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吳友)
【정견망】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사존께선 설법에서 알려주셨다.
“마야인(瑪雅人)의 문화를 많은 사람이 모두 지금의 멕시코 사람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멕시코 사람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그들은 다만 스페인과 토착인(土著人)의 혼혈아이다. 마야문화는 지난번 문명 역사 시기의 것으로서 그 인류는 이미 멕시코에서 훼멸되었고 오직 소수 사람만 도망쳐 벗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마야문화와 몽골인(蒙古人)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러한 것을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 인류는 그의 역사적 연원(淵源)을 모르고 있는데, 백인 역시 마찬가지다. 저번 한 차례 대홍수(大洪水) 중에, 저번 한 차례 인류 문명은 대홍수로 훼멸되었다. 지구 위의 해발 2,000m 이하 고산(高山)은 모두 침수되었으며 오직 2,000m 이상에 사는 사람만 살아남았다. 노아 방주(方舟)의 일은 정말이다. 서양문화는 이번 차례 대홍수로 완전히 훼멸되었다. 동양문화 역시 훼멸에 처하였다. 그러나 히말라야 산과 곤륜산 일대 그 산 위에 살던 사람, 농촌 사람은 다행히 재난을 면했는데, 곤륜산 속에 살고 있던 중국 사람은 살아남았다. 그때에 동양문화는 아주 발달하였기 때문에 이전의 하도(河圖)ㆍ낙서(洛書)ㆍ역경(易經)ㆍ태극(太極)ㆍ팔괘(八卦) 등등을 계승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후세사람 누구누구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가 다시 고쳐 내놓은 것으로 전혀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모두 사전문화(史前文化)이다. 중국에 비록 이러한 것들이 남겨졌지만, 역사의 발전 중에서 이러한 것에 그친 것만이 아니다. 고대에 남겨 놓은 것이 더욱 많았으나 유전 중에 갈수록 적어졌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내포가 아주 깊으며 역사의 연원(淵源)이 아주 깊은 이런 민족인바, 바로 중국이다. 백인의 문화는 그 한 차례 대홍수에 전부 침수된 후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당시 유럽 대륙의 변두리에 또 한 대륙이 있었는데 역시 침수되었다. 가장 발달한 곳이었으나 침수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백인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떠한 문명도 없는 이런 상태에서 다시 발전한 것으로서, 바로 그의 지금 이 과학이다.”(《뉴욕법회설법》)
“그럼 이러한 옛 문명 속에는 지금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많은 것들이 있고, 한편으로 현대문화와는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서방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중국 이곳에는 많은 신비한 것과 현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인 자신도 알고 있다. 중국 이곳의 많은 옛 문화를 아직도 현대인은 인식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은 듣기도 하고 보기도 했지만 역시 해석하지 못하며 또한 이런 옛것들을 내놓아 사람들에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 당시 살아남은 중국인의 조상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일부분 상고(上古) 문화가 남게 되었다.
과거 상고(上古)시기 중국 종족의 중심지역은 현재의 황하유역이 아니라 신장(新疆) 이 일대였다. 이 민족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 역시 이 일대에서였다. 왜냐하면 쿤룬산(崑崙山)이 이 일대 가까이에 있어 주위의 지표면이 비교적 높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 한 차례 홍수는 수위(水高)가 2천 미터에 달했으며 지구 전반이 수몰되게 했다. 많은 사람이 홍수가 넘쳐날 때 쿤룬산으로 대피하여 살아남았고 상고시기의 일부 문화를 남겼다. 예를 들면 중국의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잘 알지 못하는 하도(河圖)ㆍ낙서(洛書)ㆍ태극(太極)ㆍ선천팔괘(先天八卦) 등등과 또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부 옛 기공(氣功)들이다.”(《각지 설법 1》〈싱가포르 불학회설립식 설법〉)
“서방 사회에서 출토된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도 만자(卍字) 도형을 발견했다. 사실, 대홍수(大洪水) 이전의 상고(上古)시대에는, 그들 역시 부처를 신봉(信奉)했다. 대홍수가 났을 때 일부 서아시아와 히말라야 산의 서남쪽 일대에 살던 고대 그리스 인종(人種)이 살아남았는데, 바로 지금의 백인종 인도인이며, 그 당시에는 바라문(婆羅門)이라고 불렀다. 사실, 바라문교가 처음에 신봉한 것은 부처였고, 상고(上古)시대 그리스인이 신봉한 부처의 계승이었으며 그 당시 그들은 부처를 신(神)이라 불렀다.”(《정진요지—불법과 불교》)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 들어오기 전에 수많은 조소 작품의 풍격은 모두 전 한 시기(다시 말해서 대홍수 이전)의 문화와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불교가 중국(中土)에 전해 들어온 후와는 완전히 같지 않은 예술풍격을 갖고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번 인류문명을 대표하는 동양의 조소 작품은 마땅히 불교의 부처ㆍ보살과 신을 표현하는 것을 대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기(早期) 작품의 조상(造像)수법은 인도에서 전해온 것이며, 아울러 인도의 조상수법은 또 이번 한 시기 인도의 불교 이전의, 부처를 믿던 시기로부터 남겨져 내려온 것이다. 아울러 전번 한 시기의 인도인들이 믿던 부처는 또 유럽의 고대 그리스인들 중, 부처를 믿는 사람들이 인도로 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더욱 조기의 유럽인들 중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부처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부처를 믿은 것은 아니었으며 다른 신을 믿는 사람도 있었다. 인도에 전해 들어온 후 부처의 형상과 조상(造像) 수법도 인도로 전해 들어왔다. 그러므로 중국의 불상을 만드는 수법의 초기는 기본적으로 고대 그리스 식이었다.”(《음악과 미술창작회 설법》 〈미술창작연구회설법〉)
“여러분 알다시피, 내가 이전에 말한 바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정법에 관련이 있는 모든 생명을 포함하여 모두 간단하지 않다. 모두 정법을 위해 왔고 정법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정법을 위해 육성된 것으로 모든 것이 우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장래에 당신들은 알게 될 것이다. 미혹 속의 인류사회에서, 사람들은 역사과정 중에서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는 사회형식을 거치면서 역사가 자연적인 발전과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은 이런 것이 아니며, 매 시기는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내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사람의 사상은, 처음에 신이 만든 사람은 자연과 사회에 대응할 능력이 없었으며 생활능력 역시 아주 약했다. 갓 만들어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천둥이 치면 겁이 나서 산굴 속으로 숨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줄 모르며, 어찌된 영문인지도 몰랐다. 역사의 과정 중에서 사람은 점차적으로 자연환경에 적응하게 되었고, 그리고 신도 끊임없이 사람에게 다종다양한 문화를 주었으며, 동시에 신 역시 이런 문화가 사람에게 어떤 상태를 가져올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실천하는 중에서 최후에 그것을 확정했다. 이것은 극히 긴 세월을 거쳐서 확정한 다음 마지막 인류사상행위를 다지는 데 적합한 문화, 인류문화의 정화를 택하여, 마지막 인류의 5천 년에 이르러 그것을 내놓아 사람이 연출하게 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중국의 5천년 문명으로서, 오래고 먼 역사의 과정에서 다지고 총괄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어떠한 사유방식을 사용하고 어떠한 사유구조를 형성하며 일에 봉착하면 어떻게 문제를 생각하고 어떤 사상방법으로 문제를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친 것이다.
사람의 사상은 직접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역사상에 위(魏), 촉(蜀), 오(吳) 삼국 시대가 있었다. 삼국의 역사는 어떤 문화특징을 다졌는가? 바로 의(義)이다. 그 기간의 역사를 통해 사람은 무엇이 의(義)인지 알게 되었고, 의(義)의 표현과 내포를 알게 되었다. 남송 시대의 악비는 무엇을 다졌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바로 충(忠)이다. 충이란 무엇이고 충의 개념은 무엇이며 그 표현형식은 어떠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역사과정을 거쳐 사람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쳤다. 인류의 이 5천년의 전반 과정을 거쳐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을 다져 놓아 최후에 이르러 인류는 완벽하고 정통적인 사상과정에서 신이 만족할 만한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며, 역사의 최후 시각에 마지막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각지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이 구세력이 이러한 일을 배치하는데 사람 여기에서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되었겠는가? 두 개의 지구 시간이다. 내가 과거에 말한 적이 있는데, 대법이 인간세상에서 전해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수련생들이 곧 나에게 내가 어느 때에 전했는지 묻는데 바로 먼젓번 지구에서 전했다. 무엇 때문인가? 구세력이 마지막에 그것들이 배치한 갱신(更新)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먼젓번 지구에서 이번 지구를 위한 실험을 했는데, 이는 미리 한 차례 실험을 하여 문제가 생기거나 빗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실험을 해야 했는가? 과거에 지구 이곳에는 사람과 같은 이런 생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늘 외계인을 말하는가? 바로 지구 이곳의 생명은, 과거에 지구를 얼마나 많이 갱신했든, 여기의 주요 생명은 모두 외계인과 같은 그러한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매 한 시기 같지는 않았으나 모두 사람의 형상이 없었다.
역사상 신(神)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모양을 모방하여 사람을 만들었는가? 이는 수련계에서도 수수께끼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바로 이곳에서 법을 전함에, 법을 듣는 중생은 반드시 법을 들을 자격이 있는 형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무리 동물이 와서 법을 듣게 하는 것은 대법(大法)에 대한 모독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대법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어느 신(神)이 이 생물을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면, 이는 신을 모독하는 것과 같기에 그 모든 신들은 모두 그를 제거해 버릴 것이다. 정법을 위해서, 신은 자신의 모습을 모방하여 지상(地上)의 사람을 만들었다. 동양 사람은 동양인 이런 형상의 신이 창조한 것이고, 서양 사람은 서양인 형상의 신이 창조한 것이며, 또 흑인 형상의 신이 흑인을 창조하였고 다른 인종(人種) 역시 다른 신이 창조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창조한 그러한 신을 주(主)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은 백분의 구십이 모두 고층에서 온 생명으로서, 다수는 층차가 아주 높은바, 단지 신(神)이 당초에 만든 인피(人皮)를 이용했을 뿐, 그들 본신(本身)은 사람의 생명을 창조한 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때 내가 첫 번째 지구에서 법을 전할 때는, 그렇게 큰 법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단지 실험을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한 법은 단지 法輪世界(파룬쓰제)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기에 그 한 시기 제도된 중생은 모두 法輪世界(파룬쓰제)에 있다. 그 지구는 줄곧 그것들로 하여금 최후의 단계까지 존재하게 하였고 과학기술은 상당히 발달하였는데, 달은 그때 올려 보낸 것이다. 그러나 공업의 발달로 인하여 당시의 공기, 물, 토양, 식물과 사람의 식품 일체에 모두 변이(變異)가 생겼으며, 최후에는 사람마저 모두 기형이 되었고 지구상의 에너지 자원도 다 소모되었으며, 이 한 시기의 사람 또한 소멸되었다.
