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능오(淩悟)
【정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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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승 사도 4인은 산을 하나 지나갈 때마다 한 차례씩 난(難)을 겪는다. 때로는 어떤 사람이 산에 요괴가 있다고 말해주는데, 당승은 놀라서 두려운 마음이 일어난다. 이때 손행자가 제때 그를 위로하면서 말한다.
“사부님 또 쓸데 없는 걱정이시네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바짝 차리시면[定性存神] 별일 없을 겁니다.”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두려움도 사라지는 법이고 두려워하는 요소가 없다면 두려운 마음은 자연히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어서 당승이 또 한탄한다. “언제쯤이나 이 몸이 한가해질까나?” 한동안 수련하고 나서 어느 정도 경계에 이른 후에는 이 안일한 마음과 청정을 구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불법(佛法) 수련은 용맹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사마(邪魔)의 침입을 받는다. 아니나다를까, 평정산(平頂山) 연화동(蓮花洞)에 갔을 때 금각(金角)대왕과 은각(銀角)대왕이라는 두 마두(魔頭)를 만나는데, 그들은 원래 태상노군의 연단로(煉丹爐)를 지키던 동자들이다. 둘은 노군의 다섯 가지 보물을 훔쳐 속세에 내려와 단(丹)을 연마해 신선이 되려 했다.
그들은 “당승은 바로 금선장로의 환생으로 10세(世)에 걸쳐 수련한 좋은 사람이니 원양(元陽)을 조금도 누설하지 않았다. 누구든 그의 고기를 먹으면 수명을 연장하고 장생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사오(邪悟)해서 단번에 나쁜 염두가 생겨났다.
수도(修道)란 본래 청정무위(淸靜無爲)를 중시하는데 연화동은 바로 이런 뜻과 부합한다. 하지만 일념(一念)이 순수하지 않으니 목표가 높지 않아서 그저 수명을 연장하고 장생하는 것이라 평정산에 머물게 된 것이다.
사실 불도양가(佛道兩家)는 서로 가는 길은 비록 달라도 그 궁극적인 목표는 같은 것으로 모두 개공개오(開功開悟)해서 부처나 도(道)로 성취해 각자(覺者)와 진인(真人)으로 수련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도 양가의 수련은 각기 상사(上師)가 있고 각기 수련 방법과 기제가 있어서 전혀 섞어서 수련할 수 없다. 일단 섞기만 하면 틀림없이 난잡해진다. 심지어 자신의 의념(意念)마저도 전일(專一)할 것을 요구하는데 줄곧 개공개오할 때까지 한 문(門)을 지키며 수련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자면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의 연단술(煉丹術)은 그들이 지닌 5가지 보물로 도와야 한다. 그러나 당승 일행의 불문(佛門)수련은 오히려 명심견성(明心見性)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깨달으면 찰나에 정각을 이룬다.[悟即刹那成正]”
당승 일행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이 두 사마(邪魔)를 만난 것은 바로 당승의 두려운 마음과 안일심 및 저팔계라는 본능이 산을 순찰하는데 게으르고 먹을 것과 잠을 탐해 스스로 자신을 흐릿하게 해서 초래한 것이다. 만약 수련자가 단지 안일한 마음에 만족하고 자기 수련이 괜찮다고 여기며 이렇게 자만하면 자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한 층의 하늘을 더는 돌파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진정하게 ‘평정산(平頂山 역주: 직역하면 정상이 평평한 산인데 한 층차에 오래 머무는 것을 비유)’에 머무르는 것이다. 수련은 또 이 때문에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할 것인데 서천취경(西天取經)이란 이 목표를 언제 실현할 수 있겠는가? 수련이란 바로 이런 일이며 나아가지 못하면 바로 후퇴라 중간에 가는 길은 없다.
다행히 손오공이란 이 본심(本心)·진성(真性)은 똑똑히 구별할 수 있어서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바로 이 주인공이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해 “수시로 부지런히 털어내 먼지가 없게 했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수련의 길을 가로막는 두 가지 마장(魔障)을 싸워 이겼다.
