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秦政)
【정견망】
편집인의 말: 이 시리즈는 본래 인민보(人民報)에 연재된 것으로 저자가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금강경》에 대해 논술한 것이다. 우리는 이 글이 종교계(특히 불교계) 인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 일정한 참고 가치가 있기에 이곳에 옮겨 싣는다. 종교계 인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대법제자들은 볼 필요 없다. 모두 법을 스승으로 삼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기를 바란다.
들어가는 말
인류는 비록 ‘교훈을 총괄’하는데 몹시 관심을 기울임에도 교훈을 흡수하기란 아주 어렵다.
당시 석가모니가 법을 설할 때 이미 말법(末法)이 된 바라문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모함했다.
예수가 세상에 내려왔을 때도 부패한 유대교 인사들이 사회적인 증오를 만들어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공자는 자신이 크게 성취한 유도(儒道)를 전파하기 위해 6개국을 돌아다녔지만, 광(匡)과 진(陳)에서 곤경에 처해 마치 ‘상갓집 개처럼 초췌하다’는 조롱까지 받았다.
노자는 냉담한 세태(世態)를 간파했고 관윤이었던 윤희라는 까다로운 제자를 얻지 못했다면 5천언조차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석가모니의 불교는 2,500여 년에 걸쳐 세력을 형성해 세계적인 대 종교가 되었고, 기독교는 300년에 걸친 로마제국의 잔혹한 박해를 거쳐 오늘날 서방 세계의 지주가 되는 종교가 되었다. 공자의 유가(儒家) 사상은 수천년 동안 중국의 핵심 사상이 되었고, 도가의 고묘(高妙)한 선법(仙法) 역시 많은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쯤 사람들은 지금의 태도에 교훈을 얻기는커녕 자신들의 초심조차 망각해 버렸다.
필자가 여기서 풀이하려는 것은 불교도들이 오랫동안 모범으로 떠받들어온 《금강경》과 《심경(心經) 반야심경》이다. 사실 불경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지금의 중생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서, 자신도 잘 모르는 이런 논술에 집착하는데 여기에 다른 심보를 가진 사람들의 많은 오해와 착각이 더해져, 이런 것들은 이미 사람들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 정견(正見)을 여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특히 불교계 인사와 불교 신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냉정하게 관찰해 이성적으로 지금의 선택을 한번 가늠해 보았으면 한다.
역사는 결국 전례 없는 혼란의 시대를 거쳐 맑고 화려한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교체와 도태는 오히려 생명의 궁극적인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경계점이 될 것이다.
《금강경》에 관한 10가지 논의 (1)
1. 《금강경》과 《심경(心經) 반야심경》은 역대로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었다. 경전의 원래 의미는 부처님이 당시 깨달은 우주의 진리를 드러내신 것으로, 학자들에게 있어 경전이란 늘 보면서 자신을 바로잡고 자신을 제고하는 표준적인 참조다. 경(經)의 원래 뜻은 이런 것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로 보고 읽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 이를 이해하고 이를 사용해 심법(心法)을 통합하고 실현하는 행위다. 만약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줄곧 미혹을 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헛되고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해석을 듣고 믿어 자신을 ‘미혹’의 감옥에 갇히게 하고서도 자신은 모르는 것이라 더욱 비참하다.
필자는 이를 감안해 오늘부터 《금강경》을 10회에 걸쳐 강의 하기로 결정했다. 경전의 본래 의미에서 출발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독자들이 더는 감정 때문에 날뛰지 말고, 진정으로 생명의 진제(真諦)를 구해 실증하고 불법(佛法)의 진의를 탐구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읽어보기 바란다. 만약 감정에 치우쳐서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 종교를 옹호하려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수도자의 눈에는 아주 어리석고 우스운 것이며 또한 언급할 필요도 없다.