이번 시기 지구의 시작은 1억 년 전부터다. 우리 여기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은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35억 년에서 45억 년입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매 한 시기의 지구는 모두 1억 년이었고 먼젓번 지구 역시 1억 년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법륜(轉法輪)』에서 당신들에게 말하기를, 그 지구상의 문물(文物)은 몇억 년, 심지어 20억 년 전 것도 있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단지 사람들에게 사전문명(史前文明)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알려주었는데, 사람은 여기까지만 알 수 있다. 이 1억 년의 역사 중에서만 하더라도 인류는 아주 많은 사전(史前)의 문화를 창조하였다. 지구 이 자리에 위치했던 이전의 그러한 별(星球) 역시 여러 차례 해체와 재조합을 거쳤는데, 우주 중에는 많은 별들이 해체된 후 공중에서 떠다니며 먼지와 작은 성체(星體)를 형성한다. 방대한 천체 중에서 별들은 끊임없이 해체되고 끊임없이 새롭게 조합된다. 그것의 해체는 바로 폭발이다. 지구 역시 끊임없이 이전의 지구를 폭파하여 다음 하나의 지구를 새롭게 조합해 왔으며, 하나가 폭파되면 하나를 조합했다. 태공(太空) 중에는 아주 많은 먼지가 있는데 어떤 것은 아주 크다. 어떤 것은 마치 큰 돌덩이와 같고, 어떤 것은 몇 평방킬로미터인 것이 있으며, 어떤 것은 심지어 몇 백 평방킬로미터나 되는 것도 있다. 각각의 별에는 모두 문명이 있었으며 이전의 지구에도 문명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폭발로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많은 큰 물체 표면에 과거 생물의 문명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다시 지구를 만들 때 이러한 우주의 먼지를 함께 모아 새로운 지구를 만들기 때문에 이전의 지구 혹은 외계 별 위의 문물, 문명유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현재 지질학자와 역사학자로 놓고 말하면, 내가 오늘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이 지구상의 물질이 도대체 어떤 연대인지 연구해 내지 못한다. 이 지구는 내가 방금 말했다시피 1억 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현재까지 딱 1억 년이며, 또한 그것 이전에 여기에 있었던 지구와 같은 연령에 도달했다. 물론 인류는 이 1억 년 중에서 몇 번의 문명을 거쳤고 도덕의 부패로 신(神)에 의해 여러 차례 훼멸되었으며, 지금의 인류문명은 구세력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진정한 인류문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법을 전하지 않을 때 직접 인간의 인피(人皮)를 만들었으며, 신(神)이 아래에 와서 법을 듣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긴 역사 이전에 사람을 만들어야 했는가?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신이 사람을 만들 때 그 속에 자신의 사상의식은 만들어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하나의 신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이 신의 형상을 가졌으나 신은 사람을 같은 유(類)로 간주하지 않는다. 사람의 행위는 신의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초의 사람은 어떠한 모양이었는가? 사람의 이 신체 구조는 신이 만들었기에 이 공간 속에서는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인체체계인 바, 그 외계 생명이 보면 모두 감탄한다! 물론 또 사람의 삼혼칠백(三魂七魄)을 포함한 완전한 인체를 구성한다. 삼혼칠백을 포함하지 않으면 단지 인체의 표면에 지나지 않는 인피(人皮)일 뿐이다. 인피와 사람이 생각하는 피부의 개념은 같지 않다. 신(神)이 말하는 인피는 골격과 혈액, 내장의 일체 표면의 인체구조를 포함하여 분자입자로 조합된 가장 표면의 인체 모두, 다시 말해서 미시적으로 볼 때 표면 분자세포로 구성된 사람, 해부 시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한 세트 표면구조 일체이다. 사람이 말하는 피부가 아니다.
그러나 우주, 인간 세상의 일체와 생명표현의 일체에 대한 인식능력이 없는 사람은 대천세계(大千世界) 변화에 대한 그 어떠한 감당능력이 없고, 역시 그 어떠한 형태를 이룬 사상이 없으며, 우주, 지구, 자연계에 대한 인식능력과 대처능력이 없다. 그의 행동거지는 어떻겠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가 기쁜 일을 만나면, 그는 나무에 기어 올라가 크게 웃으면서 멈추지 못한다. 웃는 것도 시작하면 아주 무서운데 절제하지 못한다. 그가 만약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면 그는 지하에 들어가 며칠이고 헤어나지 못한다. 그가 화나는 일을 만나면 결과를 생각하지도 않고 발산한다. 그는 희(喜), 노(怒), 애(哀), 낙(樂)으로 인하여 죽어버릴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러한 사람이 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초에 만들어낸 사람은 바로 이랬고 그 어떠한 내포도 없으며, 그 어떠한 감당능력이 없고, 이 공간의 일체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완전한 사유개념이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곧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면서 사람의 사상이 점차적으로 풍부해지고, 그의 내포와 감당능력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바로 이 1억 년 중에서 이 일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표현은 일에 부딪혀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고 냉정하며, 이지적으로 사고하고, 심지어 창조능력도 있다. 사람이 이러한 사상, 정상적인 사유상태를 구비할 수 있는 이것은 기나긴 역사의 세월 속에서 신(神)이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 과정은 줄곧 5천 년 이전까지 연속되었다.
약 5천 년의 중국의 반신문화(半神文化), 이 기나긴 시간을 거쳐 사람이 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규범화하기 시작했다. 사람 공간의 이치는 비록 반대로 된 것이지만 우주의 대법(大法)은 바르다. 내가 설법할 때, 삼계 이상의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듣는 법리의 내포, 문자, 표현형식은 같지 않지만 법리는 관통되는 것이다. 승화한 경지가 조성한 것은 같지 않지만 어긋난 것은 아니다. 내가 만약 사람 여기에서 한 가지를 말하고 천상에서도 또 다른 한 가지를 말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정법 중에서 사람 여기에서 말한 법은 반드시 우주 전반에 대응해야 하는데, 내가 설법할 때 층층의 나 역시 모두 설법하고 있으며, 층층의 중생도 모두 법을 듣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법을 들을 때,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상을 어떻게 창조하고 규범 지을 것인가? 법을 어떻게 말하려면, 거기에 맞게 인류의 문화와 인간의 이 사상을 육성해야 한다. 전 세계의 사람이 모두 무엇이 德(더)이며, 무엇이 믿음(信)이고, 무엇이 선(善)이며, 무엇이 악(惡)이고, 좋고 나쁨인지를 알고 있는데,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중국 그곳에서의 표현은 더욱 구체적이고 내포도 더욱 깊어야 했다. 왜냐하면 법은 바로 그곳에서 전해야 하고 일도 그곳에서 해야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진정으로 법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문화를 육성해야 했다. 내가 전에 당신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역사상 줄곧 아주 많은 대법제자들과 연(緣)을 맺었다. 연(緣)을 맺은 것은 단지 하나의 표면적인 목적이며, 연을 맺은 후 대법제자와 나는 함께 인류문명과 대법이 요구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짐을 져야 했다. 왜냐하면 역사상의 한 평범하고 평범한 속인이 대법을 전하기 위해 육성한 인류역사에 무슨 문명, 유적, 학설을 남긴다면, 그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상 남겨진 일체 문화는 모두 우리 대법제자들이 만들었는데, 물론 사부가 당신들을 데리고서다. 인류의 역사는 마치 한 막(幕)의 연극과 같은 것으로서, 당신들은 국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영웅인물(英雄人物)에서 강도에 이르기까지,(웃음) 문인(文人), 명인(名人)에서 영웅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신들이 한 것이다. 여러분은 웃지 말라! 강도 배역을 맡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오늘 설법할 때 사람은 강도가 무엇인지 모르며, 강도의 행위는 어떠하고 사상 감정은 어떠한지, 강도는 어떤 형상인지 모를 것이다. 법(法) 속에는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알 것이다. 『삼국연의』는 하나의 ‘의(義)’를 말하였다. 한 조대(朝代)를 지나면서 세 개의 세력이 서로 겨루는 중에서 충분히 ‘의(義)’의 내포를 표현해 냈다. 더욱이 한 조대(朝代)라는 이렇게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면서 이 ‘의(義)’의 심층문화를 표현해 냈지만, 오늘날 법을 전하게 되어서야 인류는 비로소 ‘의(義)’에 대해 깊은 인식이 있게 되었는데, 무엇이 의(義)이고, 의(義)의 표면 뜻과 내포에서 파생된 상호관계와 심층에 반영된 뜻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단지 이 글자의 표면 뜻만 알 것이 아니라 내포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 물론 『삼국연의』 중에서는 사람의 지모(智謀) 등의 내포도 표현하였다.
그 남송(南宋)의 악비(岳飛)는 ‘충(忠)’을 표현하였다. 무엇이 ‘충(忠)’인지 당신은 단지 말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 조대(朝代)의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사람은 진정으로 그것의 진정한 내포와 심층관계에 이르기까지의 행위를 이해하게 되었다.
역사상으로 또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있었으며, 또 공자(孔子)의 중용사상(中庸思想)이 제기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등이 있었다. 석가모니, 노자(老子), 예수의 출현은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무엇이 바른 믿음(正信)이고, 수련(修煉)이며, 무엇이 불(佛), 도(道), 신(神)인지 이 일체를 진정하게 인식시켰다. 역사적으로는 오늘날 인류의 사상을 풍부하게 했고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법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인류의 일체 역사과정에서 모두 이러한 기초를 다졌다. 다시 말해서 대법을 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의 문화를 육성했는바, 법은 인류의 문화에 부합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 문화의 산물은 더욱 아니다. 이는 바로 이 5천 년 중에서 우리가 한 것이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가장 형상적으로 말해서 인류사회는 마치 한 막(幕)의 연극과 같다. 일조일대(一朝一代)씩, 그것은 마치 막이 열리면 한 조대(朝代)가 공연을 시작하고 그 조대가 끝나면 막이 닫히는 것과 같다. 막이 다시 열리면 조대가 바뀐다. 일조일대, 일조일대 이렇게 매번 지나면서 연(緣)을 이어 역사를 남기고 인류가 필요로 하는 문화를 창조하였는바 한 막 한 막씩 표현하였다. 무엇 때문에 중국 이 지방에서는 조(朝)라 하는데 중국 이외의 기타 지역에서는 모두 국가(國家)라고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의 수령(首領)을 왕(王)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황제(皇帝)라고 하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은 한낱 용어와 문화상의 차이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대법을 위해 창조된 것이고 대법은 이 극의 주요 줄거리(主線)이며 중생의 존재는 일체가 모두 이 주요 줄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은 모두 극 중의 사소한 모순과 충돌에 골몰해 미혹되었고 극의 주제를 잊어버렸으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이 극의 무대가 바로 중국이다.