이 일의 유래를 말하자면, 관음보살이 설계한 고험인데 그들 ‘사도가 서로 진심으로 서쪽으로 가려 하는지’ 보려는 것이다. 비록 상사의 세심한 배치이지만 수련제자로서 당신 자신에게 그런 난(難)이 없다면 사부 역시 당신에게 억지로 가하지 않는다. 무릇 여전히 안으로 찾아야 하는데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바른 이치로 말하자면 그들 사도(師徒)가 연화동을 만난 것은 또한 그들 단전 위에 이미 하나의 연화반(蓮花盤)이 생긴 것을 설명한다. 이는 앞서 생겨난 원영(元嬰)이 바로 이 연화보좌 위에 앉을 것이다.
(19)
당승 사도가 보림사(寶林寺)에 하룻밤 묵으러 왔을 때, 이 사찰의 승려들은 지난번 일부 행각승들 사찰에 머물며 저지른 악행 때문에 당승의 정중한 요청을 거절한다. 여기에는 수련인이 돈이나 물건을 빌리거나 숙박, 식사 및 교류하는 등 생활의 세세한 부분에서 마땅히 자신의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올바르게 행동해야 함을 밝히려는 뜻이 담겨 있다. 나중에 그들이 사찰에 잠시 머무를 때 당승은 하늘의 밝은 달을 향해 고풍(古風) 한 수를 낭송한다.
손오공은 그에게 이팔(二八 16가지)로 온양(溫陽)하고 구구(九九 81가지)로 공(功)을 이루는 도리를 설명했다.
사승(沙僧)도 한 수의 시를 읊었다.
“수(水)와 화(火)가 서로 돕는 것은 서로 인연이 있기 때문이나
전부 어머니인 토(土)가 그렇게 되도록 조정했기 때문이네
셋이 함께 모여 서로 다투지 않으니
물은 장강에서 흐르고 달은 하늘에 떠 있네.
水火相攙各有緣,全憑土母配如然
三家同會無爭競,水在長江月在天”
기왕에 오행의 협력이 모두 토(土)에 달려 있다면 사람이 되는 각도에서 오상(五常)을 보자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에서 그 근본은 여전히 신(信)에 달려 있다. 신이 없으면 다른 4가지는 존재할 수 없는데 이 신이 바로 토(土)에 속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념(意念)은 상당히 중요하며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다 바로잡아야 한다.
오계국(烏鷄國) 국왕을 말하자면 3년 전 종남산에서 온 전진(全真) 도사에 의해 팔각 유리정 떠밀려 익사했다. 그 전진 도사는 마침내 가짜 국왕으로 변신했다. 3년 재앙의 기한이 다하자, 국왕의 귀혼(鬼魂)이 당승에게 탁몽(托夢)해 요괴를 제압해 원수를 갚아달라고 요청한다. 태자가 중간에 주선해서 연유를 확인하고 진상을 똑똑히 밝혔다. 오공 형제가 요괴를 잡는 것은 순리에 따른 것이라 손을 대자마자 바로 잡는다. 알고 보니 이 전진 도사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던 청모사자(青毛獅子)였다. 과거에 국왕이 보살을 사흘 동안 물속에 넣는 모욕을 가하자 여래불이 칙지를 내려 이런 악보(惡報)를 받게 한 것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이렇지만 더 심층에서 해석하자면 상징적인 의미는 아주 분명한 동시에 또 다면적이다. 우선, 국왕이 이런 난을 겪은 것은 모두 자신의 일시적인 악념(惡念) 때문이다. 그가 제왕이 되는 명(命)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신불(神佛)의 은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행자가 말한 ‘제왕를 만드는 보물[立帝貨]’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 국왕이 난을 당한 곳이 팔각 유리정(八角琉璃井)인데, 여기서 ‘팔각’이란 사람 마음의 다툼을 뜻한다. 반신반의하거나 의심이 심한 것은 수련자에게 커다란 금기다. 특히 진짜 국왕의 손에는 여전히 백옥규(白玉圭)를 쥐고 있는데, 이는 수련자의 몸이 정화되어 백옥과 같다는 것으로, 이미 불체(佛體)라는 뜻이다.
