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정견망】
남송 시기에 한 때 어느 사신이 북방 금나라에 파견되어 그의 견문을 정리한 《몽달비록》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금나라에 전해지는 동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아래에 저자가 이 예언을 간략히 소개한다.
금나라 금세종 완안옹이 집권한 대정 연간(서기 1161-1189년)에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과 다른 일부 옛 요나라 지역에서는 “타타르가 오고, 타타르가 가면 관가는 갈 곳이 없다”는 동요가 나타났다. 당시 민간에서는 황제를 일반적으로 ‘관가’라고 불렀다. 금나라 황제 완안옹은 이 동요를 듣고 놀라 외쳤다. “미래에는 반드시 몽골족(당시 ‘타타르’라고도 불림)이 우리 금나라의 마음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금세종 완안옹은 이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 몽골족에 대한 잔혹한 억압을 명령하고, 3년마다 북방 초원에 출병하여 소위 ‘멸정(滅丁)’을 벌였는데, 이는 사실상 몽골 부족의 청장년을 학살한 것이다.
남송 사신이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많은 중원 사람들이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송 사신에게 말했다. “이십 년 전, 산둥과 하북 일대의 부유한 집들이 금나라 병사에게 잡혀온 몽골 소년을 작은 노비로 샀습니다. 지금 북방 몽골의 일부 대신들은 당시 금병에게 체포되어 노예로 팔렸습니다.“
몽골 사신은 매년 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만, 국경 밖에서 금나라 관료들에게 공물을 줄 수 있을 뿐, 그들의 입국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몽골 부족들은 금병의 살육과 약탈을 피하기 위해 더 황량한 북쪽 사막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금나라에 대한 원한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 후의 역사는 어떠했나? 금나라의 국력은 날로 쇠퇴하여 더 이상 몽골을 진압할 힘이 없었다. 서기 1206년, 철목진은 사막의 남북을 통일하고 “칭기스칸”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점차 금나라를 토벌하기 시작했다. 금나라 황제는 핍박당하여 수도를 변경(현재 카이펑)으로 옮겼고, 마지막 금황제 완안승린은 환난 속에서 사망했다. 몽골 대군은 기병을 주요 전력으로 삼아 바람처럼 오가며, 금나라 황제를 압박해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수도를 옮겼다. 그러니 진정으로 “타타르가 오고, 타타르가 가니, 관가는 갈 곳이 없다”는 동요가 영험해졌다. 그리고 몽골의 금나라에 대한 분노로 그들이 금을 멸망시켰을 때, 금나라의 황실 귀족들은 모두 잔혹한 보복을 당했다.
이로써 하늘이 정한 결말은 인력이 바꿀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슬프게도, 금나라의 완안옹은 살육과 약탈로 천명을 바꾸려 했으나, 결국 금나라가 멸망할 때 더욱 비참하게 변했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부패와 인민에 대한 잔혹한 대우로 인해 하늘은 이미 그것의 멸망을 결정했으며, 이는 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당수괴 시진핑이 당을 지키려는 집착이 결국 경제와 외교를 더 나쁘게 만들고, 국제 사회 곳곳에서 적을 만들어 국민에게 더 큰 재앙을 초래한 것이 한탄스럽다. 중국 인민은 절대 중국 공산당을 따라갈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을 따라가면 재난은 점점 더 많아지고 커질 것이며, 결국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하늘과 신불에게 도태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멸망은 바꿀 수 없는 하늘의 뜻이며, 하늘이 정한 결말이다. 평안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중국 공산당, 청년단, 소선대 조직을 탈퇴하고 중국 공산당과 단칼에 단절해야 하며, 이로써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출처: 남송 《몽달비록蒙鞑备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9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