2. 《금강경》의 원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으로 역대로 불교 신도들은 ‘금강(金剛)’이란 단어를 항상 ‘부동(不動)’으로 해석해 왔는데, 가령 ‘여여부동(如如不動)’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정(情)에 미혹된 생명에게 이 ‘부동’을 말하는 것은 그저 일종의 억지일 뿐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자신의 마음을 관조(觀照)해 보라. 완전히 법에 도달해 실증하고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부동심’을 말한다면 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이자 보고도 못본척 하는 것으로, 일종 자기 치켜올리기다.
금강이란 불변하는 불성(佛性)의 진실한 경계(境界)를 비유해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이아몬드’의 특성으로 간단히 개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는 일종 공성자재(空性自在)하고 일체를 융섭(融攝)하지만 일체에 들어가지 않는 원만(圓滿)의 경계이며, 수련자에게는 일종 최상의 지혜라서 ‘반야(般若)’라 부른다. 또한 이 경계는 오직 본연의 맛만을 이룰 수 있기에 진실로 착실한 수련의 기초가 없다면 천 가지 만 가지를 말해도, 결국 배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배 맛을 설명하는 것과 같고, 눈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눈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바라밀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바라밀의 향과 부드러운 맛을 말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3. 《금강경》은 한차례 수보리와 대비구들에게 설법하면서 삼계를 벗어난 삼계 밖의 공성자재(空性自在)와 불성무루(佛性無漏)의 진실한 경지를 말한 것이다. 사람이 수련 과정에서 정법(正法) 대도(大道)를 통해 견정하고 착실히 수련하면 오직 하기만 할 뿐 수확을 묻지 않는다면, 자연히 명오(明悟)에 도달해 자연히 명백해질 것이다. 이는 밖에서 구해온 것이 아니라 일종 정도(正道)를 닦아 원만한 자연스런 결과다. 그 한 층차에서 일체 불도신(佛道神)은 모두 그런 특성인바 마치 사람이라면 모두 사람의 형상을 갖춘 것과 같다. 때문에 구경(究竟)을 모르는 사람들이 인정(人情)으로 추측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4. 법을 해설하기 때문에 대답 중에는 법리를 풀어내는 것이 있고 필연적으로 겨냥성이 있다. 마치 좋은 스승이 학생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그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낡은 틀의 속박을 버리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정견(正見)과 같다. 예를 들면, 물리 교사는 먼저 뉴턴의 고전 역학을 강의하면서 많은 정의를 말해야 한다. 이러한 정의는 이 단계의 학생들이 평면 세계의 물리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따라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이자 또한 확실히 아주 많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제한된 정의든 정의한 틀 내에서는 유용하지만 정의의 범위를 벗어날 때는, 도리어 계속해서 진리를 탐구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에 ‘타파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런 설명은 모두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문제가 아니라 신(神)이 의도적으로 그더러 사람들에게 이 이론을 공개하게 한 것일 뿐이다. 그는 단지 신이 인류에게 이 이치를 설명하도록 안배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석가모니가 말한 여래법(如來法)은 석가모니 일가(一家)의 여래법이 아니고 그는 단지 신이 사람들에게 이 이치를 말하도록 안배했을 뿐이다. 사실 그 한 층차에서 사람이 먹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석가모니도 여래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때문에 총명한 사람은 결코 감정을 사용해 자신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며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해 진도(真道)를 추구해 스스로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혹된 중생들은 평생을 경전에 몰두하지만, 죽을 때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5. 