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이렇게 소소한 일상이 너무 편안하다 보니 그저 그렇게 흘러갔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삶이라 수백 년이 흘러도 똑같은 가락이었다. 나중에 오공이 사부님을 보호해 경을 구하러 가던 14년의 세월보다 못했다. 342년을 사는 동안 법을 찾고 스승을 모셨던 20년만이 그나마 내세울 만했다.
오공은 장생(長生)의 법을 닦았으니 수련에 성취해 하산했다고 할 수 있었다. 용왕은 그를 보자마자 상선(上仙)이라 불렀고, 오공 스스로도 천생성인(天生聖人)이라 칭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참으로 삼계 밖으로 벗어나 오행(五行) 속에 있지 않으며, 일찌감치 저승의 관할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가 명부를 들고 나타나 술에 취해 꿈결을 헤매던 손오공을 잡아갔다. 저승에 가서야 커다란 착오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오공은 화가 치밀어 술마저 다 깨버렸다.
분명히 이미 장생불로(長生不老)하며 상선(上仙)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상식적으로 지옥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졌어야 하고 염왕(閻王)도 관여할 수 없는데 어찌 명을 가려가려 한단 말인가?
염왕이 “저도 몰랐다고 말하면 믿겠습니까?”라고 해도 손오공은 당연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을 모셔오긴 쉬워도 보내기는 어렵다는 말을 믿게 해주겠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천지간에 어찌 수련해서 도를 얻은 원숭이를 누락할 수 있단 말인가? 오공은 물론 사문(師門)을 발설하지 않겠지만, 어떤 원숭이가 하늘의 눈을 피해 명을 고치고 인간세상의 법칙을 초월해 몰래 신선이 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벼락을 맞는 도겁(渡劫)조차 면제받고 신선이 되는 정식 절차도 밟지 않은 채 품계가 지극히 높은 상선(上仙)이 되었는데, 각로(各路)의 신선들이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중에 원숭이가 염왕과 용왕에게 고발당해 천궁으로 불려갔을 때도 옥황상제는 어디서 이런 상선이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즉, 위로는 천궁부터 아래로는 저승까지 모든 신선이 오공이 어떻게 상선으로 수련해 나왔는지 몰랐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천생성인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선이라 해도 인간 세상에 내려와 오곡잡밥을 먹고 땅의 기운을 접하면 세상의 탁한 기운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품계가 떨어져 사람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신화나 전설 속 선녀가 인간 세상의 정에 미련을 두어 소치는 목동에게 시집온다는 이야기를 보라. 그것은 천상에서 이미 문제가 생겨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해 벌을 받고 쫓겨 내려온 것이다.
고급 생명이 보기에 지구는 감옥이며, 사심(私心)과 잡념이 생긴 신선을 벌하는 곳이다. 심하게 말하면 도태된 생명들이 머무는 곳이다. 선녀가 내려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감동하곤 한다. 사람은 늘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 관념에 맞는 이야기를 지어내 스스로 감동하길 좋아한다. 미혹 속에 있는 사람이나 이를 부러워하며 평생 진정한 사랑을 쫓는다. 얻지 못하면 고통스러워하며 목숨까지 버리려 하고, 얻는다 해도 몇 년이나 행복하겠는가. 소위 진정한 사랑도 소모품이며 유효기간은 소비 한도에 달려 있다. 과도하게 쓰면 다시 돌려줘야 한다.
대부분의 소녀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방의 눈에 오직 자기 하나만 보이고 마음속에도 나뿐이며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것이다. 조건 없이 나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안하무인으로 총애받으며 제멋대로 굴어도 상대방은 원망 없는 넓은 마음으로 나의 극심한 이기심과 나쁜 버릇을 다 받아주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재물까지 조건 없이 내주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사랑이 부족한 것이라 여긴다. 그것도 모자라 언제든 나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감동한다.
