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도인(無垢道人)
【정견망】
현주자가 철괴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동해로 가서 새해를 맞이했다. 원래 관구의 노교룡은 회해에서 실패한 후, 한 번 해구에 와서 영롱 갑문을 부수고 전당강을 점거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다. 이 일은 기밀이 엄밀하지 못해 동해의 순해관이 소문을 듣고 얼른 용왕께 아뢰었다. 노교 당에는 새 깃털이 많고 마교주의 성원도 있어 용왕 내외는 매우 중시했다. 하물며 왕비 모친의 묘가 그곳에 있으니, 일단 노교가 뜻을 얻으면 반드시 관구와 회해 마을의 두 가지 일에 원한을 갚으려고 먼저 왕비 모친의 묘를 잠기게 하여 훼손할 묻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왕비는 친히 십만 해족의 신병을 얻어 네 명의 태자와 각 신장을 거느리고 해구를 지켰다.
용왕의 수비가 빈틈없는 것을 본 노교는 계략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교룡의 꼬리로 해안으로 쓸어버려 파도가 만 길이나 일으켜서 백성들의 밭이나 집 소와 말, 사람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침몰시켰다. 노교는 화를 풀데가 없어서 남의 비웃음을 벗어나려고 한 것으로 볼수있다. 이것은 배가 아프면 부뚜막(조왕신)을 탓한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다. 사후에 용왕은 하늘 대전에 아뢰었다. 옥제는 성지를 내려 현주자를 보내 하계를 조사하게 하고, 즉 해녕 지방에서 토지신이 백성들의 꿈에 현몽하여 사당을 세워 진교정해선군으로 모시도록 하였다.
현주자가 부임한 후에도 두 번이나 바다로 나가 용왕 내외 부자와 절강의 바다를 지키는 계획을 논의했다. 현주자가 하늘에 부탁하여 군대를 파견하여 사당에 상주시키고 용왕이 병사를 파견하여 요새를 방어하는 것 외에 원래 절강의 조수는 向称浩龙용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해구의 양쪽 산이 좁고 우뚝 솟아 마치 봉쇄된 듯했기 때문이다. 전당강 상류의 지형은 하류보다 높고 험준하여 여러 면에서 포위되어 조수간만의 차이가 컸다. 현주자가 해녕(海寧)을 지키기 전, 원래 곳곳에 높은 조수가 있었다.
현주자는 노교가 조수에 떠서 잠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용왕과 상의하여 일월성신의 각 선군들을 불러 공동으로 법을 실시하여 각지의 높은 조수를 흡수하여 해녕 한곳으로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해녕의 일년 내내 조수는 매월 크고 작은 홍수 때를 제외하고 중원절 이후로 수집했다. 이때 노한 파도는 기이한 광경을 일으키는데 불리며 속칭 고혼조孤魂潮라고 불리며 종종 물이 사람의 머리 꼭대기까지 잠기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유명한 절강 조수는 진, 한秦漢 이래 오늘날까지 해녕이 가장 번성하다. 해녕의 조수가 8월 추석 이후가 가장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법이 시행한 후, 조수가 일어나고 내림은 언제든지 현주자가 보낸 신병들이 하늘에 서서 원근을 바라보고 있어서, 바다 요괴가 장난을 치면 먼저 제압할 수 있다, 다시말해 노교는 비록 몸을 변화시킬 수 있어서 비록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지만, 그것의 원형은 매우 둔하고 크다, 대체로 형상의 크기를 변화시키거나 다른 물건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도가 지극히 깊지 않으면, 비록 마음대로 수시로 변할 수 있지만, 예측하기 힘들어 원래의 형체만큼 편안하고 자유롭지는 않다. 공행이 가장 낮은 사람은 기껏해야 몇 시진밖에 변화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면 매우 피곤하고 움직일 수 없는 평범한 동물이 된다. 수련을 거치지 않은 평범한 호랑이, 표범, 승냥이, 심지어 개, 말, 매와 같은 것들도 그것을 죽일 수 있다.
