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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서 인품을 본다

소의(小毅)

【정견망】

《세설신어·덕행(德行)》에 음미할 만한 이야기가 한 편 실려 있다.

관녕(管寧)과 화흠(華歆)은 모두 동한(東漢) 말엽 사람이다. 두 사람은 처음에 함께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문득 땅 위에 금 한 조각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관녕은 평소처럼 괭이질을 하며 보지 못한 듯이 여겼고 그것을 기와나 돌덩이와 다름없이 대했다. 반면 화흠은 기뻐하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가 관녕의 담담한 안색을 살피고 나서야 다시 금을 내던졌다.

나중에 두 사람이 한 돗자리에 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 마침 화려한 수레를 타고 관복을 입은 자가 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관녕은 여전히 글 읽기에 전념하며 기색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흠은 책을 내려놓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구경했다. 관녕은 그 모습을 보고 돗자리를 잘라 따로 앉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친구가 아니네”라고 했다. (《세설신어·덕행》)

보기에 사소한 작은 일들이 흔히 한 사람의 본성을 가장 잘 비춰준다. 화흠이 유혹 앞에서 자제하지 못한 것은 겉보기에는 잠시의 호기심과 동요인 듯하나, 실상은 내면의 명리에 대한 동경과 집착이 투영된 것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작은 이익조차 놓치려 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이 일단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탐욕을 부리지 않기란 오히려 더 어렵다. 옛사람들이 말한 ‘한 푼의 돈 때문에 장원(壯元)을 놓친’ 이야기가 바로 이를 설명해 준다. 주심관이 수험생이 땅에 떨어진 돈 한 푼을 몰래 줍는 것을 보고 장원 자격을 취소시킨 것이다. 언뜻 보면 우연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 미세한 부분에서 드러낸 탐념(貪念)은 흔히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평소 습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일 뿐이며, 단지 결정적인 순간에 발각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담담하고 무사(無私)하며 명리를 따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시험은 흔히 이러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 속에 숨어 있다. 만약 작은 이익 앞에서 아직 마음이 움직인다면, 어찌 큰 이익 앞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단 수련인(修煉人)만이 이 마음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또한 그러해야 한다. 이익을 대함에 있어 마땅히 한 층 더 절제하고 맑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옛사람들이 자주 말하기를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손해를 본다”라고 했는데 이는 빈말이 아니다. 마치 한 푼의 돈 때문에 장원을 잃은 그 사람처럼, 그것을 운명이 불공평하다고 하기보다는 심성(心性)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낫다.

각도를 바꿔서 본다면 만약 이 사람이 정말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을 때, 탐욕으로 인해 그릇된 길로 빠지거나 심지어 옥살이를 하게 될 가능성은 없었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그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일종의 보호였을지도 모른다.

덕(德)이 지위에 걸맞지 않으면 결국 오래가지 못하며 심지어 남을 해치고 자신까지 망치게 된다. 사람을 알아보는 도(道)는 그 사람의 거창한 담론이나 장거(壯巨)를 볼 필요가 없다. 흔히 한 가지 한 가지 작은 일들 속에서 이미 남김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