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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연심 (10): 본심귀위(本心歸位)

요연(了緣)

【정견망】

큰 바다를 떠돌며 정도(正道)를 찾으니
천 산 만 강 건너 티끌 세상 건너네
사람 마음 간파하면 요마(妖魔)는 끝장이라
근원을 거슬러 올라 본진(本真)으로 돌아가세.

漂洋過海尋正道
萬水千山渡紅塵
看破人心妖魔盡
追根溯源返本真

여러 원숭이들이 슬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짝이 넓은 원숭이 한 마리가 뛰쳐나와 외쳤다.

“대왕께서 이처럼 먼 앞날을 염려하신다면 진정 도심(道心)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동물들 가운데 오직 세 종류만이 염왕(閻王) 노인의 관할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것은 바로 부처와 신선 그리고 신성(神聖)으로 오랜 동굴이나 선산(仙山)에 있습니다.”

미후왕(獼猴王)이 이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내일 당장 나는 너희들을 떠나 산을 내려가 세상 끝까지 행각하며 여행할 것이다. 반드시 이 셋을 방문해 한 가지 불로장생을 배워 영원히 염왕의 난을 피할 것이다.”

아! 이 한 마디 말에 단번에 윤회의 그물에서 뛰쳐나와 제천대성(齊天大聖)으로 성취되게 했다.

여기서 등짝이 넓은 원숭이가 어떻게 고금(古今)에 통달해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지는 말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미후왕의 각성이 정식으로 취경(取經)이란 대업(大業)의 서막을 열었다는 것이다. 오공은 비록 남자 제1 조연이지만 주인공인 당승(唐僧)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금선자(金蟬子)는 아직 부처님 앞에서 졸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주원신은 속세에 들어가는데 육신(肉身)이란 이 운반체에 들어가 삼계 내 물질에 의해 덮여 육신 분자로 조성된 세포로 층층 묻혀 있다. 미혹 속에 봉인되어 신성(神性)이 묻히고 한 가닥 순정(純淨)한 마음이 차원이 떨어져 내려와 세속에서 사람 마음이 된다.

사람 마음은 주로 육신(肉身)이 지닌 욕망에 이끌려 표현되는데, 물질에 대한 육신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라 착각하고, 물질 욕망에 대한 만족을 자신의 만족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욕망은 마성과 통하는 무저동(無底洞 바닥 없는 동굴)이고, 모든 만족이란 다 일시적이다. 마치 사람이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만 배가 부르면 용(龍) 고기를 보아도 맛을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프면, 더 많은 음식을 추구하고, 만족을 얻지 못하면 욕망이 더 강렬해져서 마성이 크게 폭발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육강식하며 결과적으로 끊없이 추락하고 미혹이 더 심해져 생생세세 업력을 지니고 전생하면서 영성이 더 깊이 매몰되고 업력이 구르고 구르는 일종의 악순환을 형성해 생사를 투철히 깨달아 불성을 각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원신이 된 미후왕은 속세에 들어가지 않기에 청성(淸醒)을 지킬 수 있으며, 다른 공간에서 주원신이 나쁜 일을 덜하도록 지켜보면서 그가 하루빨리 각성해 장차 수련하도록 돕고 아울러 장래 수련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 육신은 태어날 때부터 이 공간의 물질로 가득 채워져야만, 성장해서 성인이 될 수 있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물질의 자극을 받는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사람의 정상적인 추구라고 믿게 된다. 심지어 욕망을 자신이란 여겨, 욕망을 만족시키면 행복하고,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불행이라 여기면서 인생의 의미를 물질적인 요구로 제한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죄악이 있고, 온갖 범죄가 여기서부터 생겨난다. 하지만 물질이 채우는 것은 육신일 뿐 심령(心靈)은 아니다. 물욕이 사람에게 만들어 주는 것은 다 가상(假像)일뿐 진아(真我)의 요구가 아니다. 가상은 사람의 눈을 미혹시킬 수 있고, 사람의 눈은 마음을 눈멀게[心瞎] 하며, 자아를 잃고 초심을 망각하게 만든다.

마음[心]은 우주의 축소판으로 우주를 주재하는 생명의 본원(本源)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얼마나 크게 덮으면 우주는 곧 그만큼 크다. 사람이 신(神)을 믿지 않으면 마음은 우주와 연계가 끊어져, 사람이 귀착할 곳이 없어지며, 본원의 영혼을 잃고 영원히 유랑하게 된다.

우리가 애초 자신의 과위(果位)를 포기하고 신(神)의 광환을 내려놓고 창세주(創世主)를 따라 내려올 때를 생각해 보면, 높은 층차에서 낮은 층차로 걸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신(神)의 에너지와 지혜는 층층 극한까지 압축되어 봉인되었다. 층층의 봉인이 쌓여 삼계에 도달했을 때 영혼의 에너지는 이미 봉인되어 얼마 남지 않았고, 다만 층층마다 영혼에 대응하는 에너지 봉인만 남겨, 장차 정법 수련을 통해 정념정행(正念正行)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할 때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층층의 봉인을 타파하고 신우주의 에너지와 연계할 수 있는 기제(機制)가 되었다.