심지어 너무 오래되어 혼백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해를 끼칠 적이 없어도 생명을 지키기 어렵다. 도행이 심오한 바른 신선은 몸이 유와 무의 중간에 있고 혼백이 허실의 경지에 있고, 변하든 변하지 않든 한 모습인데 그런 신선과 비할 수 없다. ?? 변하지 않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어쨌든 몸과 영혼은 의지할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진짜 신선을 제외하고는 함부로 쉽게 변하면 안된다. 때때로 부득이한 사고로 인해 마음대로 모양을 바꾸어도 그들은 시시각각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몸이 조금만 불편하면 빨리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변환하는 것이 낫다. 이것은 수도인이 변화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인 천연의 계급이다. 예를 들어, 노교 이런 것은 수련한 나이가 확실히 적지 않지만, 나쁜 짓을 여러 가지 많이 했고, 고생을 겪는데 게을리하여 수만 년의 세월이 모두 세력을 다투고 모함하는 중에 어느새 사라졌다. ‘
그래서 그것은 처음 천여 년 동안 진보가 가장 빨랐고 그때는 뜻대로 변할 수 있었다, 천 년이 지난 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정도의 재주에 불과하다. 조금도 첨가되지 않았고, 단지 퇴화되지 않은 것만해도 얻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때의 상황에 따르면, 대략 하나의 물건으로 변하거나 혹은 큰 것이 작은 것으로 변하고,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변해도 한두 달은 버틸 수 있다. 1~2일 후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해야 다시 변할 수 있다. 변하고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고를 비교하면 자연 그대로 맡기고 아무런 징후도 없는 상계의 금선과 비교하면 역시 너무 차이가 난다. 단기적인 변화 중에서 한두 달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노교는 진취적이지 않고, 매일 하등의 요정과 한패가 되어, 그 물건들 중에서 왕으로 군림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교만해져서, 세상에 그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회해 마을에서 큰 소란을 피우고 홍합궁이 실패한 이후로 바다 밑바닥에 숨어 있은지 이미 천 년이 되었다. 이때부터 옛날 버릇이 되살아나고 야심이 발동하여 전강(전단강)을 점령하고 작은 조정을 독립할 계획을 세웠다. 강 하구의 수량을 논하면 그렇게 크지 않고 대부분 얕은 여울이 많아, 이렇게 큰 몸집으로는 절대 편히 살 수 없다. 그것이 이용한 것은 강 중간에 조수가 크고 또 그 해 곳곳에 조수가 있기 때문에 물살을 불리고 물의 양을 증가시켜 그것이 몸을 숨겨 출입할 수 있었다.
지금 현주자가 용왕과 함께 성주를 불러들여 물을 흡수하고 조수가 모이는 곳은 신병들이 지키고 있어 그것의 몸이 진입하기 쉽지 않다. 설령 운좋게 몰래 건넌다 해도 상류는 물이 얕고 조수가 평평해서 결코 교룡이 숨을 곳이 아니다.
그래서 노교의 웅대한 포부가 사라졌고, 감히 남쪽을 향할(왕이 된다는 뜻) 생각을 품지 못했다. 하지만 그 현주자를 미워하는 것은 그 어떤 원수보다 더 심했다. 그래서 급히 영취산으로 가서 통천교주에게 호소하여 파병하여 원수에게 복수를 요청하는 한편 바다 밑에 숨어 있다가 이쪽이 조금 소홀해지면 기회를 틈타 재기할 수 있다. 설령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현주자를 낙화유수-꽃이 시들게 한다는 뜻-로 만들어 편안히 살 수는 없게 하려고 했다. 이것은 노교가 정한 독한 마음毒腸이었다. 그가 비록 잠복해 있지만 대개 월왕 구천이 와신상담하는 상황과 같다. 이쪽의 현주자는 당연히 노교가 아직 살아있다고 예상하였기에 여기서 손을 놓지 않고 그곳에서 날마다 노교를 제압하여 근본적인 숙청을 꾀하려고 했다. 정사 양방이 서로 대치하는 승부의 성패는 뒷글에서 달리 설명할 것이다.