안타깝게도 물질적 이익과 끝없는 욕심으로 쌓아 올린 것은 진정한 사랑[真愛]이 아니라 ‘진정한 빚[真欠]’이다. 정말 당신에게 빚을 졌기에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주고 당신의 친정 식구들을 위해서까지 소처럼 일하며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대등하지 않은 헌신은 당신이 빚쟁이임을 증명할 뿐이다. 세상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모두 인과(因果)의 표현임을 잊지 마라.
만약, 당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일수록 당신에게 빚진 것이 많다면 어떨까? 그의 업력(業力)이 당신에게 단단히 묶여 있어 잘해주지 않으면 갚을 길이 없고 인과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직 당신뿐인 상태가 된다. 사랑에 눈이 멀어 상사병이 독이 되고 당신만이 해독제라는 식의 관계는 선연(善緣)으로 이뤄진 경우가 거의 없다. 선연의 헌신은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피를 빠는 관계는 얼연(孽緣 나쁜 인연)일 뿐이다. 대등하지 않은 헌신, 살기(殺氣) 어린 인연만이 조건 없이 잘해주어야 빚을 갚을 수 있는 악연이 된다. 심지어 한 생애에 다 갚지 못해 여러 생을 얽혀야 겨우 계산이 끝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 전생에 당신을 가차 없이 죽인 사람이고, 이번 생에 진정한 사랑으로 갚고 혼인으로 당신에게 보상하는 것이라면 그 진상을 알고도 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자사자리(自私自利)한 요구를 일삼는 대단한 채권자의 모습은 전생에 한 번 죽인 것으로는 부족해 몇 번은 더 죽여야 당신의 사랑에 대한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의 유효기간이 짧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 혹독하게 요구하면 평생 갚아야 할 빚을 몇 년 만에 다 갚게 되고, 더 이상 빚이 없으면 누가 당신 비위를 맞춰주겠는가. 서로 꼴도 보기 싫어지는 단계에서 더 요구하면 그때부터는 당신이 빚을 지는 것이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원한의 반복이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은 말법(末法)말세(末世)라 원한을 갚을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 생이기에 빚을 청산하려면 선해(善解)하거나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회에 난맥상이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법 시기에 깨어나 신의 구원을 받든가, 마귀가 되어 철저히 도태되든가 둘 중 하나다. 이 시점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세상을 바라보면, 어지러운 세상에 남은 것은 인과뿐인데 어떤 심정이겠는가?
다시 정욕(情慾)을 말하자면, 정이 있으니 욕심이 있는 법이다. 타락한 현대 관념은 욕망을 정의 외면화로 여겨 절제할 줄 모르지만, 그것은 색욕의 장(場)에서 서로 업력을 교환하는 것일 뿐이다. 팽창된 정욕의 색욕장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천목(天目)으로 보면 머리 두 개 달린 뱀들이 똬리를 틀고 있고 검은 전갈들이 떼 지어 있다. 사람이 발정(發情)할 때 머릿속 욕념으로 소모된 에너지가 이들에게 전달된다. 이들은 사람의 에너지 정수를 빨아먹으며 더 많은 정욕을 기르고 색욕장을 넓힌다. 소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기르고 있는지 보라. 오직 미혹 속에 있는 사람만이 색욕심을 방종한다. 합법적인 부부라면 그나마 덜하겠지만, 윤리 도덕을 저버리고 성적으로 문란한 경우에는 이런 정도가 아니다. 더 거대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역겨워 더는 말하지 않겠다.
수련인이 미혹 속에서도 자율적으로 욕망을 다스리고 색욕심을 점차 제거하면, 공간장(空間場)이 맑아지고 정념도 오래 유지된다. 색욕장은 미세먼지보다 독하며 사람의 지혜를 흐리고 자아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래서 예부터 수련인의 가장 큰 생사관은 바로 정겁(情劫 정으로 인한 겁난)이었다. 이 인피(人皮)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칠정육욕이 있기 마련이므로 정겁은 누구나 겪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생사관인 것은 아니다. 삶과 죽음은 일념, 즉 무엇을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사람과 각자의 구별〉에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사람인고 온몸에 정욕이로다
무엇이 신인고 사람마음이 없도다
무엇이 부처인고 선과 덕이 거대하도다
무엇이 도인고 청정한 진인이로다
길은 앞에 놓여 있으니 당신이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 본다.
