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능오(淩悟)
【정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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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승 일행이 자모하(子母河)를 건넌 후 목이 마르자 당승과 팔계가 함께 강물을 마신다. 그러자 바로 극심한 복통을 느꼈고, 배가 점점 커져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아동(破兒洞) 낙태천(落胎泉)의 물을 마셔야 했다. 손오공이 파아동을 찾아가니 이미 취선암(聚仙庵)으로 변해 있었고 여의진선(如意真仙)이 지키고 있었다. 예물을 주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 없게 했다. 이 여의진선은 원래 우마왕(牛魔王)의 동생이자 홍해아의 삼촌이었다. 홍해아 일 때문에 오공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자 물을 얻으러 온 오공과 싸우기 시작했다. 비록 의견은 달랐지만 이 요괴는 법(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손오공은 손을 멈춰 그를 용서한다. 사승이 샘물을 떠다 당승과 팔계에게 먹이자 두 사람이 치료되어 신체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여의진선은 비록 정도(正道)를 간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만약 당시 상황을 안다면 서천취경을 방해하지 않았기에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더욱이 불가(佛家) 수련에서는 신구의(身口意)를 강조한다. 수구(修口)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 여기에는 단지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집착도 포함한다.
“구업(口業)을 씻으니 몸이 깨끗해지고 범태(凡胎)를 녹여 없애니 육신 또한 본연으로 돌아가네.”라는 말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당승은 또 서량녀국(西梁女國)에 갔다. 국왕은 모두 여자의 몸이다. 그 여왕이 기어이 당승과 결혼하려 한다. 이때 당승이 말한다.
“내 어찌 원양(元陽)을 잃고 불기의 덕행을 망칠 수 있겠느냐? 진정(真精)이 새나가면 본교(本敎)의 몸을 타락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사도 4인의 마음이 한마음이 되어 거짓 쇼가 진짜처럼 펼쳐져 장계취계(將計就計)해서 교묘하게 이 한 관을 넘어간다. 그들이 관을 지나자 통관문첩에 여왕이 손오공, 저오능, 사오정 세 사람의 이름을 함께 적어주었다. 이것은 이들 네 사람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반석처럼 굳은 항심이 있음을 더욱 인증한다.
[역주: 원래 당 태종이 발급한 문서에는 당승 한 사람만 나오고 세 도제는 당인(唐人)이 아니라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는데 여왕이 문서 뒷면에 이들 셋의 이름을 함께 적어서 공식적으로 공을 인정해준 것.]
또 여왕이 주최한 이번 혼인 잔치는 겉으로는 혼사 때문이지만 사실은 하늘의 뜻으로 당승 사도의 정체(整體)수련이 실로 새로운 경계와 단계로 도약했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보자면 당승이 만난 혼사와 제왕(帝王)의 지위 즉 권력은 절대적인 권위가 더해져 실로 인생에서 가장 탐내는 두 가지 꿈과 같은 일이다. 심성(心性)이 불안하고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법 공부가 깊지 않으면 아마도 다시 예전 실수를 저질러 이전의 노력을 물거품이 되게 할 수 있으며 다시 육도윤회에 떨어질 수 있으니 언제쯤 해탈할 수 있을까?
마침 손오공이 지모를 써서 여왕의 그물을 벗어났을 때 조심하지 못해 다시 풍월마(風月魔)를 만난다. 그들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한 여자 요정이 돌풍과 함께 공중에서 날아와 당승을 잡아갔다. 이 요정은 독적산(毒敵山) 비파동(琵琶洞)의 전갈 정령이다. 이 요괴는 아주 악독해서 꼬리에 갈고리가 있는데 이를 ‘도마독(倒馬毒 말을 쓰러뜨리는 맹렬한 독)’이라 한다. 손오공과 저팔계가 그녀와 싸울 때 이 갈고리 암수에 찔려 둘 다 큰 고통을 겪는다.
이 전갈은 전에 뇌음사(雷音寺)에서 부처님 설법을 듣다 일찍이 여래의 손을 한번 찌른 적이 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다시피 이는 법왕(法王)과 불법(佛法)에 대한 직접적인 모독이자 모함이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그녀가 하계(下界)로 도망쳐서 또 그녀는 색심(色心)으로 당승을 유혹해 원양을 누설해 몸을 망치게 하고 서천취경이란 수련의 대업을 망치려 한 것이다.
당승은 이 고험 속에서 의지가 확고하고 심성이 순정해 자신의 몸을 깨끗이 지켜 티끌 하나 오염되지 않았다. 그러자 관음보살이 직접 환화(幻化)해 와서 손오공에게 길을 알려주며 묘일성관(昂日星官)을 모셔와 이 전갈 요정을 제거하게 했다. 이 역시 정념(正念)이 나오면 사악은 저절로 패한다는 수련의 이치를 인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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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승 사도 일행이 평양(平陽)의 어느 산길을 걸어가다 길을 막고 강탈하는 약 30여 명의 도적 떼를 만난다. 손오공은 이들을 속이고 몽둥이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니 도망치는 사람의 거의 없었다. 당승은 오공이 무고한 사람들을 살생했다고 생각해 긴고주(緊箍咒)를 외워 손 행자를 쫓아냈다. 이에 사도 4인 사이에 다시 시비를 따지는 불협화음이 생겼다. 오공은 이 일 때문에 근두운을 타고 관음보살을 찾아가 상황을 알리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역시 그의 법공부와 참선에서 도를 깨닫고 안으로 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관음보살이 한 말씀은 바로 법리였다.
