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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공성계(空城計)

앙악

【정견뉴스】

‘공성계’는 중국 고대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하나로,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상대할 때 적장의 성격과 심리를 이용해 오판을 유도하는 심리전술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삼국연의』에서 제갈공명이 서성(西城) 성루 위에서 담담히 거문고를 타며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있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인 북송 시기, 명장 양연소는 오늘날의 하북성 경내에서 다시 한번 공성계를 펼쳐 한창(韓昌)의 5만 대군을 격파하며 이 고전적인 계책을 재현했다.

제갈량 공성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가 겨울 궁전 박물관 소장. (공유 영역)

중지를 모아 하루 만에 성을 쌓다

양연소가 삼관구(三關口)를 수비하던 시기, 한창(韓昌)이 곧 5만여 대군을 이끌고 침범하여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인근 거점을 점령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양연소는 소식을 듣자마자 맹량(孟良)과 초찬(焦贊)을 데리고 적을 맞이하기 위해 즉시 출발했다.

거점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매우 퇴락하여 방어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휘하 장수들은 대응 방안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양연소는 초찬과 맹량에게 물었다.

“적군이 우리 군의 수배에 달하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방어하면 좋겠는가?”

초찬이 대답했다.

“사력을 다해 굳게 지켜야 합니다!”

맹량이 대답했다.

“이곳은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수비하기에는 유리하나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거점의 배후지가 너무 좁고 퇴락하여 수비가 힘듭니다. 유연하게 병사를 운용하여 싸우면서 후퇴해야 합니다.”

양연소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대들의 의견은 모두 취할 점이 있네. 허나 병법 운용의 묘미는 일심(一心)에 달린 법이다. 나에게 적을 깨뜨릴 계책이 이미 있으나, 그대들이 과거 나무꾼과 양치기였을 때의 솜씨를 발휘해야겠다. 즉시 수백 마리의 양과 성을 쌓을 목재를 사 오되, 빠를수록 좋다.“

초찬과 맹량은 목재를 준비하는 것이 성을 수리하기 위함임을 이해했으나, 양을 사는 것은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수(主帥 사령관)의 군령이 내려졌기에 서둘러 준비하러 갔다.

반나절 후, 맹량과 초찬은 인근 마을에서 대량의 목재와 수백 마리의 양을 징집했다. 양연소는 맹량에게 병사들을 이끌고 방목하게 하여 양들이 먼저 배불리 먹고 마시게 했다. 그는 또한 수천 명의 장병과 마음을 나누며 격려했다.

“요나라 대군이 언제든 들이닥칠 것이니, 여러분은 반드시 최단 시간 내에 축성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는 수천 명의 병사를 수십 개의 조로 적절히 나누어 각자 땅을 파서 성을 쌓고, 기존의 연락 밀도를 정비하게 했다. 어느 조가 가장 먼저 공정을 완료하느냐에 따라 큰 상을 내리기로 했다. 모두가 힘을 합친 끝에 하루 만에 사방 1리 남짓한 작은 토성이 완공되었다.

완공 후 모두가 기뻐 날뛸 때, 양연소는 장병들을 성 밖 숲으로 이동시켜 휴식하게 하고 성을 비워두라는 명을 내렸다. 이어 맹량 등에게 배불리 먹인 양들을 하나씩 매달고, 양들 뒤에 군고(軍鼓)를 놓게 했다. 사람들은 이 거동을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정비를 마친 후 양연소는 양 떼를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전생에 악업을 지어 이번 생에 축생도(畜生道)에 들어 양의 몸으로 태어나 갚는 것이다. 내일 한창이 오면 필시 죽음을 면치 못하겠으나, 이로써 업의 빚을 갚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성 밖 숲으로 돌아갔으며, 적의 동태를 보고하기 위해 소수의 정탐꾼만을 근처에 숨겨두었다.

양이 북을 쳐서 요나라 병사 5만 5천 명을 놀라게 하다

다음 날 오전, 한창이 5만여 대군을 이끌고 왔다. 멀리서 보니 본래의 작은 거점이 이미 성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기에 언제 성이 생겼단 말이냐?”

부대가 가까이 다가가자 토성 안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점점 더 요란해졌다. 성벽 위에는 양가군(楊家軍) 장수들의 깃발이 가득 꽂혀 바람에 휘날리니 그 장관이 대단했다. 이때 부장 대붕(大鵬)이 말했다.

