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도인(無垢道人)
【정견망】
각설하고 노자(老子)는 이현(李玄)의 신채(神采)가 영준하고 빼어난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했다. 이에 그에게 앉으라 권하며 물었다.
“이현아, 네가 비록 전생의 일을 안다 해도 아마 그리 똑똑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현이 말했다.
“제자가 어리석어 금생(今生)도 모르는데 전생을 어찌 알겠습니까? 부디 조사님께서 알려주소서!”
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자에게 깨끗한 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고, 노자가 손수 부적을 그려 이현에게 가져가 보라고 했다. 이현이 손에 받쳐 들고 한 번 바라보니 천궁(天宮) 위에서 뭇 신선들이 줄지어 마시는데, 사향리(司香吏)와 사화선녀(司花仙女)가 웃다가 죄를 짓자, 옥제(玉帝)가 벌을 내려, 열 차례 속세에 내려온 정황을 보았다. 이에 마음속이 갑자기 맑고 깨끗해졌다. 정수(淨水)를 돌려드리고, 또 노자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노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가 전생에 이런 근기가 있어 금생에 도(道)를 일찍 깨닫고 또 태백금성이 이끌어 삽시간에 나의 문중에 들어섰음을 알았을 것이다. 자고로 도(道)를 이룬 이들 중에 이렇게 신속한 사람이 없었다.
첫째, 네 복연(福緣)이 얕지 않고,
둘째, 너는 원래 선리(仙吏)였기 때문에 비록 직위는 낮아도 근기가 필경 남들과 다르며, 아울러 10세(世)에 사람이 되어 아무런 과실이 없었기에 하늘이 마음으로 연민하셨고,
셋째, 네 몸이 속세에 떨어졌어도 조금도 물들지 않고 확실히 숙근(夙根 오랜 근기)를 지녔으니,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수도(修道)의 공(功)은 안개 자욱한 망망대해처럼 광대하니 그 끝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뎌 당(堂)에 올라와 입실(入室)한 셈이다. 아직 멀었으니, 앞으로의 공행(功行)은 모두 네가 하기에 달렸다. 비록 복명(福命 복이 있는 명)이 있어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느니라.”
이현이 다시 절을 올리며 가르침을 받고는 말했다.
“제자는 산야(山野)의 비루한 범부로 물러난 말품(末品 하잖은 직책)일 뿐입니다. 전생에 이미 죄를 지었으니 금세(今世)에 어찌 감히 잊고 스스로 힘쓰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조사님께서 천지를 열어주신 은혜를 입어 미혹을 알려 깨달음에 들게 하시니 진실로 자의(自意)가 아닙니다. 이런 복연(福緣)이 있으니, 지금 마땅히 더욱 긍지를 가져야 하며, 어찌 다시 소홀히 해서 스스로 앞길을 망치고 길러주신 윤사(尹師 윤희)의 덕과 이끌어주신 금성(金星)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르침을 내렸다.
“지극한 도(道)의 정(精)은 온통 그윽하고, 지극한 도의 극(極)은 어둑하고 묵묵하다(昏昏默默). 도(道)는 없는 곳이 없으니 신(神)을 끌어안아 고요해지면, 형체(形)가 장차 저절로 바르게 되어, 반드시 깨끗하고 맑아질 것이다. 네 형체를 힘들게 하지 말고, 네 정(精)을 퍼뜨리지 말며, 네 성(性)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이익에 대한 근심을 줄이면 장생(長生)할 수 있으니라.”
이현이 무릎을 꿇고 법훈(法訓 법의 가르침)을 받으니 마음 꽃이 활짝 피어났고 속세의 정[塵情]이 얼음 녹듯 다 풀렸다.
노자가 이어서 말했다.