일조일대(一朝一代)씩, 매 한 조(朝)의 사람은 모두 한 조(朝)의 천인(天人)으로서 멀고 먼 천체에서 온 대표인바, 그곳의 무수한 중생들을 대표해 여기에 와서 연(緣)을 맺어 정법 중에서 그러한 중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한 조(朝)에서 연(緣)을 맺는 중에 그들이 가져온 문화를 남겨놓았다. 연(緣)을 맺은 후에는, 다음 한 세(世)에 다른 지역에 전생하여 대법이 전해지는 그 날을 기다렸다. 매 한 조는 모두 이러하였고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은 다 중국에서 전생(轉生)했다. 각 나라의 사람을 포함하여, 최근 법이 전해지기 시작한 후 또 내려온 대량의 상계(上界) 생명을 제외한 역사상의 각 나라 사람들은 모두 중국에서 전생한 적이 있다.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당신은 지구에서 우선 중국인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제일 먼저 그곳에서 전생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실제로 중국의 국가형식과 내용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말한 것이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실 중국문화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각 조대(朝代) 중에서 남긴 것으로 연(緣)을 맺고는 곧 다른 지역으로 가 전생했다. 예를 들면 현재의 미국인은 대명조인(大明朝人)이었다. 현재의 미국인은 도(道)를 아주 좋아하는데 아직도 그 시기의 관념이 남아서 나타난 것이다. 명조인(明朝人)의 도(道)가 최정상에 달했을 때, 일부 성시(城市)에는 거의 집집마다 화로(爐)를 설치하였다. 영국은 대당(大唐)이었고, 프랑스는 대청(大淸)이었으며, 이탈리아는 원(元)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는 하(夏)였고, 러시아는 주(周)였으며, 스웨덴은 북송(北宋)이었고, 대만은 남송(南宋)이었으며, 일본은 수(隋)였다. 당시 각 조(朝)의 사람들이 중국을 떠나 환생해 간 곳은 현재의 국가가 아직 없었을 때이고, 여전히 황폐한 지역에 속했다. 다수가 모두 전 세계 각지로 흩어져 전생했고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자리에 돌아왔다. 이 한 조대의 사람들은 여기에 왔고 그 한 조대의 사람들은 저기로 갔는데 바로 이렇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어느 것이 중국인가? 누가 중국인인가? 중국의 진정한 의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존재하는가? 국가라 부르고 있으므로 지금은 조대(朝代)도 없지 않은가? 실은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후의 한 막을 연출해야 할 때, 법을 전해야 할 때, 나와 연(緣)을 맺은 적이 있는 전 세계의 중생, 혹은 법 얻을 가능성이 가장 큰 그러한 사람들과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나와서 부면(負面)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이 모두 중국으로 되돌아왔다. 법을 얻든 파괴를 하든, 모두 이 법을 위해 왔고, 법을 위해 태어났으며, 법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 모두 다 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인은 가장 복잡한데 그것은 정법시기를 위해 온 전 세계의 정부(正負) 생명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면(正面)적인 역할을 하든, 부면(負面)적인 역할을 하든, 정법은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중생이 정법을 정확하게 대하기만 하면 곧 도태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만약 법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곧 구도할 것이다. 과거에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민주(民主)라는 것이 세상에 나타났는가?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 한 민족, 그 한 천체 중에서 온 왕(王)이 모두 중국으로 와 전생(轉生)했기 때문인데, 누가 그곳에서 다시 왕이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최후 구세력 중의 그러한 고층생명들은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출하게 하자. 당선되더라도 왕이라고 부르지 말고 대통령(總統)이라고 부르게 하자.”라고 결정했다. 당선이 되어도 왕처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고, 좋지 않으면 그를 욕할 수도 있으며, 더 안 되면 탄핵하여 다시 뽑는다. 이는 위에서 민주를 배치한 진정한 원인이었다. 또 기타 요소도 있다. 사람 여기에서의 표현 역시 사람 이 한 층의 표현 이치가 있는데, 사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고 있다. 때문에 중국 그곳 사람들, 그들을 볼품없다고만 보지 말라. 이는 근대에 이르러 업력이 커져서 조성된 것이며 이 허울(皮)은 비록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지만 그 속의 내포는 아주 크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곳의 중생이 훼멸되면 얼마나 무서운가. 그들이 대표하는 것이든, 그들 자신이 대응하는 공간이든 중생이든 모두 중대한 생명군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한 마디 보충하겠다. 나는 방금 이 지구의 역사는 1억 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체적으로 이 지구상의 1억 년은 두 개의 큰 시기로 나누는데 5천만 년이 한 시기이다. 전 5천만 년은 대인(大人), 소인(小人), 중인(中人)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기였다. 대인(大人)은 평균 5미터였고, 중인(中人)은 현재 우리 오늘날의 인류인데 평균 2미터가 되지 않았고, 소인(小人)은 불과 몇 치(寸)였다. 당시 신(神)이 사람을 만들 때 어찌하여 동시에 이 세 종류 사람을 만들었는가? 이는 이 세 종류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지구상에서 최후의 그 일보까지 생존하고, 법을 얻는 데 적합한지 실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5천만 년의 과정 중에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세계에 대한 사람의 인식능력을 키우고, 한편으로는 어느 종류의 사람을 남길 것인지 확정지어 왔다. 최후에 대인(大人)은, 그의 신체가 크므로 지구에서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단축되고,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아지며, 대인의 물질자원 소모와 지구자원의 비례도 조화롭지 않아 적합하지 못함을 발견했다. 나중에 발견하였는데 소인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지구 전반은 모두 삼림(森林)으로 뒤덮여 토지 한 뙈기도 없었는데, 그가 개간하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는바, 만약 오늘날의 이러한 문명을 창조하게 한다면 그들로서는 아주 어려웠다. 동시에 지상(地上)의 시간도 소인으로서는 지나치게 길었고, 거리도 지나치게 길었으며, 소인이 대양(大洋)을 횡단하려면 그것은 정말 너무 어려웠으므로 소인도 적합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어 대인과 소인은 도태되었다. 한 번에 도태된 것이 아니며 5천만 년 이후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역사에서 도태되었다. 대인이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은 2세기 전으로, 다시 말하여 2백여 년 전 대인은 비로소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소인은 7, 80년 전까지도 본 사람이 있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모두 없어진 것이 아니고 일부는 다른 공간으로 갔고 일부는 지하로 갔다. 그들은 도태인(淘汰人)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과 접촉하지 않는다.
그럼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두 개의 역사적인 수수께끼를 밝히고자 한다. 인류는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해석하지 못한다. 그렇게 큰 돌을 사람이 어떻게 운반했을까? 5미터 크기의 몇 사람이 운반하면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의 큰 돌을 옮기는 것과 같다. 5미터 크기의 사람이 그 피라미드를 만드는 것은 마치 우리들이 오늘날 큰 빌딩을 짓는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어찌하여 공룡과 같은 그렇게 큰 동물이 있었는가? 사실 그것은 대인(大人)에게 준비해 준 것이다. 5미터 크기의 사람이 공룡 등 대형동물을 보는 것은 우리 현재의 사람이 소를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부동(不同)한 사람에게는 부동한 물종(物種)을 준비해 주어야 한다. 지구상의 일체 물건은 모두 사람을 위해 만들었고 사람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말이 나온 김에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동물은 절대로 사람과 동등할 수 없으므로 절대로 동등하게 대할 수 없다. 당신은 그것을 慈悲(츠뻬이)하게 대할 수 있고 그것을 애호할 수는 있으나 절대로 사람과 같이 대할 수는 없다.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동물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사람을 모욕하고 신(神)을 모독하는 것과 같다. 역사의 진실은 머지않아 사람들에게 펼쳐질 것이며 그때가 되면 인류는 진정으로 우주, 생명, 물질에 대해 바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어떤 사람은 고고학에서, 그는 그 사람의 골격을 공룡 골격에 맞추어 놓고 있으며 피라미드의 건축에 대해서도 현재의 편협한 인식으로 추리하고 사고한다. 사실 지금 물질세계에 대한 과학의 인식 대다수는 틀린 것이며 위치를 정하는 기점마저 틀린 것이다. 그 만유인력학설조차도 틀린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 기회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북미순회설법》)
“다시 말해서 대법제자의 수련 중에서 어떠한 수련 이론과 방식, 외형을 취하는지는 모두 아주 중요한데, 특히 사부가 어떤 방식을 채용하는지이다. 역사상 그들은 일찍이 대법이 인류사회 여기에서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세력은 오래고 오랜 배치를 해왔다. 사실 단지 구세력만이 이런 배치를 한 것이 아니며, 이 방대한 우주, 내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든지 간에, 나는 모두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야기한다. 이 물질이 어떻게 승화하든지, 어떤 경지에 도달하든지, 이는 다만 하나의 거대한 체계일 뿐이다. 일반적인 정황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모두 이 체계이다. 사실 이러한 우주 체계, 이런 거대한 체계는 그 속의 중생으로 말한다면 끝없이 넓은 것이다. 한 거대한 신이 보기에도 모두 이처럼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아득하고 더욱 방대한 천체 중에서, 사실 또 한 알의 먼지에 불과하다. 더욱 아득하고 무수한 이런 천체, 아득하고 가닿을 수 없는, 신마저도 갈 수 없는 곳에 여전히 더욱 방대한 천체가 있는데, 그들의 생명은 어떠한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층차를 나누고 생명은 어떻게 제고되는가? 다른 체계의 신은 모두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이해하지도 못한다. 내가 이야기한 이런 것들은 같지 않은 우주의 신들에 대해 말한다 해도 모두 불가사의한 일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인류사회의 많은 것들도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 인류사회의 업종은 정말 형형색색이고 눈이 어지러울 지경인데, 이 현대사회는 마치 매우 번성하여 무엇이든 다 있는 것 같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왜 고대사회에서는 이런 정황이 출현하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방금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주의 아득히 먼 천체의 매우 많은 생명도 모두 그들의 것을 사람 여기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방금 이야기했다. 만일 사부가 부처나 도를 선택한다면 그 외형은 모두 아주 중요하다. 사실 어찌 이런 것뿐이겠는가? 수련의 길, 인류에게 이 역사를 만들어 낸 각종 수련의 방식, 사실 많은 민족이 존재하는 방식이라든가 각종 문화의 특징은 모두 아득히 먼 천체의 그런 신들이 한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모두 대법에 그들의 길을 펼쳐 보인 것이다. 뜻인즉 리훙쯔(李洪志)가 무엇을 선택하고자 하면 다 여기에 있어야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내가 몇 가지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겠다. 여러분은 모두 회화(繪畫)를 알고 있으며, 또한 음악ㆍ조각을 알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을 포함하여 이것은 모두 같지 않은 인류생활의 각종 기능으로, 마치 인류사회를 번영시키기 위하여 사람 자신이 창조해낸 것 같지만 사실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바로 수련이며, 그것은 바로 아득히 먼 체계 속 생명 경지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그런 경지의 제고 역시 이런 기능에 대한 생명의 인식이 법과 함께 하나로 용합되고, 인식 중의 제고 역시 끝없이 위를 향하여 올라가기 때문이다. 고층공간의 구성은 입자가 더욱 작으며, 소리의 장(場) 역시 미시적인 물질입자로 구성되었기에 음악은 더욱 듣기 좋고, 색깔은 더욱 아름답다. 일체 물질은 모두 고층의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물질로, 저층공간의 생명은 찾을 수 없다. 작품과 기능은 더욱 뛰어나고 더욱 신기하며, 생명의 제고는 경지와 기능의 공동제고이며, 부동한 경지 중에서 자기 인식의 제고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인의 개념으로 말한다면, 당신이 좋은 작품을 창작해 낼 수 있음은 당신 사람이 좋기 때문이거나 무슨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신이 보건대 당신 사람이 좋으므로 비로소 당신에게 지혜를 준 것이며, 비로소 당신으로 하여금 작품을 창작해 내게 한 것이다. (박수) 인류사회는 신이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것 속에는 모두 법의 요소가 있는데,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그러한 방식을 채용하라고 한다면 수련할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마찬가지로 수련할 수 있지만, 단지 내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길을 걸으라고 하지 않았을 뿐이며, 그것은 부동한 천체 부동한 생명이 취한 방식이다.