이때 수련자은 이미 심태, 경계와 사상에서 모두 안정된 상태에 처해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짜 국왕, 즉 자신의 주재(主宰), 자신의 법왕(法王)이 죽고 가짜 국왕이 대신했을 것이다. 또한 태자는 수련자의 몸에서 닦아낸 원영 즉 즉 불체를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밖에 나가 살생하고 사냥하는 것은 구설(口舌)의 욕망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얻고 스스로 물어보자, 수련해 낸 자비심은 어디로 갔는가?
또 있는데 오계국에서 ‘오(烏)’란 글자는 ‘어둡다(黑)’는 뜻이니 금계(金鷄 역주: 중국을 상징)가 새벽을 알리고 조만간 진상이 천하에 드러남을 뜻한다. 이는 당승 사도들의 수련과 서천취경의 길에서 이때 이미 한 줄기 서광을 보았음을 증명한다. 요괴가 변한 가짜 국왕을 처치하면 오계는 새롭게 금계로 교체될 것이다. 수련의 길에서 제때 마장(魔障)을 제거하면 자아(自我)진성(真性)이 더욱 정화되고 순결해지며 밝은 지혜가 늘어나고 신통법력(神通法力) 역시 더욱 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승은 서우하주(西牛賀洲)에 들어온 후 특히 보림사에 와서 사찰에 있는 신불(神佛)과 보살들의 대형 조각상을 보고 감격해 신불께 절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부처님을 만나면 예불하고 탑을 만나면 청소한다.”는 약속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오늘날 진심으로 예불하면서 정과(正果)를 얻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당신도 절하고 나도 절하고 모두 절하면 쉽게 가짜 부처나 가짜 보살을 불러올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사람들이 구하는 마음이 조성한 악과(惡果)다. 일단 수련인이 가서 절하기만 하면 문제가 상당히 엄중해진다.
이는 또한 그 청모사자가 요괴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사(獅)’에는 ‘사(師 스승)’란 뜻이 있지만 바른길은 아니다. 동시에 또 이것 때문에 요정이 가짜 당승으로 변신하자 사도들도 확인하기 어렵게 했고 진짜 법과 가짜 법을 구별하기 어렵게 했다. 무릇 가아(假我)·가상(假象)에 통제당하지 않으려면 진아(真我)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당승이란 사부는 사실 수련하는 사람이다. 그의 자아 역시 불법(佛法) 표준을 준수해야만 비로소 공성원만할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진정한 부처이고 진정한 사부인가, 어느 것이 진법(真法)이고 정법(正法)인가? 제38회 개막시에서 더 이상 명확히 할 수 없을 정도록 분명히 말했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 “만일의 원인을 말할 때마다 당신은 성자가 된다.” 여래.” 회중이여. 이 세상의 부처님을 한 생각으로 묵상하면 사방에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신들을 보게 되느니라. 오늘의 참주를 알고자 하면 몸에 대하여 물어야 하느니라. 그 당시 당신의 직계 어머니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세상에 본 적이 없으며 모든 발걸음이 새롭습니다.” “세상 부처” 역시 이 세상에서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근원은 당신이 표면에서 보는 것과 같지 않은데 아마도 당신의 근원과 배경은 오직 수련해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진실과 거짓의 열쇠는 깨달음에 있습니다. 깨달음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대를 만나 태어난 연유를 말하나니
바로 여래(如來) 회상에 참가한 사람이구려
일념으로 속세에 내려온 부처를 조용히 바라보나니
시방이 함께 위력 있는 신이 내려오는 것을 보네
오늘 진짜 밝은 주를 알고 싶다면
모름지기 과거 모친에게 물어봐야 하나니
다른 세간은 본 적이 없지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꽃이 피네
逢君只說受生因,便作如來會上人
一念靜觀塵世佛,十方同看降威神
欲知今日真明主,須問當年嫡母身
別有世間曾未見,一行一步一花新
여기서 ‘속세에 내려온 부처(塵世佛)’란 바로 속세의 수련인을 말한다. 당신의 내원은 당신이 표면에서 보는 그런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의 내원과 배경을 알자면 오직 진수(真修)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진짜와 가짜는 깨달음에 달렸고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20)
대체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공법은 원영(元嬰)을 수련해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심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념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정법문(正法門)에서 수련하더라도 역시 사법(邪法)을 닦을 수 있다. 성영(聖嬰)대왕 홍해아(紅孩兒)는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또한 일률적으로 유위적인 선사(善事)를 하면서 사람의 정을 섞어 넣으면 일을 하는 속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잘못하면 악인의 함정에 빠진다.
