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羽化)
【정견망】
사람의 심리(心理) 공간이란 좁은 의미에서는 정신(精神) 공간이며, 그 용량(容量) 역시 가변적이다. 물질세계의 사물은 단지 운반체 역할을 할 뿐, 아무런 내함(內涵 안에 담긴 함의)이 없다. 진정한 내함은 정신 공간의 것으로 이 속에는 지극히 큰 에너지가 있다. 한 구절의 명언(名言)은 종이에 썼든, 돌에 새겼든, 책에 인쇄했든, 아니면 공예품에 새겨졌든 모두 그것의 내함을 바꿀 수 없다. 이는 한편의 문장, 한 폭의 그림, 한 곡의 노래, 하나의 작품 등에 모두 해당한다. 이렇게 내함을 지닌 것들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데 다시 말해 정신 공간에 존재한다.
정신 공간과 심리 공간은 공명[諧振 역주: 해진(諧振)은 직역하면 주파수가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우리 말로는 공명(共鳴)이나 공진(共振)에 해당한다]이나 동화(同化)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사람의 심리 공간이 외부 정신 공간과 공명하면, 심리 공간은 정신 공간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사람은 곧 많은 힘을 얻었다고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편의 소설은 작가의 정신 공간을 반영하기에, 작품을 통해 작가의 심리 상태, 성격, 특성 등을 충분히 분석할 수 있다. 이 정신 공간은 다른 공간에서는 하나의 장(場 필드) 공간이나 주파수 공간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장이 강할수록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커진다. 이쪽 공간에서 드러나는 것은 줄거리가 당신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사실, 당신의 심리 공간은 소설에서 형성된 장(場)과 완벽하게 공명하는데, 이는 전자기학의 공명 원리와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사람의 심리 공간에 마침 이 장(場)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장의 에너지가 당신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만약 당신의 심리 공간에 이런 필요성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도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공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어떤 공간도 진공(真空)일 수는 없는데, 정신 공간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정신 공간(즉, 심리 공간)이 변화할 수 있다. 한 가지 물질을 내보내면 다른 한 가지 물질이 채워질 수 있다. 사람의 심리 공간은 매우 복잡하며, 이 공간에는 온갖 종류의 물질이 다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노란색 물건에 왜 관심을 가질까? 어떤 사람들은 도박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명예를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특정 분야의 연구에 집중하는 등등. 이는 모두 매 사람마다 심리 공간의 물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목숨처럼 여기며, 그의 심리 공간은 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복권만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어떤 사람은 돈이나 명리(名利)에는 무관심하지만, 감정에는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데, 이는 그의 심리 공간 속에서 감정의 물질이 상대적으로 진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기복은 모두 심리 공간 속의 다양한 물질과 외부의 객관적 조건을 반영한 다. 바로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풍부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온갖 모순이 나타나는 인류사회를 구성했고 희로애락,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 등이 모두 이로 인해 생겨난다.
심리 공간의 용량은 변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소한 일로 심지(心地)가 아주 편협해져서 심리 공간의 용량이 매우 작아지게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일에 영감을 받아 갑자기 마음이 활연히 열리기도 하는데, 사실 그들의 심리 공간의 용량이 크게 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심리 공간은 외부 조건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특히 청소년기에 변화가 더 심하다.
참음[忍]은 심리 공간의 에너지를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고인(古人)은 흔히 “매사에 ‘참을 인(忍)’을 중시하라”고 했다. 참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자의 형상으로 보자면, 마치 심장에 칼날이 있는 것과 같아, 분명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만약 참아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심리 공간의 용량을 확대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재상의 뱃속에는 배도 저을 수 있다[宰相肚裏能撐船]”고 말한다. 즉 재상이 되려면 흉금이 아주 커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에 대해 말하자면 이런 일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진선인(真善忍) 대법은 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진감(震撼)할 수 있는가? 이는 우주의 근본 대법이며, 사람의 심전(心田)을 적셔주는 심법(心法)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나서 “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던 것이다”라고 흥분해서 말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야말로 내가 평생 추구하던 것이다”라고 말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심한 고질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심령의 위로를 받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심성이 승화되었는가…
《미국 서부법회 설법》에 이런 문답이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 우주의 구조를 말씀하시는 것이 더욱더 커짐에 따라 저의 시야와 흉금도 마치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목적은……?