보살이 말했다.
“당삼장(唐三藏)은 칙지를 받들어 서천으로 가는 사람으로 오로지 선(善)한 일만 아는 승려이니 절대 생명을 쉽게 해치지 않는다. 너처럼 무량한 신통(神通)을 가진 녀석이 무엇 때문에 강도를 그렇게 많이 때려죽였단 말이냐. 강도가 아무리 나쁜 짓을 했대 해도 어쨌든 사람의 몸이니 떄려 죽여서는 안 된다. 저 요괴나 괴수(怪獸) 귀매(鬼魅)나 정마(精魔)와는 다르단다. 그것을 죽이면 너의 공적이 되지만 사람을 죽이면 네가 불인(不仁 어질지 못함)한 것이다. 혼을 내서 그냥 쫓아버리기만 했어도 얼마든지 네 사부를 구할 수 있지 않았느냐? 내가 공평하게 따져보아도 역시 네 불선(不善)이다.”
한 수련자로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마땅히 맞받아치거나 대꾸하지 말아야 하는데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이 거칠면 단(丹)이 익지 않고 신(神)이 안정되지 않으면 도를 이루기 어렵도다.[心有兇狂丹不熟,神無定位道難成]”
손오공이 쫓겨난 후, 팔계와 사승이 동냥하고 물을 길으러 가자, 당승 혼자 남아 허기와 갈증을 견디느라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이때 그의 “마음이 어지럽고 원신이 흐려지니 온갖 병이 생기고 육신이 쇠약하고 정이 상하니 도의 근원되는 원기가 무너졌다[心亂神昏諸病作,形衰精敗道元傾]”
막 당황한 찰나 가짜 손오공이 다가와 그를 때려 쓰러뜨리고는 봇짐을 챙겨 근두운을 타고 사라졌다. 진짜 원숭이 왕과 가짜 원숭이 왕의 등장은 이들 사도(師徒)가 서로 위아래로 불화해 두 마음[二心]이 생긴 것을 인증한다. 또한 손오공의 자심생마(自心生魔)로 조성된 것으로 다른 이를 탓할 수 없다.
가짜 원숭이 왕은 귀가 여섯 개 달린 육이미후(六耳獼猴)다. 두 원숭이 왕의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위해 관음보살에서부터 천궁의 옥황대제까지 갔다가 다시 당승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또 명부 지옥까지 내려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뇌음사 석가모니불의 보좌 앞에 이른다. 바로 불법무변(佛法無邊)하고 전지전각(全知全覺)하기 때문이다. 육이미후는 바로 육식(六識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의 일체 허망(虛妄)과 거짓의 대명사다.
육이미후가 오공에게 맞아 죽은 후 두 마음이 끝났다. 책에서 보면 가짜 원숭이 왕이 통관문첩을 빼앗은 후 화과산에 갔는데 또 그곳에서 가짜 당승 사도 4명과 백룡마가 나타난다. 그는 “나 홀로 공을 이루어 나를 교조(敎祖)로 삼게 하고 천추만대 길이 이름을 남길 것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사승의 한 마디가 핵심을 찌른다.
“사형 말씀은 옳지 않아요. 자고로 손오공이 경전을 가지러 간다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 여래 부처님께서 삼장진경(三藏真經)을 지으신 후 관음보살을 시켜 동토(東土)에서 경전을 가지러 갈 사람을 물색해 보라 하셨소. 그리고 우리더러 고생스럽게 수많은 산을 지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경전을 가지러 가는 분을 보호하라 하셨소. 일찍이 보살님께서 경전을 가지러 가는 사람은 여래의 제자였던 금선(金蟬)장로라 하셨소. 부처님 설법을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에 영산(靈山)에서 쫓겨나 동토에 전생(轉生)하게 된 것이오. 그에게 서방으로 가는 정과(正果)를 얻어 다시 대도(大道)를 닦게 하려는 것이오. 가는 길에 온갖 요괴와 장애를 만나게 될 게 당연하니 우리 셋을 풀어주어 그분을 보호하게 하셨소. 그러니 사형이 사부님과 함께 가지 않으면 여래께서 어디 사형에게 경전을 전해주려 하시겠소? 그건 공연히 헛된 애만 쓴 꼴이 될게 뻔합니다.”
이른바 두 마음의 혼란이란 수행자가 두 척의 배에 발을 디뎌 조성된 것이다. 한 손으로는 신(神)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또 사람 마음의 집착을 붙잡고 내려놓기를 거부한 것이다.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으면 재앙이 생기나니 하늘 끝 바다 언저리라도 의심과 시기가 생기네[人有二心生禍災,天涯海角致疑猜]”
이런 식으로 오래 나가면 곧 중도에 포기하고 가는 길에 멈추게 될 것이다. 마땅히 돌이켜 맹렬히 깨달아야 하며 다시 무거운 망치로 머리를 때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바로잡아 망념(妄念)을 모조로 없애고 마음과 뜻을 합해 일체(一體)로 진수(真修)해야 한다. 진실로 이러하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56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