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秦政)
【정견망】
편집인의 말: 이 시리즈는 본래 인민보(人民報)에 연재된 것으로 저자가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금강경》에 대해 논술한 것이다. 우리는 이 글이 종교계(특히 불교계) 인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 일정한 참고 가치가 있기에 이곳에 옮겨 싣는다. 종교계 인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대법제자들은 볼 필요 없다. 모두 법을 스승으로 삼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기를 바란다.
1. 다음으로 《금강경》 경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진정한 불교도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부처님께서 경전을 말씀하실 때 기왕에 “내가 말한 모든 설법은 마치 뗏목과 같으니 법상도 마땅히 버려야 하니 법이 아닌 것임에랴[我說一切法,如筏喻者,法尚應舍,何況非法]”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그가 말한 인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주의 진리를 이해시키고 그것을 수련에 사용하게 하지만, 진정으로 도(道)를 아는 개오(開悟)는 절대 그가 한 말을 사람의 감정으로 받들고, 스스로 참뜻을 모르면서 그저 맹목적으로 외우기만 한다면 그가 말한 진정한 내함(內涵)으로 수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과거 사람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부원신(副元神) 수련이라 명명백백하게 주의식(主意識)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상 수련 성취한 사람이 없는데 수련 성취한 것은 그저 삼계(三界)에 들어오지 않고 이 사람의 몸을 빌려 수련한 부원신이었다. 역대로 성취한 것은 모두 이러했다.]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 진견(真見)을 깨칠 수 있을 때 또 사람의 명리정(名利情)이 건드려져서 속인 마음이 일어나 비이성적으로 반대하게 하는데 사실은 부처님의 깃발을 내걸고 뼛속에서 수호하는 것은 흔히 자신과 이익 및 헛된 명성(虛名)으로 자신의 감정과 교만에 불과할 뿐이다.
자고로 이 경을 풀이하고 실증한 사람이 많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알아야 하는데, 진리란 불변하는 것이다. 고금의 시간 차이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고인(古人)이 만들어낸 것이 꼭 모두 순금(純金)이나 아름다운 옥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반드시 던져버릴 쓰레기와 오물이 있으니 이런 것을 인정하지 않아도 안된다. 지금 사람들은 만약 우주의 진리를 똑똑히 안다면 그가 말한 것 역시 만고(萬古)에 폐기할 수 없는 대도(大道)이다. 때문에 공자는 “풀이하되 지어내지 않으며 자신을 팽조에 비유한다.[述而不作,竊比我於老彭]”고 했다.
2. 먼저 첫 번째 단락을 살펴보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比丘)들 1,250사람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世尊)께서 식사 때[食時]가 되자 가사(袈裟)를 입으시고 발우를 지니시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셨다. 그 성 안에서 탁발하시면서 차례로 빌어 빌기를 마치고는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진지를 잡수시고 나서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는 것은 당시 내가 부처님께 이 경전을 들었다는 뜻이다. 왜 꼭 경전 앞에 이 네 글자를 더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석가모니가 제자들을 이끌고 법(法)을 가르칠 때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제자들이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일을 도울 때 그들은 종종 무심코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을 외웠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누가 한 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잘못된 숭배로 이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들의 수행에 한계가 있다 보니 그가 석가모니의 말을 전하면서 어느 것이 스승의 말인지 명확히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요소와 힘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으나, 자신은 오히려 미혹 속에서 중생들의 숭배를 받아 환희심과 과시심이 자라났다. 이는 아주 나쁜 마음쏠림이며, 자신도 모르게 스승과 어긋나고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지어 자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계(境界)에서 깨달은 것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과 한데 섞어 아주 빨리 석교[釋敎 역주: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말하는데 불법(佛法)은 대단히 크고 넓어서 석가모니의 교는 불법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의 법을 혼란시켰다. 마치 유교(儒敎)가 공자가 사망한 후 일부 제자들이 유자(有子)가 스승과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공자의 위치를 대신케 했지만 나중에 큰 착각이었음을 발견한 것과 같다. 수정과 다이아몬드는 비록 외형이 비슷하고 똑같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진정한 품질은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가 원적(圓寂)하기 전에 그의 일생에서 아주 중요한 경전인 《대열반경》을 곁에 있던 아난에게 말하며 자신이 열반한 후 이 경을 어떻게 전하고 제자들이 석가모니교의 미래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아주 명백히 알려주었다.
