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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삼승(三乘) 해법 (3-2)

글/ 능오(淩悟)

【정견망】

(14) 황풍령(黃風嶺)

당승 사도 삼인(당승 오공 팔계)이 황풍령에 왔을 때 삼매신풍(三昧神風)에 뛰어난 황풍 요괴를 만나 그들이 전진하지 못하게 가로 막았고 심지어 오공마저 해침을 당해 눈병이 걸린다. 다행히 이장경(李長庚 태백금성)의 ‘삼화구자고(三花九子膏)’로 눈병을 고친 뒤 또 영길(靈吉)보살을 초빙해 비룡장(飛龍杖)과 정풍단(定風丹)을 사용해 이 풍마(風魔)를 제압하고 당승을 구출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손오공과 저팔계란 한 쌍의 성정[性情 역주: 여기서 필자는 오공을 본성인 성(性)으로 보고 팔계를 본능인 정(情)으로 보았다)이 처음 마합(磨合 마찰하면서 서로 화합하는 것)한 공로(功勞)이니 심령과 본능의 조화다. 바로 형제간의 우애처럼 성정이 부드럽고, 성격이 조화로우니 마음이 견정(堅定)한 자는 풍마(風魔)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황풍 요괴는 바로 노란 털 담비인데 그것은 본래 영산(靈山) 기슭에서 도를 얻은 쥐였는데, 등불을 밝히는 기름을 훔쳐 정령이 되어 이런 난(難)이 생겼다. 진실로 바람이 없으면 파도가 일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바람은 또 불을 왕성하게 만들어 마음을 공격할 수 있으며 불은 나무를 억제해 간(肝)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을 불인(不仁 역주: 마비되어 감각이 어둔하다는 의미)이라 한다. 그러므로 불을 끄고 인(仁)을 기르려면 먼저 이 풍마를 안정시켜야 한다. 쥐(子鼠)란 바로 혼돈을 타파한다는 뜻으로 일원(一元)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다. 당승 사도가 취경(取經) 수련하는 일은 이제 마땅히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들이 “팔백 리 유사하의 경계 삼천 리 약수 깊기도 하다[八百流沙界,三千弱水深]”는 유사하(流沙河)에 도착했을 때 손오공과 저오능의 협력은 점차 더 성숙해졌다. 하지만 사오정은 심성이 교활해서 저팔계와 세 차례나 대결했지만 공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또 관음보살이 혜안 목차(木叉) 행자를 파견해서야 비로소 사화상의 마음을 얻어 당승의 세 번째 제자가 되게 한다. 사오정은 물론 본래의 성이 깨끗함을 깨달은 것이다. 오정은 바로 성(性)의 금(金)이니 심성이란 또한 바로 오공(心)과 오정(性)이 서로 결합한 진실한 체현이다. 그러므로 심성을 닦는 것만이 수련의 근본적인 도라 말할 수 있다.

원래 옥황대제의 권렴장군(卷簾將軍 일종의 경호대장)이었던 사화상은 천정(天庭 하늘 조정)에서 심성이 깨끗하지 않아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려 사형을 당해야 했으나 다행히 적각대선(赤脚大仙)의 간청에 의해 수족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다. 또한 속세로 쫓겨나 당승을 지키고 사문(沙門)에 들어와 정과(正果)를 얻으면 천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에 제22회에서 비로소 당승 사도 4인과 백룡마가 모두 모이니 이들이 온 마음과 뜻을 완전히 하고 용맹정진해 함께 서천 취경하러 간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오행(五行)의 짝이 천진(天真)에 부합하니 옛 주인을 알아보네
연마(煉)는 이미 기초가 섰으니 오묘한 쓰임이 있고
옳은 것과 그른 것 구별해 원인을 알아내네.
금(金)이 와서 성(性)이 돌아오니 또한 같은 부류이고
목(木)이 가서 정(情)을 구하니 다시 함께 무너지리라.
이토(二土)가 공을 완전히 해서 적막을 이루니
수(水)와 화(火)를 조화시키니 티끌 한 점 없어지네.

五行匹配合天真,認得從前舊主人。
煉已立基爲妙用,辨明邪正見原因。
金來歸性還同類,木去求情共複淪。
二土全功成寂寞,調和水火沒纖塵。

또 “팔백 리 유사하의 경계 삼천 리 약수 깊기도 하다”는 이것은 인생에 대한 은유이다.

이들이 함께 800리 유사하를 건너니 여기에 이르러 사람 마음의 번뇌를 초월해 자성(自性)이 승화되었다.

