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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봉원수가 돼지태에 ‘잘못’ 들어간 이야기

원형(源馨)

【정견망】

세상 만물의 운행과 변화는 명명백백하게 정해진 수(定數)가 있으며, 모든 것은 상세하게 안배되어 있으니 어찌 반 푼의 착오라도 있겠는가. 이는 오늘날 우리가 그 속에서 더 중요한 내용을 이해하거나 회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천봉원수(天蓬元帥 저팔계의 전신)가 돼지 태에 태어난 것을 말하자면, 《서유기》 제8회에서 관음보살이 취경인(取經人)을 찾으러 가다 아직 출가 전인 저팔계를 길에서 만났을 때 나눈 대화가 있다.

관음이 구름을 탄 채 내려와 물었다.

“너는 어디서 멧돼지 요괴냐?, 어느 곳의 못된 돼지이기에 감히 이곳에서 나를 막는냐?”

그 괴물이 말했다.

“저는 멧돼지도 아니고 못된 돼지도 아닙니다. 본래 천하(天河 은하수)의 천봉원수였으나, 술 기운에 항아(嫦娥)를 희롱한 탓에 옥제께 쇠몽둥이로 이천 대의 매를 맞고 속세로 쫓겨내려왔습니다. 한 가닥 신령한 본성(一靈眞性)이 곧장 신선의 몸을 잃고 들어갈 태(胎)를 찾다, 뜻밖에 길을 잘못 들어 어미 돼지의 태에 들어가는 바람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미돼지를 물어 죽이고 다른 돼지를 쳐 죽인 후 이곳에서 산채를 점거하고 사람을 잡아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뜻밖에 보살님을 만났으니 간절히 바라건대 저를 구해주십시오.”

보살이 이르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앞길이 있으려면 앞길을 망치는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이미 상계(上界)에서 법을 어겼거늘, 이제 또 흉악한 마음을 고치지 않고 살생을 하여 업을 지으니 두 가지 죄를 함께 벌받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그 괴물이 답하기를 “앞길! 앞길이라굽쇼! 보살님 말씀대로 하면 저는 바람이나 씹어 먹고 살아야 합니까? 흔히 말하기를 관청 법을 따르면 맞아 죽고, 부처님 법을 따르면 굶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만두십시오! 그냥 가세요! 차라리 행인을 잡아 기름진 고기를 먹는 것이 낫지, 두 가지 죄니 세 가지 죄니 천 가지 만 가지 죄가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했다.

보살이 이르기를 “사람에게 선한 소원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들어주는 법이다. 네가 만약 귀의하여 정과(正果)를 얻고자 한다면 절로 몸을 보존할 곳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오곡이 있어 기아를 면치 못할 리 없는데 어찌하여 사람을 잡아먹으며 사느냐?”라고 했다. 괴물은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꿈에서 깬 듯했다. …

많은 인과응보 이야기에서 사람이 일단 사음(邪淫)을 범하면 죽은 뒤 대개 돼지 태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천봉원수가 색계(色戒)를 범하해 돼지 태에 태어난 것을 길을 잘못 든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결국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사람 내면의 생각이 생명의 갈 곳과 자신이 처한 외부 환경 및 사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신독(愼獨)을 말하고 수신양성(修身養性)을 말하며 내면의 사상 경계와 도덕적 승화를 중시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저팔계가 기억을 잃지도 않았으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돼지 얼굴을 한 요괴로 여기고, 사람을 잡아먹고 해치는 요괴의 행각을 당연하게 여기며 천신(天神)으로서의 본성과 근원을 흐렸다는 점이다. 보살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 죄가 있음을 안다면 서둘러 잘 수련해서 돌아갈 생각을 해야지, 도리어 죄를 더해서야 되겠는가.

이로 보건대 이 속세(塵世)는 참으로 미혹의 장소다. 돼지 껍질을 뒤집어쓰면 스스로 돼지라 여기고, 인피(人皮)를 뒤집어쓰면 스스로 사람이라 여기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의 본래 특성과 근원을 오염시키고 매몰시킨다. 이후 서행(西行) 길에서 팔계가 몇 번이고 고로장(高老庄)으로 돌아가겠다느니, 한가롭게 즐기고 싶다느니 하며 내비친 사람마음과 사람생각들 역시 본심과 근원을 잊어버린 초상이 아니겠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만약 자기 생명의 근원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자기 생명의 의미와 갈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 미혹 속에서 업을 짓고 갚는 끝없는 고해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서유기》에서 사도(師徒) 네 사람의 근원 또한 겨우 한 층의 베일만 벗겨졌을 뿐이며, 앞으로 밀어보고 위로 찾아 올라가면 아마도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다. 생명은 본래 고층(高層)에서 왔기에 옛날의 수행인들은 늘 이 인간 세상은 여관에 불과하며, 자기의 진정한 집은 이곳에 없음을 잊지 말라고 했다.

“이 몸이 내 것이 아님을 늘 한탄하노니,
언제나 아등바등한 생활을 벗어나려나?
밤 깊어 바람 자니 비단 물결 잠잠하구나.
작은 배를 잡아 타고 여기서 사라져
강해(江海)에 남은 생을 맡겨보련다.”

소동파의 《임강선·밤에 임고정으로 돌아가(臨江仙·夜歸臨皋)》를 다시 읽어보니 예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 몸은 확실히 내가 아니며 나는 이 몸에 갇혀 있지만, 자기의 마음을 지켜 그것이 여기에서 초탈하게 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진흙에서 나오되 물들지 않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