“수도(修道)하는 사람은 산수를 많이 유람하면서, 흉금을 깨끗이 씻고, 공행(功行)을 많이 세워 선과(善果)를 굳건히 해야 한다. 먼저 토납(吐納 호흡법)의 비결과 도인(導引 동공) 방법을 알려 주겠다. 또 현문도경(玄門道經) 세 권 중에서 상중(上中) 2권은 비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타며, 신병(神兵)을 부르고 천둥과 번개를 일으킬 수 있다. 하권은 변화의 기묘함을 궁구해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너 혼자 화산(華山)에 갈 수 있다. 그곳 관일봉(觀日峰)엔 내가 수진(修真)하던 동부(洞府)가 있으니 자하동(紫霞洞)이라 한다. 지금은 요마(妖魔)가 매우 많아, 네게 보검(寶劍) 한 자루를 하사하겠다. 사용하려 하면 길어지고, 접으면 아주 작아진다. 펼치면 만 리에 달하고, 거두면 바로 눈앞이다. 상계(上界)의 진선(真仙)을 제외하고는 이 검봉을 당할 자가 없다. 네가 이것을 얻으면 요괴를 제거하고 몸을 지키며 재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검을 사용하는 구결(口訣)과 도경 3권을 이현에게 함께 건네주었다.
이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일일이 기억했다. 노자는 동자에게 동굴 뒤에 가서 도포(道袍)와 도관(道冠) 및 명주 끈과 신발 등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 이렇게 의관이 갖춰지자 이현은 즉시 옷차림이 변했다. 이현이 옷을 다 입고 나자 정신이 점점 더 표일(飄逸)해졌다.
노자가 웃으며 말했다.
“완연히 산선(散仙)과 같구나, 너는 이제 가거라. 내가 또 문시(文始) 사형을 시켜 너를 동굴로 보내주겠다. 3년 후, 공부를 다 마치면 다시 나를 보러 오너라.”
이현은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문시는 그를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와 여전히 구름을 타고 화산 자하동까지 데려다주었다.
문시가 떠날 때 이현이 절을 올리며 가르침을 청하자 문시가 말했다.
“도(道)를 닦는 요지는 조사께서 이미 완전히 알려주셨고 사제는 총명해서 이미 깨달았을 것이야. 다른 선술(仙術)은 경전에 다 있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스스로 얻게나. 우형(愚兄 어리석은 형, 겸칭)는 단지 소소한 기예를 주어 현제(賢弟)를 위해 축하해줄 뿐일세.”
그러면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을 문에 걸어두면 영롱하게 빛나고 어두운 밤도 낮과 다름이 없으며 요괴와 도깨비가 가까이하기 어렵지.”
또 정신법(定身法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는 법술)을 가르쳐주었다. 즉, 요괴가 쳐들어올 때, 만약 도행이 아주 깊은 자가 아니면, 이 정신법을 쓰면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이현이 크게 기뻐하며 받았다.
문시가 또 말했다.
“현제가 처음 입산했으니 모든 행동은 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형이 하인 두 명을 또 보내줄 테니 잡일을 시키게.”
이현이 이상해서 물었다.
“이렇게 황량한 산속 어디서 사람을 구한단 말씀이신지?”
문시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여기를 둘러보았겠지만 평범한 사람이 어찌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겠는가? 현제가 평소와 다름없는 까닭은 첫째는 자네의 근기가 남달라 선골(仙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네가 산에 갔을 때 왕대관이 금환(金丸)을 주었기 때문에 배고픔을 참고 추위를 견디며 고통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지. 이 환은 원래 선인(仙人)이 만든 것으로 왕대관이 도류(道流 도가 유파)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속세의 평범한 약과는 비교할 수 없다네. 못 믿겠으면, 자네가 입산한 지 얼마나 되었고 또 곤륜을 왕래했으니 세상에서는 이미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어찌하여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을 느끼지 않겠는가? 바로 이 약의 효력 때문이지! 하지만 약력(藥力)에 한계가 있어서 며칠 지나면 곧 사라질 것이다. 현제는 앞으로 아직 익힌 음식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오늘 인근 산의 요마(妖魔)들 중 선연(仙緣)이 있는 자를 찾아 두 사람을 불러 현제를 섬기고 지휘를 받게 하겠다. 노제(老弟)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 화산에서 대략 천백 리 안에 있는 것들은 그들 스스로 가져올 수 있다네.”