나는 정법 중에서 또 한 가지 정황을 발견하였다. 어떤 정황인가? 상당히 아득하고 먼 하나의 거대한 천체 중에서 그러한 생명의 상승은 당신들이 있는 천체 체계 중의 생명의 인식과는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그들은 기능으로 하는데, 기능으로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이런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더욱 높은 한 층의 신도 낮은 층에서 물건을 발명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어느 정도 창조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그들 경지의 제고 중에 용해했다. 그의 경지가 제고될 수 있다면 그로 하여금 지혜가 열리게 하고, 그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성취ㆍ창조ㆍ상승이 있게 하는데, 상승한 후에 그는 자신은 자신의 도덕이 제고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얻은 것이며, 자신의 경지가 높아졌기 때문에 비로소 이런 제고가 있게 된 것임을 끊임없이 인식할 수 있다. 하나의 비할 바 없이 거대한 전반 체계는 모두 이처럼 일종 기능의 상승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이 우주 체계 특히 현대 중생들이 인식할 수 있는 수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홍대(洪大)한 궁체(穹體), 그것은 사실 굉장히 방대하고 복잡하며 질서가 있는 것으로, 인류 앞에 펼쳐진 것과 인류가 알 수 있는 것, 심지어 인류에게 준 그러한 기능들이나 각 방면의 문화, 인류생존의 같지 않은 방식을 사람은 마치 인류사회의 번영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일부 학문이나, 같지 않은 기능을 사람은 그것을 다만 인류 자신이 사회의 실천 중에서 자신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자신의 문화를 창조했다고 여길 뿐이다. 어느 것도 아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했으며, 아무것도 창조해내지 못한다. 만약 우주 중에 없다면 사람은 아예 창조해내지 못한다. 현재 사회상의 가장 부패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 같지 않은 신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곧바로 상생상극이기 때문인데,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하여금 또 나쁜 것이 있도록 하며, 그 나쁜 것을 가져오는 것 역시 그것을 나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이념과 차이가 너무나 크고, 생명 생존 방식의 차이가 너무나 크며, 심지어 일부는 바른 방식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것들은 사람 여기에 오면 더욱 부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정(情)이 있는 것으로, 정의 작용 하에서 사람은 이런 것들을 더욱 저하 시키며, 심지어 대단히 더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원래 거기와 비교하면 훨씬 나쁜데, 이는 인류 자신이 조성한 것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여러분은 『전법륜(轉法輪)』에 불가는 8만 4천 법문이 있고 도가는 3천 6백 법문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 역시 하나의 아주 작은 층차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일정한 층차의 인식일 뿐만 아니라, 단지 사람이 인식하도록 말해준 것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부처 위에 부처가 있고, 하늘 위에 하늘이 있으며, 신(神) 위에 또 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우주는 도대체 얼마나 큰가? 그야말로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 내가 정법 중에서 오늘날까지 한 것은 비록 이미 최후의 일을 해결하고 있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요소도 모두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생명이며, 우주 내의 고층생명에 대해 말하더라도 모두 거대하기 비할 바 없고 아득하기가 끝이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그럼 다시 말해서 우주는 이처럼 많은 거대한 생명이 있고, 그 중 그러한 신들은 모두 자신이 성취한 방식이 있으며, 모두 우주에 대한 자신의 인식으로 형성한 법리(法理)가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사람의 언어로 형용한 것이다. 또한, 우주 내에는 아직도 몇 천만의 같지 않은 거대한 체계들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런 거대한 체계들 역시 모두 전체 우주 최후의 정법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이 거대한 체계 그들이 모두 신이라면, 그들은 ‘당신들 부처가 어찌하여 우리보다 낫단 말인가? 불법(佛法)으로 우주 대법을 전하고 불법(佛法)으로 전체 우주를 바로잡는다는데, 우리들의 체계는 당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당신들 부처가 어떻게 나 여기의 법을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들 그 체계의 신이 어떻게 나의 이 체계를 관할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그 정법방식이 나의 이 체계에 합당한가? 생명존재에 대한 인식방식에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인식을 하고, 상호 인식하는 것에 있어 많은 부분을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데, 당신들의 표현을 우리 여기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맞지도 않는데, 어찌 우리의 법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지 않겠는가. 우주는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방대한바, 생명의 존재 방식, 관념, 생명에 대한 인식에는 모두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은 사람이 아주 좋다고 느끼지만 어떤 신은 ‘인간들은 길을 걸으며 두 팔을 이리저리 젓는데, 얼마나 꼴불견인가? (뭇사람 웃음) 나의 이 큰 두 날개와 사자와 같은 신체를 보라, 얼마나 위풍당당한가?’라고 생각한다. (뭇사람 웃음) 그런 아득히 먼 거대한 체계의 신과 우리 이 체계의 생명에 대한 인식개념은 차이가 더욱 요원하다. 당신들이 인식한 좋고 나쁨이 우리 여기에서는 다른데, 정법 중에서 어찌 우리 여기의 좋고 나쁨을 가늠할 수 있겠는가? 생명의 차이도 몹시 크다. 내가 전한 대법은 일체를 포용하는 우주의 근본 대법으로서, 단지 부처의 모습, 부처의 이치를 형식으로 삼아 표현했을 뿐이다. 이런 것들은 그들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모든 체계의 생명이 다 정법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만약 모두 포함되어 있다면, 그러한 생명 체계 중의 신, 그는 당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하라고 한다 해서 그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기왕에 전 우주의 일이라면 그가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매 하나의 체계는 모두 거대한 그들 체계의 주(主)가 있는데, 그가 수수방관할 수 있겠는가? (웃음) 사실 모두 합해도 그들 역시 단지 그들 경지의 일만을 알 수 있을 뿐, 그들을 초월한 더욱 높은 것, 혹은 최후의 일은 그들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일에 우리들이 포함되었다고 해서 당신들이 나를 어찌하려 한다면 어찌할 수 있는 것인가? 나 역시 무량한 중생이 있으니 나도 선택되는 것을 쟁취하겠다.’라고 생각한다. 이 거대한 천체 이렇듯 많은 체계가 모두 이처럼 생각한다면, 모든 체계가 정법의 일에 대해 모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이 작디작은 지구는 정법 중에서 우주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이전에 늘 이야기했듯이, 이 지구는 우주 정법의 초점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우주 천체 그것이 얼마나 큰지 생각할 수 없으며, 당신들 역시 그것을 그런 거대한 개념으로 인식할 수 없다. 매우 크지만 모두 지구에서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형성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몇 천만 년을 지나왔던지 간에, 나는 먼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근대를 이야기하겠다. 지난번 인류문명이 부패하여 훼멸로 나간 후에 남은 사람들이 이번 인류로 진입할 때, 처음에 아무런 생활물자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현대과학으로 말한다면 바로 이른바 석기시대부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런 진화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간에 이번 생명과 관련된 역사는 대략 1만 년에 가까우며 근대문명과 관련된 역사는 대략 7천 년 정도인데, 즉 이번 문화를 형성하는 데 관련된 역사가 대략 7천 년 정도이다. 이 과정 중에서 생명의 표현, 역사가 펼쳐 보인 이 일체는 모두 이번 정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나 고대의 역사는 단지 사람의 사상 중에서 사람이 법을 인식하고 신을 인식할 수 있게 다지고, 사람의 생활 방식과 사람의 이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확정하며, 인식의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등등 거대한 문화 내포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일 뿐이었다. 전반 이 시기의 고대역사는 바로 사람에게 사상을 다져주고 사람의 행위를 다져주는 과정이었다. 오늘날 사람의 행위, 사람 인식의 좋고 나쁨,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좋은지, 사람이 어떻게 사고하는가 하는 문제, 사람이 어떻게 부모를 대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친구를 대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이 사회의 일체를 대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천지물(天地物)을 인식하는지는 사실 하나의 오랜 세월을 거쳐 다져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의 사상은 곧 공백이거나 혹은 짐승과 같이 야성적이었을 것인데, 그러면 내가 오늘 이 법을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 신이 어떻게 인체를 이용해 세상에 환생하겠는가? 신이 어떻게 사람을 대하겠는가?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의 충분한 인식과 완벽한 과정이 있도록 해야 했는데, 그렇게 걸어온 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류이다.
