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한 성(姓)을 꿰뚫어 몸이 돌아왔으니
오직 신선 명부(仙籙)에 이름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네.
단칼에 마심(魔心)을 잘라낸 오공은 원숭이 털을 거뒀지만 여전히 몸에 붙지 않는 털들이 약 30~50개 정도 남아 있었는데 바로 혼세마왕에게 잡혀갔던 작은 원숭이들이었다.
오공은 원숭이들과 함께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수장동을 불태워 화근을 제거했다. 몸을 깨끗이 정화하니, 정말로 정신이 맑아지고 백규(百竅, 백 가지 구멍 즉 온몸의 수많은 구멍)가 시원하게 통했다. 이어서 근두운을 타고 술법을 부리며 순조롭게 원숭이들을 데리고 화과산 수렴동으로 돌아왔다.
동굴에 있던 원숭이들과 함께 줄을 서고 나이순으로 절을 올리며, 술과 과일을 차려 놓고 환영하고 기뻐했다. 무리들이 마를 항복시키고 아이들을 구한 일에 대해 묻자, 오공이 그 경위를 한번 이야기해 주었다. 모두 손뼉을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말했다.
“대왕님께서는 어디로 가셨기에, 뜻밖에 이토록 훌륭한 재주를 배우셨습니까!”
오공은 몇 번이나 바다를 건너 신선을 찾아 도를 구하고, 인간 세상에서 유람하며 사람의 예절을 배우고 사람의 옷을 입고, 세상의 정을 꿰뚫어 보았다고 말했다. 서우하주(西牛賀州) 경계에 이르러 오랫동안 찾은 끝에 다행히 한 노조(老祖)를 만나 하늘과 수명을 같이하는 참된 공과(功果)와 죽지 않고 장생하는 큰 법문(大法門)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무리들은 모두 축하하며 말했다.
“만겁(萬劫)에도 만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작은 원숭이들은 오성(悟性)이 있어서, 이처럼 큰 기연은 얼마나 많은 겁난을 겪어도 우연히 마주치기 어려운 일인데,오공이 얻었으니 참으로 큰 조화(造化)라고 했다.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 있었으니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기쁜 일이 또 하나 있다. 우리 일문(一門)에도 성씨가 생겼다.”
오공이 말했다.
“나는 이제 손(孫)씨이고, 법명은 오공이다.”
원숭이들은 이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며 말했다.
“대왕님께서 손씨 집안의 시조(老孫)시니, 저희는 손씨 집안의 이대 손, 삼대 손, 그리고 그 아래 항령의 손씨가 되겠군요, 온 가문이 손씨요, 온 나라가 손씨요, 이곳도 손씨가 되겠군요.”
이 한 무리의 손씨들을 보라. 실로 한 사람이 도(道)를 이루니, 닭과 개도 하늘로 올라가는 격이다. 그들의 원숭이 왕인 오공이 도를 증득하여 신선이 되자, 이 중생들도 따라서 수위가 높아져 왕의 세계에 동화된 것이다. 한 사람이 행운을 얻으니, 만(萬) 중생이 따른다.
이것이 바로 왕의 책임이다.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 공양을 받는 동시에 또 중생을 위해 좋은 출로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중생을 이끌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도록 하고, 사상을 통일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화과산도 오공의 작은 세계이다. 오공이 대도를 증득해 장생을 얻었기에, 나중에 음조(陰曹) 지부(地府)에 붙잡혀 가서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생사부(生死簿)에서 무리들의 이름을 지워버려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장생불사하게 된 것이다. 중생으로서 오직 왕의 의지와 일치하기만 한다면, 왕의 비호 아래 수위가 따라서 높아질 수 있다.
일규가 열리면 백규가 열린다. 공능의 각도에서 보자면, 신체가 고에너지 물질로 전환되어 선체(仙體)를 이루었으므로 의지(意志)의 집행이 신속하고 통일되어, 무엇을 하고 싶으면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조화(造化)의 힘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일념으로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생성할 수 있다(예: 여와가 사람을 창조한 것과 같이). 물론 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신선의 품계는 매우 많고, 오공은 겨우 신선의 가장자리에 손을 댄 정도이다. 법리적인 각도에서 보면 더욱 광범위하다. 우리의 에너지장 범위 내의 모든 생명 물질은 왕의 부름을 받아들이고, 왕의 의지와 일치하는 것이 동화(同化)이며, 왕의 의지와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정화되어 사라진다. 예를 들면 혼세마왕이다.