이현은 아직 화식(火食)을 끊지 못했기 때문에 옛 동굴을 지키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할까 봐 심히 걱정했는데 이 말을 듣자 아주 기뻤다.
문시가 이현을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결을 맺어 본산(本山)의 토지(土地)들을 불러 물었다.
“이 일대에 어떤 요괴가 있느냐?”
문득 한 늙은 토지가 몸을 굽히며 대답했다.
“이곳은 노군조사께서 떠나신 후, 이 산 앞뒤 일대는 온통 요인(妖人)들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워졌습니다. 가장 사나운 것은 토끼 정[兔精]과 꿩 요괴[雉怪]입니다. 그 토끼 정은 늘 남자로 변신해 산에서 내려와 여자를 미혹해 연홍(鉛紅 여자의 정화)를 빨아들입니다. 그 꿩 요정[雉精]은 늘 여자로 변해 하산하여 남자를 유혹해 원양(元陽 남자의 정화)을 얻곤 합니다. 요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문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곳은 우리 조사께서 수진(修真)하시던 곳인데 어찌 이런 짐승 류의 것들이 이렇게 소란을 피울 수 있단 말이냐?”
토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산 아래 범인(凡人)들뿐만 아니라 이곳 토지들도 그들에게 심하게 방해받고 있습니다!”
문시가 달래며 말했다.
“내 오늘 꿩과 토끼 두 요괴를 거둬 사제의 시중을 들게 하겠다. 그 외 모든 요괴는 사제가 있으니, 머지않아 점차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애초 이곳에 와서 고생스레 수도하려 하니 만약 뜻밖의 일이 있으면 너희들이 모두 협력해서 그를 돕고 돌봐주어야 한다. 나중에 그의 공행(功行)이 원만히 이뤄지면 너희들도 공적이 있을 것이다.”
토지들이 감사드리며 떠났다.
이현이 이를 보고는 흠모해 마지않았다.
문시가 웃으며 말했다.
“수도인은 하늘을 대신해 도(道)를 행한다네. 삼계(三界)의 신선들도 모두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직책이 있다네. 만약 마음가짐이 당당하고 행동이 떳떳하다면 확실히 사람에게 유익하고 이치상 해가 없으니, 그들도 당연히 지휘에 공손히 따라야 하네. 부결(符訣)을 하면 즉시 오는데 이는 무슨 기이한 일이라 할 수 없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념(私念)이 있거나 또는 아주 바르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들을 불러오기 쉽지 않네. 설령 법(法)을 받든다 해도 그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고, 만약 큰 법력을 가진 자를 만나면 검을 휘둘러 맞서 설령 다행히 면할 수 있다 해도, 앞으로 악이 가득 차면 하늘의 주살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현이 두려워하며 가르침을 받았다. 문시가 웃으며 말했다.
“이 구결들은 조사의 경전 속에 다 갖추어져 있고, 현제는 총명한 위인이니 한 달 안에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야. 지금 현제가 부러워하니 내가 먼저 신(神)을 부르는 이 결을 자네에게 전수해 주겠네. 역시 몸을 보호하고 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이현이 아주 기뻐하며 절을 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문시가 또 당부했다.
“신(神)을 부르고 장수를 파견하는 일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니 아주 긴급한 때가 아니면 함부로 쓰지 말게. 만약 신장(神將)이 올 때면, 특히 겸손하고 단정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경솔하게 행동하면 하늘의 벌이 따른다네. 알아야 할 것은 우리와 신기(神祇 하늘과 땅의 신)는 모두 하늘을 대신해 도(道)를 행하고,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구제하니, 그들이 우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은 우리의 지위가 그들보다 높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직무를 수행하고, 각기 그 공(功)을 다하는 것이라네. 자네가 만약 가볍게 여긴다면, 천벌은 받지 않더라도 다음에는 다시 그들을 불러올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네.”
