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정견망】
귀신이 나온다고 하면 종종 민가에서 망령이 나타나는 사건을 말하지만, 사실 고대 궁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그 사건은 당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궁전인 대명궁(大明宫)에서 발생했다. 대명궁은 당나라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 건축군이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궁전 건축군이었다. 당 고종부터 차례로 17명의 당나라 황제가 대명궁에서 조정을 처리했으며, 그 기간은 240여 년에 달했다.
당나라 대부(戴孚)라는 신하의 기록에 따르면, 당 고종 시기에 대명궁 선정전(宣政殿)이 막 지어졌을 때, 매일 밤 궁인들이 “수십 명이 말을 타는 대전 좌우를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대전의 숙직자들이 모두 그 모습을 보았으며, 의복과 말이 매우 깨끗했다”고 한다. 이 기이한 사건은 십여 일 동안 지속되었다. 그래서 당 고종은 술사 유문노에게 다른 공간의 생명(귀신)과 소통하여 무슨 일인지 분명히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유문노는 소통을 시작했고,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원래 한나라 초왕 유무(楚王 劉戊)의 태자였습니다. 죽은 후 이곳에 묻혔고, 악귀가 아닙니다.” 유문노는 《한서》를 열람하고는 말했다. 《한서》에는 초왕 등 일곱 왕이 모반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에서는 오초의 난 또는 “칠국의 난”이라고 부른다. 반란을 일으킨 왕들이 모두 실패하고 한나라 군대에 의해 온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초나라 태자는 장안에서 죽었는가? 상대방이 대답했다: 당시 아버지, 초왕이 반란에 참여했을 때, 나는 마침 도성 장안에 있었습니다.
황제께서는 내가 반란에 휘말리지 않은 것을 불쌍히 여겨 몰래 나를 살려두고 비밀리에 궁에 숨겨주셨습니다. 나중에 병으로 죽자, 황제는 나를 불쌍히 여겨 옥어(玉魚) 한 쌍을 부장하도록 하사했는데, 장지는 지금의 정전正殿의 동북쪽 모퉁이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일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유문노가 물었다: 과거의 일은 천 년이 지났는데, 왜 우리 당나라 천자의 궁궐 평안을 방해하는가? 상대방은 ”여기가 나의 옛 집입니다” 뜻밖에도 오늘 천자의 궁전 범위 내에 속하게 되어, 나의 망령이 왕래하는데 매우 제한되어 이렇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를 높은 곳, 넓은 지대에 이장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부디 저에게 부장된 옥어를 가져가지 말아주세요”라고 답했다.
유문노는 이야기 한 결과를 당 고종에게 보고했고, 당 고종은 이장을 명령했다. 그래서 정전 북동쪽 모퉁이에서 과연 고분과 관을 찾았다. 관은 이미 썩었지만, 이사할 때 과연 옥어 한 쌍을 찾았다. 옥어는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당 고종은 비로소 유문노의 말을 완전히 믿고 새로운 관으로 교체하여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 황궁 밖 어딘가에 매장하라고 명령했다. 옥어도 새 묘지에 부장했다.
고대 황궁의 건물 수리 절차는 엄격하여, 대명궁 선정전의 북동쪽 모퉁이에 고의로 고분을 위조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며, 어떠한 이익에도 이끌리지 않았다. 이 유령 사건은 당나라 관리 대부(戴孚)가 지은 《광이기》에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관료이자 진사 대부가 자기나라의 제왕을 내세워 함부로 귀신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가 맡았던 관직 중 하나가 ‘교서랑(校書郎)’으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많은 도서와 기록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필자가 여러분께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진실한 생명이 육체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임을 충분히 보여준다. 사람의 죽음은 결코 등불이 꺼지는 것 같지 않다. 유물론, 무신론은 모두 잘못된 가설이다. 유신론이야말로 진실이다.
자료출처: 당나라 대부 《광이기·제5권·유문노》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0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