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혜(史慧)
【정견망】
잘 알다시피 한신(韓信)은 젊은 시절 집이 너무 가난해서 늘 제대로 먹지 못했다. 또 일찍이 거리에서 무뢰한들에게 길이 막혀 그중 한 젊은이의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 사람들에게 겁쟁이라는 비웃음을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멸시했던 이 청년은 나중에 성장해 한조(漢朝) 개국공신 대장군(大將軍)이 된다.
초한(楚漢) 전쟁에서 한신은 신묘한 용병술로 백전백승했고 서초패왕 항우를 몰아붙여 결국 강가에서 자결하게 만든다. 서한이 건립된 후 한신은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 ‘초왕(楚王)’에 봉해졌는데 그의 고향인 회음(淮陰)도 관할에 속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예전에 가난했던 거리의 소년이 이제 위풍당당한 대왕이 되자, 당시 그를 괴롭혔던 거리의 건달들은 두려움과 후회로 벌벌 떨었다. 하지만 한신이 취한 행동은 일반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사기 회음후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한신은 자기를 욕보이던 젊은이들 가운데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고 한 자를 불러 중위(中尉)로 삼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장수와 대신들에게 “이 사람은 장사다. 나를 욕보일 때 내가 어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죽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참았고 오늘날의 공업을 이룰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위란 지금의 경찰서장 비슷한 직책으로 치안을 담당하는 관직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군중 앞에서 이런 굴욕을 당했다면 언젠가 권력을 잡으면 반드시 배로 앙갚음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손에 쥔 한신은 오히려 그 무뢰한을 해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혀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큰 상을 내렸다.
한신이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 후인들은 각종 의혹을 품는다. 필자의 생각에는 뭐 그리 복잡할 게 없는데 한신은 정말로 은혜를 갚으러 온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경지로 한신을 가늠해선 안 된다. 한신은 당시 그런 ‘과하지욕(胯下之辱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굴욕)’이 없었다면 자신이 굴욕을 견디며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며 또 이후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 본 것이다. 한신은 그 무뢰한이 자신을 성취하도록 도와준 것을 잘 알았기에 특별히 그에게 사례한 것이다.
한신의 넓은 흉금과 뛰어난 지혜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그야말로 천고(千古)의 명장(名將)이라 불리기에 부끄럽지 않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