이현이 늠름하게 말했다.
“사형의 금언(金言)을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문시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네. 내가 자네와 함께 요괴를 항복시키러 가세!”
이현이 말했다.
“아쉽지만 방금 그 토지에게 묻자 그 요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시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 대수로운가? 우리가 수련한 혜안(慧眼)은 어디에 쓴단 말인가? 지난번에 자네가 소의 솥 안에 있을 때, 나를 인도한 사람이 있었는가?”
이현이 방금 그와 함께 동굴 문을 나섰는데 문시는 앞쪽 일대의 대나무와 지상의 낙엽과 가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 가지는 잘 수습하게! 그래야만 신선이 수진(修真)하는 동부 같겠지. 이렇게 너저분하고 더럽다면 이게 무슨 모양인가?”
이현이 듣고 속으로 몹시 감동했다.
문시가 이현을 데리고 산봉에 올라가 혜안으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동북쪽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제도 보았는가? 저기 반은 검고 반은 푸른 기운이 있는데 분명 요인(妖人)이 은신한 곳일세.”
이현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저곳의 기상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문시가 그에게 분부했다.
“보검을 잘 휴대하고 나를 바짝 따르게.”
두 사람이 구름을 타고 날았다. 삽시간에 이미 요괴의 기운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구름이 내려앉았는데 큰 산간 평지였다. 산간 평지 뒤에 큰 동굴이 하나 있는데, 동굴 밖에 마침 많은 요괴들이 그곳에서 힘을 겨루고 있었는데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녀석은 멍하니 쳐다보고, 어떤 녀석은 동굴로 나는 듯이 달려가 요정에게 보고했다.
문시가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요괴가 곧 나올 걸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남일녀(一男一女)가 많은 작은 요괴들을 데리고 소리치며 동굴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두 요괴가 문시 형제를 보자마자, 그 남자 요괴가 말했다.
“현매(賢妹), 축하해. 네가 먹을 게 왔구나!”
여자 요괴는 몹시 흐뭇하여 손을 들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두 분 도장(道長)께선 어디서 오셨습니까?”
문시가 웃으며 말했다.
“특별히 너희들을 구하러 왔다.”
그러자 두 요괴가 얼굴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도인의 말이 어찌 이리 방자한가.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자신도 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구한단 말이냐!”
남자 요괴가 급히 고개를 드니, 이현의 검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며 여자 요괴에게 뭐라 한마디 속삭이자 여자 요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 명령이 내리자 수백 명의 요괴들이 우르르 몰려와 두 사람을 에워쌌다. 문시는 크게 웃으며, 이현과 각각 보검을 꺼내 손을 들어 휘둘렀다. 이상하게도, 검광이 일어나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요괴들이 모두 머리가 부러지고 골절되어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졌다. 두 요괴가 크게 노해 병기(兵器)를 뽑아 두 사람과 싸웠다.
문시는 이현에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라 하고 자기 혼자 검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두 요괴와 싸웠다. 두 요괴가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 패하여 서쪽으로 도망갔다. 문시는 구름을 타고 추적했다. 두 요괴는 급히 각자 입을 벌려 뿜자 갑자기 한 가닥 푸른 연기가 나오더니 곧 맞은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현은 이상한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다.
문시가 크게 노해 일성을 외쳤다.
“요괴가 어찌 이리 무례한가!”
입을 열어 “후”하고 뿜자 푸른 연기가 다 흩어지고 악취도 전혀 나지 않았다. 문시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면서 질풍 같은 소리를 질렀는데, 갑자기 청천벽력이 일어나더니, 이미 뇌공과 전모(雷公電母 천둥과 번개의 신)가 허공에 몸을 굽히고 서서 명령을 기다렸다.