사상이 행위를 결정한다. 사람이 하는 행위는 생각의 외면화이므로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배후의 어떤 요소에 조종되었든 육신이 행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며 당신의 인과가 된다. 주원신(主元神)이 육신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설령 주의식이 강하지 못해 억눌리고 외래 요소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주원신이 책임져야 한다. 무능(無能) 또한 인과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오(邪悟)하여 헛소리를 하거나 정신이 흐릿한 상태에서 법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했다면, 주원신이 흐릿해서 주범이 아닐지라도 책임은 전적으로 져야 한다. 무능은 핑계가 될 수 없다. 법은 주원신에게 전해졌는데 작은 사악조차 누르지 못하고 관건적인 순간에 죽은 듯이 마귀들이 날뛰게 내버려뒀다면 당신 말고 누가 책임지겠는가. 육신을 당신에게 주었으니 곧 당신이다. 주원신이 있는 한 육신은 당신이며 대심판 앞에서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이면 겁난(劫)이 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소(解) 된다. 난세(亂世)의 원연(怨緣)이 모두 선해되어야 한다. 수련인은 자신에게 죽음의 겁난[死劫]을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매듭을 풀고 빚을 청산하고 싶은가. 선연이든 악연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눈에는 오직 구원받을 기연만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진상을 알려 혼란을 바로잡고 구원의 기연을 돌려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인연을 매듭짓고 빚을 갚으며 자신을 승화시키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하물며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어떤 생사겁(生死劫)인들 움직이지 않는 마음 하나로 보내지 못하겠는가. 삶과 죽음은 사람마음(人心)에 끌려 겁난이 되는 것으로, 사람마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신(神)을 움직일 수 없다. 마음이 움직여 겁난에 빠졌다면 자신의 그 부족한 그릇을 돌아보길 권한다.
믿기 힘들다면, 여인국 단락을 보라. 당승은 사실 그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그저 차마 거절하지 못했을 뿐이다. 미모와 부를 갖춘 여왕의 청을 거절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여왕의 부드러운 정을 무시하는 것으로 버티다 보니, 조금 미적거리는 사이에 전갈 요괴에게 잡혀갔다. 한 관(關)을 넘기지 못하니 관이 하나 더 더해졌고 아울러 등급도 올라갔다. 미녀가 징그러운 전갈로 바뀌었으니 얼마나 무서운가. 그것이 바로 색욕장의 확장이다.
또 살구꽃 요정(杏花精`) 대목도 보라. 담장을 넘는 붉은 살구꽃 역시 색욕이다. 당승은 여전히 미색을 거절하지 못해 잔치에 초대받는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 한 자락에 꽃밭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울긋불긋한 꽃들이 주위에서 너울거리고 늙은 나무 요괴들이 옆에서 부추기며 요괴를 억지로 떠맡기려 한다. 다행히 오공이 제때 와서 당승을 구해냈다. 장수가 무능하면 삼군(三軍)이 고생하는 법이다. 이렇게 물러터진 사부님을 모셨으니 취경의 길에 마난이 부족할 리 있겠는가!
살구꽃 요정이 겉으로는 색으로 유혹해 수단이 온화해 보여 그리 크게 해로워보이진 않지만 파괴력은 극강하다. 만약 당승의 마음이 미혹되었다면 그것은 사겁(死劫)이 되어 십세(十世)를 이어온 순양(純陽)의 동신(童身)이 망가졌을 것이니 결과는 매우 엄중하다. 어떤 요괴들은 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배경이 있어 그냥 데려가 버리고, 어떤 요괴는 그리 악하지 않고 지역 사회에 좋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배경이 없어 죽임을 당하고 소굴까지 타버리는 것을 보면서 음모론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는 피상적인 생각이다. 많은 일은 표면이 아니라 후과(後果)를 보아야 하는데, 눈앞이 아니라 마지막 목적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사악한 공산당도 민생을 챙기고 소득을 높여 생활을 개선하려 한다.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 목적은 사람들을 더 잘 미혹하기 위함이다. 무신론을 믿게 하여 신을 배반하게 하고 인간의 정신(正信)을 파괴함으로써 영혼의 귀숙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천만년의 기다림을 무너뜨려 공산 사령의 제물로 삼으려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는 목적 자체가 사악하다. 계속해서 세뇌하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함께 매장되려 한다.