[나중에 전해진 《대열반경》은, 어떤 사찰에 소장된 것은 무려 36권에 달하는데 사실, 대다수는 후인이 거짓으로 가탁해 위조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부처님이 임종하기 전에 어찌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겠는가? 아마 주희(朱熹 주자)가 임종 전 제자들에게 했던 말처럼 불과 수십 마디에 불과했을 것이다. 말한 것은 모두 몸을 닦고 성인이 되는 요점이었다. 역대 성현(聖賢)들은 모두 이랬다.]
이 경에는 후인들이 중시해야 할 크게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불교가 유전(流傳)하는 문제로 석가모니는 자신의 법이 중국에 전해질 것을 알았고 중국 동토(東土) 이곳이 장차 자신의 법의 승지(勝地)가 된다고 말했다.
둘째, 아주 중요한 것으로 불교 승려들이 자신이 열반한 후 어떻게 수련하고 승단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는 세 가지를 말했다.
[1] 내가 열반한 후 제자들은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즉 계(戒)에 따라 정(定), 혜(慧)를 수행함에 노력하라.
[2] 내가 말한 법을 인용할 때 반드시 앞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를 추가해 착란을 피해야 한다.
[3] 법을 어지럽히고 가르침을 파괴하는 무리에 대해 일률적으로 “묵묵히 배척하는” 접근 방식을 채택하라(즉, 무시하고 배척해 시장을 주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당시 자신의 층차에서 우주 법리의 진실한 체현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 《금강경》은 그 이유를 똑똑히 모르는 사람의 주체(主體 주원신)에 대해 말하자면 막연해서 알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삼계에 들어오지 않은 부원신만이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사람의 표면은 단지 약간의 느낌만 있을 뿐인데 사람의 감정은 대단히 풍부한 것이라 감정의 작용으로 강력한 편견을 만들 수 있고, 잘 모르는 것에 것도 오히려 여러 사람이 말하면 더욱 신성(神聖)하게 변할 수 있다.
사실 석가모니는 당시 구우주(舊宇宙) 요소의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일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고 단지 사람에게 계율만 남겨놓았다. 계율을 받들어 실천하면 사실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비록 제자들 사람의 주체는 지난 2500년간 반복해서 전생(轉生)하며 수련했지만 아직 진정으로 제도 받지 못했고 제도된 것은 모두 부원신이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말법시기에 주불(主佛)께서 세상에 내려와 정법(正法)을 전하시는 일을 알았기에 그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안배했다. 제자들은 반복해서 전생하면서 매 한 세(世)에 늘 큰 고생을 겪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매 한 세마다 그의 신체 안에서 대각자를 수련해 냈기 때문에 쌓은 위덕(威德)이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원만한 후 줄곧 삼계를 떠나지 않고 삼계내 가장 높은 무색계(無色界)에 하나의 하늘을 창조해 대범천(大梵天)이라 하고 그곳에서 줄곧 자신의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모두 수기(授記)가 있어서 이마에 불가의 만(卍)자 부호가 있다. 최후에 대법을 전하는 가운데 제자들이 대법에 동화하면 석가모니는 마지막에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삼계를 떠나도록 안배했다. 그의 제자들은 최소한 대범세계(大梵世界 제6층 우주)까지 수련해야 하기에 과위의 성취도 비범한 것이다.
