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심(平心)
【정견망】
3. 연단은 바로 체계적인 수련이다
공예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단약의 제련 과정이 번쇄하고 복잡하지만, 이는 단지 물질적인 일면일 뿐이다. 동시에 연단자(煉丹者)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 이 속에 어쩌면 단약의 유효 여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연단의 재료는 용량이 매우 커서 재물을 많이 소모한다. 많은 사람이 약을 다릴 자본이 없어 일생을 약값을 위해 분주하고 고생스레 노력한다. 연단술이 성행했던 당대(唐代) 시문에도 연단 및 채약과 관련된 사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두보은 《이백에게 주다(贈李白)》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두 해 동안 낙양에
지겹도록 겪은 건 능란한 처세술.
야인이 비리고 노린 음식 마주하니
채식조차 늘 배불리 먹지 못하누나.
청정반(靑精飯)이 없는데
어찌 내 안색이 좋아지리.
대약(大藥)을 만들 밑천 없어
산림에는 자취조차 쓸어낸 듯.
이백은 벼슬하신 분인데
뛰쳐나와 그윽한 곳 찾아갔네.
또한 양송(梁宋) 땅에 놀러 오셨으니
바야흐로 요초를 캐어봅시다.”
이 시는 연단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청정반’과 ‘대약’은 도가에서 장생을 위해 복용하는 비방이다. 두보는 시성(詩聖)일 뿐만 아니라 수도인이기도 했다. 다만 단약을 만들 재료를 살 여유가 없어 단약을 만들지 못하고 산에 올라 약을 캤지만 산속이 비질한 듯 깨끗해 미망 속에서 기연(機緣)을 기다릴 뿐이다.
가도(賈島)는 《은자를 찾으로 갔는데 만나지 못하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 하네
다만 이 산 속에 계시겠지만
구름이 깊어 계신 곳 모른다네.”
또한 동진의 갈홍은 황제가 부여한 높은 관직과 녹봉을 버리고 편벽한 구루현(勾漏縣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 가서 작은 현령이 되었는데, 단지 그곳에서 연단에 필요한 원료가 나기 때문이었다. 갈홍이 저술한 《포박자》는 후세의 수도인들에게 권면하여 “장생을 좋아하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의혹을 풀게 하려 함”이라 하여 수도와 장생에 대한 의혹을 설명했다.
말하자면 단약을 제련하기 시작하기도 전부터 수련자에 대한 고험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고험은 그 사람의 일생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미 연단 원료를 갖추었더라도 “단을 합할 때는 마땅히 명산 속 사람 없는 곳에서 동반자는 세 명을 넘지 않아야 하며, 먼저 백일 동안 재계하고 오향(五香)으로 목욕하여 정결함을 다해야 한다. 더러운 것을 가까이 하지 말고 속인과 왕래하지 않으며, 또한 도(道)를 믿지 않는 자로 하여금 알게 하여 신약을 비방하게 해서는 안 되니, 그러면 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포박자》)라고 했다. 연단의 금기는 매우 많으며 어떤 단서에는 연단자에 대한 요구가 매우 번쇄하다. 고인들은 이러한 금기 역시 단약의 효력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라고 여겼다.
물론 반드시 사부의 전수가 있어야 한다. “이 도는 지극히 중하여 반드시 어진 이에게 전수해야 하니, 만약 그 적임자가 아니면 비록 옥이 산처럼 쌓여 있더라도 이 도를 전하지 말라.”(《포박자》)라고 해서 이 도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품덕(品德)이 고상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사부의 전수를 받은 후 “황금 사람 여덟 냥을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던지고 피를 마셔 맹세한 후에야 구결을 알려주니, 본법(本法)과 같지 않게 그 처방을 도둑질하여 만든다면 끝내 이루지 못할 것이다.”(《포박자》) 연단은 엄숙한 수련이며 본문의 사부와 서약을 맺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문 사부가 제자에게 진정한 수련의 것을 전해 준다. 진정한 전수를 받지 못한 자들이 《단경》이나 《도장》에 의거해 단을 만들려 하는 것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렵다. 실제로 이런 고서들은 자주 은어를 사용해 독자로 하여금 읽을수록 미혹되게 하며, 유전되는 과정에서 오기가 존재하기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고서의 본뜻을 이해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송대 수도인 하원정(夏元鼎)이 다음과 같이 한탄할 리 있겠는가?