마왕은 본체의 변이(變異)된 물질, 즉 원신(元神)이 마(魔)로 변한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소업이란 사실 진아(真我)를 되찾는 것이며, 타락했던 진아의 일부를 되찾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수련 중에 겪는 고통, 마난은 구세력이 우리에게 강요한 박해를 포함해서,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원신이 타락할 때 맺은 인과일 것이다. 다만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감당하셨기 때문에 아주 작아진 난(難)이지만, 관건적인 시각에 사람마음의 집착이 심해져 구세력이 그것을 확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근원을 따져보면 사람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면 많은 번거로움을 미리 피할 수 있다. 자신의 사람마음을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많은 경우 주의식이 강하지 못하여 오히려 사람마음에 통제당하고 정념(正念)을 억압하고 사념(邪念)을 부풀리면, 이때가 바로 구세력이 거리낌 없이 박해할 명분을 얻는 때이다. 자신이 구해 얻은 것이니, 사부님조차 간섭하실 수 없다.
수련의 목적이 원만(圓滿)임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원만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중생을 구해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원만을 생각한다. 최근 나는 이것이 원신(元神)의 원만을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본체에는 불성(佛性)도 있고 마성(魔性)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층층이 아래로 내려올 때 생긴 인과이며, 선천(先天) 원신의 출생지는 분명 순정하고 아름다우며, 진선인(真善忍) 우주 특성 속에서 탄생한 생명은 마성(魔性)이 없어서, 순진(純真), 순선(純善)하며, 모든 악마의 난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강대한 생명이다.
그러나 변이되었기에 비로소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성이 생겼다. 그러므로 마성 또한 원신에서 변이되어 분리된 잡질(雜質)이며, 점차 변이되어 법에 부합하지 않게 된 원신의 일부이다. 수련 중에 마성을 제거하고 업력을 소멸하는 것은 또한 변이된 원신을 회수함으로써 진아(真我)를 더욱 강대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점차적으로 업을 소멸하고 제고하는 것은 또한 자신의 원신을 점차적으로 원만하게 해서, 선천적으로 태어났을 때의 순정(純淨)함, 심지어 그보다 더 순정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문을 다 열어 아예 문을 두지 않으셨고, 자신의 생명 본원으로 우리를 씻고 정화시켜 주시니, 이는 또한 수련에 상한선이 없음을 의미한다. 당신이 얼마나 담대하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수확을 얻을지가 결정되며, 우주의 지혜는 모두 사부님께서 전하신 우주 대법 속에 담겨 있다. 얼마나 얻을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바람과 정법 속에서의 정진하는 정도, 그리고 실천에서의 행동에 달려 있으니, 참으로 만고의 기연이다!
현재 나 역시 잠정적으로 여기까지밖에 깨닫지 못한다. 만약 굳이 더 깊이 파고들어 끝까지 파헤치려 한다면, 머리가 아프고 뇌가 고통스러워진다. 글쓰기 또한 막혀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시리즈를 6편까지 쓴 후 2년 동안 간격이 생겼던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화과산이 머리에 해당하고, 수렴동 아래에 연결된 바다는 아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식해(識海)인 니환궁(泥丸宮)일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꼭 써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쓸 수 없었다. 2년 동안 몇 번이나 펜을 들었지만 이루지 못했으니, 근심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억지로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그랬다. 쓸 수 없다는 것은 오성(悟性)이 부족한 것이고, 또 하나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니환궁은 수련의 핵심이며 또한 우주의 축[軸心]이니, 지극히 현묘하고 오묘하여 쉽게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내가 왜 굳이 이 부분에 집착하는가? 다른 각도에서 쓰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초안을 삭제하고 다시 시작하여, 이 연결고리를 건너뛰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비교적 순조롭게 써지고 있다. 다만 2년의 세월을 허비한 것이 아쉽다. 이 2년 동안도 정말 힘들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고, 심성적으로도 고통스러웠지만, 다행히 잘 이겨냈다. 세상에 헛된 고통은 없으니, 사고방식이 이전보다 훨씬 개방되었고 심성도 활달해졌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써지는 데까지 쓰려고 한다. 어차피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나 자신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니, 왜 굳이 나 자신을 만족시켜야 하는가.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더 이상 억지로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 나는 정말 일규가 열리면 백규가 열림(一竅通百竅通)을 느끼는데 무엇이든 다 이해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관이 찾아오고, 한참 동안 끙끙 앓은 후에야 여전히 깨닫지 못해서 막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규문(竅門), 하나의 규문을 돌파해 나가는 것에 수련의 묘미가 있다. 정말 기쁘기도 하고 근심스럽기도 하니, 여전히 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도도한 속세(紅塵)는 재미도 없고 번거롭지만,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도 많은 순간 할 수 없으니, 그 속의 맛은 정말 쓰라리다!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언제쯤 끝이 있을까 탄식한다! 집착이 남아 있으니 전부 근심스러울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2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