해법(解法)이고 대비구(大比丘)들에 대해 말하기에 고생을 겪고 선(善)을 행하며 업을 없애는 등등의 기본적인 내용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시 석가모니가 법을 전할 때 반드시 “사람의 형상으로 세간에서 행하며 사람의 말로 법리를 드러내야” 했다. 이것은 하늘이 반드시 이렇게 하도록 정한 것으로 사람 이곳의 생명은 좋지 않게 변해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신(神)의 자비로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이다. 때문에 이런 미혹의 공간과 이렇게 저능하고 번뇌의 육신을 만들어 신식(神識)을 봉쇄해 넣고 미혹 속에서 깨달음을 구하길 바란 것이다. 깨달을 수 있으면 되돌아 올라가고, 깨닫지 못하면 더욱 나빠져 훼멸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정전(正傳 정법을 전하는) 사부도 신통력을 크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법을 전하거나 도(道)를 전하지 않는데, 그렇게 하면 미혹 속에서 깨닫는 문제가 없다. 미혹을 타파한 상황이라면 심지어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사람조차 다 수련하려 할 것이고 교란하는 마(魔)마저도 따라서 수련하러 올 것이다. 누군들 수련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하면 법을 전하고 도를 전하는 사람이 먼저 우주 법리를 파괴하기에 그가 먼저 떨어져 내려가 훼멸될 것이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과거에 사람들에게 알게 한 가장 높은 경계의 부처가바로 여래였기 때문에, 더 높은 것은 사람이 아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우주에는 ‘감춰진’ 원칙이 있는데, 후세에 이치를 똑똑히 모르는 사람들이 여래(如來)를 ‘가장 높은 것’으로 인정하고 사람의 등급 관념과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변이된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가늠해 늘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려 했다. 그 결과 가소롭게도 스스로를 더 미혹되게 했다.
만약 여래가 가장 높다면 여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반드시 또 여래를 만든 법(法)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중에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후 줄곧 중국에 원래 있었던 유교 및 도교와 투쟁했는데, 때로는 아주 격렬했다. 역사적으로 삼무(三武)의 멸불(滅佛)이 있었는데 바로 아주 극단적인 시기였다. 당시 삼교(三敎)는 늘 논쟁을 벌였고, 황제가 궁궐에서 직접 주재했다. 그럼 석가모니 교 신도들이 가령 석가모니가 세상에 태어날 때 일곱 걸음을 연속으로 걸으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말했다고 주장하는 이런 것은 석가모니 부처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먼저 떨어져 내려갈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사람의 태에 들어가 전생(轉生)하는 방식을 통해야만 할 수 있는 것에는 아주 중요한 원용(圓容)의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알아야만 자비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절실한 체험을 통해 사람과 ‘협력’해야만 사람의 내심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진실한 고통과 상태, 특징, 성정을 알 수 있으며 비로소 개오(開悟)한 후 겨냥성 있게 그들을 구도할 수 있는 것이다. 서방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한 천사와 어린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아주 유익하고 또 이 일에 대한 반증으로 사용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불타(佛陀)가 개오하고 도를 얻은 후에도 속인은 보지 못하는데, 사람은 육신의 행식(行識) 중에 미혹되어 있고, 아주 저능하기 때문에, 설사 신통(神通)을 직접 볼지라도 그저 잠시 격동할 뿐 지나고 나면 또 의심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석가모니가 법을 전할 때도 믿는 이가 있었고, 믿지 않는 이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를 해치는 사람도 있었다. 설사 그를 믿는 이들이라도 또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로 나뉜다.
이중 상사(上士)는 일단 불타가 말하고 증오(證悟)한 진법(真法)을 들으면 본원에서 마음으로 이해하고 순수한 믿음이 생겨, 석가모니의 요구에 따라 출가해서 수행하며 불타를 따른다. 한마음으로 정진해서 원만정각(圓滿正覺)을 추구했다. 늘 석가모니 곁에 머물던 제자들이 바로 경전에 자주 언급되는 대비구들로 바로 앞자리 제자들이다.
