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도인(無垢道人)
【정견망】
각설하고 앞서 표묘(縹緲) 진인이 화룡(火龍) 진인에게 한 마리 박쥐가 서쪽 기산(岐山)에서 문미(文美) 진인을 위해 동부(洞府)를 지키다, 나중에 관구 백성들에게 세운 공으로 그곳에서 향불 공양을 받은 이야기를 했다. 원래 진인이 예상했던 향불 기간은 1천 년에 가까웠다. 그러나 뜻밖에 천년도 못 되어 교룡(蛟龍)의 방해로 박쥐의 사당을 망칠 줄은 몰랐다. 그 박쥐는 원래 충후(忠厚)하고 만족함을 알기에 천년 향불 기한이 거의 찼으니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산으로 돌아가 사부인 문미 진인을 뵙고 지난 일을 말씀드렸다.
진인이 조용히 신기(神機)를 운용하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탄식하며 한마디 했다.
“너는 이류(異類) 출신이고, 또 동물 중에서 가장 비천한 물건임에도 이렇게 성취할 수 있었다. 남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너는 그래도 아주 오랫동안 수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성취를 얻는 것이 아주 어려운 건 아니지만, 천지가 개벽한 이래 작은 동물이 도를 닦아 사람이 되고 또 앞으로 대단한 앞날이 있는 것은 아마 너를 제외하고 두번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늘이 네게 불공평하거나 박대하진 않으시는 것 같구나.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네게 이런 말을 하겠느냐? 네 출신은 너무 비천하고 앞날은 너무 대단한데 이것은 대단히 얻기 힘든 일이다. 대체로 분수에 맞지 않게 얻은 사람은 반드시 의외의 시련이 많을 것이다. 시련이 깊을수록 성공이 더욱 커지고 또한 성공이 더욱 소중함을 볼 수 있느니라. 만약 아무렇게나 도서(道書) 몇 구절을 읽고 몇 년간 좌공(坐功)을 연마해서 신선이 될 수 있다면 세상 중생들이 누구나 선인(仙人)을 배워 누구나 쉽게 신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신선과 사람이 또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신선이 소중함을 알 수도 없고, 신선이 되는 것이 정말 별것 아닐 것이니, 우리가 또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스레 수련할 필요가 있겠느냐?”
박쥐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자는 잘 알았습니다. 제자가 비록 이류(異類) 출신이고 동물 중에서도 가장 미천한 물건이지만 사존께서 거둬주셨고 또 천 년의 향불을 받았으니 비록 감히 성취를 말하진 못할지라도 약간의 인성(人性)은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자는 아마 축도(畜道)에서 인도(人道)에 들어가겠지요. 다른 이들은 나면서부터 사람이 되어 근기가 원래 훌륭하고 수지(修持)하기 쉬울 테니 제자는 감히 교만하지 않고 인류의 수(數 정해진 운명)를 따르겠습니다.
인생에서 겪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제자는 기꺼이 감내하겠습니다. 감내한다면 큰 뜻을 이루게 해주신 사존의 덕(德)이자 제자의 과분한 영광입니다! 감내하지 못한다 해도 역시 제 운명이 고달파서 만(萬) 년의 수지(修持)를 헛되이 한 것에 불과할 뿐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자는 절대로 조금도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없을 겁니다! 제자가 비록 어리석고 졸렬하지만 그래도 하늘에 순응하고 사부님을 공경하며, 분수에 만족하며 도를 닦았으니, 다른 것은 원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사부님께서 불쌍히 여기고 가르쳐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진인이 듣더니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결심이 굳고 이런 의지력를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정말로 물류(物類) 중에서 걸출한 재목이라 할 수 있구나, 평범한 일이 아니다. 대체로 평범하지 않으면 패망(敗亡)하지 않고 반드시 크게 귀해질 것이다. 만약 너와 같은 재주와 운명이라면 절대 패망이란 두 글자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장차 성공하면 진실로 한량(限量)이 없을 것이다. 방금 네가 말한 것이 사람과 짐승 경계의 관건이다, 내 곧 지부(地府 저승 관아) 전륜전(轉輪殿 윤회를 주관하는 부서)에 편지를 보내 너를 범인(凡人)의 세상에 태어나게 할 것이다. 선량한 사람의 집을 골라 태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너는 반드시 종지(宗旨)을 세워 명심견성(明心見性)하고, 이욕(利慾)에 이끌리지 말고, 재물이나 색에 현혹되지 말며, 의로운(義) 것을 보면 반드시 실천하고 악(惡)을 보면 원수처럼 여겨야 한다. 모든 선(善)을 힘껏 행하고, 모든 삿된 것을 멀리 피해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실천해 게으르지 않고 기회가 오면 저절로 너를 이끌어 세상에 나오게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설령 인사(人事)에 얽매여서 조금 좌절하더라도 모두 운명(命宮)에 겪을 일이니 절대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이전의 공로를 저버리지 마라.
