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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 소개 및 자서

무구도인(無垢道人)

【정견망】

작품소개

《팔선득도전(八仙得道傳)》은 또 《팔선전서(八仙全書)》 내지는 《팔선전전(八仙全傳)》이라고도 하는데,팔선(八仙)을 소재로 한 소설들 중에서 팔선 이야기가 가장 완벽하고 스토리도 가장 풍부한 작품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청대(淸代) 무구도인(無垢道人)으로 어려서부터 성도(成都)를 떠돌다 28년간 청운관(清雲觀)의 지원(志元)법사를 사부로 모시고 도교 전적(田籍)을 많이 읽어 현리(玄理 도가의 심오한 이치)에 깊이 통했다. 무구도인은 동치 7년(1868년) 북경 서쪽 백운관에서 자서(自序)를 지었다.

자서에 따르면 그는 함풍 2년(1852년) 사부님의 명령에 따라 남북으로 10여 개 성을 두루 유람했다. 나중에 경사(京師 대청 수도인 북경을 가리킴)에 와서 백운관에 머무르며 책을 쓰고 도(道)를 말했다. 무구도인은 도통(道統)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이에 노조(老祖 노자를 말함)이래 근대 여러 선조(仙祖 도가의 조사)들에 이르기까지 도(道)를 얻은 자초지정과 도를 닦은 정황을 써서 《팔선득도전》이란 책을 지었다.”고 했다.

이 책은 평화(平和) 부부 두 용이 수도(修道)하여 천궁(天宮)에서 큰 소란을 피우자 옥제(玉帝)가 고민 끝에 현인(賢人)을 부르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철괴(李鐵拐), 장과로(張果老),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남채화(藍采和), 한상자(韓湘子), 하선고(何仙姑), 조국구(曹國舅) 팔선이 도를 얻는 과정의 시말을 상세히 서술했다.

무구도인의 자서(自序)

나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배움의 기회를 놓쳐 성도(成都)에서 떠돌았다. 다행히 청운관(清雲觀)에서 지원(志元) 사부님을 만나 종의(宗義 종파의 가르침)를 가르치고 대도(大道)를 전해주시니 28년이 되자 비로소 현리(玄理 도가의 현묘한 이치)를 대략 알게 되었고 성명(性命)의 학문에 점차 통했다. 그러나 지원 사부님께서 수십 년간 서토(西土 서역)로 운유(雲遊) 하시니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다. 매번 가르치고 이끌어주신 사부님 은혜를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함풍(咸豐) 2년(1852년)에 이르러 사부님의 명령을 받들어 강산(江山)의 명승을 유람하며 촉(蜀 사천)을 출발해 남북 10여 개 성을 두루 다니며 몸을 단련하고 견문을 넓혔다. 나중에 북경에서 휴식하다 몇 년 머물며 장성(長城) 밖을 여행했다. 뜻하지 않게 사방의 현철(賢哲)들이 헛된 명성을 쫓아 천리 밖에서 도를 물으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본시 재질이 둔하고 배움이 얕아 남의 스승이 되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제군(諸君)들의 간절한 뜻에 감동해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지원 사부님의 여러 차례 가르침과 다년간 여러 성을 유람하면서 깨달은 것을 몇 권의 책으로 써서 입문(入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비유하자면 지금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계몽의 학문과 같다. 천박하고 조잡해서 대아(大雅)의 전당에 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책이 이미 완성된 후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은 도통(道統)의 어지러움이 심해졌다. 후대에 배우는 자들은 몇 가지 전적만 있고 조사를 망각하니 이는 도가(道家)의 근심이자 또한 나 자신의 책임이다. 이에 지원(志元) 조사이래 근대 여러 선조(仙祖 신선이 된 도가의 조사)들이 도를 얻은 자초지종 및 도를 닦은 정황에 이르기까지 《팔선득도전》 한 권을 저술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보기 편하도록 소설의 문체를 모방했고 일상에서 쓰는 방언으로 기록했다. 진실로 도통(道統)이 쇠락하고 대부분의 도류(道流 도를 닦거나 믿는 이들)들이 문장의 뜻에 통하지 않으니 이에 통속적으로 만들어 널리 볼 수 있게 하고 고심(高深)함을 취하지 않았다. 다만 급히 책을 만들다 보니 교정이 완벽하지 않고, 또 해외를 여행하느라 고증이 미흡해 오류와 잘못을 면하기 어렵다. 오류와 실수를 바로잡음은 훗날의 군자를 기다리는 바이다.

  동치(同治) 7년, 북경 서쪽 백운관에서 무구도인이 직접 서문을 쓰다(自序).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