 그 본인은 이미 오훈(五葷 다섯가지 냄새나는 채소)을 끊었기에 당승은 또 그에게 저팔계(豬八戒 원래 팔계란 다섯 가지 훈채와3가지 육식을 피하는 계율을 말하는데 팔계가 관음보살을 만난 후 나름대로 열심히 계율을 지켜왔다)란 별명을 지어준다. 계율(戒律)이 수련에서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파계(破戒)하면 천 겁에도 수련하기 어려우니 이는 자아(自我)를 훼멸하는 것과 같다.

제19회에 바로 당승이 손오공과 저오능을 받아들인 좋은 점과 자유자해함 완벽하게 설명하는 시가 하나 있다.

“금(金 오공)의 성질 강해서 목(木 팔계)을 이길 수 있으니
마음 원숭이가 나무 용의 항복을 받았구나
금과 목이 길들여져 하나가 되니
목의 연정(戀)과 금의 어짐(仁)이 모두 발휘되었네
한번 주인되고 한번 손님되니 간격이 없어지고
셋이 만나 셋이 합함에 현묘함이 있구나
성정(性情)이 모두 즐거워 정원(貞元 시작과 끝)이 모이니
함께 서방에 간다는 말이 틀림이 없구나.

金性剛強能克木,心猿降得木龍歸
金從木順皆爲一,木戀金仁總發揮
一主一賓無間隔,三交三合有玄微。
性情並喜貞元聚,同證西方話不違

당승이 두 도제를 거둬 굴복시키니 이는 또한 당승이 수련의 길에서 성정(性情)이 화합하고 안정되게 했다. 이는 또한 지혜가 제고되고 경계가 승화했기 때문인데 즉 그의 심지(心智)가 크게 열리게 했다.

한편 오소선사(烏巢禪師)가 구두로 전해준 《다심경(多心經)》을 당승은 한 번만 듣고 곧 기억할 수 있었다. 사실 부도산(浮屠山)에서 오소선사를 만난 것에도 은유적인 뜻이 담겨 있다. 부도(浮屠)란 깨달음을 의미한다. 오소(烏巢 까마귀 둥지)란 이 세상의 어두운 밤 속에서 수행하면서 또 도를 깨닫고 도를 얻는 심로(心路)의 과정이라 이해할 수 있다. 선사는 이미 이 심령(心靈)을 수련해 어두운 밤에 길을 밝혀주는 밝은 등불이 되었다. 오직 마음의 등불만이 서천에 계신 우리 여래부처님의 경계로 가는 앞길을 환히 밝힐 수 있다.

또한 “그 선사는 금빛으로 변해 까마귀 둥지 위로 올라갔다.” “손오공이 화가 나서 여의봉을 들고 마구 휘둘렀으나 연꽃 수만 송이가 휘날리고 수천 겹의 안개가 드리워지면 오소 선사를 보호했다. 손오공은 바다를 흔들고 강을 뒤엎을 힘을 함부로 써 보았지만 오소 선사가 사는 까마귀 둥지의 넝쿨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진수(真修)하며 득도한 사람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저팔계는 원래 아내가 있었지만 당승을 따라 출가해 서천취경하러 갔다. 그는 또 천계(天界)에서 허튼 짓을 했기 때문에 마음 안에 일부 애욕(愛慾)과 색심(色心)이란 악습(惡習)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후 수련의 길에서도 수시로 표현되어 나온다. 오직 일념(一念)이 올바르고 계율을 지켜야지만 비로소 이 굳어진 습관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것처럼 “고행을 싫어하는 수행[恨苦修行]이다. 그러나 이것은 막 수련에 입문했을 때는 그래도 가능하겠지만 수련이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真)이라 이 기점(基點)을 반드시 바로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생을 바쁘게 살아도 정과(正果)를 이루기란 어렵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56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