수도(修道)할 때의 시련은 모두 진정한 고난이 아니라 바로 수도인(修道人)이 겪어야 할 길이며 반드시 필요한 계단임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고난이 많을수록 미래의 성공도 커질 것이다. 노력 없이 공을 이룰 수는 없느니라. 내 말을 명심하고, 절대 잊지 말거라! 내게 이렇게 많은 제자들 중에서 오직 너 하나만 가장 복이 있기를 바란다.”
박쥐가 명령을 받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제자는 다 알아들었습니다. 제자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수도는 명에 순응해 성패(成敗)를 따지지 않겠습니다. 하물며 스승님께서 이렇게 똑똑히 제자를 훈시하시니 어디 그런 복이 있겠습니까?”
진인이 크게 기뻐하며 곧 첩문(牒文 공문서)을 지어 저승으로 보냈다.
문득 박쥐가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사존께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방금 사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래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이 와서 제자를 제도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설마 사존께서 제자를 구하러 오시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인지요? 사존께서 제자를 가르치고 보살펴주신 은혜가 대지(大地)처럼 큰데, 설마 다른 사부님을 모셔야 한다는 말씀인지요? 제자는 이 부분이 정말 이해되지 않습니다.”
문미 진인이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며 말했다.
“사제(師弟)의 만남은 모두 인연이 있나니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것은 이치상 당연한 것으로 본디 신경 쓸 필요 없느니라. 하물며 너와 나의 관계는 또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를 제도하는 사람은 확실히 나에게 속하진 않지만 나 본인과 다를 바 없느니라. 왜냐하면 서로 모두 사형제(師兄弟)로 같은 문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조금도 득실을 따지지 않느니라. 오히려 네가 또 도덕이 극히 높은 사부를 하나 더 얻으니 이것도 일반인을 훨씬 뛰어넘는 복임을 알아야 한다!”
박쥐가 듣고 희비가 엇갈렸다. 진인은 첩문을 써서 역사(力士)를 지부(地府)로 파견했다. 명왕(冥王 저승의 왕)이 서신을 보고는 말했다.
“하남에 사는 손걸(孫傑)이 덕을 쌓고 공을 많이 이뤄 수많은 사람을 구했음에도 아직 자녀가 없으니 박쥐를 태에 들여보낼 수 있겠다.”
즉시 판관이 답장을 써서 역사에게 주었다. 진인은 또 역사를 시켜 박쥐를 그곳으로 보냈고, 명왕의 윤회사(輪回司 윤회를 주관하는 부서)가 직접 박쥐를 속세로 내려보냈다.
때마침 손걸의 아내 나씨가 임신 10개월에 접어들었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관리가 검은 날짐승 한 마리를 보내며 말했다.
“너희 부부가 여러 해 선(善)을 행해 천심(天心)을 감동시켜 명왕(冥王)께서 나를 보내 선금(仙禽 선계의 새)을 너희 아들로 보내셨다. 이 물건은 원래 신선의 종류라 앞길이 원대해 한량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이 마땅히 잘 보살펴야 하며 절대 그를 얕보지 말아야 한다.”
말을 마치고 그가 날짐승을 놓아 주자 짐승이 품 안으로 뛰어들었고 깜짝 놀라 깨어났다.
즉시 배가 아픈 것을 느꼈는데, 어느새 반 시진이 지나갔을까, 응애응애하며 아이가 나왔다. 얼굴은 하얗고 입술이 고우며 미목(眉目)이 수려한 아기였다. 부부의 기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꿈에서 본 대로 이 아이는 평범하지 않고 분명 근기가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마음속으로 더욱 위안과 희열을 느꼈다. 그는 신선이 주셨기 때문에 이름을 선사(仙賜)라 지었다.