당승이 진짜와 거짓을 구별하지 못해 홍해아를 구한 것이 바로 이 상황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들의 성질은 오히려 서로 같은 것으로 사실 사도(邪道)로 걸어간 것이다. 제40회의 한 시에서 이를 명확히 말했다.
바로 당승의 심사(心思)가 옳지 않고 저팔계란 이 본능(本能) 역시 어리석은 병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홍해아에게 사로잡혔다. 홍해아가 사는 곳은 고송간(枯松澗) 수운동(水雲洞)이다. 바로 거처하는 곳의 심화(心火)가 왕성하고 또 ‘삼매진화(三味真火)’을 닦았기 때문에 범인(凡人)은 접근할 수 없다. 또한 당승의 고기를 먹어 자유롭게 장생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바로 심성이 바르지 못한 것으로 수련에서 바른길을 가지 않아 조성된 것이다. 또한 당승에게 이런 심마(心魔)가 드러난 체현이 있었기 때문에 진실로 이런 난이 존재한 것이다.
‘삼매진화’란 바로 삼매대정(三昧大定)이지만, 과거 수련은 모두 수련인의 부원신 즉 부의식을 수련해서 이렇게 좌선(坐禪)하고 정공(定功)했는데 아마 진정한 자아는 수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자아는 쉽사리 표상의 미혹에 빠져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다. 홍해아는 전투에 참여할 때마다 5대의 수레를 출동시켜 오행 운공(運功)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는 자신이 지닌 고유한 한 세트 공법에 대한 그의 자신감과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는데 결국 출세간법(出世間法) 수련으로 갈 수 없음을 설명한다.
홍해아의 6건장(健將)인 운리무(雲裏霧), 무리운(霧裏雲), 급여화(急如火), 쾌여풍(快如風), 흥홍흔(興烘掀), 흔홍흥(掀烘興)은 바로 이런 성격이 겉으로 드러난 표현을 개괄한 것이다. 또 그가 가짜 관음보살 형상으로 변해 팔계를 속인 것은 하늘을 거역한 큰 죄를 지은 것이고 직접적으로 불법(佛法)을 모독한 것이다. 보살이 그에게 환화(幻化)해 준 연화반(蓮花盤)은 단지 한 생각이자 허환(虛幻)이며 함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로 홍해아를 거두어 금고아(金箍兒)를 머리에 채운다. 이렇게 수시로 그를 단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래불이 관음보살에게 주신 것은 “금(金)·긴(緊)·금(禁)” 세 개의 고아(箍兒 테)였다. 긴고아는 손오공의 머리에 채워 마음을 시시각각 단속해야 함을 보여주었고, 금고아(禁箍兒)는 수산대신(守山大神)인 곰에게 주어 일을 하려는 마음과 야심을 단속함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 세 가지 고아는 자아의 심마(心魔)를 굴복시켜 닦아낸 것으로 의미가 아주 중대하고 또 심원(深遠)한 것이니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강조할 것은 사승을 포함한 손오공이란 본심(本心)진성(真性)은 줄곧 미혹 당하지 않고 의식이 청성하며 홍해아와 끝까지 싸우려다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손오공이 안으로 찾고 관음보살을 찾아갔으며 또한 진법(真法)을 찾아 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심념(心念)이 순정해지고 줄곧 바른 믿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이 심마를 철저히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쉽지 않았다. 그들 사도가 같은 길을 걸으며 후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전심(全心)·전의(全意)·전력(全力)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앞길에 한 가닥 광명이 있었지만 그들이 걷는 수련의 길은 목적지인 영산(靈山)까지는 아직 멀었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56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