문시가 손을 들며 말했다.
“지금 토끼와 꿩 두 요괴가 이곳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으니 빈도(貧道)가 감히 존신(尊神)께 힘을 펼쳐주시길 부탁합니다. 그것들이 어서 빨리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되 목숨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빈도가 따로 쓸 곳이 있습니다.”
그러자 천둥, 번개 두 신이 “법지(法旨)를 받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큰 천둥을 쳐서 두 요괴의 머리로 내리쳤다. 두 요괴는 웅웅 하는 천둥소리가 머리 꼭대기 좌우에서 감도는 것을 느꼈을 뿐, 내릴 듯 말 듯 하자,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땅에 엎드려 빌었다.
“대선(大仙)님 살려주세요!”
문시가 소리쳤다.
“얼축(孼畜)아! 빨리 원래 모습을 드러내 내 법지를 받아라!”
두 요괴는 그 자리에서 구르더니 하나는 흰토끼가 되고, 하나는 꿩이 되었다.
문시가 말했다.
“요마야 내 명령을 따르겠느냐?”
두 요괴가 슬피 울부짖으며 읍소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기꺼이 대선을 따르겠습니다. 뭐든지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만약 변심한다면 천지의 주멸(誅滅)을 받겠습니다.”
문시가 천둥 번개를 물러가게 한 후 명했다.
“오늘 내가 너희들을 일관봉 자하동에서 내 사제를 섬길 것을 명한다. 너희들은 조심해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내 사제는 천선(天仙)이 속세에 내려온 사람으로, 지금 조사님의 가르침을 받아 이곳에서 수지(修持)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정과(正果)를 이룰 것이다. 그때 너희들도 복이 있어 공행(功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두 요괴는 기뻐하며 감사했다. 문시는 그들을 다시 사람 모습으로 변화시켜 이현을 보러 왔다. 이현은 독이 깊이 퍼져 혼수 상태였다. 문시가 입으로 기운을 불며 말했다.
“사제 일어나게! 우형이 이미 자네를 대신해 둘의 기강을 잡았네.”
이현이 크게 기뻐하며 절을 올렸다.
문시가 말했다.
“자네가 부르기 편하도록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게나.”
이현이 말했다.
“사형께서 이름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문시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꿩 요정은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선회할 수 있으니 ‘비비아(飛飛兒)’라 부르세. 이 토끼 정(兔精)은 산을 오르내리고, 나무를 타고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니 ‘전전아(顛顛兒)’이라고 하면 좋겠네.”
이현과 두 요괴는 모두 문시에게 감사드렸다. 문시는 또 그들을 동굴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두 요괴에게 분부했다.
“잘 모셔야 한다. 만약 변심하면 내가 곤륜산에서 즉시 알고 장심뢰(掌心雷)로 너희를 치면 즉시 해골이 가루가 될 것이다.”
두 요괴는 두려워 떨며 명을 받들었다.
문시는 또 이현에게 몇 마디 격려했다.
“3년 후 곤륜에서 만나세!”
두 발을 박차자 문득 한 줄기 금빛이 하늘로 치솟더니 삽시간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당황한 두 요괴가 땅에 엎드리며 말했다.
“오늘 다행히 금선(金仙)을 만났습니다!”
이현이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 둘 다 마음을 고쳐먹고 나와 함께 잘 지내자. 내가 또 조사님께서 하사하신 비급(秘笈) 중의 도법(道法)을 한두 개 골라 너희들에게 수시로 가르쳐 주겠다. 훗날 내가 공을 이루면, 너희들의 도움을 잊지 않겠다!” 그러자 비비아와 전전아가 더욱 기뻐했다.
