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펑
【정견망】
《신선감우전(神仙感遇傳)》에 이런 기록이 있다.
최언(崔言)은 좌친기군(左親騎軍)에서 직무를 맡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병에 걸려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지척에 있는 사람과 사물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눈썹과 머리카락은 저절로 빠졌고, 콧등이 내려앉았으며, 피부에는 옴과 같은 부스럼이 돋아났다. 사람들은 모두 이를 불치병으로 여겼으며, 형편상 도저히 살려낼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최언이 낙곡(駱谷) 자오곡(子午谷)의 귀채사(歸寨使)를 맡게 되었을 때, 계곡에서 나오는 한 도사를 만났다. 도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에게 처방전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쥐엄나무 가시 한두 되를 채취하여 태워 재를 만드시오. 대황(大黄)을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 가루로 내시오. 약을 먹을 때는 먼저 대황을 진하게 달인 탕을 준비하고, 그 탕에 약 가루 7분(分)을 타서 복용하시오.”
열흘 정도 지나자 최언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났고, 피부는 윤기를 되찾으며 충실해졌다. 앓던 병이 씻은 듯이 나았음은 물론 시력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맑아졌다. 도사는 이 처방을 전한 뒤 산으로 돌아갔으며, 그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중의학의 약을 쓰는 방법은 서양 의학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이는 ‘한 치의 실수가 천 리의 차이’를 만드는 것과 같다. 같은 병증이라 할지라도 개개인의 체질, 병인의 경중, 기혈의 성쇠에 따라 필요한 약재의 종류와 용량, 복용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언이 이 처방으로 완치되었다 하더라도, 의학적 이치에 통달하지 못한 채 처방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은 결코 금물이다. 자칫 효과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 중의학계에는 후세에 ‘고인(高人)’이라 불린 의원들이 실제로 많았다. 전통적인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흔히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어 병의 근원을 꿰뚫어 보고 인체의 내면적 변화를 직관적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각 약재의 성미(性味)와 약이 일으키는 역할(歸經)을 명확히 이해했으며, 약이 인체에 들어가 어떻게 운행되고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적절한 용약법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령 ‘투시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중의학의 맥(脈) 짚는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정묘한 진단법이 된다. 짚은 맥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의사는 오장육부의 성쇠와 기혈의 흐름, 나아가 서로 다른 장기 간의 상호 영향을 추론해 낸다. 이러한 전체론적 인지 방식은 중의학이 현대 의학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위 ‘신선’의 조치란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을 준 것이 아니라, 최언이라는 특수한 사례에 맞춘 정밀한 치료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 처방이 타인에게도 효과가 있을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중국 고대의 중의사는 기본적으로 다 특이공능이 있었다. 손사막(孫思邈)・화타(華佗)・이시진(李時珍)・편작(扁鵲) 등등과 같은 이런 대의학자들은 모두 특이공능이 있었는데, 의서(醫書)에 모두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흔히 이런 정화(精華)적인 것이 현재는 비판 받고 있으며, 중의가 계승한 것은 다만 그런 약 처방 또는 경험의 모색(摸索)에 불과하다.”
이러한 까닭에 후세 사람들이 처방전의 기계적인 계승에만 머물고, 전체적인 의학의 이치(醫理)와 인체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인식 및 파악을 잃어버린다면 그 치료 효과는 당연히 반감될 수밖에 없다.
중국 고대 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라 불리며, 그 내포의 깊이는 결코 표층적인 지식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그 중요한 축인 중의학 역시 지극히 높은 지혜를 담고 있다. 이를 이해할 때 비로소 고문헌에 담긴 기록의 진정한 함의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