세 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경에서 석가모니가 전한 것은 이 법의 성주괴(成住壞) 과정인데 다시 말해 법운(法運)의 문제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이후 500년을 석가모니교에서는 ‘정법(正法)’ 시기라 하는데 이것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우주 정법과는 별개의 일이다. 당시 그것은 단지 국부적인 소우주(小宇宙)의 부분을 바로 잡는 것으로 세간에 체현된 것은 다만 바라문교가 패괴(敗壞)해 법계(法界)의 이 부분이 석가모니가 전한 불법(佛法)에 의해 바로잡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원래의 낡은 의상을 벌리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아서 정말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미 옷이 헤어져서 장차 땅속에 들어가려 할 때 당신이 천선(天仙)이 짜준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다면 이는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다. 오늘날 정법(正法 우주정법)은 철저히 갱신해 새로 만드는 것으로 구우주(舊宇宙)의 일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우주 낡은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주불(主佛)의 자비 때문에 단지 채택한 방식이 구우주 생명에게 새로운 법을 인식하고 동화할 기회를 준 것으로 과거에 채택한 철저히 훼멸시키고 다시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말에 따르면 그의 법은 그가 열반한 후 5백 년간 정법시기에 속하고 바로 그의 이 법이 우주 뭇신들에게 법계에서 사람을 구하는 정법정도(正法正道)로 확립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근기가 좋은 사람들은 그가 말한 법을 듣기만 해도 청정한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받들어 수행해 정진해서 정과(正果)를 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법이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500년은 ‘상법(相法)’ 시기에 속한다. 이 단계에서는 중생의 상태가 달라져서 관념이 복잡하고 기타 요소로 인해 반드시 유형적인 불상이나 사찰의 장엄 등 유형적이고 방편적인 가르침이 있어야지만 중생이 법의 심오한 의미를 얻어 수행할 수 있다. 대체로 바로 이 단계에서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졌고 중국에서 불교가 크게 유행한 단계다.
다시 500년 후, 그가 말한 법은 ‘말법(末法)’ 시기에 접어들고, 중생들이 평생 경을 읽어도 성취는 대단히 어렵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법이 괴멸(壞滅)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실 이미 말법(末法)의 ‘말겁(末劫)’ 시기에 도달해, 도처에 보이는 것은 모두 염주를 목에 걸고 성색(聲色)과 자미(滋味), 오독(五毒)을 모두 갖춘 ‘승려’들이다. 당시 마왕(魔王)도 석가모니에게 그의 법이 말법에 이를 때 자신의 제자들과 손제자들을 사찰로 파견해 그의 법을 어지럽힐 거라고 말했다.
당시 석가모니는 눈물을 흘렸는데, 말법이라 그도 어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법 시기에 미륵불존(彌勒佛尊)께서 세상에 내려와 새로운 법을 전하시는 것을 알았다. 삼계에 가까운 부처는 10년마다 한차례 바뀌기 때문에, 석가모니는 당시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장차 미륵으로 수련 성취할 거라 말한 적이 있다. 때문에 불교도들 사이에 개념이 쉬섞여 혼란해졌다.
왜냐하면 미륵은 본래 불승(佛乘)이라 부처의 호칭인데, 불교에서는 흔히 미륵을 보살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사실, 말법시기 위대한 만왕(萬王)의 왕인 무상왕(無上王)이자, 우주의 주불(主佛)께서 미륵(彌勒)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강림해 새로운 법을 전하시는 것이다. 이는 법계(法界)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법계의 ‘직책 명’이 바로 ‘만왕의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며, 또한 ‘법륜성왕(法輪聖王)’이라고도 했다.
역사는 바로 이런 것으로 법계는 마치 순환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오늘이 과거의 복제는 아니다. 전반 우주가 정법(正法) 중에 있으며 진정한 수련자는 정법 중에서 수련하는데, 이는 개인 수련 문제를 아주 멀리 초월한 것이다. 게다가 매 수련인과 연계된 요소는 이미 더는 개체(個體)의 원만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석가모니도 《금강경》에서 모두 예시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똑똑히 알기가 아주 어려울 뿐이다. 이어서 이런 것들을 다 말해보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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