이때부터 이현은 동굴에서 밤낮으로 열심히 공을 닦았다. 두 요괴는 그를 위해 산에서 내려가서 물건을 가져오고, 산에 올라가서 밥을 짓고, 동부를 쓸고, 명령을 받고, 조금도 나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현이 독송하던 현경(玄經)이 밤에 기이한 빛을 발하고 사방에 빛을 발하자 많은 요괴들이 귀중한 보물이 있다고 의심하고 약한 곳을 습격하려고 할 줄 누가 알았으랴!
이날 이현이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홀연히 동굴 밖에서 한 여자가 소복(素服)을 입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법사(法師)님 살려주세요!”
이현이 정신을 집중해 살펴봤지만, 그녀가 어떤 부류인지 알아보지 못해 생각했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평범한 사람은 올 수 없으니 요괴가 사람으로 변한 것으로 의심된다.’
또 생각했다.
‘요인에게 필경 특별한 정황이 있을 것이다. 이 여자가 이렇게 아름다우니 또 차마 의심하지 못하겠구나.’
그래서 물었다.
“낭자는 어디서 오셨소? 무슨 억울한 일이 있소? 관청을 찾지 않고 이 황량한 산속에서 빈도(貧道)를 찾은들 무슨 도움이 되겠소?”
그 여자가 울면서 말했다.
“소녀는 산 뒤 동촌(東村) 왕(王)가 집의 사람인데 남편이 죽은 지 백일이 지났지만 차마 다른 곳으로 시집갈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가난해서 저를 어느 부잣집에 팔았는데, 혼인하던 날 밤에 제가 순종하지 않자 그 부자가 저를 죽이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심야에 탈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산 뒤 일대는 모두 부자의 세력이 닿는 곳이라, 소녀는 감히 도망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올라와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뜻밖에 갈수록 산이 점점 높아져 어느새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진퇴양난(進退兩難)인데다 호랑이에 잡아먹힐까 두려워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법사님께서 이곳에서 수도를 하고 계시니, 만약 저를 버리지 않고 동부에 받아들여 하녀로 삼아주신다면 정말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이현이 깜짝 놀라 말했다.
“낭자가 어찌 이런 말을 하시오! 빈도는 인간 세상에서 견딜 수 없는 고달픈 삶을 살았고, 보통 사람은 살기 힘든 고달픈 곳에서 살고 있소. 아직은 비록 밥을 먹지만, 머지않아 곡식을 끊을 텐데 어떻게 어린 낭자를 부양할 수 있겠소? 게다가 이곳에서 뭐 할 일도 없고, 작은 일들은 두 도제(徒弟)가 도맡고 있으니 어찌 또 일반 사람을 둘 필요가 있겠소? 낭자는 빨리 산을 내려가시오, 여기서 소란 떨지 말고!”
그러자 그 여자가 이를 보고는 통곡하며 말했다.
“수도인은 인의(仁義)를 가장 중시하고, 소녀도 절개를 중시하다 이런 환난을 당했으니, 법사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소녀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악인의 손에 죽느니 법사님 앞에서 죽는 것이 낫습니다.”
이현이 듣고는 속으로 참지 못하고 생각하며 말했다.
‘이 여자가 이렇게 처절한 걸 보니 정절을 지킨다는 말이 정말인가 보다. 내가 구하지 않으면 정말 죽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인가? 비비와 상의해서 그녀를 산 뒤로 데려다주는 수밖에 없겠다. 그녀가 사는 곳에서 천백 리 떨어진 곳이니 그 악인이 찾아와도 두렵지는 않다.’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낭자는 일어나시오. 빈도는 이곳에서 수신입명(修身立命) 하는데 온 힘을 다해도 늦을 것 같은데, 어찌 다시 인간 세상의 일에 상관할 수 있겠소! 하지만 낭자가 정말 정절을 지키는 것이 가상하고, 게다가 이렇게 가련하게 말하니, 빈도의 마음속에서도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예외를 만들겠소. 내 제자들이 당신을 저쪽 산 아래로 데려다 줄 테니, 선량한 사람의 집을 찾아서 잠시 일을 도와주며 살아갈 수 있을 거요. 낭자 생각은 어떻소?”