세월은 빨리 지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선사는 이미 열 살이 넘었다. 손걸 부부는 유명한 선생님을 불러다 아들을 가르쳤다. 선사는 천부적으로 총명해서 단번에 여러 줄을 읽을 수 있었고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열네 살이 되자 이미 고금의 역사책과 많은 명인(名人)들의 전적이 뱃속에 가득했다. 순식간에 소문이 퍼졌고, 인근에서 손걸 집의 아이가 하늘이 낸 신선감(仙種)으로 기재(奇才)를 지녔음을 다 알았다.
일찍이 주(州)의 장관인 풍(風) 씨가 소문을 듣고 선사를 초빙하려 했다. 손걸은 선사가 아직 어려서 보낼 생각이 없어 주관(州官)에게 두 세 차례 간곡히 거절했다. 뜻밖에도 주관은 선사와 한 차례 이야기를 나눠본 후 그가 진정으로 재주와 학식이 있는 사람임을 알았기에 반드시 데려가 도움을 받으려 했다. 이에 손걸에게 웃으며 말했다.
“노 선생께선 아직도 공자를 어린 아이로 취급하십니까? 그는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재주와 학문이 깊어서 결코 평범한 어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가서 저를 돕고, 공문서를 관리하면, 반드시 지역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위해 해악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1, 2년이 지나 제가 추천해서 조정에 들어가게 해야만 그의 뛰어난 재주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손걸은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의논을 거쳐 주관의 요청을 수락해 선사가 장관을 따라 가게 했다.
주관이 몹시 기뻐하여 선사와 함께 돌아갔다. 이후 무릇 이 지역의 모든 중요한 정사(政事)는 선사와 상의한 후 시행했다. 선사는 그와 서로 잘 통하는 것을 느꼈고, 일이 생기면 진심을 다 하니 말하지 않아도 통했다. 1년도 되지 않아 주의 정치가 새로워졌고, 백성들 중에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주관은 더욱 기뻐했다. 나중에 과연 선사는 하대부(下大夫) 직을 받았다. 당시 선사는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었지만, 젊은이가 영준하고 조야(朝野)에서 다 칭송하니, 많은 고관과 귀인(貴人)들 중에서 딸을 가진 이들이 모두 중매를 통해 혼인을 청했다.
선사는 나이는 어려도 노련하고 또 기왕 조정에 몸담고 있으므로 늘 국사(國事)를 생각하고, 또 자신이 젊었기 때문에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중매를 청한 사람에게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고 반드시 부모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사양했다. 나중에 백고(伯皋)라는 상대부(上大夫)가 선사를 몹시 아껴 반드시 자신의 차녀(次女)를 시집보내려 했다. 선사는 여전히 부모님께 전가했다. 그러자 백고는 손걸 부부를 직접 찾아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손걸 부부도 백고의 둘째 딸이 재주와 덕이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청하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자연히 한 마디로 허락하니, 선사도 더는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쌍방이 즉석에서 의논해 내년 3월 중순에 결혼하기로 했다.
백고의 차녀 이름은 혜아(蕙兒)였는데 뜻밖에도 이 해 겨울 화원(花園)에서 식구들이 매화를 따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소년이 울타리 틈 사이로 안을 훔쳐보는 것을 발견했다. 혜아는 마음이 언짢아져 곧 집으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눈앞의 푸른 빛이 비쳐 그녀는 두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져 땅에 쓰러졌다. 다행히 좌우에서 시중드는 하녀가 그녀를 끌어 일으키자 큰소리로 외치며 미친 듯이 발작했다. 입만 열면 정원 밖으로 달려가려 했다. 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서너 명의 부녀자들이 필사적으로 그녀를 잡아당겨도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 진작에 집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때 백고가 마침 조정에서 퇴청했는데, 이 이상한 일을 듣고 급히 부인 고(古) 씨와 장녀 국고(菊姑)와 함께 전체 남녀 하인들을 데리고 화원으로 달려갔다. 혜고와 일행들이 서로 성난 눈을 부릅뜨고 대치하고 있었고 하녀들은 기진맥진했다. 혜고 자신도 옷이 찢어지고 머리가 헝클어져 보기 흉했다. 게다가 두 눈은 똑바로 쳐다보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온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부모를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전히 정원을 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를 본 고 씨가 상심한 나머지 급히 혜고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말했다.