공동산 도인 찾아 상호(湘湖)까지 이르니
만 권 시서 볼수록 더 바보 되네.
쇠 신발 헤질 만큼 아니 간 곳 없었는데
얻고 나니 완전히 어려울 바 없더라.
崆峒訪道至湘湖
萬卷詩書看轉愚
踏破鐵鞋無覓處
得來全不費工夫
《신선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위백양(魏伯陽)과 제자 세 명이 단약 제련에 성공한 후, 그는 먼저 약을 개에게 먹였더니 개가 즉시 죽었다. 그러자 위백양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세속을 등지고 가족을 버려 산에 들어왔으니 신선의 도를 얻지 못하면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죽음과 삶을 막론하고 나는 마땅히 이를 복용하겠다”라고 말하고 단약을 먹자 위백양은 곧 ‘죽었다’.
그중 한 제자가 오성이 매우 높아 이것이 사부님이 자신들을 고험하는 것이라 여기고 단약을 복용하더니 그 역시 ‘죽었다’.
나머지 두 제자는 겁에 질려 감히 단약을 먹지 못하고 사부님의 관을 사기 위해 산을 내려갔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위백양은 살아났고, 진단(眞丹)을 ‘죽었던’ 제자에게 먹여 두 사람 모두 도를 얻어 신선이 되어 떠났다.
이로 보아 연단술은 단순한 공예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적인 수련 법문이며, 그 성패 여부는 인간의 정신 및 신념과 강한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4. 단약 효력의 비밀을 풀다
80, 90년대 중국대륙에는 기공 열풍이 불었다. 당시 많은 특이공능자(초능력자)가 나타났고 수많은 기공사가 나와 기공을 전수하며 특이공능 시연을 곁들였다. 당시 나타난 특이공능은 귀로 글자 읽기, 손가락으로 글자 읽기, 염력으로 시계 바늘 돌리기, 특이 운반, 천목, 요시, 숙명통 및 기공 치료 등 매우 많았다.
첸쉐썬(錢學森)을 비롯한 사고가 비교적 개방적인 과학자들도 이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앞장서서 인체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기공, 중의(中醫) 이론과 인체 특이공능은 인체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도리를 잉태하고 있으며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현대 과학 기술의 가장 최첨단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그것들 자체가 과학 기술의 중대한 연구 과제이다”라고 여겼다.(《인체과학 기초 연구 전개》)
첸쉐썬은 홍콩 《문회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특이공능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직접 눈으로 보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특이공능을 지도자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지도자가 매우 과학적인 한마디를 했다. ‘아직 이해되지 않은 현상은 있을지언정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없다.'” (《특이공능과 과학 신영역》)
첸쉐썬은 고위 지도자의 허락을 얻은 후 당시의 형형색색 기공과 특이공능에 대해 많은 연구와 시험을 했다. 시험을 통해 그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실증했다.
“또 하나의 예리한 문제는 실천이 보여주다시피 기공으로 특이공능을 연마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이공능은 기공과 관련이 있으며 기공은 인간의 선천적 잠재력을 동원할 수 있다.”(《인체과학과 현대 과학기술》) 또한 “기공이 인민의 건강 보호와 질병 치료에 공인된 효과가 있다”라고 했다. (《계통공정론》)
그러나 기공 및 특이공능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과학자들은 정신이 그 속에서 중추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이미 현대 과학의 이론적 경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이에 첸쉐썬은 솔직히 말했다.
“물질과 정신이 함께 있으면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리나 기계처럼 물질만 처리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위성이나 원자탄을 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하지만 물질과 정신의 상호작용을 더해야 하니 이것은 복잡하다. 말하자면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것들이 좀 부족하게 되었다.”(《인체과학과 현대 과학기술》)
즉, 과학 이론으로 기공의 일부 현상을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이는 바로 현대 과학 이론의 협애함을 설명해 준다.
