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劉曉)
【정견망】
고인은 바둑을 아주 즐겼다. 청대(淸代)에 범서병(範西屏), 시양하(施襄夏), 황룡사(黃龍士)라는 삼대기성(三大棋聖)이 배출되었는데, 그중 범서병(範西屏, 1709년~1769년)은 절강(浙江) 해녕(海寧) 사람으로 바둑 스타일이 빠르고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평생 바둑을 두고 제자를 가르치는 데 전념했으며 말년에 양주(揚州)에 머무는 동안 《도화천혁보(桃花泉弈譜)》를 수정했다.
사료에 따르면 범서병은 세 살 때부터 바둑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산음(山陰)의 유장후(俞長侯)를 사부로 모셨으며 열두 살에 이미 사부와 명성을 나란히 하여 강동(江東)에 이름을 떨쳤다. 열여섯 살에 송강(松江)을 유람하며 명가들을 차례로 이겼고 이때부터 천하에 이름난 국수(國手)가 되었다. 건륭(乾隆) 4년(1739년)에 시양하와 절강 평호(平湖)에서 열 판의 바둑을 두었는데 이를 역사상 당호십국(當湖十局)이라 부르며 고대 좌자제(座子制) 바둑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십 대 무렵 범서병은 경성(京城)에 와서 각지의 고수들과 겨루어 백전백승했다. 당시 그보다 나이가 두 배 이상 많은 황(黃) 씨 성의 바둑 기사가 있었는데, 그는 범서병이 이름을 얻기 전 가장 유명했던 기사로 오랫동안 왕공대신들 사이를 오가며 무한한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두 명의 최고 고수가 경성에서 만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왕공대신들이 앞다투어 내기를 걸며 두 사람을 초대해 대국을 열었다. 청나라의 《권계록(勸戒錄)》은 이 대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판이 채 끝나기도 전 한 귀퉁이를 다투어 승부를 가려야 할 때 범서병은 황 씨가 바둑알을 쥔 채 한참 동안 두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선생께서는 설마 재대결을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까?”
황 씨는 그 말을 듣자 안색이 크게 변하며 말했다.
“업보(孽債)로다! 하늘이 내 목숨을 거두려 하는데 내가 무엇을 더 다투겠는가?”
그러고는 황 씨가 일어나 바둑판을 밀어버리더니 갑자기 쓰러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황 씨의 이전 일을 아는 이들은 범서병이 한(韓) 씨의 전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한 씨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범서병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 씨와 황 씨는 과거에 바둑을 둔 적이 있었는데 당시 승부를 다투던 국면이 지금과 똑같이 한 귀퉁이를 차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과응보라니 여기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한 씨는 절강 부춘현(富春縣, 지금의 항주 부양구富陽區) 사람으로 어느 부(部)의 시랑(侍郎)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바둑에 능했지만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루는 시랑이 황 씨를 청해 바둑을 두게 했는데 한 씨가 곁에서 구경했다. 대국이 끝난 후 한 씨가 시랑에게 말했다.
“황 선생의 바둑 실력이 남북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공수법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 그를 무적이라 합니까?”
시랑은 한 씨의 바둑 실력을 시험해 보고자 다시 황 씨를 청해 한 씨와 대국하게 했다. 처음에 황 씨는 한 씨가 젊은 것을 보고 가볍게 여겼으나 포석이 시작되자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발견했다. 이에 전력을 다해 방어했으나 때때로 곤경에 처했다. 황 씨가 기발한 수를 냈지만 한 씨는 이를 하나하나 해결했다. 세 판을 두었는데 황 씨가 모두 패했다. 그러자 황 씨는 바둑판을 밀어내고 일어나 말했다.
“내가 오늘 몸이 좋지 않으니 다른 날 다시 선생과 승부를 내겠소.”
이후 황 씨의 명성은 다소 떨어졌고 한 씨의 뛰어난 바둑 실력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바둑을 좋아하는 한 왕야(王爺)가 이 소문을 듣고 그를 왕부(王府)로 불러 바둑을 두었다. 두 사람은 진시(辰時, 오전 7시~9시)부터 정오까지 바둑을 두어 두 판을 비겼고 마지막 판에서 한 씨가 반 집을 졌다. 사실 부름을 받고 갈 때 사자가 미리 일러주기를 왕야는 승부욕이 강하다고 했다. 한 씨는 왕야의 기분을 맞추면서도 자신의 명성을 실추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공격과 후퇴 사이에서 평소보다 수 배나 더 깊이 고민하며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황 씨도 한 씨가 왕야와 바둑을 둔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씨가 왕부를 떠나 돌아가는 길에 그를 가로막고 오늘 실력을 겨루고 싶다고 했다. 이는 분명 남의 위기를 틈타는 짓이었다. 한 씨는 거절하며 다른 날을 기약하자고 했으나 황 씨는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한 씨는 무리하게 대국에 임했다. 국면이 한 귀퉁이를 다투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한 씨는 오랫동안 생각하며 바둑알을 놓지 못했다. 그러자 황 씨가 냉소 섞인 말로 비아냥거렸다. 한 씨는 그 말을 듣자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연달아 선혈을 뿜어냈고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세상의 인과의 순환이란 참으로 어긋남이 없다. 한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범서병이 태어났다. 범서병이 자란 후 황 씨와 대결했을 때 황 씨가 죽기 전의 모습과 죽는 형상은 당년의 한 씨와 똑같았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이 범서병을 한 씨의 환생이라고 믿는 이유다. 그의 바둑 실력은 틀림없이 전생의 기억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