그러나 인류역사 중, 몇 천 년을 지나왔던지 간에 여태껏 오늘날 같은 이런 사회형식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과거는 다지기 위한 것이었고 현재는 펼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의 인류생활은 비교적 간단했다. 중국은 줄곧 신(神)이 지도하고 문화를 전파하는 주요한 곳이 되었고, 근대에 ‘중국(中國)’이라고 부른 것 역시 이 점을 암시한 것이었다. 다른 곳은 인류 중심 무대의 관중이자 조역이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과정이며 목적이었다. 그럼 왜 현대에 갑자기 수많은 각양각색의 문화, 각양각색의 학설, 각양각색의 사회형식이 오게 되었는가? 이것은 바로 각개 우주의 거대한 체계의 것들을 인류 가장 낮은 층에 나타나게 한 것인데, 목적은 선택받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이거나 서양사회거나 간에, 고대사회에는 몇몇 큰 종교 외에는 어떤 방면에서도 모두 독립적인 문화체계와 형식이 없었다. 예컨대 르네상스 후의 음악, 르네상스 후의 미술, 근대 역사 중의 각종 학설, 근대 사회상의 각 업종의 표현형식은 인류 행위의 정(正)과 반(反)의 표현을 포함하여, 단번에 갑자기 폭발하듯이 전부 왔다. 특히 최근 백 년에는 단번에 몇 천 년의 인류사회를 현재 이런 사회로 변하게 하였다. 인간세상은 혼혼(渾渾)하여 많은 사람은 그래도 득의양양해하며 과학이 인류에게 진보를 가져다주었다고 여긴다. 현대의 교육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만 진화론의 가설을 이용하여 사람이 이 일보까지 진화해 왔고, 사회는 이미 상당히 높은 과학수준에 도달했으며, 인류는 자신의 문명을 창조했고 현대 문명을 창조했다고 여기게 했다. 사실 전혀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은 이런 사상의 작용으로 이런 소위 과학이 가져온 문명을 향수하고 있다. 현대과학의 교육을 받아 신을 믿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이처럼 놀기 좋다고 하면서 마음껏 향락을 누리고 있다. 현대의 변이된 문예형식 역시 많아 이 사회의 표현은 정말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사실 신은 모두 여태껏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활하도록 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말하면 인류사회의 윤보(輪報) 과정을 보지 못하고, 또한 인연이 서로 일으키는 작용을 보지 못하며, 어떠한 일을 하든지 간에 미혹의 근본을 보아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후과(後果)를 따지지 않는데, 그러면 또 만족감이 없다. 사실 사회가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심지어 현대의 발달 정도를 초월할지라도 사람은 역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끝없이 추구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인가? 과거에 사람에게 좋은 말(馬) 한 필이 있을 때, 야, 이것이야말로 남보다 낫다고 여겨 좋은 말을 타고 거리를 가면 모두 부러워하였다. ‘야, 이 말 정말 좋다! 보세요, 그는 이렇게 좋은 말이 있어요.’라고 한다. 현대인이 좋은 차(車) 한 대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 느낌이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말을 타고 거리를 간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며, 사람 역시 이런 인식 개념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누가 좋은 차를 모는 것을 보면, ‘와, 이 차 진짜 멋지다, BMW야, (뭇사람 웃음) (사부님 웃음) 이 차 정말 멋있다’라고 한다. 사람은 같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으나 생활 중의 감수는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 현대의 생활환경을 주지 않는다면 사람 역시 이런 환경이 있는지 모를 것이다. 몇 천 년 동안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의 상태 중의 생활정취는 마찬가지로 만족감이 있을 것인데, 우주 중에서 사람은 바로 이 한 층의 생명이다. 사람에게는 지금 승용차가 있고, 사람은 또 비행접시가 있음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이런 에너지를 쓰지 않고 단번에 뜨며, 어디로 가려고 하면 1초면 갈 수 있는데 이 물건은 더욱 편리하다. 그때에 누가 승용차를 가지려 하겠는가? 그 차란 무슨 물건인가? 너무나 낙후되었다. (뭇사람 웃음) 사실 현대인은 정말로 그런 상태 중에서 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그는 계속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추구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무엇을 창조해낼 수 있는 것도 신의 작용이며, 인위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늘날 신이 사람에게 이러한 것을 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처럼 생활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목적은 그들 체계의 조화(造化)를 펼쳐 보여 선택받을 기회를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사람이 소위 연구 중에서 추구하고 있지만, 그러나 사람이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이 미혹을 보지 못하고 이 진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비로소 현대화된 사회 중에서 마음껏 향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향락을 누리라고 준 것이 아니다. 신은 종래 사람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 자신을 펼쳐 보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사는 것이 그야말로 신선(神仙) 같다고 느끼는데, 물론 정말로 신과 비교하자면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더욱더 후과를 따지지 않고, 더욱더 신을 믿지 않으며, 더욱더 쉽게 업을 짓고, 더욱더 빨리 자신을 훼멸시키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의 공업은 이미 생태환경을 심하게 오염시켰고 물질을 변이시켜 인류사회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게 했다.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우주 다른 공간까지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우주는 하나의 순환 체계로, 이 공간의 생물에서 추출되는 물질은 더욱 높은 공간에서도 추출되기 때문이다. 인류 공간의 생명에서 처음 추출된 것이 불순하다면, 위에서 추출되는 것 역시 한 층 한 층 모두 불순하게 된다. 그러므로 관념의 변이를 포함한 인류 현대사회의 변이는 신에 대해서도 영향을 조성하였고, 고층생물에도 변이를 조성했다. 무엇 때문에 우주는 법이 바로잡혀야 하는가? 물론 이런 변이는 단지 인류공간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며 거대한 우주 천체에 모두 각종 같지 않은 정황이 나타났다. 나 여기에서는 단지 인류 여기에 나타난 것을 말했을 뿐이다.
사실 근대 인류사회에 출현한 소위 풍부한 이런 문화표현은, 사실 같지 않은 우주, 같지 않은 머나먼 거대 천체 중에서 그러한 신이 가져온 것이다. 사람의 말로 한다면 그들 체계의 생명 유지방식인데, 가져온 것은 그들의 체계에서 생명 층차의 승화와 하강의 법칙, 모두 이러한 것들로서 가장 낮은 인류사회의 표현 형식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생명에 대해 말한다면, 만약 대법이 지도(指導)한다면, 이런 형식은 생명을 승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좋지 않은 생명을 하강시킬 수 있다. 내가 ‘대도무형’을 언급하게 되어 이런 말을 이끌어 냈다. 여러분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이 사회의 많고 많은 업종, 많고도 많은 영역이 모두 그들의 아득히 먼 생명 체계에서 온 것이라면, 대법제자가 이런 하나의 환경에서 수련하고 있거나, 각종 부동(不同)한 업종 중에서 모두 수련하고 있다면, 이는 법으로 그들을 바로잡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그들의 존재를 승인한 것이 아닌가? 그들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그들의 인류사회 중의 이런 표현을 모두 인류에게 남겨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하는 것은 그러한 체계 중의 중생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것이 사람 이 일보에 이르면, 층차의 관계로 말미암아 모두 아주 좋지 않게 변하거나, 또한 모두 아주 저속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법과 대법제자들은 이런 저속한 형식 자체를 실증해줄 수는 없다. 종교를 놓고 말한다면 정말 명백한 사람은 종교의 형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수련하지만, 명백하지 못한 사람은 그 종교 형식을 수호한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이러한 형식은 신이 가지고자 한 것이 아니며,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형식을 이용하여 승화하라고 한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형식을 이용하여 승화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신(神)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지 않은가? (박수) 대법제자가 각종 직업 중에서 수련함은 바로 그러한 체계의 생명을 승인하는 것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나는, 내가 전한 것은 우주대법이며 무엇이든 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들이 생각해 보라, 이 법이 큰가, 크지 않은가? 내가 말한다면 크기로 무형(無形)이며, 무형이지만 도리어 일체를 포용(包容)하고 있다. (박수) 정법은 전반 우주생명을 바로잡고 있으며 최대한도로 신이 남겨 놓은 일체 원시적인 것을 구원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생명이 없었다. 그 외계인들마저도 나를 그것들의 한 무리로 생각했었다. (뭇사람 웃음)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각 경지의 같지 않은 신은 나의 이번 정법 중에서 구세력의 교란에 대하여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러므로 이전에 내가 이야기했듯이, 나는 전반 우주중생들이 이 일에 대해 모두 죄를 범하고 있고, 그들은 모두 나에게 빚을 졌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구도하고 있고, 이 한 부의 법은 바로 일체 생명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사회의 어떠한 것이든, 오로지 내가 그것을 선정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이용해 대법제자가 수련하게 할 수 있다. 내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음악을 예로 든다면, 만약 사람이 음악 학습과 창작에 있어 대법으로 지도한다면, 진보할 수 있거나 사상 중에 영감이 생길 수 있으며, 깨달을 수 있거나 필요로 하는 것이 떠오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의 점화이다. 그러면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느 영역에 있든지 간에 당신의 기능이 끊임없이 제고될 수 있는 그것은, 당신이 끊임없이 자신의 경지를 제고한 후의 반영이다. 표현상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있고, 마음을 닦고 있는데 사람의 각도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당신이 좋은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법 공부와 안으로 닦음으로써, 당신이 갈수록 잘하게 되면 신은 당신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지혜를 주고 당신에게 영감을 주며, 당신으로 하여금 학습 중에서 많은 것에 명백해지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더 좋은 것을 창조해내게 하며, 당신의 기술이 더욱 높아지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초월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사회 중에서 어떠한 하나의 정당한 업종이든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직업 중에서 그 일체를 잘하는 동시에 당신은 또 당신 자신을 잘 수련하는데, 당신은 제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사회에서 내가 어떠한 하나의 형식을 선택하여 당신들 수련의 형식으로 삼아도 모두 당신들을 수련 성취하게 할 수 있지만, (박수) 다만 내가 그러한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그러한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나는 부처의 형식을 선택했다. 부처의 형식으로 우주의 법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내가 창립한 다섯 가지 공법과 수련방식으로, 당신을 이런 방식에 따라 수련하도록 가르치며, 일체 불(佛)·도(道)·신(神)·사람을 포함한 일체중생을 구도한다. 물론 내가 그처럼 많은 모든 형식을 다 선택하여 사용할 수 없었고, 나는 부처의 형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이야기한 것은 우주의 근본 대법이다. 비록 형식상에서는 부처의 이치(理)와 법(法)이고, 부처의 이치와 법에 입각해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 말한 것은 우주의 근본 대법이며, 내가 수련 중에서 당신들에게 걸으라고 한 길은 오히려 우주의 부동(不同)한 체계의 그러한 큰 신들의 일체 길이었다. 무엇이든 다 바로잡히고 있으며, 어떤 것이든 이 한 부의 법속에 다 포함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대법이다.”(《로스앤젤레스 시 법회설법》)
“사실 사부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우리들의 우주, 내 말은 우리들의 생명과 관계가 있는 거대하기가 비할 바 없는 이 우주를 사실 나는 진작 다 완성했다. 사부의 높은 곳은 진작 귀위(歸位)했다. 우리들의 우주는 이미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내가 이 일체를 다 마치고, 다음 일보를 진행하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표면 세간이 아직 해탈해 나오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 이 우주는 거대하기가 그야말로 상상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크다. 생명이 많기로 하나의 작은 범위도 모두 계량할 수 없으며 가없이 큰 천체는 이미 형용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후에 설법할 때에 나는 여태껏 당신들에게 우주가 얼마나 큰지를 말하지 않았는데, 뒤로 해나갈수록 더욱 커서, 사람의 사상과 언어로는 그것을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정법을 최후까지 했을 때 나는 발견했다. 그런 우리의 우주와 어떤 관계도 없는 기타 천체 중의 생명들이 우리들의 우주가 이처럼 좋게 만들어진 것을 발견했는데, 마치 우주 중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ㆍ금강과 같아 누구나 다 마음에 들어 했고, 다 이 법을 가지려 했으며, 이 법을 얻으려 했다. (박수)
내가 이전에 당신들에게 우주의 개념을 말한 적이 있다. 얼마간의 은하계가 하나의 범위를 구성하는데 이 범위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소우주이다. 몇 억의 이런 우주가 비로소 제2층 우주를 구성했다. 최종으로 우리 우주 체계는 얼마나 큰가. 일조(一兆) 층의 거대한 우주를 한 범위로 말한다면, 일조를 일조 개의 조로 나열하고, 일조 개의 조를 공기의 한 분자로 형용한다면, 온 극장이 모두 이러한 입자이다. 그처럼 많은 우주가 단지 우주 중의 한 공간 속의 보잘것없는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정법 중에서 내가 최후까지 했을 때 본 생명의 형식도 아래의 생명이 인식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며, 승화된 법리는 낮은 층의 신(神)도 이해할 방법이 없다. 그 경지 그 상태에 이르러 최후에는 이 역시 우주 중의 한 알 먼지라는 것을 발견했다.”(《각지설법 11》〈20년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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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법에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탐지할 수 있는 기원에서 볼 때 이번 차례 중화신전문화(中華神傳文化)는 이전 한 시기 동방 황인종과 서방 백인종의 사전(史前)문명을 모은 것이다. 보다 먼 시기에서 보자면, 이번 차례 중화신전문화는 2억 년 동안 여러 차례 인류 사전문명의 정화를 모은 것이다. 보다 광활한 우주 시공에서 보자면, 이번 차례 중화신전문화는 구우주 대궁(大穹)에서 수천만 개의 거대하고 아득히 먼 독립적인 천체(天體) 체계들의 생명이 생존하고 승화(升華)하는 방식을 모은 것이다.
