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
【정견망】
중국 전통 새해 전, 중국 본토의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악화되었고, 병원에는 중증 환자가 많았으며, 사망자도 많아 유아, 중장년층부터 노인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3년간의 팬데믹 악몽이 재현될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천연 면역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며, 어떤 환경에 있든 무사하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사람이 믿든 안 믿든 간에, 사람의 생, 노, 병, 사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운명을 바꾸는 것은 오직 덕을 쌓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면 먼저 내 이야기를 들어보기 바란다.
백여 년 전, 남경은 큰 재난을 겪었고, 수십만 명의 남경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자살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다행히 재난을 면했으며, 그들의 서로 다른 운명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명부에 의해 계획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청나라 왕조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100여 년 동안으로, 사가들은 “강건성세”라고 불렸다. 가경과 도광 연간에 이르러 청나라는 번영에서 쇠퇴로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경제가 침체되고 민간의 저항이 증가했다. 그중 가장 큰 규모는 함풍 시기에 발발한 태평천국 운동이었다.
1850년 12월, 함풍이 즉위한 해에 홍수전(洪秀全)은 광서성 계평현 금전촌에 태평천국을 세웠고, 이후 영안, 무한, 구강, 안경을 차례로 점령했다. 1853년에는 금릉, 즉 오늘날의 난징시를 함락하고 이곳에 도읍을 세워 천경으로 개칭했다. 역사서에 따르면, 태평군이 남경을 공격하고 점령하기 전후로 남경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당시 장여남(張汝南)은 『금릉성난기략』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이 성이 처음 무너졌을 때 이미 수십만 명이 죽었다.”라고 썼다. 손역염의 『금릉피난기』에도 “성 안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거나 자살한 사람들이 수십만 명 이상 집계되었다.”
당시 청나라의 많은 관료들이 집단 자살을 선택하여 국명의 뜻을 받들었다. 여기에는 포정부사 염순도 도문균, 강안량도 진극양, 강녕지부 위형규, 동지승은, 통판 정문영, 상원지현 유동영, 강녕지현 장행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십만 명의 남경 사람이 살해되거나 자살하여 당시 청나라 조정에 충격을 준 큰 사건이 되었고, 그제서야 증국번(曾國藩)의 상군과 태평천국 10년간의 정벌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경 대재앙이 발생하기 전, 사실 하늘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
청나라에서 《권계록》을 쓴 양공진(梁恭辰)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양장거는 소주에서 강소 포정사로 재직할 때 반증은(潘曾沂) 선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반 선생은 소주 반세은 태부의 장남으로, 가경 21년(1816) 병자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벼슬길에 열정적이지 않고 오로지 선행을 추구했다. 양공진과 반선생의 몇몇 동생들은 동시에 예부 회시에 참가하여 친하게 지냈고, 그래서 반선생의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반(潘) 선생은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광 연간에 그는 종종 자신의 아버지에게 관직을 사임하라고 권했고, 자신은 특히 덕을 쌓고 복을 아끼며 선행을 즐겼다. 어쩌면 이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에게 특별한 예지 기능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함풍 2년(1852년), 그는 소주에 곧 큰 가뭄이 닥칠 것을 예지하고, 일찍이 사람을 불러 여러 곳에서 수십 개의 오랜 우물을 파도록 했다. 그해 가을, 극심한 가뭄으로 강물이 말라붙었을 때, 반 선생이 판 우물이 많은 사람을 구했다. 모두가 그를 신명처럼 받들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지하고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다. 바로 그 해 12월 20일, 반 선생은 목욕 후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1853) 정월 초하루, 반 선생은 그와 마찬가지로 선행을 베푸는 친척 담연생(淡然生)의 꿈에 나타나 세상 사람들이 큰 재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꿈속에서 담연생은 푸른 옷을 입은 사람에 의해 높고 웅장한 전각으로 안내되었다. 전 안의 양쪽에 많은 장부가 쌓여 있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반 선생이었다. 이때 반 선생은 이미 신이 되었을 것이다.
반 선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담연생에게 말했다. “요즘 세속은 사치를 숭상하고 중생은 죄악이 심하니 하늘에 큰 재앙이 내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큰 재앙이 닥칠 줄 모르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담연생은 구출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반 선생은 “마땅히 발원하여 개과천선해야 합니다.”
또 묻기를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합니까.“ 답은 “능력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반성하라고 하시오.”