이에 첸쉐썬은 이렇게 호소했다.
“그러므로 인체과학의 기초 연구에는 반드시 기공사가 참가해야 하고 인체 특이공능이 있는 청소년이 참가해야 하며, 모든 연구원도 스스로 기공을 배우고 연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성적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연구를 이론적 높이로 밀어올릴 수 있겠는가? 심지어 관찰 테스트 결과조차 분석이 틀릴 수 있다.”(《인체과학론》)
분명히 이때 첸쉐썬의 특이공능과 기공에 대한 인식은 의심에서 연구, 믿음, 실천에 이르는 전 과정을 마쳤으며, 아마도 이때 첸쉐썬도 이미 기공을 수련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할 만한 점은 첸쉐썬이 기공이 심지어 미시 입자의 일부 특성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기제 연구, 즉 기초 이론 연구에서 칭화대학 루쭈멍(陸祖萌) 동지의 기공 외기(外氣)가 물분자 구조에 미치는 영향 연구는 외기가 분자 구조, 즉 분자의 가전자 결합과 전자 구름 분포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외기의 본질이 아마도 전자기파일 가능성을 설명한다.”(《인체과학과 현대 과학기술》)
외기가 전자기파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만약 기공으로 수련해낸 특이공능이 이토록 강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고인이 말한 연금술이나 금단을 제련하는 연단술은 과학적 관점에서도 완전히 설명이 가능하다. 연단 과정에서 연단자가 장기간 수행을 통한 정신 역량의 가지(加持)로 제련하는 단약을 변화시켜 그 본질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한 것이다.
첸쉐썬은 또 언급했다.
“첫째, 기공 연구의 출발점은 연공인의 실천에 입각해야 한다.
둘째, 한 층차 더 높여 기공사가 연공 실천의 경험을 총결하여 공법을 가르치는 책을 써야 한다.
셋째, 더 상승한 층차는 기공의 이론 서적이다. 예컨대 《주역참동계》가 그것이다. 이런 책들은 시대적 제한으로 인해 매우 고아하고 깊게 쓰여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표현 방식에 어느 정도 모호성이 있는데 고대인들은 모호한 언어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능했다. 중국의 문인들은 고산유수(高山流水)를 말하며 경지를 따지길 좋아했다. 기공 이론 서적도 이런 상황이며 게다가 개인적인 견해가 가미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최고급 층차일수록 가장 허구적이고 신비로워 이해하기가 가장 어렵다.” (《인체과학과 현대 과학기술》)
첸쉐썬이 언급한 《주역참동계》의 저자가 바로 앞서 글에서 말한 위백양이다. 이 책은 역대 연단가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가진다. 그러나 중국 과학의 최고 수준을 대표하는 첸쉐썬조차 그 심오함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당시의 과학 실험은 인체에 특이공능이 존재하고 기공이 병을 고칠 수 있음을 명확히 입증했으나 기공과 특이공능은 실로 너무나 현묘하여 사람들은 단지 그런 현상을 관찰할 뿐이었지 결국 기공을 명확히 설명해내는 사람은 없었다.
특이공능이 생성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기공사는 왜 병을 고칠 수 있는가? 왜 어떤 사람은 기공을 연마해도 병이 낫지 않는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의혹과 불이해가 있었다.
그러다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전하시면서 기공에 대한 연구는 완전히 새로운 높이로 올라서게 되었다.
리훙쯔 선생님께서는 불과 몇 마디 말로 사람들의 오랜 의혹을 풀어주셨다.
즉, “우리가 지금 말하는 기공은 실제로는 기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 고대인의 단독수련(獨修), 또는 종교로부터 온 수련이다.”(《파룬궁》)라고 알려주셨으며,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라고 점화해 주셨다.
리훙쯔 선생님께서는 또 사람들에게 수련의 본질을 밝혀 주셨으니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다.”(《전법륜》)
다른 모든 기공 공법이 점차 저조해지던 1990년대에 파룬궁은 기적적으로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사람들은 리훙쯔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真善忍)’을 원칙으로 삼아 심성 수련을 한 후 수련자의 심신에 거대한 개선이 있음을 발견했다. 많은 기공 애호가도 이로 인해 파룬따파 수련으로 전향했다.