남채화가 세상에 나온 후 어느덧 열 살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강 맞은편 왕가의 월영 아가씨와 약혼을 했기때문에 양가 부모님도 매우 막역하게 왕래했고, 더욱이 드물게 채화의 아버지 남문(蓝文)과 월영의 어른 왕광(王光)은 모두 매우 대범하고 작은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들 딸이 나이가 많은 것을 보고, 가르침의 편리함의 견지에서, 남문 가에서는 모(毛)씨 성을 가진 선생을 청해 집에서 가르치도록 했다. 왕광도 선생을 모시려고 했는데, 자신이 비록 체면이 좀 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아, 가르침을 청할 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시골 지방에서는 좋은 선생이 드물어. 게다가 여자의 집에서는 선생의 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저곳을 탐방하고 있을 때, 남문 가에서는 개관을 앞두고 있었다. 남문은 특별히 성대한 연회를 열어 선생을 대접하고 손님 몇 분을 모셨다. 모두 이 지방의 명망 있는 선비들이었다. 왕광은 사돈이자 친한 친구로 당연히 초대되었다.
이 자리에서 왕광은 그 모선생이 환갑이 넘어 수염이 허연 것을 보았다. 그를 보니 예의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예의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나이로 보나 덕행으로 보나 품행이 모두 높고 엄숙한 선생으로 보여 마음속으로 매우 존경스러웠다. 그와 잠시 이야기 해보고 또 그의 학문에 깊이 탄복하였다. 무심코 문득 고개를 돌려 남문에게 웃으며 “사돈의 홍복이 있어 이렇게 좋은 분을 모시니 아우는 지극히 우러러 보입니다. 소녀와 공자는 동갑인데 올해에는 우리도 그녀에게 몇 년 동안 공부하게 할 작정입니다. 비록 여자가 반드시 학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세대의 집안 형편에 딸이 일자무식이면 너무 어울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녀는 이미 공자와 약혼했으니, 훗날 남가의 며느리가 될 것입니다.
귀댁은 대대로 학자 집안이라 줄곧 몇명 소저들도 모두 시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소녀가 만약 조금의 학문이 있으면 장차 시집오면 동서지간에도 빛이 날수 있을 것입니다. 소제는 이 때문에 그녀를 3, 4년 정도 교육시키고 싶었습니다. 무슨 깊은 공부가 아니라 대략 글의 이치만 통하고 성현의 대의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어찌 우리 마을이 외지고 작은데 좋은 선생님을 한 분 모시지 못해 마음이 답답합니다. 오늘 보니 귀댁의 스승님은 연세답게 덕도 훌륭하시고, 학식도 훌륭하신데, 아우님을 사귀지 못한 것을 매우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주견을 정했으니 사돈께서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문(蓝文)은 “우리는 절친한 친구인데, 무슨 일인들 의논할 수 없겠습니까? 알려주십시오. 따르지 않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왕광이 말했다: “딸을 사돈 댁에 보내어 서당(副塾)에 다니게 하여 글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하나는 제가 다시 스승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둘째는 소녀가 어리석지 않으니 아드님과 함께 겨룰 수도 있습니다. 비록 약혼을 맺었지만, 관례대로라면 젊은 부부는 만날 수 없소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관례에 얽매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눈앞에서 혐의를 피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1, 2년 후에 제가 좋은 선생님을 모신 후에 다시 의논하겠습니다. 사돈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남문은 “이것은 가장 좋은 일인데 제가 어찌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형수님 부인은 영애가 슬하를 떠나게 될까 봐 걱정할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죠?” 왕광은 웃으며 “형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소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행히도 서로의 안식구들은 이미 서로 왕래하며 마치 오랜 친척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안사람이 소녀를 걱정한다면, 조만간 강을 건너와 좀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양해하기가 아마 그렇게 난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문은 “이게 좋겠군요. 내일 공부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모레 여기서 사람을 보내 수레를 준비시키고 강을 건너 소저를 모시러 가겠습니다.” 왕광은 크게 기뻐했다. “돌아가서 안사람과 상의하여 길일을 택하여 다시 보내겠습니다, 마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문도 승낙했다.