우리가 사부님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가 조사정법(助師正法) 한다면 소원을 내보낸 순간, 신(神)의 기제는 정법(正法)의 반(盤)위에 고정되었다. 이는 창세주께서 우리를 위해 남겨주신 돌아가는 길이자, 정법이 반드시 성공하는 보장이다. 수련이 잘된 일면이 사부님에 의해 단번에 격리되는 이유는 봉인이 열릴 때 에너지의 충격파가 너무 커서 지구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련을 통해 더 높은 경지로 각오(覺悟)할 때 깨뜨려 여는 것은 단지 원신(元神)이 지닌 고만큼의 원시 에너지가 아니라, 새로 닦아 나온 창세(創世)의 에너지를 사용해 원래 에너지를 동화하는 동시에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대법 수련은 개창(開創)으로 수련 중에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신우주(新宇宙)를 개창하는 과정이다. 당신이 되돌아갈 층차는 원래의 기초 층차보다 무수한 배 순정(純淨)하며, 구우주의 한계를 철저히 타파해서, 신우주의 특성에 따라 에너지를 다시 조합한 것으로, 수련해 낸 것은 원용불파(圓容不破)하고 불괴불멸(不壞不滅)의 경지이니 이렇게 해야 원만이라 할 수 있다. 신우주의 순정한 에너지로 구우주의 봉인을 터뜨려 여는 동시에 미묘하고 수승(殊勝)한 신세계를 개창하는데 그 에너지는 전혀 같은 것이 아니다.

매번 한 경지를 승화하는 것이 모두 이러한데 층층 구(舊) 봉인(封印)을 터뜨려 열고 신우주의 순정한 아름다움을 개창한다. 그 장면은 인간 세상의 그 문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수승한 장관이며 필자의 수준으로는 근본적으로 표현한 방법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은 반드시 성취되고 보장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수련이 잘된 일면이 격리된 것이 바로 가장 큰 보장이다. 사람 마음은 너무 변덕스럽고 정서도 불안한 데다 또 구세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정념(正念)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교란과 박해를 일으킬 틈을 엿보고 있다. 호랑이도 졸릴 때가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이 혼탁한 속세에서 아직 닦아야 할 사람 마음이 있다. 수련이 잘된 그 일면은 에너지가 거대해서 사람 마음으로 함부로 동원할 수 있다면, 그러면 일념(一念)이 바르지 않아도 하늘과 땅을 뒤집을 수 있다. 그럼 지구가 아무리 여러 개라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수련해서 되돌아갈 수 있는 이런 장소를 위해 사부님께서 삼계를 만드셨고 인류를 만드셨으며 아주 오래고 먼 이전부터 준비하신 것임에랴.

삼계(三界)는 마치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연단로(煉丹爐)와 같으니,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이곳에서 생명 중 모든 층차의 불순물[雜質]을 제련해 정화한 후 되돌아가야 하니 당연히 수련 장소를 파괴할 수 없다. 또 사람의 일면이 잘못을 저질러 비록 층차가 떨어지더라도 철저한 훼멸에 이르지 않고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고 대법 사부님도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직 본원(本源)이 아직 존재하기만 한다면 당신을 구할 방법이 있다. 하지만 잘 수련된 신(神)의 일면마저 따라서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정말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수련해 낸 신체(神體 신의 몸)마저 모두 훼멸되고 세계마저 붕괴되어 철저히 훼멸되는데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러므로 신(神)이 자신의 모습에 따라 사람을 만드실 때 이미 모든 것을 고려하셨다. 우리는 신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신의 한 세트 운영 체계를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은 원신(元神)이 태에 들어갈 때 얼마 남지 않은 고만한 에너지조차 감당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같은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신은 에너지의 존재이고, 육신은 물질 껍데기인데, 어떻게 원신을 육신 속에 집어넣을 것인가는 4차원 에너지를 3차원 물질 속에 압축하는 것이다. 이 어려움은 마치 우주를 계란 속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생명의 두 번째 체계인 경락(經絡)이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중의(中醫)에서 말하는 맥락(脈絡)은 인체 중에 해부학적 위치가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필경 너무 앞선 것이라 소위 과학기술이 일정한 수준까지 발전해야만 그나마 조금 엿볼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다림이 2000년 이상 걸렸지만 먼저 주입된 무신론 사설(邪說)이 중생을 독해시켜 정법에 어려움을 조성했다.

