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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경고를 듣고 그들은 금릉 대겁에서 살아남았다

류샤오​

【정견망】

(《하늘이 경고했는데 왜 금릉의 수십만 명이 여전히 재난을 피하기 어려운가》-속편) 손 선생이 그날 밤 잠들었을 때, 원신은 몸에서 빠져나와 성황당에 도착했지만, 장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았고 귓가에 판관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명부를 대조하라고 했다. 손 선생은 명부를 열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위에 적힌 것은 모두 어디의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재난을 당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망할 예정이었는지, 등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에는 물과 불로 인한 사망과 아사자가 많았다. 이 중에는 이미 조사하여 상부에 보고하여 재난을 취소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런 사람들은 모두 붉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어떤 선행을 했는지, 어떤 선한 마음으로 면제되었는지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손 선생이 검토 중일 때, 갑자기 여러 곳의 토지신들이 와서 보고를 올리며 각자의 장부를 올리는 것을 보았다. 성황신은 하나하나 살펴보고 지시하고 후, 여러 번 물어본 후 토지신들은 흩어졌다.

성황신은 손 선생에게 말했다:

​”이번 대겁은 국운과 무관하다. 사실 하계에 백성들의 죄업이 너무 중하여 마왕이 도병겁을 일으킨 것이다. 재난을 당하는 명부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동악부 총책방을 주관하는 감찰관 반공潘公이 이 일을 맡아 처리했기 때문에, 특별히 천제에게 부탁하여 살길을 좀 열어주어 세인들에게 기회를 남겨달라고 간청했다, 지금의 재난을 10분의 3으로 줄이고, 각지의 문서를 통지하여 각지 성황에게 조사하라고 했다, 만약 잘못을 고치고 선을 맹세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 재난 장부에 이름을 지울 수 있다. 약관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고치고 등록을 해야한다.”

​손선생이 물었다:

“반공은 소주(蘇州) 출신 아닙니까?”

성황신은 그에게 묻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손 선생은 밤낮으로 부록을 따라 교정했는데, 그 중에는 아는 사람의 이름이 많았는데 전부 기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손 선생은 여전히 재난에서 말소된 사람들의 일을 일부 기억하고 있었다.

소주성 북쪽의 토지신이 보고했다: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진삼경이라는 사람이 담배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때는 밥알과 종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2월 12일에 온 가족이 함께 물난리로 죽을 운명이 되었다. 다행히 그는 효도하는 사람이라 현재 기세가 좋지 않아 그들을 어떻게 피신시킬까 하는 생각에 늘 걱정이 많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신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반공의 꿈을 꾸고 재난을 면했다는 소문을 듣고 온 가족이 재계하고, 그때부터 밥알과 종이에 대해 감히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또한 담배 포에 글자 흔적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쉽게 구박당하기 때문에 동행을 초대하여 신상 앞에서 큰 가방은 점포 이름 두 글자로, 작은 가방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선행을 베풀고 효심이 있는 사람은 성황신이 그 재난을 면제하는 것을 승인하고, 토지신이 2월 10일에 그의 집에 가서 꿈에 나타나 그들이 창파문 밖으로 피난하도록 했다.

​수서문 토지신은 보고한 내용은 이랬다:

​그의 관할 구역 내에 장안재라는 사람이 관청에서 서리를 맡고 있는데 마음이 사납고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 하지만 최근 꿈에서 반공의 감명을 받아 그의 아들 천복을 데리고 관제묘 앞에서 맹세하며, 자비로 《공문수행록》 천 권을 인쇄하여 발송하고, 선행을 많이 베풀어 영원히 살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양가 친척들도 함께 소원을 빌도록 권유했다. 다만 그의 아내 임 씨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살생을 끊으려 하지 않았고, 종종 아들에게 게, 장어를 함께 먹도록 강요했다. 성황신은 순찰하는 신을 시켜 노옹으로 화하여 2월 13일에 장안재 부자를 성 밖으로 데리고 나와 서하산栖霞山으로 피신시켰다. 그의 권유를 들은 양가 친척은 그가 있는 토지신이 상부에 보고한 후에 처리하기로 했다. 아내는 회개할 줄 모르므로 순찰신을 시켜 걷기 어렵게 하고, 걷기를 꺼려하게 하여 성 안에서 배회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진삼경은 손선생의 친척이고, 장안재는 그의 친구였다. 그는 두 가족이 재난을 피할 수 있게 되어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손 선생이 성황당에 도착한 지 나흘째 되는 날, 각 지역의 토지신들의 보고에 따라 성황신은 성 안의 약 백 가구의 재난을 면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토지신이 보호하거나 탁몽하거나 혹은 길을 안내하여 그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나중에 손 선생은 또 다른 보고를 보게 되었는데, 청량산 아래에 있는 고경高敬이라는 몽사蒙師(계몽하는 선생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같은 몽사였던 27명을 문창궁에 초대하여 함께 이전의 아이들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치지 않아서 남의 자제를 망치는 행동을 고치겠다고 맹세했고,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효제와 충신을 배우도록 가르쳐 자신의 공덕을 쌓겠다고 다짐했다. 태만하면 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손 선생도 책을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토지신이 보고했다:

​“문창궁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했으니 곧 이 일을 돌보라는 유지가 내려올 것입니다.”

성황신이 의견을 표시했다:

​”문창궁의 지시가 오면 다시 준비하겠다.”

손 선생은 자신도 앞으로 더욱 부지런히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손 선생은 또 성 밖의 토지신과 순찰신들의 보고를 보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전염병과 재난을 말한 것이었다. 하나는 손 선생의 외가(外家·어머니나 아내의 친정집을 뜻함)였고, 하나는 옛 주인집이라 기억이 생생했다.

​외가는 하관의 한 마을에 살며, 원래부터 극악무도하고 인간성이 전혀 없어 여러 사람을 이끌고 함께 곡식을 거부하며 세금을 체납한 적이 있다. 만약 누구 집이 먼저 낸다면, 그의 집을 허물었다. 하늘이 이미 음사신을 배치하여 7월에 역병을 내리게 하였다. 하늘과 사람의 도리가 전혀 없는 것을 우두머리부터 온 가족이 역병으로 죽게 될 것이었다.

그중 세 사람은 조정의 세금 체납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한 사람은 성이 전錢이고, 한 사람은 주朱씨이며, 한 사람은 왕王씨였다. 비록 농민이지만 모두 이치를 알았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 도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집을 허무는 것이 두렵지 않아, 단호히 같이 하려고 하지 않겠다.”

성황신은 이 세 사람의 심지가 매우 드문 사람이라고 하여, 토지신에게 세 집 문 앞에 각각 “온사면진瘟司免進-역병의 신은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라는 작은 깃발을 꽂게 했다.

또한 연자기 지역에서는 토지신이 보고하기를, “그곳 백성들은 주로 소를 잡고, 새를 잡고, 장어를 잡고, 거북이를 잡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생죄를 짓는 데 익숙합니다. 하늘이 이미 이곳에 역병을 내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중 장대법蔣大法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단지 농사를 성실하게 짓고 살생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종종 다른 사람을 선을 권했습니다. 전염병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하늘에서 그를 위해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주매씨周梅氏라는 부녀가 있는데 남편에게 항상 부자가 될 생각만 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동물을 사냥하자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부의 많고 적음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그녀의 남편 주아옥周阿玉은 아내에게 감화되어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그 부부는 본래 액운 안에 있어야 하나 이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화를 면해야 합니다.”

성황신은 장대법에게 4년의 수명을 늘일 것을 지시하고, 토지신에게 주周씨집에도 “온사면진”이라는 작은 깃발을 꽂게 했으며, 주아옥과 주매씨에게 귀한 아들을 낳게 하고 성장 후 5품 벼슬을 주었다.

이 사람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행과 개과천선 맹세로 재난을 면했다.

일곱째 날이 되자, 손 선생은 노모를 걱정하며 그날 밤 성황신에게 사직을 요청했다. 성황신이 허락하며 알려주기를 “지금 본 것은 한 마디도 누설해서는 안 되며, 대재난 후에는 전파할 수 있다.”

또 당부했다.

“이곳 일은 원래 알려지면 안 되는데 이번 재난은 너무 심각해 좀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돌아가면 겪은 일을 기록하고, 가능한 한 빨리 성을 떠나 피난할 준비를 하라. 금갑신이 너희들을 호송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때 손 선생은 몸이 무겁다고만 느꼈고, 가족의 목소리를 미미하게 들으며 천천히 깨어났다. 그가 어머니를 소리 높여 부르자 벌써부터 그의 주위에 모여든 슬픈 얼굴의 가족들이 기뻐했다. 그는 즉시 붓을 꺼내 7일간의 경험을 적고 잘 간직했다.

하루 후, 온 가족이 성을 떠나 만릉관의 친척 집으로 피난했다. 남경성이 태평군에게 함락된 후에야 손 선생은 기록을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야 모든 것에는 인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악에는 보답이 있다는 것은 정말 헛소리가 아니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