그것이 좋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빨리 깨어나라, 기회가 많지 않다!”
사회 집단이 정신보다 물질을 우선시하고 신앙이 결여되면 영혼은 공허해지고 사회는 귀속감을 잃어 온갖 문제가 속출한다. 물질은 사욕을 채울 뿐 영혼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다. 오늘날 우울증과 정신질환이 빈발하여 1억 명에 가까운 이들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의식주 걱정이 없으면서도 늘 자살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무신론의 독해다.
사실 정신병은 병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병소(病灶)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신앙의 귀속 문제, 즉 영혼의 귀숙(歸宿) 문제다. 주의식이 약하거나 부의식이 너무 강해 주(主)를 압도하는 경우, 혹은 외래 요소의 간섭 등 원인은 다양하다. 핵심은 주원신이 강하지 못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른 신앙이 없으니 신(神)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미망 속에서 앞길이 보이지 않으니 희망의 빛도 없고 영혼이 너무 취약해 불안감에 쉽게 자극받는다. 본능적으로 격렬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폐쇄하고 늘 공포 속에 처하게 된다. 더 많은 상처를 받지 않으려 하는 것인데, 그 상처에는 공산 사령(邪靈)의 통제도 포함된다. 안전함이 없는 사람은 미망하고 황공하며 무력하다. 미지의 공포에 대항할 수 없어 절망하고 미지의 교란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른다.
이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이 나타나는데, 무신론은 그들의 공포를 가중할 뿐이다. 인간의 인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인정하지 않고 병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환시나 환청을 인간의 상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니 병이 되고, 정신병원에 가두어 수술까지 한다. 병소도 없는데 어디를 절제한단 말인가? 사람을 마루타로 취급하며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짓이다. 아는 것으로 미지를 치료하려 하니 천하의 웃음거리이며, 무신론이야말로 진정한 병의 뿌리다. 이 때문에 근기가 좋아 미지의 영역을 엿볼 수 있는 소수 사람들이 정신병자로 몰린다. 미지의 영역은 오직 신앙이 있어야지만 설명되고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있다. 무신론이 정신질환 발병률을 치솟게 만든 화근이라 할 수 있다.
오진받은 영성이 비교적 높은 많은 사람들은, 본래 초상적인 현상들을 우리의 신전문화(神傳文化)로 명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산 사령이 이 길을 막아버려 사회 전체가 이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좋은 재목들을 병자로 몰아세웠다.
우리 가족의 예를 들어보겠다. 조카딸이 서너 살 무렵 밤마다 전구를 보고 손짓 발짓을 하며 까르르 웃었다. 동생이 무엇이 그리 좋으냐고 묻자, 전구에서 예쁜 거품들이 많이 흘러나와 침대 위에서 그것들을 받으려고 뛴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겁에 질려 아이가 이상한 병에 걸린 줄 알고 정밀 검사를 받으려 했다. 나는 좋은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근기가 좋아 천목이 열린 것이며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은 정상이니 걱정 말라고, 대개 일곱 살 이후면 닫힌다고 달랬다. 하지만 동생은 다 믿지 못하고 환시 증상이라며 몇 년을 걱정했다.
