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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만담 (2)

과객(過客)

【정견망】

‘이(二)’는 흔히 쓰이는 한자로 최초로 등장한 것은 갑골문이다. 위쪽에 하나의 일(一)이 있고 아래쪽에 하나의 일(一) 있으니 일(一)에서 분화되어 나왔음을 설명한다. 원래 뜻은 혼돈(混沌)에서 천(天)과 지(地) 양극(兩極)이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 이(二)는 수술(數術)에서는 일(一)과 같이 모두 금(金)이고 팔괘에서는 태괘(兌卦)이며 방위로는 서방(西方)이다.

일(一)은 태극(太極)인데,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음양(陰陽)이 있고, 남녀가 있고 흑백(黑白)이 있으며 선악(善惡)이 있고 정사(正邪)가 있다. 나중에 여기서 전일하지 못함, 불충의 등이 확장되어 나왔는데 가령 두 마음(二心)이 그렇고, 매국노를 욕할 때 이구자(二狗子)라고 한다.

‘일(一)’은 혼돈의 존재를 나타내고, ‘이(李)’는 하늘과 땅으로 분화되어 나오는데 순서를 말하자면 하늘이 일(一)이고 땅은 이(二)다. 이(二)는 음수(陰數)이고 종수(從數)라 음(陰)이 되고 유(柔 부드러움)가 되니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어야 천지가 비로소 조화를 이룬다. 음이 음답지 못하고 양이 양답지 못하면 천지가 균형을 잃는다. 둘째가 늘 첫째가 되려 하면 두 호랑이가 서로 싸워 반드시 하나가 상할 것이다.

너무 강해서 제일(第一)이 되면 흔히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받기 쉽다. 유가에서는 중용(中庸)의 도를 말하는데 능력이 있어도 리더가 되지 말고 약간 날카로움을 수렴해 둘째가 되는 것을 달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공자가 문화혁명 기간에 공노이(孔老二 공씨집 둘째로 공자를 폄하한 단어)로 욕을 먹은 것은 아니다. 시대적인 원인 때문인데 이런 호칭에는 명백한 경멸이 담겨 있다. 하지만 공자는 정말로 둘째와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공자는 자매는 많았지만, 형제는 단 둘뿐이었다. 그의 이복형의 이름은 맹피(孟皮)였다. 공자의 부친이 예순네 살 때 안(顔) 씨에게 장가 가서 공자를 낳았다. 공자를 흔히 ‘중니(仲尼)’라 부르는 이유는 ‘중(仲)’이 둘째를 뜻하고 맹(孟)은 장남을 뜻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가장 좋은 것 또는 유일무이한 최선의 방법이라 해석한다. 이런 설명은 불경에서 30위(位) 보살들의 대화에서 나온 것인데, 그들은 불이법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이 어떻게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방법을 깨달았는지만 말했을 뿐이다. 방법은 아주 많은데 최후에는 모두 이런 경지까지 닦았다. 글자표면으로 보자면 아주 간단한데 바로 유일하게 해탈에 이를 수 있는 법문으로 두 번째가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는 십여 개의 법문(法門)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자신이 수행하는 것을 불이법문이라고 하며 유일하게 수련 원만할 수 있는 법이며 다른 법문은 다 외도(外道)라 칭한다. 나중에 서서히 다른 법문도 정과(正果)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렇게 되자 번거로워졌다. 기왕에 모두 수련 성취할 수 있다면 그럼 그는 곧 함부로 했고 섞어서 수련했다.

사실 불교의 모든 법문은 모두 석가모니의 설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다양한 법문을 가르치진 않았다. 제자가 어느 층차까지 개오하면 자신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에 따라 새로운 법문을 창립했다. 하지만 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창조한 법문은 기껏해야 그들이 있는 층차를 초과할 수 없었다.

지금은 불교의 말법(末法)시기라 모든 것이 난잡해졌고 승려들도 아무것이나 수련하고 무엇이든 다 믿는다. 영화에서 보면 소림사 승려가 입만 열면 아미타불을 외친다. 소림사는 선종(禪宗)의 본원인니 신봉하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아미타불은 정토종(淨土宗)으로 모두 부처수련이라고 보지 말아야 한다. 장차 갈 불국 세계는 다르며 수련 방법 역시 다른데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는가?

나는 전에 일부 사찰에 가본 적이 있는데 거의 모두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어떤 법문이든 마이크로 관람객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는 마지막은 전부 아미타불이다.

문화대혁명 때 많은 사찰이 파괴되었고 많은 고승들이 쫓겨나면서 전승(傳承)이 단절되었고 나중에 방장이 된 젊은 승려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은 심지어 수련하려는 마음도 없었으니 자연히 불법(佛法)을 연마하지 않았고 이를 직업으로 삼았다.

일(一)에는 비교가 존재하지 않지만, 이(二)가 되면 비교가 존재하는데 즉 분별하는 마음이 생기고 선악이 이로 인해 나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흙으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하나 만들고 그 이름을 아담이라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중에 또 그의 갈비뼈 하나를 꺼내 여자를 만드니 이름을 하와라 했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 몸이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성장하면 서로 끌어당겨 결합해서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고자 하는데 이것이 자손을 낳는 규칙이다.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아담과 하와를 위한 낙원을 창조하셨는데, 그 땅에는 금과 진주와 마노가 돋아나고, 온갖 이국적인 꽃들이 피어 아주 아름다웠다. 나무에 열린 과일은 음식으로 쓸 수 있었다. 여기에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에덴동산은 사실 하나님이 천국에서 창조한 극락정토다. 최초의 인류는 천국의 중생으로 층차가 아주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 살면서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다.

“동산의 각종 나무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오직 선악과(善惡果 선악 나무의 열매)만은 먹을 수 없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아름다운 나체의 몸으로 살면서 감미로운 과일을 먹었다. 그들은 여유 있고 만족하게 살았으니 이렇게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했다.

어느 날 어떤 천사가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으면 신처럼 선악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와는 곧 열매를 따서 먹었고 또 아담에게도 먹으라고 주었다. 두 사람은 즉시 수치심이 올라왔고 자신들이 벌거벗었다고 생각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 인간 세상으로 쫓아내셨다. 그들을 유혹한 천사도 징벌을 받아 뱀이 되었고 반드시 기어다니며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 곧 그 공간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알았다. 사실 그들의 심성(心性)이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그런 마음이 없으면 이성의 몸을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이성을 보면 부끄러워하는데 바로 색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사람 이 층차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수치심을 모르면 짐승이다. 수련인은 사심(私心)과 분별하는 마음, 색욕심이 없으니 그것은 보다 높은 경지다.

여성과 남성은 하나는 음 하나는 양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정을 이룬다. 남자는 양강(陽剛)하고 여자는 온화해야 사회가 조화로워진다. 지금은 음양이 뒤집히는 천상 아래 남자는 여자처럼 되었고 여자는 남자처럼 거칠어졌다. 이렇게 뒤집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시비(是非)와 흑백(黑白)이 전도되고 선악(善惡)과 정사(正邪)가 전도되었다.

당신은 온몸에 훈장을 매달고 도처에서 긍정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욕 하고 몹시 미워한다고 해서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들은 근대와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을 다시 평가하게 될 것이며 도출되는 결과는 아마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