“얘야, 왜 그러느냐? 이건 네 어미의 목숨을 빼앗으러 온 것이냐?“
백고는 그녀가 필경 사수(邪祟 요사한 것)를 만났음을 알고 다짜고짜 다가서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몇 대 때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어떤 요인(妖人)이기에 감히 여기서 요사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나 백 대부는 대대로 충직하고, 남에게 잘못한 일이 없고, 하늘에 거슬리지도 않았고, 상계(上界)의 신(神)들이 나를 얕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작은 요마(妖魔) 따위가 이렇게 무례하다니! 빨리 가지 않으면, 내가 반드시 선계(仙界)와 인간 세상의 두 제군(帝君)께 청해 너를 엄벌에 처할 것이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그 말이 나오자 과연 혜고는 먼저처럼 그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을 빼서 걸어갔다.
대중들이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문 안으로 들어가 침실로 돌아가더니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에 꼿꼿이 앉았는데 표정에 약간 사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백고 부부는 할 수 없이 많은 유명한 의원들을 불러 그녀를 진찰하게 했다. 어떤 사람은 사기가 심장에 들어갔으니 미친병이 될까 두렵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담(痰)이 심규(心窺 심장 구멍)를 막았으니 가래를 삭혀야 낫는다고 했다. 어떤 말은 대체로 일치하고, 어떤 말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백고는 그들 모두에게 처방전을 써달라고 부탁했는데, 사용하는 약재도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서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고 누구의 것을 쓰고 누구의 것을 쓰면 안 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혜고는 냉소만 지을 뿐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고 씨는 천지에 기도하며 빌어야 한다면서 많은 처방전을 한 곳에 두고 백고에게 경건하게 기도하자고 했다. 기도가 끝나고 아무거나 한 장 뽑아 하늘의 뜻으로 여기기로 했다. 백고도 사실 확실히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녀의 방법에 따라 처방전 한 장을 뽑았다. 급히 사람을 보내 약을 사서 달인 후 혜고에게 마시게 했다. 혜고는 약을 받고는 한바탕 크게 웃더니 갑자기 남자 억양으로 변해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개자식이구나, 세상의 돌팔이 의사가 처방한 처방전으로는 천 첩, 만 첩이라도 어떻게 소저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느냐! 게다가 소저는 몸도 멀쩡하고, 아무 병도 없다. 못 믿겠으면 맥을 잘 아는 의사를 불러서 자세히 진찰해 보아라, 내 맥이 병이 난 것인지? 너희들이 불러온 것은 모두 쓸모없는 인간들뿐이고, 단지 사람을 속여 돈을 사취하는 재주밖에 없으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말하면서 뜨거운 약을 옆에 있는 국수 그릇에 부었다. 정말 이상했다, 분명히 작은 약 한 그릇인데 그녀가 따르자 국수 대야를 가득 채웠다. 봉우리가 하나 만들어졌는데 꼭대기는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점차 낮아져서 대야 입구에 이어져 완연한 탑 모양을 이루었다. 뭇사람들이 모두 아연했다.
백고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 백고는 비록 남에게 좋은 일을 하진 않았어도, 스스로 생각해도 큰 죄를 지은 적은 없다. 왜 이런 사악한 것이 나를 찾아왔을까!”
말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고 씨는 더 애절하게 울었다. 그제야 혜고가 여전히 남자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두 노인은 원망하지 마시오. 백 대부가 방금 한 헛소리가 불쾌하긴 하지만 그와 더 말하고 싶진 않다. 지금 당신들 둘이 말하는 것이 불쌍해서 나의 진실한 상황을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원래 서해 용신(龍神)이다. 한때 성질이 급해서 관구 지방에 문미 진인의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박쥐였다, 그가 스승의 명을 받들어 관구에서 사람들로부터 향불 공양을 받았느니라. 그는 관구의 노룡(老龍)과 친해 나와 같은 진룡(真龍)은 안중에도 없었다, 일시적으로 성질이 나서 그의 사당을 헐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노룡이 나서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나를 바다 밑에 눌러놓아 몸을 뒤집고 머리를 내밀지 못하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중에 노룡은 또 내 이름을 내걸고 상제(上帝)의 칙명을 받아 사해 용왕에 봉해졌다. 나는 바다 밑에 깔려있어 그와 대적할 수 없었다. 다행히 노룡의 사부인 표묘 진인이 노군(老君) 조사의 명을 받들어 관구로 왔다. 관구의 이랑신과 만나 노룡이 산을 옮겨 바다를 매립하는 일을 처리하여 원래의 바닷물을 거대한 염정(鹽井 소금 우물)으로 바꾸었다. 또 염정 옆에 화정(火井)을 설치하여 사방 중생들이 소금을 끓이는데 사용하게 했다.