“두령님! 양육랑(楊六郎)은 지략이 뛰어나니 이 성 안에는 분명 매복이 있을 것입니다. 저 북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한창은 지난번 포위 진형에서 당했던 교훈을 떠올리며 대군을 돌려 다른 관문을 공격하려 했으나, 얼마 못 가 후회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방 1리도 안 되는 성에 병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많아야 만 명도 안 될 것이다. 다른 관문을 공격해서 승패를 알 수 없으니 지금 여기가 가장 공략하기 좋다. 연이은 패전 끝에 작은 승리라도 거두는 것이 낫다.’

그러나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는 여전히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정탐꾼을 먼저 보내 관찰하게 했다. 몇 시간 후 정탐꾼이 돌아와 보고했다.

“성 안의 북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대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창은 소식을 듣고 대붕에게 천 명의 선봉대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게 했다. 뜻밖에도 공성차로 한번 부딪히자마자 성문이 열렸다! 대붕이 성안으로 진입했으나 병사 한 명 보이지 않았고, 오직 수백 마리의 양들이 매달린 채 북을 치는 것만 보였다.

한창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고 몹시 분노했다. 본대를 성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머지 병사들은 성 밖에 진을 치게 했다. 그는 매달린 양 떼를 보자 화가 치밀어 사람들에게 양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 양들을 감히 죽이지 못했다. 그들이 보고했다.

“양들이 전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니, 이런 상황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한창은 이를 보고 크게 노하여 큰 창을 휘둘러 그 자리에서 양 몇 마리를 죽이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겁쟁이들아, 죽이지 못할 게 무엇이냐! 다 내 책임으로 돌려라!”

그제야 병사들은 감히 양을 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창은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며 모두에게 술과 고기를 먹여 하룻밤 광란의 파티를 벌이게 했고, 내일 중원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요나라 장수 대붕이 이때 한창에게 조언했다.

“두령님! 아무 이유 없이 수백 마리의 양이 나타난 것은 반드시 계략이 있는 것이니 엄격히 경계해야 합니다!”

한창이 대답했다.

“바보 같은 소리! 우리 군은 병사도 많고 장수도 넓으며, 이 근처는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가 땅을 뚫고 성으로 들어오기라도 하겠느냐? 자, 함께 술이나 마시자!”

이처럼 요나라 병사들도 승리했다고 여겨 하나같이 양고기를 뜯어 먹고 독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광란의 밤을 보내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밤사이 요나라 군대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그들이 깊이 잠든 후, 정보를 얻은 양연소가 장병들을 이끌고 두 갈래로 나뉘어 진격했다. 맹량과 초찬은 일부 장병을 거느리고 성 밖의 밀도를 통해 성 안으로 몰래 잠입했고, 양연소는 일부 장병을 거느리고 성문 밖에서 공격했다. 이렇듯 요나라 병사들이 방비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호포 소리가 크게 울리고 살성이 하늘을 찌르니, 성 안의 요나라 장병들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대부분 꿈속에서 목이 달아났다.

왕쌍관 《백위영웅방(百位英雄榜)》──양연소. (왕쌍관 제공)

대군이 안팎으로 협공을 당하자 잠에서 깬 한창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사후수(獅吼獸)를 타고 필사적으로 싸워 성 밖으로 탈출하여 북쪽으로 도망쳤다. 남은 요나라 병사들은 살해되거나 도망쳤고 혹은 포로가 되었다. 성 밖에 진을 쳤던 요나라 군대도 연이어 양가군 장수들의 야습을 받아 막대한 손실을 입고 뿔뿔이 흩어져 패퇴했다. 이렇듯 양연소는 다시 한번 수천 명의 병력으로 요나라 5만여 대군을 성공적으로 물리치며 고전적인 병가 기책인 ‘공성계’를 재현했다.

전투가 끝난 후 현지 백성들 사이에는 이러한 민요가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왔다.

성을 비워두고 양이 북을 치니,
요나라 병사 5만 5천이 놀라 물러나게 했네.
빈성을 들이침에 비병(飛兵)이 오니,
요나라 병사 모두 목숨을 잃었구나!

참고자료:
《楊六郎威鎮三關口》河北人民出版社1984年出版 趙福和 李巨發 等人 搜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 1986年出版 趙雲雁 搜集整理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