사전(史前) 대홍수
이전 시기 인류 문명은 도덕이 패괴(敗壞)한 후 전 지구적인 대홍수에 의해 훼멸되었다. 대홍수는 세계 여러 민족들의 공동 전설로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인도, 중국, 마야 등 문명에 모두 홍수로 세상이 멸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영국의 민족학자 프레이저 벤저민은 여러 민족의 역사와 전설을 고찰한 후 거의 모든 북반구 민족의 상고(上古) 전설에 대홍수에 관한 전설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아울러 그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국제표준성경백과전서(國際標準聖經百科全書)》에 따르면 “거의 모든 민족과 부족에 홍수에 관한 전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지역은 아시아 대륙과 남쪽의 섬들 및 북아메리카다. 그러나 홍수에 관한 전설은 대륙마다 다 발견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홍수 전설은 총 수량이 무려 270여 개에 이른다. 홍수에 관한 일화가 널리 퍼진 것을 보면 인류가 일찍이 한 차례 세계적인 큰 홍수로 훼멸된 후 한 지방 또는 한 집에서부터 다시 번성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비록 전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홍수 전설이 동일한 하나의 홍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학자들은 이 수많은 홍수 이야기가 선교사들로부터 나왔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인류학자들이 여러 지역에서 수집한 것으로 그들이 모두 성경을 수호하려 하지 않았고 게다가 이 이야기들의 내용속에는 기이하고 비기독교적인 색채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 이야기들이 아주 오랫동안 비기독교 사회에서 전해졌고 더욱이 홍수 이야기를 쓴 사람들 중 일부는 유대교 및 기독교 전통에 크게 반대했다는 점이다.”
수메르 전설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전설은 성경보다 연대가 앞선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C. Leonard Woolley) 경은 바그다드와 페르시아 만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사막지대를 답사 발굴한 결과 고대 수메르 우르(Ur)성 유적을 발견하고 또 왕족 묘지를 찾아냈다. 바로 이 무덤 밑에서 2m가 넘는 깨끗한 점토 퇴적층을 발견했다. 이 퇴적층 위에는 우르 족의 무덤이 있는데, 여기에는 투구, 악기, 도검(刀劍) 등 각종 부장품과 공예품 및 점토 서판에 새겨진 역사기록이 있었다. 점토에 대한 분석 및 연구 결과 이 점토층은 홍수가 발생한 쌓인 진흙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류가 점토로 역사를 기록하기 전에 이 일대에 수메르 문명 전체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큰 홍수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수메르 국왕 리스트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이 바로 대홍수다. 국왕 리스트에 이런 기록이 있다. “그리고 짐비르(Zimbir)가 쇠퇴하자 왕이 슈루팍(Shuruppag)으로 이동했다. 우바라투투는 1만 8600년을 통치했다. 그리고 홍수로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대홍수의 원천이다. 이것은 앞서 우리가 소개한 수메르의 창조 서사시 에리두 제네시스에 나오는 기록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왜 에리두 제네시스와 국왕 리스트가 겹친다고 하는가? 두 자료의 출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에리두 제네시스는 주로 2번째 점토판에서 나온 반면 굮국왕 리스트는 주로 4번째 점토판에서 정리한 것이다. 즉 런던 애쉬몰리언 박물관의 WB62 및 WB444, 캘리포니아 대학의 UCBC9-1819, Kish 진흙 판 및 후세의 일부 자료를 기초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수메르인들이 국왕 리스트를 정리하는 습관이 세계 기록사의 시초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홍수를 관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대홍수에 대해 국왕 리스트의 간단한 설명과 달리 서사시에서는 홍수 과정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출토된 점토판에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전설이 쐐기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점토판 중 일부는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모두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네 분 신령(神靈)이 우리 지구를 다스렸다. 하늘의 신, 대호법(大護法), 전쟁과 사랑의 여신, 수신(水神)이다. 수신은 인류의 벗이자 수호신이었다. 그 시절, 지상에는 인구가 매우 조밀했고 인류가 끊임없이 번성했으며 온 세상이 마치 소가 우는 것처럼 소리로 가득 차서, 천신(天神)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대호법은 인간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자리에 앉은 신에게 ‘인간의 소음이 실로 귀에 거슬려 시끄러워서 우리가 편히 잠들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뭇 신(衆神)들이 인류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수신은 국왕을 불쌍히 여겼다. 이에 그는 왕궁을 찾아가 갈대 장벽 밖에 서서 궁궐 안에 있던 왕에게 말했다.
“인간 세상에 곧 큰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 서둘러 한 척의 배를 만들어 일가족의 생명을 보전해야 한다. 당신의 집을 허물어 배를 만들고 모든 재물을 포기하고 빨리 도망쳐 목숨을 구하라! 세속적인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영혼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 빨리 집을 허물고 일정한 크기에 따라 가로 세로 균형에 맞게 큰 배를 만들어라. 세상 모든 생물의 씨앗을 배에 저장하라.”
이에 국왕은 감히 소홀히 여기지 못하고 즉시 큰 배 한 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재물을 배에 옮겨 싣고 모든 생물의 씨앗을 선실에 저장할 것이다.” 일가족 어른과 아이들이 배에 오르면 소와 말 및 다른 가축들과 다양한 직업의 장인들을 배에 태울 것이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동틀 무렵,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고, 폭풍의 신이 말을 몰아 달려왔으며, 철기(鐵騎)가 지나간 곳에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폭풍의 신은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꿔 대지를 파괴하니 마치 컵을 깨는 것과 같았다. 어둑어둑한 검은 안개가 곧장 천국까지 올라갔는데….
첫날, 폭풍우가 온 대지를 휩쓸고 사방에서 홍수가 일어났다. 하늘과 땅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손조차 볼 수 없었다. 뭇 신들도 놀라 황급히 물러나서 천신(天神)이 사는 천궁(天宮)으로 도망쳐 궁전 주위에 웅크리고 앉았다. 6일 밤낮 동안 폭풍이 끊임없이 몰아쳤고, 파도는 세차게 불었고, 홍수는 온 세상을 뒤덮었다. 폭풍과 홍수가 동시에 맹위를 떨치며 포효하는 것이 마치 맞서 싸우는 두 군대 같았다.
7일째 되는 날 새벽, 남쪽에서 불어온 폭풍은 마침내 가라앉았고, 바다는 점차 고요해지고 홍수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대지가 온통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마치 지붕 천장처럼 매끄러웠다. 지상의 생명들은 모두 물에 잠겼다….
내가 선창 문을 여니 햇빛이 얼굴을 비췄다. 가슴이 찡해지자 허리를 굽혀 보니 주위는 온통 흰 물로 가득하다…. 약 40여 리 밖에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우리 배가 표류하다 산허리에 좌초되었다. 나는 배를 니시르 산에 단단히 묶었다…. 7일째 되는 날 아침 새장을 열고 비둘기를 띄워 선실 밖으로 내보냈다. 잠시 물 위를 맴돌았으나 서식할 나무를 찾지 못해 배로 돌아왔다.
나는 또 제비 한 마리를 놓아주었다. 역시 발 디딜 곳이 없어 돌아왔다. 내가 까마귀 한 마리를 풀어주었더니 그것은 홍수가 이미 가라앉은 것을 보고는 기뻐서 울다가 먹이를 찾아 사방으로 날아다니다 자취를 감췄다.”
중국 전설 속 대홍수
중국의 대홍수를 소개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여와에 대해 소개해야 한다. 전설에 따르면 천지가 처음 열렸을 때, 아직 사람이 없었다. 여와는 정월 초하루에 닭을 창조하고, 초이틀에 개를 창조하고, 초사흘에 양을 창조하고, 초나흘에 돼지, 초닷새에 말을 창조했다. 초칠일에 여와는 황토와 물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작은 진흙 인간을 만들었다. 그녀는 또 한 무리 한 무리를 만들었다. 너무 느리다고 느껴지자 한 가닥 줄을 이용해 진흙을 가득 묻혀 흔들었다. 이렇게 땅에 뿌려진 한 점 한 점의 진흙이 모두 사람이 되었다. 황토로 만든 것은 부귀한 사람이 되었고, 줄로 만든 것은 지위가 낮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인류가 영원히 전해져 내려갈 수 있도록 그녀는 또 혼례를 만들어 사람이 자력으로 대를 잇게 했다.(《태평어람》)
중국 신화에서는 또 공공(共工)이 하늘을 떠받치던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아 절단한 후, 도도한 물이 대지에 쏟아져 들어오자 여와가 급히 오색석(五色石)으로 하늘을 수리하자 사방도 바르게 되어 사람들이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신화에서 말하는 제1차 대홍수는 공공과 축융의 대전이다. 공공의 군사가 패배하자 곧장 부주산을 들이받았는데 부주산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었기 때문에 하늘이 반쯤 무너져 하늘에 큰 구멍이 났고, 땅도 크게 갈라졌다. 큰물이 땅에서 쏟아져 나와 물보라가 대지를 가득 메웠고,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인류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을 만든 여와가 이 참혹한 재앙을 보고 오색석을 다듬어 하늘을 메우고, 큰 자라의 네 다리를 잘라 기둥으로 삼아 사방을 떠받치고, 흑룡(黑龍)을 죽여 기주(冀州)를 구하고, 갈대의 재를 쌓아 홍수를 막았다. 이에 창천(蒼天)이 수리되고 사방이 바르게 되자 큰물이 마르고 천지는 비로소 다시 안정되었고 신중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었다.
또 다른 홍수 신화는 요(堯) 임금 시대에 발생했는데, 《서경(書經)》 〈요전(堯典)〉에는 곤(鯀)이 치수하는 데 9년이 걸렸다고 했고,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는 우(禹)가 치수하는 데 13년 동안 밖에 있었다고 했으니, 이 대홍수는 22년 이상 지속되었다. 처음에 곤이 홍수를 다스리도록 파견되었는데, 그는 물을 가로막는 방법을 사용해 홍수가 오히려 더 높아지게 했고, 9년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나중에 곤의 아들인 우가 치수하도록 파견되었으며, 우 시대의 천제는 순(舜)이었다.
우는 치수하기 전에 하신(河神)의 도움을 받아 치수 지도[《시자尸子》 손성연(孫星衍) 모음집 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막는 방법 대신 물길을 소통시키는 방법으로 바꾸어 결국 성공했고, 홍수가 평온해져 만민의 고통을 해소했으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군왕(君王)은 그 왕조의 표본과 같았으며, 군왕의 말과 행동은 신하와 백성들의 도덕적 행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대우(大禹)는 중국 역사상 덕행이 상당히 숭고한 군왕이었으므로, 당시 중국 백성들이 대홍수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우가 온 국가 사회의 풍속을 순박하고 고상하게 변화시킨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중국 상고 기록에는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에 “옛날에 사극(四極)이 무너지고 구주(九州)가 찢어졌으며, 하늘이 완전히 덮지 못하고 땅이 완전히 싣지 못했으며, 불은 타오르다가 꺼지지 않고, 물은 넘실거리며 멈추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흥(洪興)은 “모든 홍수의 연못은 300인(仞) 이상이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상서(尚書)》 〈요전(堯典)〉에는 “거친 홍수가 사방을 갈랐고, 도도한 물이 산을 감싸고 언덕을 넘었으며, 호호한 물결이 하늘을 뒤덮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해경》 〈해내경(海內經)〉에는 “홍수가 하늘을 뒤덮었고” “곤이 제(帝)의 식양(息壤)을 훔쳐 홍수를 막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초사(楚辭)》 〈천문(天問)〉에는 “홍천(洪泉)이 깊은데, 무엇으로 채웠는가? 땅이 아홉 구획으로 나뉘었는데, 무엇으로 봉분했는가?”라고 했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에는 “요(堯) 임금 시대에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고, 홍수가 가로질러 흘러 천하에 범람했다.” “요 임금 시대에 물이 거꾸로 흘러 중국에 범람했다. 뱀과 용이 그곳에 거주하여 백성들이 정착할 곳이 없었고,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둥지를 틀고,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동굴을 파서 살았다.”라고 했다.