바로 그 화정(火井) 아래가 내가 눌려 있었던 곳이다. 그들이 공사를 시작할 때, 약간 소홀한 틈을 타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 박쥐가 지금 손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고, 지금 또 너희 집의 사위가 되어 하대부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마침 그를 찾아가 복수하려 했는데 너희 집을 지나치다 우연히 너희 영애(令愛 딸)를 만났다. 나는 이 아이가 손가 자식의 아내임을 알았고, 그녀가 이렇게 예쁜데 그 원수가 복을 받는 것을 보고 맘에 들지 않았다. 내 마음에 또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먼저 네 딸을 놀려준 것이다. 너희가 만약 기미를 안다면, 빨리 이 혼사를 중단하거라. 그럼 내가 그 녀석만 찾아갈 것이다. 그는 내가 이를 가는 원수이니 조만간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네 딸이 시집을 가도 과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일찍 떠나는 게 낫다. 나의 이런 행동은 반은 복수이고 반은 네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너희들이 알아들었느냐?”
백고가 듣고는 노해서 말했다.
“헛소리 마라, 너는 박쥐를 못살게 굴고 이미 그의 사당을 파괴했음에도 그는 네게 죄를 묻지 않았다. 네가 비록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건 노룡의 잘못이지 박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더군다나 내 딸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비록 이류(異類)이긴 하지만, 사람의 몸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 도술(道術)이 있다 해도 이치를 중시해야 함을 알 것이다. 너 스스로 생각해 보아라. 이렇게 강자에게는 비겁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짓으로 네 원수를 갚고 원한을 푼들 무슨 체면이 서겠느냐?”
혜고가 이 말을 듣더니 문득 궤짝을 한번 치면서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애송아, 내가 선의(善意)로 권하는데, 네가 감히 나더러 약자를 괴롭힌다고 비웃는 것이냐! 그 노룡과 박쥐는 조만간 내게 보복당할 날이 올 것이다. 네가 백년을 산다면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말할 필요가 없다. 네 딸아이를 손가네 자식에게 시집보내느니 차라리 내게 시집오는 게 낫다. 신분으로 말하자면, 그는 작은 벼슬아치이지만, 나는 신룡(神龍)이다. 도법(道法)을 따지자면 그는 속인 아이일 뿐이니 만(萬)년을 수련한 내 법신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다. 또 장래의 이점으로 말하자면, 나한테 시집와서 아내가 되면, 나는 반드시 그녀를 신선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심지어 당신들 장인 장모까지 좋은 점이 좀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불사(不死)의 금단(金丹) 몇 알도 얻을 수 있다. 그 어린놈에게 또 무슨 능력이 있고, 무슨 좋은 점이 있느냐? 너희 부부는 알만한 사람이니 다시 잘 의논해서 딸의 평생과 자신의 운명을 망치지 말거라.”
백고가 노해서 말했다.
“네가 기왕 스스로 신룡이라 자랑했는데, 신룡의 행동이 어찌 이렇게 예법(禮法)에 어긋날 수 있단 말이냐? 이렇게 남의 여인을 핍박할 수 있겠느냐? 내 생각에 너는 반드시 바닷속 물고기, 새우, 거북이, 거북이 따위인데 요법(妖法 요사한 법)으로 수련 성취해서 세상 사람을 미혹시키러 왔을 것이다. 너의 이런 무법(無法) 무천(無天)의 행동은 하늘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 비록 네 요법을 이길 수는 없지만, 하늘에 많은 신인(神人)들이 계시는데, 설마 네가 이렇게 함부로 굴면서 양민을 해치도록 놔둘 것 같으냐?”
그 요괴는 백고가 자신의 속내를 폭로하자 더 화가 나서, 책상과 걸상을 두드리고, 칼과 지팡이를 흔들어 먼저보다 더 심하게 소란을 피웠다. 백고 집의 온 가족을 놀라게 했고, 모두 불안하게 만들었다. 고 씨는 처음에는 애원하다, 나중에 그에게 당해내지 못해, 정득전(丁得全)이라는 법사를 집으로 청하여 요괴를 물리치게 했다.