수련과 심성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면 이 모든 것이 명확해지지 않겠는가? 수련의 한 방식인 연단술 역시 반드시 연단자의 심성 제고를 요구하지 않았겠는가?
《태평광기》에 기록된 두자춘(杜子春)의 수련 과정은 이 점을 더욱 직접적으로 증명한다. 그는 세상의 온갖 고난을 겪은 후 수도의 염원을 내어 운대봉의 도관으로 가서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수련할 때 그의 사부는 그에게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말을 하지 말라며 모든 것은 실재가 아니라고 당부했다. 사부가 떠난 후 병사들이 와서 그를 위협하고 맹수와 독충이 그를 해치려 하는 등 각종 공포스러운 일이 나타났다. 마귀들은 두자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그를 단번에 죽여버렸다. 그는 죽은 후 다시 지옥에 가서 혹형을 당하고 염라대왕에 의해 여자로 태어나는 벌을 받았으며, 성인이 된 후 노규라는 진사에게 시집갔다.
두자춘은 사부가 떠날 때 하신 말씀을 줄곧 기억하여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후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노규는 그녀가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미쳐버려 아이를 돌에 내동댕이쳤고 뇌수와 선혈이 튀어나왔다. 두자춘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비명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자춘은 자신이 다시 운대봉의 그 도관에 앉아 있고 사부님도 앞에 계심을 발견했다. 갑자기 자색 불길이 서까래로 치솟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맹렬해지며 연단로가 파괴되고 집도 타버렸다.
그의 사부가 말했다. “네 마음속에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오(惡), 욕(欲)은 다 버렸으나 오직 자식에 대한 정만은 아직 제거하지 못했구나. 노규가 네 아이를 내동댕이칠 때 네가 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선단은 완성되었을 것이고 너 또한 신선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가련하구나, 신선의 재목은 참으로 얻기 어렵구나! 나의 선단(仙丹)은 다시 제련할 수 있지만 너는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니 이후에 계속 부지런히 수도하거라!”
사실 선단을 복용하는 사람은 심성이 이미 신선의 그 층차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손사막은 후세 수련자들에게 권고했다.
“그러므로 양생하는 자는 단지 (신선의) 약을 먹고 노을을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온갖 행실을 겸비해야 하니, 온갖 행실이 두루 갖춰지면 비록 약을 끊어도 족히 장수할 수 있다. 덕행이 충실하지 못하면 비록 옥액금단(玉液金丹)을 복용하더라도 수명을 연장할 수 없다.”(《비급천금요방》)
진실로 옳은 말이다!
연단의 관건은 마음을 닦는(煉心) 데 있다. 후세의 많은 수도인이 점차 이 도(道)의 요의(要義)에서 벗어나 제련하는 공예에만 치중하면서 연단술도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중에는 점차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신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결론
사실 과학은 감정과 경험만으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단약을 독약이라고 말하는 거짓말이 근본적으로 중공에서 기인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무신론’의 스피커이자 증폭기가 되었다. 목적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신(神)에 대한 사람들의 바른 믿음(正信)을 파괴해 인류의 도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인류를 파멸의 심연으로 밀어 넣으려는 것이다.
중공은 ‘무신론’이란 삿된 설을 ‘과학’으로 포장해 유포하는 데 익숙하며, 그 속에 ‘미신’을 섞어 중국인들에게 맹독의 미혼탕을 들이키게 했다. 공산당의 폭압적인 전제 아래 소위 과학은 이미 정치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학계에서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은 이미 이러한 극단적인 연구 환경으로 인해 스스로 입을 닫았다.
사회의 변천에 따라 연단술은 점차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으나, 각 조대(朝代)마다 그것이 찬란한 문화를 남겼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인이 신을 신봉하고 신을 찾는 발걸음 속에서 기울인 거대한 노력을 엿보게 하며, 후세 사람들이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되찾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