왕광은 집으로 돌아와 부인 우씨와 이 일을 이야기했다. 우 씨는 먼저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는 이 딸 한명 뿐인데 일찍 시집가기로 허락했으니 크면 집을 나가야 합니다. 지금 나이가 아직 어리고 마침 몇 년을 함께 보냈는데, 하필이면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서 공부하게 하니, 다른 사람이 아이를 잘 돌봐줄 지 알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들으니 남가 사돈의 부인 호씨가 아주 교활하고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딸은 천진난만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릅니다. 만약 호씨 가문에 미움을 사고 서로 원한을 품는다면, 장차 시집가서 평생 고생을 하지 않겠습니까?”
아내가 이렇게 나오자 왕광은 기분이 상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며 이미 입 밖에 낸 일인데, 더구나 자기가 남에게 부탁한 일을 아무 이유 없이 번복하면 어찌 남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씨에게 정색을 했다: “이게 다 여자들의 소견이다. 서로 지척에 있으니 시집가더라도 매일 왕래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하루 종일 서로 의지해야 모녀의 정다운 모습이 보일 수 있겠소?” 우 씨는 원래 남편을 무서워했고 남편이 마음을 굳힌 것을 알고 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한바탕 고집을 부려봐야 결국 여전히 그의 생각대로 돨 것이고, 부부의 정만 상하게 될테니,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겠는가! 잠시 생각한 끝에, 체면을 버리고, 한마디로 허락하고, 3일 후 길일을 택해 월영을 강건너 남씨 집에 보내어 입학시켰다.
월영(月英)은 비록 여자 아이지만, 어려서부터 예절을 잘 알았다. 일곱 살 때부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대신해서 공부를 시켰고, 뱃속에 이미 많은 경서와 시문이 가득 찼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런 문학에 있지 않고, 방외의 도가경전, 특히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팔, 구세에 유창하게 읽을 수 있었다. 올해 열 살이 되어 지식이 더욱 충만해지고, 뜻밖에도 말밖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서, 자주 향을 피우고, 암송하고, 묵묵히 따져보고 묘한 깨달음이 있는 듯 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도가서적에 대하여 더욱 연구함을 귀찮아 하지 않고 진리를 물었다. 그래서 마음은 맑고, 유유히 세상을 떠날 생각을 했다. 매번 전생의 경험을 생각하면 많은 참혹한 일들이 혼인으로 인해 생겨났다.
이제 첫 번째 고비는 부부라는 두 글자를 먼저 깨뜨려야 했다. 하지만 겁과 생을 같이하며 함께 도를 닦기로 약속한 남채화는 요 몇 년 동안 날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잘먹고 잘 지내면서 물욕에 영성이 가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의 마음이 이미 변했다면, 반드시 부부의 도리로 서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나는 간곡하게 타이를 것이고, 만약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면, 오직 나 홀로 멀리 태화산으로 가서 내 전생의 사부님을 찾아갈 것이다. 스승님의 도덕이 하늘만큼 높으니 반드시 그를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고 나도 안심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늘 그녀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으나 부모님 앞에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때에는 자매들이 함께 놀러나갔을 때 한가로이 앉아서 마음을 나누는데, 다른 사람은 각자 뜻이 있어서 혹은 부잣집 도련님이나 재주있는 신랑을 얻기를 원하나, 오직 그녀 혼자만이 눈을 감고 앉아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이미 좋은 남편감을 가졌으니 분명 마음이 매우 안정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비웃었다. 그러자 월영은 냉소를 지으며 “사람마다 마음이 있고 마음도 다르다. 나의 취향은 너희들과 완전히 반대인데, 내가 어떻게 말참견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얼른 물었다: “너의 취향이 어떤데?” 그녀는 웃으며 “재능있는 사람의 재능이 산처럼 크더라도 100세도 못 넘고 초목과 같이 썩는다. 재물이 있는 자는 바다와 같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 해도 60, 70년은 더 못 쓴다. 정신이 쇠하기만 하면 돈이 있어도 사용할 능력이 없다. 하물며 세상일은 무상하니 재물이 많으면 재앙을 부를 수 있으니 가장 쓸모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일반 사람은 투철히 알지 못해 ? 인생의 유한한 세월을 색과 명예와 이익 속에 실컷 놓아두었다가 갑자기 죽음이 닥치면 모든 일이 다 끝난다. 평소에 근근이 다투어 하나씩 하나씩 이루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므로 언니들이 바라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듣고는 왁자지껄하며 물었다 “너의 취향을 물으니 알려주지는 않고 남의 말은 한바탕 나무라니 뭐하자는 겐가?” 그러자 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언니들은 내 말을 쓸데 없는 비평으로 듣는구나. 그래서 내 취향을 언니들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자 다들 웃으면서 그만두었다.