이런 경우는 내 주변에도 많다. 어릴 적 친구가 무서운 이야기를 했는데, 새집으로 이사 간 친구가 잠결에 한 할머니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믿지 않고 겁쟁이라며 놀렸지만 나는 친구를 믿었다. 나 역시 그런 부류였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너무 예민해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일을 말해봤자 조롱만 당하고 상처 입는다는 것을 알았다. 남들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의심스러운 눈초리 하나가 설상가상이 되었다. 미지의 공포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압박이 컸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거나 도와주지 않는데 굳이 말해서 비난받고 자극받을 필요가 없었다. 침묵하며 내면을 강하게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남을 의지하기보다 나를 의지하는 것이 나았고, 주의식이 강해지니 누가 감히 나를 건드리겠는가.
내 주변에는 명이 짧은 사람도 몇 있고, 경고를 듣지 않아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영성이 높은 사람은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 다만 어떤 이는 내면이 강해 주의식으로 감정을 잘 조절하지만, 어떤 이는 주의식이 약해 타인에게 의지하려다 부모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지기도 한다. 심지어 병이라는 관념이 주입되어 스스로 병자라고 믿게 되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우리의 오천 년 신전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정신적 전승을 되찾으면 중심이 잡히고, 초상(超常)적인 현상도 보다 고층차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인지의 승화는 무신론에 짓눌린 영성을 신의 층면으로 깨어나게 하여 신의 자손이 되게 한다. 더 높은 지혜를 깨닫는데 설명하지 못할 현상이 무엇이 있겠는가. 무신론을 타파하고 진상을 아는 것이야말로 자아를 구속(救贖)하는 시급한 과제다!
티베트에는 정신병원이 없다. 그곳 사람들은 대대로 불교를 믿으며 마음의 안식처가 있기에 풀지 못할 죽음의 매듭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신앙으로 다스리기에 막다른 길로 몰려 병이 나지 않는다. 중화민국 이전에도 신앙의 자유가 있어 스님과 도사들이 거리에 가득했고, 기이한 일이 생기면 그들이 해결해주었다. 인과를 믿으니 인과를 화해할 방식이 있었고,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며 살았다. 요괴가 나타나도 잡아줄 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독재를 위해 공산 사령만을 믿으라고 강요한다. 무신론이 인간의 정상적인 인지를 왜곡했고 사유는 사설(邪說)에 갇혔다. 인지를 벗어난 진상은 모두 타격받고 박해당한다. 마음의 구속이 사라지고 사상이 사령에 점령당하니 세상은 마귀들이 날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요괴들이 사람 가죽을 쓰고 조정에 앉아 있으니 천하가 어지럽고 재앙이 가득한 것은 이 겁난에 따른 응보라 할 수 있다.
중공사당은 무신론으로 사람을 강제 세뇌해 신을 믿지 못하게 하고 바른 신앙을 박해했다.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초자연적 현상을 보면 병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눈앞에 보이는 진실조차 믿지 말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신뢰의 위기는 수많은 마음의 매듭을 만들고 울화가 쌓여 마음의 병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표면만 보지 말고 그 마지막 목적을 보아야 한다. 우리에 갇힌 돼지를 보라. 사람이 돼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며 정성껏 돌보니, 돼지는 배불리 먹고 잠만 자며 살을 찌운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잡아먹기 위함이다. 그 돼지가 죽을 때 감사하며 죽겠는가? 미리 알았다면 돼지도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스스로 깨닫길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공이 법을 찾고 도를 구하는 과정은 차단되어 20여 년의 세월이 지워졌다. 각로 신선들에게도 천기(天機)가 차단되어 손오공의 내력을 조사할 수 없었다. 법을 전한 보리조사는 마치 나타난 적도 없는 것처럼 처리되었다. 이 솜씨는 미지의 힘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본래 손오공은 하늘이 낸 돌원숭이라 부모가 불분명한 것이지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유래가 있겠지만 삼계의 인지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알 수 없을 뿐이다.
때문에 염왕은 정말 몰랐다. 손오공이 이미 저승의 관할을 초월했음에도 통제할 수 없는 원숭이를 잡아왔기에 저승을 뒤집어놓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생사관을 이미 넘었거늘 염왕이 굳이 엮으려 했으니 이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길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