《회남자》 〈본경훈(本經訓)〉에는 “공공(共工)이 홍수를 일으켜 공상(空桑)을 덮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繹史)》 제5권은 《귀장(歸藏)》을 인용해 “치우(蚩尤)가 구뇨(九淖)에 올라 공상을 쳤다”라고 했다.
대홍수 발생에 관해서는 신화 전설에서 대량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문자에서도 강력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갑골문에서 “석(昔)”자 아래의 세 개의 곡선은 물을 나타내고, 위쪽의 둥근 원 가운데 점이 있는 도형은 태양을 나타낸다. 태양 아래에 온통 대홍수가 있어 높은 산도 평지도 볼 수 없었으니, 당시 홍수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이 글자의 의미는 “이전에 대홍수가 범람했던 날들이 있었으니, 모두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인디언의 전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멕시코의 고문서 《치말포포카 도형 문자서》에는 “하늘이 땅에 가까워졌고, 하루 만에 모든 사람이 멸종했으며, 산도 물속에 잠겼다… 바위가 땅 전체를 덮었고, 무서운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고, 붉은 산이 위에서 날아다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지구 판이 격렬하게 충돌하여 대지진을 일으켰고, 대지가 위아래로 요동치며 흔들렸다. 동시에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분출되었다. 땅의 함몰과 지진이 엄청난 해일을 일으켰고, 바다의 거대한 파도는 끓는 물처럼 모든 것을 삼켰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도망쳤지만, 물에 삼켜지거나 불 구덩이에 빠져 죽었다. 멕시코에 살던 아즈텍 사람들은 신이 코스코스코틀리(Coxcoxtli)라는 남자와 수치케찰(Xochi quetzal)이라는 여자 부부에게 곧 닥칠 대재앙에 대해 경고했다고 전한다. 대홍수가 실제로 닥쳤고, 지상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며, 나타(Nata)와 그의 아내는 멸종을 피했다. 부부는 큰 배를 만들어 높은 산으로 표류했다. 홍수가 물러간 후, 그들은 선창을 빠져나와 그곳에 정착하여 자녀를 낳아 길렀다.
마야인의 성서 《포폴 부(Popol Vuh)》는 대홍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밤낮으로 계속 내렸다… 이것은 훼멸적인 대파괴였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지만, 집이 무너져 그들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지만, 나무가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동굴에서 피난처를 찾았지만, 동굴이 무너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끈적끈적한 진흙 비에 모두 익사했다. 유카탄 반도의 마야인들은 노아와 같은 인물과 그의 아내가, 마야인들은 그들을 ‘대부(大父)’와 ‘대모(大母)’라고 불렀는데, 이 홍수를 피하여 재난 후의 세계를 재건했으며, 이후 세대의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스 신화 속의 대홍수
그리스 신화 이야기 속에도 이러한 전설이 있다. 천제 제우스가 대지를 통치할 때, 인류가 점점 잔인하고 무도해지며, 인심이 험악해지고, 약육강식하며, 정의와 예절이 점차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인류는 세상의 화근이다. 만약 그들을 불쌍히 여겨 즐거움을 누리게 하면, 즉시 번식하여 교만해지고 오만해질 것이다. 만약 그들을 벌하여 재난을 겪게 하면, 잠시 수그러들겠지만, 곧 다시 타락하여 악행을 일삼을 것이니, 차라리 한 번에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낫겠다.”
그래서 신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고, 결국 큰비를 내려 홍수를 만들어 인류를 익사시키기로 결정했다.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주어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아들 데우칼리온이 있었는데, 그는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데우칼리온은 종종 사람들에게 신의 벌을 받지 않도록 선행을 하라고 권했다. 어느 날, 데우칼리온이 올림포스산으로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그에게 “천제 제우스가 곧 홍수로 전 인류를 익사시킬 것이니, 너는 빨리 도피 방법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데우칼리온은 산에서 내려온 후 즉시 견고한 배를 만들었고, 생활 필수품을 배에 실어 피난했다.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폭우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고, 수개월 동안 계속되었으며, 홍수가 온 대지를 잠기게 했고, 심지어 높은 산까지 물속에 잠겼다. 수개월 후, 비가 그쳤고, 데우칼리온의 배는 파르나소스산 꼭대기로 표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점차 물러갔고, 대지가 다시 드러났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할 뿐이었다. 그들은 신탁을 간절히 빌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시를 받았다. 신은 “너희의 머리를 가리고, 산비탈을 따라 걸으면서, 너희 어머니의 뼈를 주워 뒤로 던져라”라고 말했다. 그들은 어머니가 대지이고, 어머니의 뼈는 돌이라고 짐작하고, 돌을 주워 뒤로 던졌다. 과연 기적이 일어났고,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었고, 그의 아내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어, 인류가 다시 대지에 나타나게 되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그리스 사상가 플라톤에게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는 중국의 공자와 비슷한 기원전 350년경에 살았다. 플라톤은 선지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플라톤은 기원전 350년에 명저 《대화록》을 저술했는데, 대화 형식으로 신비로운 아틀란티스를 묘사했다. 이 《대화록》은 기원전 421년에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와 세 제자 간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 《대화록》은 현재 학계에서 아틀란티스에 대한 가장 가치 있는 기록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플라톤 가문의 한 조상인 고대 그리스의 7현인 중 한 명인 저명한 정치 개혁가이자 시인인 솔론(Solon, 약 기원전 638년 ~ 기원전 559년)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집정관 임기를 마친 후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이집트, 키프로스, 소아시아 등지를 10년 동안 방랑했다. 그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글쓰기에 몰두했으며, 그의 많은 작품에서 아틀란티스 고국을 언급했다. 《대화록》에서 플라톤의 사촌 크리티아스(Critias)는 대화 중 솔론이 이집트로 여행을 갔다고 말했다. 솔론이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즉 나일강이 나뉘는 곳에 있는 사이스(Sais)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현지인들의 환영과 사랑을 받았지만, 자신이나 다른 아테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신 이야기가 사이스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발견했다.
솔론이 한 번은 사이스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하고 있는 이러한 사건들이 그리스 역사에서 얼마나 오래전에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한 노(老)제사장이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솔론이여, 솔론, 당신들 그리스 사람들은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다. 당신이 열거한 그리스 사람들 중에는 노인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없다.”
솔론은 불쾌함을 참으며 물었다.
“당신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요?”
노제사장은 대답했다.
“제 말은 당신들이 사상적으로 아직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조상으로부터 어떤 고대 사상도 물려받지 못했고, 역사적으로 유구하다고 할 만한 어떤 과학도 없습니다. 제가 이 모든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 세상에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인류 문명이 파괴될 것입니다.”
노제사장은 솔론에게 고대 이집트 역사 기록에 따르면 아틀란티스가 침몰한 시기는 그보다 약 9,000여 년 전이라고 말했다. 솔론이 기원전 600년경에 살았으므로, 이렇게 추산하면 아틀란티스의 최종 멸망은 기원전 1만 년경, 즉 지금으로부터 약 12,000년 전이다. 제사장은 말했다.
“아틀란티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 바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 섬은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컸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다른 섬들로 가는 필수 경로였으며, 이 섬들을 통과하면 대서양을 에워싸고 있는 또 다른 대륙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제국은 리비아의 ‘헤라클레스의 기둥’ 안쪽, 이집트와 가까운 부분, 유럽의 먼 쪽부터 지중해 일부 지역까지 통치했습니다. 거대한 권력 중심이 끊임없이 팽창하고 집중되었으며, 주변 부족들이 차례로 정복되었고, 전체 해협 안쪽은 아틀란티스 제국의 세력 범위였습니다.”
노제사장은 또 말했다.
“그 후 아틀란티스에 맹렬한 지진과 대홍수가 발생하여, 하루 낮밤 사이에 이 모든 호전적인 사람들이 산 채로 매장되었고, 아틀란티스도 이로 인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18세기에, 차치워드라는 영국인이 인도에 오래 거주했는데, 당시 그는 어린아이였으며, 허물어진 사원에서 우연히 진흙 조각들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나가르 서판’이며, 그 위에는 많은 나가르 문자(那加爾文字)들이 있었다. 사원의 주지 스님에 따르면, 이 진흙 조각들은 매우 오래된 것이며, 이 사원은 대대로 그것들을 보호해 왔고, 위의 문자들은 대대로 이어지는 주지 스님만이 해독할 수 있었다. 차치워드의 집안과 이 사원이 대대로 친분이 있었고, 호기심 때문에 그는 주지 스님으로부터 이 기이한 문자들을 배웠는데, 그 위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도 동남쪽의 대양에 ‘무(Mu) 대륙’이라고 불리는 곳이 존재했지만, 대홍수 발생 시기에 무 대륙은 하룻밤 사이에 침몰했다. 현재 인도 사람들은 ‘무 대륙’의 자손이다. 19세기 말, 멕시코 광물학자 윌리엄 네이븐은 멕시코 시티 근처 지하 약 10미터 지점에서 고대 도시 유적을 발견했는데, 철, 금, 구리, 은 등의 금속이 있었다. 탐사 결과, 이 고대 도시는 약 12,000년 전에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다. 동시에, 멕시코 시티 북쪽 약 8킬로미터 지점의 지하에서, 사람들은 2,600여 개의 석비를 발굴했는데, 그중 제684호 비문은 다음과 같다.
“이 신전은 밤낮으로 우리를 수호하는 신의 대표이자 우리의 군왕인 람(Ram)의 뜻에 따라, 무 대륙 이민지에 건립되었으며, 서부 육지(태양 제국)에서 온 사자들을 축복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 대륙’은 바로 인도 ‘나가르 서판’ 속의 무 대륙이다. 영국 대영 박물관에 기록된 마야 전설의 ‘트로아노 고문서(Troano Codex)’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칸(刊) 6년, 11 무루쿠(牟魯枯), 사쿠(沙枯)월에 무서운 지진이 발생하여, 점토 언덕 나알(Naal) 나라의 무 대륙이 그 희생양이 되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8,060년이 지나서야 이 책이 쓰였다.” 문맥에서 ‘칸’은 왕의 이름, ‘무루쿠’는 날짜, ‘사쿠’는 월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카탄 반도 우스말의 우스말 사원 벽에는 “이 건축물은 무(Mu), 즉 서부 대륙, 영혼 대륙의 신성한 신비가 발생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유카탄 반도에 거주하는 마야인들의 구전 전설에는 동쪽 대양(대서양)에 거대한 섬이 있었는데, 그 섬에는 키가 큰 백인들이 살았으며, 그들은 매우 선진적인 문화, 천문, 건축, 농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육지는 하룻밤 사이에 물에 잠겼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死亡書)》에도 대륙 침몰에 대한 도형 기록이 있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양 속의 한 육지가 어느 날, 불이 바다 속에서 솟아 나왔고, 대륙은 갑자기 닥친 재난 속에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1772년, 네덜란드 원정군 야코프 로헤베인이 이끄는 함대가 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항해해 들어갔는데, 이 섬은 나중에 ‘이스터 섬(Easter Island)’으로 명명되었다.