월영은 눈앞의 자매들이 하나같이 재능과 용모를 가지고 있으나 오로지 명리에 얽매여, 어떤 자주적인 힘도 없는 것을 보고, 갈수록 세상의 명리라는 두 글자는 정말 보이지 않는 질곡, 영성을 베는 도끼이며 가장 무서운 것으로 느꼈다. 동시에 갈수록 남가의 낭군이 이런 쓸데없는 일에 현혹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다면 이번에 하세하여 수도에 희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의 장벽이 한층 더해져 큰 재난이 더해질 것이다. 그리고 철괴 선사의 좋은 뜻을 저버리면, 앞으로 영원히 입도할 수 없을 것이다.
매번 생각이 미칠 때마다 그를 위해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이미 아내가 되어 시집가기 전에는 관례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아무리 경고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원래 정이 깊고 의리가 깊은 사람인데, 채화에 대해 생사를 같이한 우정도 있고, 부부관계도 있고, 선사께서 특별히 그들을 같이 죽고 같이 태어나게 해주신 것도 있다. 다른 우정은 없지만, 이치로도 채화를 마다하고, 홀로 대도를 찾을 수는 없다. 한 치의 조용한 마음이 오히려 타인의 앞길에 어지러워져 잠시도 평온할 수 없었다.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머니 방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남공자가 젊고 잘생기고 다재다능하고 뛰어나 예로부터 유명한 신하들과 비교하며, 스무 살도 채 못되어 대신이나 재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을 보니, 뜻있는 선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월아의 일생은 걱정이 없다. 유 부인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사위가 이렇게 뜻을 세우는 것을 들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고개를 돌려보니 월영이 한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부인은 웃으며 남편에게 “보세요, 우리 월아가 당신 말을 듣고도 잠자코 있네요. 이게 무슨 이치죠?” 왕광은 웃으며 말했다: “여자애야, 그녀가 이렇게 부끄러워할 줄 아니 얼마나 좋겠니! ” 부인은 월영을 끌어안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들어 한바탕 쓰다듬으며 “얘야, 너는 남 공자의 말을 듣지 못했구나, 그렇게 뜻이 있고 재능이 있구나. 젊은 나이에 벌써 몇 사람의 앞장을 서고 무슨 벼슬을 하겠다고 하니! 얘야, 공자가 고관이 되면 너는 이미 마나님이 된 것 아니냐?”
월영은 먼저 부친의 말을 듣고 이미 마음속으로 괴로워했다, 자신이 평소에 깊이 염려하던 문제가 뜻밖에도 실제 일이 되어 버렸으니 이미 괴로운 것이었다. 더욱이 어머니도 그랬다,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말도 안되는 말까지 하니, 그녀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문득 그녀의 뺨이 붉어지고 秋波流晕 순식간에 두 줄기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왕광 부부는 깜짝 놀라며 “사랑하는 아이야, 왜 그러냐?”
월영이 어떻게 대답할지는 다음 번에 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