정법사는 칠성보검(七星寶劍)을 손에 들고 팔괘(八卦) 도포를 몸에 걸쳤는데 얼굴에는 신선의 기상이 가득했다. 단에 올라 부적을 뿌리고,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이런저런 소리로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 문득 영패를 세 번 연달아 치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한 소리를 질렀다.
“태상노군 급급여율령![太上老君急急如律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검은 기운이 단위의 정법사 곁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정법사는 영패를 제단 밑에 떨어뜨리고 보검을 들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단 아래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힘써 요괴와 싸우는 것을 보고 암암리에 그에게 탄복하며, 정말 도가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법사가 검무를 한동안 추었음에도, 검은 기운이 가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선 기상의 얼굴이 새까맣게 검게 물들 줄은 몰랐는데 그야말로 귀신처럼 추하게 보였다.
단 아래 모든 사람이 보고 웃으면서도 두려워했다. 곧 모두 고함을 질렀다.
“정법사가 왜 흑인이 됐을까?”
정법사가 어찌 그 말을 들을 겨를이 있겠는가. 그저 여전히 미친 듯이 마구 춤을 추었다. 그렇게 뛰다 보니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렸다. 그를 보니 광기로 몸부림치다가 피곤해서 정말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 괴로워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사기 치는 비결(秘訣 비밀 주문), 무슨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같은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야 모두들 그가 요괴를 이기지 못했고 사실 이미 요괴에게 제압당한 것을 알았다.
백고는 어진 덕이 있는 사람이라 마음이 매우 괴로워서 고 부인과 거듭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요괴는 여전히 혜고에게 달라붙어 백고 부부를 압박하여 그를 상선(上仙)이라 부르며 존경하게 했고, 다시는 자신의 미움을 사지 않겠노라고 약속하게 했고, 다시는 어떤 법사를 불러서 농간을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백고 내외가 일일이 응낙하자 비로소 정법사가 소리 질렀다.
“상선(上仙)님 살려주세요, 소도(小道)가 죄를 지었습니다. ”
이 한마디를 마치고 단 위에 쓰러졌다. 무리들이 급히 올라가 보니 그 정법사는 죽은 듯이 뻣뻣하게 누워 조금의 기운만 남아 끊어질 듯 말듯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백고는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후회가 일어났다. 즉시 사람을 시켜 제단을 철거하고 사람을 시켜 정법사를 업고 밖으로 나가 끓인 물을 마시게 했다.
그 정법사는 원래 아무 병이 없었는데, 춤을 추다가 너무 힘을 써서 자기도 모르게 선법(仙法)을 다 써버려 원기가 많이 상하고 힘이 다 빠져서 지쳤다. 오랫동안 쉬고 나서 이제 일어나 앉았다. 옆에 있던 백고를 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인! 소도(小道)가 대인을 위해 요괴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하필 그 요괴의 힘이 엄청나더군요. 다행히 소도의 도법(道法)이 얕지 않고 대인의 홍복(洪福)에 의지해 이미 그의 두 발을 잘라버렸습니다. 소도는 본래 그의 목숨을 취하려 했으나, ‘하늘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음’을 생각하고 사부님의 명을 받들기에 함부로 살계(殺戒)를 열기 어려워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귀찮게 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대인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단지 고통스러운 것은 소도 혼자 대인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는 바람에 몇 달간 법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한편 그 검은 얼굴을 한 번씩 찡그렸는데, 절반은 붉고 절반은 흰 검은 눈동자 두 개가 비치어, 반짝반짝 빛이 나서 사람들이 보고 몹시 두려워했다. 백고는 천성이 충직하여 그가 이미 이렇게 힘든 것을 보고 어찌 다시 그의 허풍을 폭로할 수 있겠는가? 하필 하인들이 이런 말을 듣고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모두들 참지 못하고 깔깔 웃어댔다. 정법사는 그제야 이유를 알았고 자기도 모르게 새까만 얼굴이 약간 벌겋게 되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나가서 작은 둥근 거울을 주고 웃으며 말했다.
“정 법사님, 공로 자랑일랑 말고 당신 얼굴부터 한 번 보고 말씀하세요.“
정법사는 자신의 안색이 검게 변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후다닥 뛰어내리며 고함을 질렀다.
“여러분 빨리 오십시오. 여러분 빨리 오세요! 요괴가 거울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 백고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꼽을 잡고 거울을 갖다준 식구를 가리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법사가 뭐라고 했을지 다음 회를 보시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