사부: 당신이 다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나는 당신의 용량을 확대하고 있는바 당신들의 일체도 모두 따라서 확대되고, 증가한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에 이런 문답이 있다.
“제자: 어떻게 하면 마음의 용량을 키울 수 있는지요?
사부: 당신이 수련 중에서 자연히 키울 수 있는데 이는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을 많이 내려놓을수록 흉금은 더욱 넓어지며 일에 대한 도량도 더욱 커진다.”
리훙쯔 대사님은 이렇게 지적하셨다.
“나는 인류의 도덕이 아주 심하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음을 보았다. 만약 더 이렇게 내려간다면 사람은 더욱 큰 위험에 직면한다. 만약 하늘의 신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면 그때야말로 정말 위험하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행위가 있다. 사람의 외부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사람이 아니다. 그 원숭이도 사람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만약 사람이 사람의 도덕규범이 없고 사람의 도덕표준이 없으면, 신은 사람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은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한다. 사람은 신이 만들었고 역시 신이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정통 문화는 신의 뜻에 의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의 규범을 벗어나면 신은 당신을 도태시킨다. 내가 보니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장단에 춤추듯, 남들이 하는 대로 하여 일체를 망친다. 자신을 망치고 사회도 망친다. 특히 인류의 도덕을 무너뜨린다. 현재 가장 뚜렷한 현상은 문화의 변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성정을 악(惡)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그 때문에 사회상에 무슨 마피아요, 마약 흡입과 마약 판매, 성 문란이나 동성연애, 인류가 심한 거짓말 속에 휩싸여 있는 등등 아주 많은 것들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마피아의 두목이 숭배 대상이 되었다. 이런 수많은 일들을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정상인가? 인류의 관념은 모두 얼마나 큰 변화가 발생했는가. 이런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각 분야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모두 아주 큰 마성(魔性)이 존재한다. 내가 이 법을 전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을 이 험악한 데서 이탈시켜, 정말로 수련 중에서 제도하자는 것이다.”(《싱가포르 불학회 설립식 설법》)
“하지만 이 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있고 사람을 선(善)해지도록 가르쳐 진정으로 사람의 心性(씬씽)에서부터, 본질적으로 당신을 개변시킬 수 있다. 그럼 많은 사람들, 그가 수련하지는 않지만 이 법을 알기만 하면 곧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쁜 사람이 되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해(傷害)가 되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박수), 그는 곧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럼 다시 말해서 정법이 일단 전해지면 그는 필연적으로 사회에 대해 유익한 것이다.”(《싱가포르 불학회 설립식 설법》)
“이번에 내가 이 법(法)을 전하는 것은 중생들이 모두 법(法)을 얻기 쉬운 시기(時機)를 선택해 전했으며, 모든 종교가 말기에 이르고 인류가 가장 좋지 못할 때를 선택해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세인은 마음속에 사람의 규범이 없고, 또한 진심으로 신(神)을 믿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나는 이때를 선택해 법(法)을 전했다. 나는 방금 설법 중에서 내가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내가 사회에 대해 책임진다고 했는데 사실은 또 신(神)을 위해 책임지는 것으로 어떠한 종교도 간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때의 종교는 그들의 신(神)마저도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때에 이르러 인심이 모두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 그가 아직도 불성선근(佛性善根)이 있으며 단지 인류의 부패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의 사람은 그래도 구도할 수 있다. 거기다 법(法)이 크기에 사람을 구도하는 능력 역시 크다.”(《휴스턴 법회 설법》)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얼마나 많은 법률을 제정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람을 규제하고, 제약하며, 단속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의 선한 마음을 깨우쳐 인류사회로 하여금 진정으로 고상(高尙)해지게 하는지에 있다. 사람에 대한 어떠한 외재적인 제약이든 모두 인심을 제약할 수 없다. 즉 그것은 근본을 다스리지 못한다.”(《미국 서부법회 설법》)
〈진상을 알라〉
천고의 방랑을 거쳐
속세에서 길 잃고 몸부림치네
사람을 유혹하는 현실 속에서
오래된 서약을 잊어버렸네
중생이 기다려오던 대법이 먹칠 당하는데
어찌하여 시류에 따라 파도를 밀듯 하는가
신이 그물의 한쪽을 열어놓았으니
진상은 어둠을 깨뜨릴 수 있는 열쇠
더는 배회하며 허송세월 하지 말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
거짓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진상을 알아야 하나니
그것은 그대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부탁이라네
(《홍음 3》)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374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