그 여자는 기뻐하면서 감사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법사님은 정말 소녀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렇게 말하고 또 절을 하려 했다.
이현은 황급히 피하며 말했다.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소, 오히려 빈도가 불안해지니. 내 즉시 사람을 시켜 당신을 데려다주겠소!”
그 여자가 당황해서 말했다.
“오늘은 이미 늦었고 이 산길이 얼마나 험한데요. 수시로 호랑이, 표범, 독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일 잘못되면, 법사님께서 사람을 구하려다 오히려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이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그 여자가 말했다.
“소녀는 다른 마음은 없고 그저 오늘 하룻밤 묵고 내일 아침에 떠나게 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현이 말했다.
“그건 절대 안 되오! 이곳에는 여자 손님이 묵을 곳이 없고, 하물며 황폐한 동굴에 남녀만 있으면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소! 이는 또한 낭자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이런 환난을 겪는 것이오. 만약 하룻밤 묵는 일 때문에 깨끗한 이름을 해친다면 안되니 낭자 역시 계책을 세워야 하오.”
그러자 그 여자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법사님께서 두 도제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제의 방을 제게 주시고 하룻밤 지내면 어떻겠습니까? 서로 다른 방을 쓰면 설사 의심이 있어도 천신(天神)이 다 보고 계시는데 무슨 시비를 두려워하십니까!”
이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더욱 난처해져서 말했다.
“맞소이다! 내게 또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소! 이 도제들은 사람의 유가 아니라 토끼와 꿩의 정령이 수련해서 사람 몸이 된 것이오. 그 꿩은 여자 몸이지만, 토끼 정은 남자 몸이오. 빈도는 조사님의 법력에 의지하여 그들을 새로 거뒀는데 그들의 야성을 길들일 수 있을지 모르니, 만약 낭자의 젊고 예쁜 것을 보고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한다면, 빈도가 더욱 곤란할 것이오! 낭자는 더는 의심하지 마시오, 내가 즉시 꿩 정을 시켜 하산시켜 주겠소. 이 제자는 비록 이류(異類) 이긴 하지만 약간의 법술이 있어서 웬만한 짐승은 가까이 갈 수 없소. 그녀가 당신을 지켜 동행한다면, 또 무엇이 두렵겠소?”
그 여자는 이현이 고집스럽게 거절하자, 여전히 홀로 서서 가지 않고, 오히려 미술(媚術 미인계)로 이현을 꼬드기려 했다. 방긋 웃으며 이현에게 다가오더니 치근덕거리며 말했다.
“법사님, 당신은 정말 이렇게 모질게 저를 버리실 건가요. 이 깊은 밤에 위험을 무릅쓰고 이 먼 산길을 가게 할 수 있으십니까?”
이번에 이현은 깜짝 놀라 몸을 피할 곳이 없자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비비, 전전아 어디 있느냐. 속히 와서 나를 구하거라”
이 말이 나오자 그 여자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정말! 이현 넌 정말 호의를 모르는 바보로구나. 나는 네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데, 너는 도리어 사람을 불러 나를 잡아가라고 하는구나! 좋아, 나도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겠다. 네 그 무슨 현경(玄經)만 가져가면 그만이다. 네가 마음을 돌리면, 나는 너와 영원히 부부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너의 이 경전을 먼저 불태울 것이다. 나는 산 뒤 백옥동(白玉洞)에 산다. 내가 바로 백옥(白玉) 부인이다. 날 찾으려면 저쪽으로 오너라!”
이렇게 말하면서 한 손으로 석탁 위의 현경을 낚아채고, 한 손으로 이현을 밀어 넘어뜨리고, 한바탕 요사한 바람을 일으켜 동굴 밖으로 나갔다. 비비 전전이 함께 찾으러 갔을 때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과연 이현이 경전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다음 회를 보시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