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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와 기공의 인연

고락

【정견망】

중국 역사에서 소동파는 단연 최고의 ‘대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문체를 높이 평가하며, 그가 ‘먹는 일’에 쏟은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또한 그와 그의 친구인 불인(佛印)의 일화를 더 잘 알고 있지만, 역사 속의 소동파는 기공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공으로 각질을 치료하다

구양수(欧阳修)는 소동파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구양수는 평생 신선, 부처를 믿지 않고 운기하며 연마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한번은 그가 족창을 앓았는데, 여러 가지 치료에도 효과가 없어 매우 고민했다. 서문진(徐問眞)이라는 도사(道士) 친구가 기공 수련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기(氣)를 발에서 머리로 흘려보내는 방법이었다. 구양수는 수련하는데 아파서 견딜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 방법에 따라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그가 단 3일 동안 기공을 연마한 후 족창이 나았다.

안타깝게도 병이 낫자마자 구양수는 연마를 그만두었다. 소동파는 구양수가 꾸준히 수련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소동파는 황주로 좌천되었다. 한번은 황강현령 주효손이 갑자기 심한 발병(발이 붓는 병)에 걸렸을 때 소동파는 구양수에게서 들은 기공 요령을 주현령에게 알렸고 현령은 이 법에 따라 단련하여 7일 만에 발병을 치료하였다.

화를 내어 병을 치료하는 체험

소동파는 기를 연마하고 도를 닦는 사람은 화를 내어 남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방식을 포기(布气)라고 부른다. 소동파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원래 병약했다. 한번은 소동파가 도사 이약에게 아들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을 치료할 때, 도사는 아들과 마주 앉아 화를 냈고, 그의 아들은 뱃속이 마치 아침해에 비친 것처럼 매우 따뜻하고 편안함을 느꼈다. 이 도사가 이처럼 특별한 공능을 가진 것은 화산에서 한 고인의 전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진인을 만나 전도하다

소동파가 백학의 새 집에 있을 때 등 도사가 한밤중에 와서 문을 두드렸고, 덩치 큰 남자도 동행했는데, 이 사람은 광랑(야자같은 나무)잎을 걸치고 손에는 술 한 말을 들고 있었는데, 표정과 기질이 여동빈처럼 위엄이 넘쳤다. 그는 소동파를 초대하여 함께 가지고 있는 ‘진일주(眞一酒)’를 마셨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각각 몇 잔씩 술을 마신 후, 다시 술기운에 맞춰 장단을 맞추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후 여동빈처럼 생긴 남자가 소매 속에서 책을 꺼내 소동파에게 주었는데, 이 책은 『진일법』과 『수양구사』로, 책 말미에 ‘구하선인 이정 씀’라고 적혀 있었다.

후에 소동파는 법에 따라 수련하여 책에 실린 ‘진일주’를 양조해 냈다. 소성 2년 5월 망일(서기 1095년), 소동파의 양조가 완성되자, 나부도사 등수안을 청하여 북두진군에게 제사를 올렸다. 아마 이 ‘진일주’도 수련을 돕는 신선의 것이다.

맺는 말

지난 세기 80~90년대에 중국 본토에서는 기공 수련이 절정에 달했으며, 수억 명이 자발적으로 기공 수련 대열에 합류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은 기공의 매우 신비로운 점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천 년 전의 소동파도 기공 애호가였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東坡志林》、《仇池筆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