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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세 가지 선행을 해서 윤계선의 막료로 등용된 정경도

유효(劉曉)

【정견망】

대청(大淸)의 대신 증국번(曾國藩)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으며, 이홍장(李鴻章)과 좌종당(左宗棠)은 그가 발굴한 인재들로 그의 추천으로 관직에 들어갔고, 후에 모두 나라의 중추적인 인재가 되었다. 증국번은 “글을 못 읽어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청조 옹정(雍正)부터 건륭(乾隆) 시대의 중신(重臣)인 윤계선(尹繼善) 역시 사람을 잘 알아본 인물이었다.

윤계선은 일찍이 운남(雲南), 천섬(川陝), 양강(兩江) 총독을 역임했으며, 후에 문화전(文華殿) 대학사(大學士) 지위에 올랐다. 시문(詩文)에도 능해 원매(袁枚) 등 문인들과 교류가 많았다. 양강 총독 재임 시절, 윤계선의 부서에 정경도(程鏡濤)라는 참모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매우 사이가 좋았다.

흥미로운 것은 정경섭은 그가 직접 발탁한 인물이었다. 윤계선이 막 강남에 부임했을 때, 사복을 입고 관할 군현(郡縣)들을 시찰하러 다녔다. 어느 날, 그는 가정현(嘉定縣 지금의 상해시 가정구) 성황묘 영원(靈苑)에 이르렀다.

당시 봄 나들이 철이라 관광객이 북적였다. 윤계선은 돌 위에 쪼그려 앉아 지나가는 남녀들을 냉정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자 몸을 비켜 피하고, 여자가 머리핀을 잃어버리자 주워서 급히 그 남편을 찾아 돌려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여인의 남편이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름을 물었지만, 그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여 인사한 뒤 떠나버렸다.

윤계선은 급히 그 남자를 따라가 그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선생이 방금 하신 행동에는 세 가지 미덕(美德)이 있습니다.

첫째, 눈으로 아름다운 여색을 좇지 않으셨고,

둘째, 주운 물건을 숨기지 않으셨으며,

셋째, 좋은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옆에서 몰래 지켜보았기에, 당신이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님을 압니다. 제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선생처럼 숭고(崇高)한 품성을 지닌 분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후, 윤계선은 그와 벗으로 사귈 뜻을 밝혔고, 후에 그를 총독부로 불러 자신의 막료(幕僚)로 삼았다. 이는 그가 인품이 좋을 뿐만 아니라 학문도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남자가 바로 정경도였다.

양강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윤계선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얻었는데, 그가 조정에 올린 모든 상소문은 정경도가 작성하고 다듬은 것이었다. 황제도 윤계선을 매우 예우했고 그를 매우 총애했다.

나중에 윤계선이 문화전 대학사 직함으로 강서(江西)와 강남(江南)을 지켰다. 십여 년 동안 윤계선은 정경도에게 늘 후한 예로 대했는데, 이는 그가 정 선생의 인품과 학식을 깊이 알고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기용한 윤계선 역시 이를 통해 자신의 공업을 세울 수 있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