바로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덕(威德)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중의에서 말하는 경락은 바로 영혼 에너지를 지탱할 수 있는 기제다. 비록 층층 봉인되어 있긴 하지만, 봉인을 풀 수 있는 계기(契機)는 모두 마음속에 압축되어 있다. 또한 심성의 제고야말로 층층 에너지 기제를 여는 스위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수련에서 닦는 것은 바로 선(善)을 향한 이 마음이며, 심성이 제고함에 따라 봉인을 열 수 있는데, 에너지를 각성하고 정신(正神)의 능력을 다시 획득할 수 있다.

창세주의 자비와 지혜는 불가능이란 없으며 영혼과 육신을 완벽하게 통합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우리에게 두 세트의 생명 체계를 주셨다. 한 세트는 후천적인 물질을 채워 신진대사를 통해 생기(生機)를 유지할 수 있다. 다른 한 세트는 신(神)의 계통으로 우주의 운행 기제와 대응하는데, 수련하지 않으면 우주 에너지와 연결할 수 없고, 그저 자신이 지닌 고만한 선천의 에너지만 소모할 뿐이다. 그러므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이치가 있다. 얻은 물질이 많을수록 소모되는 선천 에너지도 많아지는데,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은 일종의 교환이니 활발한 생기(生機)로 교환한 것으로, 덕으로 돈을 교환하는 것이다. 잠시 누릴 수는 있지만 잃는 것은 만고(萬古)의 기연(機緣)이다.

이뿐만 아니라, 창세주께서는 인간 세상에서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해 돌아갈 수 있게, 우주 대법을 인간의 문자로 간단명료하게 《전법륜》 한 권에 압축하셨으니, 이것이 어찌 우주를 계란 속에 넣는 것처럼 방대함에 그치겠는가! 매 글자의 배후마다 모두 대응하는 무량한 불도신(佛道神)의 생명 체계가 있다. 법을 공부할 때는 사실 주파수를 맞추는 것으로, 마음을 써서 조절해, 그 한 층 심성 표준에 부합하면 곧 쉽게 그 한 층의 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다. 주파수가 공진하면 우리에게 그 한 층의 법(法)을 펼쳐낼 수 있는데 이를 개오(開悟)라 한다. 글자마다 행간마다 모두 신세계로 가는 대문(大門)이다. 그러므로 《전법륜》은 최후의 일각까지 늘 우리 수련을 지도할 수 있으니 법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생을 일깨우도록 우리에게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다져주셨고, 도덕 수양으로 신(神)의 기제를 보충하고 유지하게 하셨다. 오직 내심(內心)의 선량을 지킬 수만 있다면 주원신(主元神)이 육신을 주도해 육신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할 수 있다. 비록 육안으로는 육신의 모습만 볼 수 있을 뿐 영혼을 볼 수는 없지만 영혼에도 모습이 있다. 영혼의 모습은 자비, 이지, 지혜의 펼쳐짐인데, 다시 말해 흔히 정신문화의 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옛 성현(聖賢)의 책을 읽으면 시공을 초월해 옛 성현들과 대화할 수 있고, 설사 육신이 죽은 지 천 년이 지나더라도, 정신이 전승(傳承)될 수 있고, 문자를 통해 후인들에게 영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마치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타자하는 것처럼, 독자들은 내가 타자하는 모습은 볼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행간(行間)에서 내 심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글자마다 모두 나의 정신 차원을 표현하는데 이것이 가장 진정한 나다. 그러므로 션윈(神韻)이 세인들에게 연기한 오천 년 신전문화는 중생의 영혼이 세상에 남긴 진면목이니, 본래 면목을 되찾고 싶다면 먼저 전통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사람이 본심(本心)으로 되돌아가는 첫걸음이다.

고인의 의복, 음식, 거주, 교통이나 말이나 행동을 보면 모두 전통문화 속에 규범되어 있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이념을 견지하고 있으며, 하늘을 공경하고 덕(德)을 중시하는 초심(初心)을 체현하면서 창세주께서 법을 전해 구도해 주시길 기다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수련이란 어렵다고 말하면 어렵고 쉽다고 하면 쉬운데, 대도(大道)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지극히 쉽고, 경지가 높아질수록 더 간단하다. 바로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하면 된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이르면 더욱 복잡해지는데, 비록 정법 말후(末後)에 법을 아주 명백히 말씀하셨으니, 많은 경우 다 깨닫지 못할지라도,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제대로 하면 곧 된다. 그러나 이런저런 구실로 집념(執念)을 지연하면 우리가 정진하는 발걸음을 방해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성 문제이고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문제다.

법에서 우주의 주(主) 주파수는 진선인(真善忍)임을 깨달았는데, 오직 아무런 조건 없이 안으로 찾기만 하면 이 마음이 늘 진선인을 향해 바로잡힐 것이며 매분 매초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과정 중에 있는데 수련에서 성취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수련 중의 많은 문제, 장애, 마난, 지체, 지연 등 정진하지 못하는 표현은 깊이 뿌리를 파보면 사실 모두 믿음에 대한 망설임[遲疑]이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