섬의 고대 전설은 사람들의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도자는 자신의 땅이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신하들을 소집하여, 대양을 건널 수 있는 배에 올랐다. 그들이 세상의 끝까지 항해했을 때, 마오리(Maori)라는 작은 섬만을 찾았고, 그들이 있던 대륙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이것이 또 다른 육지의 침몰 기록이라고 믿었으며, 사람들은 광활한 태평양에 사라진 대륙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했고, 그것을 ‘태평주(太平洲)’라고 불렀다. 유럽 사람들은 태평양에서 침몰한 대륙인 ‘태평주’를 찾지 못했지만, 태평양상의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비록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섬 주민들은 공통의 문화, 언어, 풍습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학자와 식물학자들도 이 수많은 섬들의 동물과 식물 분포가 기본적으로 비슷하며, 먼 옛날에는 분명 어떤 연관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대홍수의 수위(水位)
《한당지리서초(漢唐地理書抄)》에 “의도(宜都) 위쪽의 절벽은 수백 장(丈) 높이로 솟아 있는데, 그 바위틈에 불에 탄 재가 꽂혀 있으며, 멀리서 보면 길이가 몇 자에 달한다. 전설에 따르면, 요(堯) 임금 시대에 홍수가 났을 때,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어서, 꽂을 삽(插)이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문유취(藝文類聚)》에는 또 “의도 이릉현(夷陵縣) 서쪽 80리에 고광산(高筐山)이 있다. 옛 노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요 임금 시대에 큰 물이 났을 때, 이 산은 물에 잠기지 않고 광주리(筐篚) 같았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자료는 사전에 발생한 그 대홍수가 의도에 흔적을 남겼음을 보여준다. 의도는 오늘날 후베이성 이창(宜昌) 근처의 지청(枝城)이며, 무산(巫山) 산맥에 속하고, 지도상의 해발 고도는 약 1,200미터 정도이다. 이창 동쪽은 광활한 장한 평원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제769권은 《군국지(郡國志)》를 인용해 “제주(濟州)에는 부산(浮山)이 있다. 옛 노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요 임금 시대에 큰 비가 내렸을 때, 이 산이 물 위에 떠 있었고, 그때 어떤 사람이 뱃줄을 바위틈에 묶었는데, 지금도 끊어진 쇠사슬이 남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평어람》 제52권은 《영가지(永嘉志)》를 인용하여 “영가(永嘉) 남쪽 해안에는 첩석(帖石)이 있는데, 이는 요 임금의 신인(神人)이 돌을 깨는 추로 사람들을 악계(惡溪)로 인도하다가, 길가에 놓아두었는데, 멀리서 보면 돛을 편 것과 같아서, 지금은 속칭 장범계(張帆溪)라고 부른다. 천태산과 연결되어 있다.”
산시성 용문산(龍門山)에는 우문구(禹門口)라는 곳이 있는데, 대우(大禹)와 관련이 있으며, 홍수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의 지형도상의 해발 고도는 1,122미터로, 안문(雁門)과 거의 같은 해발 고도에 있다. 저장성 셴쥐현(仙居縣) 경내 웨이창산(韋羌山)에는 개구리 벼랑(蝌蚪崖)이라는 위험한 벼랑이 있는데, 지면에서 약 200미터 떨어져 있으며, 새나 짐승의 발자국이 전혀 없다. 하지만 바로 이 벼랑면에 인공적으로 새겨진 이상한 문자(속칭 개구리 문자)가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해독하지 못했다. 이 비문은 폭 50미터, 높이 40미터이며, 개구리 모양의 문자가 벼랑면에서 5센티미터 돌출되어 있고, 각 글자의 직경은 7~12센티미터이며, 각 개구리 문자 사이의 간격은 15센티미터로 배열이 매우 정돈되어 있다. 바깥 벼랑 벽에는 해, 달, 벌레, 해양 생물 모양의 도형들이 많이 있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물의 나라였으며, 대우가 치수할 때 이곳에 와서 이 벼랑에 개구리 문자를 새겼다고 한다. 구이저우성 안순시 관링 부이족 먀오족 자치현 솨이자산(曬甲山) 서쪽에는 암적색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하늘에 걸려 있는데, 북쪽 암벽에는 30여 곳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문자들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곳은 폭 10미터, 높이 6미터로, 40여 개의 기괴한 도형들이 있다.
현지에는 홍암비(紅岩碑)에 관한 민요가 있는데, 마치 주문과 같다.
“홍암은 백암을 마주하고, 금은 열여덟 번 불러 모으네. 누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 우레 소리가 징을 울리네.”
현재 홍암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우비(禹碑)라고 말한다. 남악 형산(衡山) 72봉 중 하나인 구루봉(岣嵝峰) 위에도 마찬가지로 77개의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서체가 괴팍하고 난해하여 구루비(岣嵝碑)라고 불린다. 진(晉)나라 때 처음 발견되었지만, 송(宋)나라에 이르러서야 탁본이 악록서원(岳麓書院)에 소장되었다. 이 비석의 유래에 대해 현재 가장 널리 퍼진 설은 대우의 치적을 기리는 비석이라는 것이며, 이 역시 대홍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산은 지형도상 최고봉의 해발 고도가 1,290미터이다. 이 모든 기록된 지점들은 북쪽의 안문, 용문산에서부터 이창, 지청을 거쳐 형산에 이르기까지, 해발 고도가 모두 1,000~2,000미터 사이에 있으며, 이 계단 동쪽과 남쪽은 끝없이 넓은 대평원이며, 해발 고도는 모두 500미터 정도이다. 이 계단의 서쪽은 중국의 두 번째 계단이며, 해발 고도는 기본적으로 2,000미터 이상이다.
대홍수 이후의 고대인들이 치수의 모든 증거와 비문을 거의 동일한 해발 고도에 의도적으로 배열했을 리는 없다. 유일하게 합리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우 시대의 대홍수 수위는 약 800~1,000미터였으며, 거의 전체 동남 해안을 잠기게 했고, 중원의 허베이, 허난, 산시 일부, 산시 일부도 홍수에 잠겼으며, 중남부 지역의 후베이, 후난, 광시, 서남부의 구이저우 등 지역도 홍수에 잠겼다.
지질학적 증거
금세기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두 척의 미국 해양 조사선이 멕시코만 해저에 대한 시추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들은 해저에서 몇 개의 가늘고 긴 퇴적 진흙 코어를 시추해냈으며, 이는 해저의 일부 지층 단면을 절단한 것과 같고, 그 퇴적 진흙 코어가 대표하는 지질 시간은 1억 년이 넘는다. 즉, 이 퇴적 단면들은 멕시코만 해저의 1억 년 이래의 퇴적 상황을 기록하고 있으며, 퇴적 진흙 코어의 특징으로 당시 해수의 염도와 지구 기후 변화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이 이 퇴적 진흙 코어를 연구할 때, 약 1만 년 전의 퇴적층에서 대량의 유공충 껍데기를 발견하는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유공충은 미세한 단세포 부유 생물이며, 그 껍데기 속의 산소 동위 원소 함량 비율은 그들이 살았던 시기의 해수 염도를 대표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퇴적층 속 유공충 껍데기 분석을 통해, 이 유공충들이 살았던 연대에 멕시코만 해수의 염도가 매우 낮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상황은 당시 대량의 담수가 멕시코만으로 유입되어 대양 속의 해수를 희석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 담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과학자들은 이 갑작스러운 담수가 바로 사전에 발생한 그 대홍수라는 것에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금세기 이래, 중국 화남 지역, 독일, 프랑스 및 북미 지역에서 각국의 지질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층의 해저 탁류 퇴적물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거대한 해일(쓰나미)에 의해 발생했으며, 그것도 전 지구적인 해일이었고, 시기는 대체로 지금으로부터 1만 년에서 3만 년 사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여러분은 위의 몇몇 지점들이 모두 지구 북반부에 있다는 것을 주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해일은 북반부에서만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있다. 대륙 침몰이 방출한 에너지는 정말 너무나 컸으며, 무(Mu) 대륙과 아틀란티스가 침몰한 후 수천 년 동안 지구가 여전히 ‘떨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과학계가 발견한 해일 유적은 바로 신화 속 대홍수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이다. 워싱턴 대학의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바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노아의 홍수에 대한 지질학적 조사》라는 책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지질학적 조사에서 지구상에 파괴적인 대홍수가 발생했음을 증명하는 많은 증거들을 발견했다고 소개한다. 지질 조사에 따르면, 지구가 빙하기였을 때, 거대한 빙하 덮개의 변화가 해수면 높이를 변화시켰고, 결국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의 천연 지질 제방이 무너져, 수백조 갤런의 물이 전 세계 육지를 뒤덮어,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재난에 대한 문화적 기억이 각 민족의 대홍수 신화의 근원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과학원 지질 및 지구물리 연구소, 고척추동물 및 고인류 연구소, 식물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2002년 전문 학술지 《제4기 연구》에 《베이징 평원 후기 제4기 퇴적 시기와 사전 대홍수》라는 제목의 독창적인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저자는 현재 표준인 방사성 동위 원소 반감기 방법을 사용하여 고고학적 연대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베이징 영정하(永定河)의 고대 퇴적 평원의 지형 상황을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실험 결과 분석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0,000년에서 12,000년 사이에 초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으며, 지금으로부터 5,000년에서 10,000년 사이에는 또 여러 차례 초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지만, 모두 첫 번째 홍수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지금으로부터 4,500년에서 5,000년 사이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초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지만, 이번 홍수는 이전 홍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훨씬 작았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이내에는 더 이상 유사한 규모의 대홍수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림 1). 이는 지난번 인류 문명을 멸망시킨 사전 대홍수의 존재를 증명했으며, 또한 중국 고서에 기록된 서로 다른 시기에 나타난 대홍수의 모순을 비교적 원만하게 설명한다.
즉, 상고 삼황(三皇), 중고 오제(五帝) 시대는 초 대규모 홍수가 범람했던 시기(지금으로부터 5,000년에서 10,000년 사이)였고, 하우(夏禹, 지금으로부터 4,500년에서 5,000년) 시대부터 화하 문명은 점차 흥성하는 왕조 시대로 진입했음을 대체로 확정할 수 있다. 후대 사람들의 추측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5,000년 사이의 홍수 높이는 약 800~1,000미터였을 것으로 보이며,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으로부터 10,000년의 초 대규모 홍수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의 대홍수보다 약 3배 정도 컸다.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지금으로부터 10,000년의 지난번 인류 문명을 멸망시킨 사전 대홍수의 높이는 약 2,500~3,000미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1: 베이징 평원 후기 제4기 퇴적 시기와 초 대규모 홍수 규모 비교)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37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