반선생은 또 설명했다:
“이번 재난은 천지가 진동하고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황제는 매일 걱정과 노고를 하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은 나라의 근심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바로 개과천선하기로 발원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계속해서 방탕하고, 즐거움을 찾고, 자신의 양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선하게 살겠다는 소원을 빌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난만 하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들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 관리가 공책을 들고 반 선생의 책상 위에 놓고 가는 것이 보였다. 반(潘) 선생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 당신에게 알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것은 호북성 희생자 명부로, 인원은 10만 명이 넘습니다. 각 이름 뒤에는 비고가 있습니다. 충신 효자와 의부 열부는 제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호연정기가 하늘과 땅을 감동시켰고, 특별한 꼬리표로 따로 표기하여 사후에 신이 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재난을 겪었으며, 부모를 거역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죄악이 가장 무겁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과에 따라 죽을 운명의 연월일과 다양한 죽음의 방법이 있습니다.”
담연생이 강소(江蘇)성의 생사부를 좀 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반공(潘公)은 “그건 볼 수 없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지 말고, 돌아가서 절대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래서 담연생은 다시 푸른 옷 입은 사람에게 이끌려갔고, 나중에 대문 양쪽에 있는 대련을 보았다.
“땅이 재앙을 막을 수 있으니, 여기에 오면 처음으로 선함이 좋음을 알 수 있다. 문이 열리고 소원을 세우니, 몇 사람들이 기꺼이 되돌릴 것인가.”
가운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생사를 저울질한다.”
담연생이 보고 나서 생각에 잠긴 사이에 청의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서 가시오.”
담연생은 단번에 꿈에서 깼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담연생은 꿈속의 경험을 찬찬히 기억하고 글로 써서 사방에 알렸다. 그해(1853) 2월에 태평군이 남경성에 침입하면서, 이로 인해 강남북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수십만 명에 달했다.
그렇다면, 왜 강소성의 수십만 명이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할까? 분명히 이곳의 풍수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반선생이 전한 메시지처럼, 모두 평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양심이 나쁘고, 배은망덕하고, 불충하고, 간통하고, 음탕한 일을 하고, 생활이 너무 사치스럽고,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재난 안에 있다. 화가 닥치면 후회해도 늦는다.
이것이 현재 중국에서 팬데믹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평소에 죄를 짓고도 하늘의 경고를 듣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하지만 남경의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 중 손(孫) 선생의 경력이 가장 신기했다. 당시 53세였던 손 선생은 이름이 운제(雲際)이며, 집은 남경 취보문 내에 있었다. 그는 평생을 충직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살았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인 2월 3일, 그는 친척 집에 가서 술을 마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피곤해서 성황당 앞에서 잠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성황당 안에 불빛이 반짝이고 많은 사람이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았다.
이상해할 때, 갑자기 한 노인이 달려와서 손 선생을 보고 “잘 오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절에 들어가 신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신명(神明)은 “요 며칠 명부 작성이 급하니 와서 도와주시오.”
손선생은 혼자 생각했다: “여기가 설마 저승인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왔지? 설마 내가 수명을 다한 건가?”
신명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이 부하 관원에게 생사부를 찾아보라고 했다. 손 선생의 어머니가 본래 이번 달에 수명을 다했는데 그녀의 아들이 어머니의 수명을 기원하고, 지극한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6년 동안 연명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손 선생의 수명을 살펴보니, 그의 사망 시기는 아직 멀었다. 하늘이 그의 효심을 칭찬하여 특별히 24년을 더 늘인 것이었다.
그러자 신명은 손 선생에게 “잠시 7일간 우리를 도와주게. 남경 성이 함락되기 3일 전에 너희 가족을 마령관으로 피신시켜라. 7일 동안 당번 공조가 네 육신을 지켜줄 테니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손 선생은 깨어났는데 자신이 여전히 사원 입구에 앉아 있었고 손에 든 등촉이 아직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매우 이상하게 느껴져 급히 집으로 돌아와 노모에게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했고, 가족들에게 자신이 의식을 잃어도 당황할 필요가 없으며, 7일 후에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왜냐하면 신은 분명히 사람을 속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손 선생은 깊이 잠들었고, 그의 영혼은 명부에 도착하여 책자를 만드는 것을 도왔다. 이 7일 동안 그는 어떤 천기를 보았을까? 또 어떤 사람들이 사면을 받아 목숨을 건졌을까. 우리 다음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