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샤오
【정견망】
청나라 말기에 함풍, 동치, 광서 세 왕조를 넘나드는 이문전(李文田)이라는 중신이 있었다. 그는 먼저 함풍 9년(1859년)에 갑과 시험에서 3등을 하여 탐화(探花)를 하여 한림원 편수를 맡았으며, 이후 강소성, 절강성, 사천성에서 향시 주임을 맡았고 강서, 순천 학정에서 제독이 되었다. 이후 남서방(南書房)에 들어가 예부 우시랑, 공부 우시랑 관직을 맡았다. 1894년 청일 전쟁 때 경사단 방위대신이었다. 1895년 경성에서 병사하였으며, 시호는 ‘문성(文誠)’이다.
그는 성심성의껏 관리를 역임한 것 외에도, 서예에 능통하여 역사, 병법, 천문, 지리 등 모든 것을 잘 알았으며, 특히 원나라 역사 및 서북 역사지 연구에 상당히 깊이 관여했다. 그는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몽골사 전문가이자 비문학 명가로 여겨진다.
이문전은 평생 관운이 트였고, 이씨 가문을 부흥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 이열례가 평생 동안 덕을 쌓고 선을 행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공진은 <권계록>에 이 인과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이열례는 광동성 광주부 순덕현 균안상촌 사람으로, 그는 먼저 불산 승평가에 커다란 염색집를 열었다. 그는 인자하고 정직하며, 친절하고 베풀기를 좋아했다. 염색한 옷감은 만약 직원이 잘못 가져갔다가 나중에 물건을 받은 사람이 원래의 옷감을 되찾으려 할 때 그는 즉시 배상했으며, 절대 논쟁하지 않았다.
한 번은 이열례가 구리로 위조한 가짜 은자 열 냥을 잘못 받았다. 그는 즉시 강물에 던지며 말했다: “이걸로 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남이 꽃이 섞이면 당신도 꽃이 섞여서 나가는 게 다반사인데 왜 그렇게 진지해요?”
이열례는 ”사람마다 뜻이 있는데 어떻게 매사에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할 수 있겠습니까? 꽃이 섞여서 나가면 다음에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정말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또 어느 날, 이열례가 일을 보러 나갔다가 저녁에야 집으로 향했다. 이때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는 한 부인이 물가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슬퍼하여 앞으로 나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부인은 천을 팔아서 은자 네 개를 얻었다고 했지만, 방금 보니 구리로 위조된 것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그녀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이열례는 참을 수 없어서 돈주머니에서 진짜 은화를 꺼내 그녀와 교환했다. 부인은 은혜에 천만 감사하고 떠났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이열례는 운이 좋지 않아, 하는 각종 사업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는 진 모씨에게 지분을 투자했고, 두 사람은 공동 사업을 했다. 그는 종종 천모에게 속았다.
이열례는 여러 딸을 낳았지만, 아들이 없었다. 만년에야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이문전이다. 이문전은 어릴 때부터 매우 똑똑하여 “신동”이라고 불렸다. 14세 때, 이열례가 세상을 떠났고, 서당에서 가르치는 허철교 선생의 지원과 도움으로 이문전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17세 때, 이문전은 1등으로 현에 입학하여 공부했고, 이후 거인 시험에 합격하여 24세에 탐화에 급제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선행으로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왜 성실하고 충실한 열례는 평생 선행했지만, 재물을 구하는 데 불리하고 자식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까? 당시 그의 친지들은 모두 그가 고리타분하다고 비웃었고, 그가 이렇게 해도 소용없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열례의 현생에서의 고난은 전생의 업의 부채 상환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이번 생에서 순박한 본성을 유지하고 선을 행하여 결국 하늘의 보답을 받았다: 가업을 부흥시킨 아들. 누가 이것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