반면 중사(中士)는 혹은 순수한 믿음이 있거나 또는 여전히 걱정하고 의심하면서 세속의 직책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로 바로 당시 아랫자리 제자들이다. 또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이들도 있었다. 역대로 성스런 각자(聖覺)가 대규모로 법을 전해 널리 제도하면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6. 기왕 이러했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는 보리수 아래에서 49일 동안 가부좌하면서 인욕(人欲)의 번뇌와 집착을 항복시켰고 개오한 후에도 단번에 여래 과위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이후 49년간 법(法)을 전하면서 만년(晩年)에 여래 경계에 도달할 때까지 점차적으로 승화했다. 이 부분의 경(經 역주: 반야부의 경)은 바로 그가 만년에 말한 것으로 불교도들에 대해 말하자면 당연히 여래의 설법이라 대단히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칠칠 49일 동안 가부좌를 한 후 개오했다고 보지만, 오히려 그의 이전 수행과 6년간의 고행이 사실 생명의 업력을 없애는 과정을 완성한 것임을 망각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개오한 후 처음 전한 것은 바로 나한법(羅漢法)인데, 고행은 그중 아주 기초적인 공부(功課)였다. 그의 법에서 핵심적인 길이 바로 계정혜(戒定慧)였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 인도에는 아직 문자가 없었고 석가모니는 당시 제자를 이끌고 또한 신도들도 경서를 볼 필요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볼 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하루에 오직 세 가지 일만 했다.
즉 석가모니가 설법한 후, 그들을 데리고 나가 동냥하고, 다시 가부좌하며 착실히 수행했다. 날마다 이와 같았다. 가장 초기에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데리고 숲속이나 동굴에서 수행했으며, 그들은 낮에 한 번만 밥을 먹었고, 나무 밑에서 잤다. 날마다 정오 무렵 식사를 한번 했고 그런 후 장기간 단체로 가부좌해서 입정(入定)에 들어갔다. 이는 매우 고생스러웠다. 고생스러웠기 때문에 일부 제자들은 또 견디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밤에 몰래 가사를 벗어놓고 집으로 도망가는 일도 발생했다. 그 어떤 정법(正法)이든 모두 사람더러 거기에 머물도록 강요할 수 없는데 이런 것들이 필연적으로 고험하고 도태시키는 기제(機制)의 일부가 되었다. 도(道)는 자연스러움을 본받는다. 오직 견정하고 착실히 수련하고 백절불굴(百折不屈)하는 이들만이 최종적으로 개오(開悟)해서 정과(正果)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단체로 수행했기 때문에 필요한 음식이 때로는 아주 적었다. 게다가 인도는 본래 습하고 더운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파·생강·마늘 등의 음식을 먹기 좋아했다. 평소 세속에서 생활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단지 기호의 차이에 불과했다. 원래 사람 마음은 고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장기간 깊은 정에 들어가 선정을 수련할 때 아주 중요한 공부를 할 때 이 문제가 곧 부각되었다.
중국에는 예부터 오행(五行)학설이 있어서 오행을 오기(五氣)에 배정했는데, 우리 이 세계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은 모두 이런 경계 속에서 이런 이치로 해석할 수 있다. 속인들은 이 파·생강·마늘이 일부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데 왜냐하면 그것 자체에 미량의 독소가 포함되어 있고 음열(陰熱)한 물건에 속해 그 기가 아주 탁(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갈 때면 이 냄새가 코를 찔러 사람의 입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당시 탐욕, 음란, 살생 등의 명백한 악도(惡道) 외에 파·생강·마늘을 ‘훈(葷)’으로 삼아 먹지 못하게 했다. 훈이란 혼탁(混)하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확실히 고기를 금하는 계율이 없었고, 고기를 훈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인도의 인구는 지금과 달라서 밀도가 아주 적었고 인도 아대륙 전체에 200여 개의 나라들이 있었으며, 많은 곳이 원시림이었다. 농경은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식량도 아주 적어서,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생존을 위해 사냥에 의존해야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이 세속에 대한 생각을 떠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단절의 방식으로 신속하게 사람 욕망 중의 탐욕을 질식시키려 했다. 이에 극단적이고 절실한 자신의 체험에 근거해 출가제도(出家制度)를 세웠고 음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동냥해야 했다. 동냥하는 사람은 음식을 고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고기를 고를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