“진여(真如)를 깨닫고 세속의 자물쇠를 순간 깨달아 풀어버리며 성해(性海)의 유사하를 뛰쳐나와 아무런 장애 없이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了悟真如,頓開塵鎖,自跳出性海流沙,渾無掛礙,徑投大路西去]”

또 사오정이 목에 건 9개의 해골 형상은 바로 이 우주가 9차례 큰 훼멸을 겪었음을 은유한 것이고 구궁(九宮)은 또 신우주(新宇宙)가 장차 다시 만들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이 법선(法船)을 호로박으로 만든 것에 하나의 큰 천기와 비밀이 들어있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비밀의 호로박이자 대법선(大法船)의 근본이다.

최후에 이르지 않으면 신불(神佛)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수(真修)하고 오직 대지혜(大知慧)가 있는 사람만이 원만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 때문에 보살이 자신의 사자인 목차를 파견하면서 또 혜안(慧岸 지혜의 언덕 즉 피안)이라 한 것이다.

손오공은 일단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할 때면 곧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음보살 등 일로(一路)의 불도신(佛道神)들을 찾아간다.

사실 이야말로 그가 법을 잘 공부했고 안으로 찾는 큰 법보와 지혜를 뜻대로 운용한 체현이다. 또한 수련의 길에서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다.

(15)

당승 사도 네 사람이 계속해서 서쪽으로 여행할 때, 이들이 직면한 첫 번째 난(難)은 관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및 여산노모(黎山老母) 네 보살의 고험이다. 이 고험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세간에 사는 것은 명리정(名利情) 또는 재물과 색이 아님이 없다. 부귀와 미색을 추구하며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일으키는 것은 수련의 길에서 반드시 넘겨야 할 세 가지 관(關)이다. 손오공은 “분명 신불(神佛)의 점화임을 알았으나 감히 천기를 누설할 수는 없었다.” 이는 그의 심성이 이미 상당히 안정적이며 명심견성(明心見性)해서 평범한 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드러내는데 수련자가 마땅히 해야 할 본색이다.

당승과 사오정은 관을 통과하기 전에 고험을 겪었지만, 오직 저팔계만이 마음을 움직여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하마터면 계율을 어길 뻔했다. 그는 일찍이 “화상은 색에 굶주린 아귀”라는 속담처럼 누군들 이렇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다. 바로 사람마다 모두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수련인이 처음 올라오자마자 이 하나의 관(關)을 다 넘겨야 하는데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 역시 수련인과 속인의 진정한 구별점이다.

여기서 다시 그들 개인 손에 있는 법기(法器)를 말해보자.

당승이 손에 든 구환석장(九環錫杖) 은 9개의 고리가 달린 주석 지팡이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주신 것이다. 주석은 금속에 속하는데 인간 세상에서 보기에 녹는점이 매우 낮아서 쉽게 녹는다. 이는 또한 금강(金剛)과 같은 의지를 닦아내 반석처럼 굳건해야만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해서 공을 이루고 원만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동시에 “주석으로 밝은 덕을 비유”(《문심조룡》)하는 의미도 있다.

한편 손오공의 금고봉(金箍棒)은 은하수에서 바다를 안정시키던 신침이다.

저팔계의 구치정파(九齒釘耙)는 신(神)이 빙철(冰鐵)로 만든 것이다. 두 형제의 법기는 모두 철로 만들어 졌으니 둘의 마음이 철처럼 견정한 것을 표현한다.

그런데 사화상의 항요보장(降妖寶杖)은 비록 나무막대긴 하지만 역시 비범한 것이다. 이것은 달의 계수나무를 벌목해서 만든 것으로, 나무막대기 중심에는 한 가닥 금(金)이 봉인되어 있다. 그야말로 그의 금성(金性)이 변하기 어렵고 딴 마음을 품지 않음을 설명한다.

이 네 사람의 법기는 그들 각자의 여의한 사상과 지혜로운 신통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금고봉은 순양(純陽)에 속하니 천하에 적수가 없다.

구환석장과 구치정파는 모두 ‘구(九)’와 대응하는데 이는 노양(老陽)의 수에 속한다.

오직 사승의 보장(寶杖)만이 달에서 벌목해 온 것이라 당연히 노음(老陰)에 속하고 또한 그 본성이 조용해서 지극히 진실하며 지극한 본성의 표현이다. 여기에 백룡마가 더해지니 오행(五行)과 음양(陰陽)이 합해 조화를 이루고 한 몸이 되어 바로잡고 진(真)으로 돌아가니 비로소 속세를 초월해 초범입성(超凡入聖)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주: 당승 사도의 오행 배속을 보면 오공은 금, 팔계는 목, 오정은 토가 명확하지만 나머지 수와 화가 누구인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일설에는 당승이 수가 되고 백룡마가 화가 된다고 하고 또 다른 설에서는 오공이 화와 금을 겸하고 팔계가 수와 화를 겸한다고 한다. 어쨌든 오행이 조화를 이루고 음양이 조화를 이뤄 한몸이 된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56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