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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오도(西遊悟道) 17: 생각마다 돌아보는 곳이 바로 영산(靈山)

대법제자

【정견망】

《서유기》에서 오공은 종종 오성이 대단히 높은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아마 그의 층차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 생각마다 돌아보는 곳이 바로 영산(靈山)

삼장이 말에서 기뻐하며 말했다.

“도제(徒弟)야, 내가 줄곧 서쪽으로 오면서 수많은 산과 강을 건넜지만 모두 높고 험준한 곳들 뿐이었지 이렇게 풍경이 멋진 산은 없었다. 역시나 그윽한 정취가 대단하구나. 만약 이곳이 뇌음사(雷音寺)와 멀지 않다면 우리도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엄숙하게 세존(世尊)을 뵙는 것이 좋겠구나.”

행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멀었어요, 아직 멀었다구요.”

사승(沙僧 오정)이 물었다.

“사형, 우리가 뇌음사까지 가려면 얼마나 먼가요?”

행자가 말했다.

“십만팔천 리야, 아직 십분의 일도 못 왔어.”

팔계가 말했다.

“형님, 몇 년이나 걸려야 갈 수 있을까요?”

행자가 말했다.

“이 길은 두 현제(賢弟 어진 아우)들이라면 열흘 정도면 갈 수 있어. 나 혼자 간다면 하루에 오십 번도 갈 수 있지. 그것도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말이야. 하지만 사부님이라면 생각하지 말자. 생각도 하지 말자.”

당승이 말했다.

“오공아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지 네 생각을 말해보렴?”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이 어려서부터 늙으실 때까지 또 늙은 다음 다시 젊어지길 천 번을 한다 해도 그래도 어려워요. 오직 본성을 보고 뜻이 성실하다면 생각마다 돌아보는 곳이 바로 영산입니다.[性志誠,念念回首處,即是靈山.]”

2. 사도가 눈앞의 좋은 풍경을 같이 느끼다

사승이 말했다.

“사형, 이곳이 비록 뇌음사는 아니라지만 경치를 보니 분명 좋은 사람이 사는 곳이 틀림없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 말은 맞다. 이곳에는 사악한 것이 없으니 분명 성승(聖僧)이나 신선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 천천히 놀다 가자꾸나.”

각설하고 이 산은 이름이 만수산(萬壽山)이고 산속에 도관이 하나 있는데 오장관(五莊觀)이라 했다. 관에는 신선이 한 분 계시는데 도호(道號)는 진원자(鎮元子)고 별병은 여세동군(與世同君)이다. 이 관에 기이한 보배가 하나 나는데 바로 혼돈(混沌)이 처음 나뉘고 홍몽(鴻濛)이 처음 갈라지기 시작해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았을 때 이 영근(靈根 신령한 뿌리)이 생겨났다.

천하 사대부주(四大部洲)에서도 오직 서우하주(西牛賀洲) 오장관에만 이것이 나오는데 또 초환단(草還丹) 내지는 인삼과(人參果)라고도 한다. 삼천 년에 한번 꽃이 피고 삼천 년에 한번 열매를 맺는데 또 삼천 년이 지나야 열매가 익으니 적어도 1만 년은 지나야 먹을 수 있다. 또 만(萬) 년에 단지 30개의 열매만 맺는다.

3. 오공 수련은 사실 바로 마음 수련이란 천기를 깨다

수많은 수련에서 모두 천신만고를 겪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수행(修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고생을 겪는 이런 간단한 것이 아니라 심성 제고인데 즉 마음을 닦는 것이다. 우리는 《서유기》의 당승이 매번 생사의 고비를 겪는 것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그러나 오공의 한 마디 말 “생각마다 돌아보는 곳이 바로 영산[念念回首處,即是靈山]”이란 말은 오히려 천기를 설파했다.

[역주: “생각마다 돌아보는 곳이 바로 영산”이란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마난을 만났을 때 안으로 자신의 심성에서 찾아 집착심을 없애면 제고가 빠르고 이렇게 마음을 닦으면 바로 그곳이 부처님이 계신 영산이란 뜻이다. 즉 오공이 불법 수련의 핵심이 심성 제고에 있고 심성을 제고하는 방법은 안으로 찾는데 있음을 명확히 알려준 것이다.]

서쪽 여행에서 고생을 겪게 한 목적은 사실 심성 제고였지만 이 한 점을 당승은 몰랐고 오공은 알았다. 사실 당시 오공은 비록 원만하진 못했지만 심성이 대단한 높았다. 다음으로 오공은 점오(漸悟)에 속하기에 수많은 능력을 잠그지 않아 신통을 펼쳐낼 수 있었다. 당승은 돈오(頓悟)에 속해 수많은 능력을 펼쳐낼 순 없었지만 명백한 일면이 그래도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오장관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모두 정기(正氣)를 감수할 수 있었다.

주: 본문의 내용은 《서유기》 제24회에서 인용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