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新月)
【정견망】
고대에는 비옥한 밭과 점포,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가 안락한 생활을 대표했다. 사람들도 이를 부러워했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에게 비유하면 좋은 회사와 점포, 그리고 예금과 같다. 즉 사람들이 바라는 아름다운 생활이다, 겉으로 보면 아름답지만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덧없는 것에 불과하다.
《서유기》에도 비슷한 고험이 있다.
〚그 부인이 말했다.
“저희 집에는 논과 밭이 각각 삼백 경(頃)이 넘고, 산의 과수원도 삼백 경이 넘습니다. 게다가 물소가 천여 마리에 노새와 말은 무리를 이루고 돼지와 양은 셀 수 없이 많답니다. 사방으로 작은 집과 풀밭이 도합 60~70곳이 넘습니다. 집안에는 팔구 년을 먹어도 못다 먹을 쌀과 십 년을 입어도 못다 입을 비단옷이 있고 평생 쓰지 못할 금과 은이 있답니다. 무슨 비단 장막으로 봄을 감춘다거나 금비녀 꽂은 미녀들이 두 줄로 섰다는 말보다 낫지요. 여러분들이 마음을 돌리고 뜻을 바꿔 우리 집 데릴사위가 되신다면 맘껏 영화를 누릴 것이니 고생스레 서쪽으로 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요?”
삼장이 바보처럼 묵묵부답했다.〛
[이상은 《서유기》 제23회에서 인용했다]
이 장면은 사실 당승(唐僧) 사도(師徒) 네 사람에게 안락한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지 고험한 것이다. 당승은 표현이 아주 좋아서 직접 거절한다. 오공과 사승(沙僧)도 아예 관심이 없었다. 오직 팔계만이 좋아했다. 사실 팔계가 고로장(高老莊)에서 누리던 삶이 바로 이런 삶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사람은 모두 이런 안락한 삶을 원한다. 겉으로는 간단하지만 매우 편안하다. 특히 팔계처럼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신이 될 것인지의 문제이고 다시 말해 사람과 신의 구별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관(關)은 전문적으로 팔계를 겨냥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승은 아예 무시했고, 오공과 사승 또한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근대에 이르러 창세주가 인체(人體)를 이용해 우주중생을 구하려 할 때, 인체 중의 원래 생명 대다수는 ‘신(神)’이 전생(轉生)한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왜냐하면 인체가 고생 중에서 죄업을 없앨 수 있고, 동시에 바른 이치(正理)가 없는 중에서 신이 말한 정리(正理)를 지키며, 선량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생명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말후(末後)는 이미 도래했고, 삼계는 천문이 이미 열렸으며, 창세주는 이미 이런 사람을 선택해 구도하고 있다.”(《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옛날 사람들이 이런 안락한 삶을 동경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정법(正法)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모든 것은 정법을 위한 기초를 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른데, 정법이 시작되었고, 대법 사부님께서 미혹을 깨뜨리고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법(法)을 얻기 위해 인간 세상에 전생한 천상의 신(神)이니 마땅히 인간 세상의 이런 이익에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서유기》에서 말하는 것은 일반 수련인의 표준이니 오늘날 대법제자들은 더 잘해야 하고, 대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가늠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도 청성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사명을 지니고 세상에 내려온 신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경제적인 문제 상황 때문에 좀 우울했다. 경제적인 조건이 줄곧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명백해진 것은 이는 인간 세간의 그런 돈이 있고 차가 있는 안락한 삶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배후에는 오히려 아주 강한 사람 마음이 있다. 정법의 끝이 다가오고 있으니 더는 인간 세상의 안락한 삶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신(神)을 향해 나아갈 때가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