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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꿈에서 깨어나 (14): 가장 근본적인 해악

——중국인들이 오랜 기다림을 놓치고 창세주의 설법을 이해하지 못하게 해

경사은(敬謝恩)

【정견망】

(4) 가장 근본적인 해악: 중국인들이 창세주의 설법을 이해하지 못하게 해

신(神)의 오랜 안배로 인해 중국 문화 전통에서는 줄곧 ‘도(道)’를 추구해 왔다. ‘도’란 무엇입인가? 도가, 유가, 불가에서는 모두 각기 다른 설명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고,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진리이며, 생명을 승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도이다.

유가의 《중용》에서는 “도(道)라는 것은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으니 떨어지면 도가 아니다[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라고 했다.

도가의 《노자(老子)》는 “어떤 물체가 혼돈 속에 이루어져 있으니, 천지보다도 먼저 태어났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으나, 홀로 우뚝 서서 변하지 않는다. 만물에 두루 퍼져 운행하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그를 글자로 일컬어 ‘도(道)’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도(道)도 크고, 하늘(天)도 크고, 땅(地)도 크며, 왕(王) 또한 크다.”라고 했다.

또한 불가에서는 인생이 왜 괴로운지 어떻게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는지를 총괄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라 했다.

이상을 총괄하자면 ‘도’란 가장 심오하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언어 표현 측면에서 볼 때, 중국 문화에서 이 심오하고 신비한 “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 바로 “법”이다. 도가, 불가, 심지어 유가의 언어에서도 ‘도’와 ‘법’은 종종 유사한 의미를 표현한다.

운용과 학습의 측면에서 중국 고인들은 도(道), 술(術), 기(器) 등 각 층차를 구분했다. 《주역•계사》에서는 “형이상자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를 기(器)라 한다”라고 했다. 의학 방면에서는 보통 이를 “의술(醫術)”이라 부르지만, 의술 뒤에는 의도(醫道)가 있으며 각종 도구는 “기(器)”에 해당한다. 제사 방면에서 고대인들은 “제기를 다루는 일은 담당 관리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종정(鍾鼎)이나 변두(籩豆) 등은 모두 제사에 속하는 “기(器)”이며, 그 바탕에는 제사와 나라를 위하고 사람을 위하는 “도(道)”가 있다.

고대의 각 업종에서 사람들은 사부가 전수한 각종 “술(術)”을 배우고 따르는 과정에서 전력을 다해 자신을 제고했으며, 가급적 “도”에 부합하고 나아가 더 높은 층차의 대도(大道)에 부합하고자 노력했다. 만약 대도에 부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기술상에서 제고를 얻는 것일 뿐만 아니라, 흔히 자신의 생명 승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동시에 해결했다. 비교적 전형적인 예가 의학이다. 보통 의사는 이미 병든 자를 치료하지만, 상의(上醫)는 병이 나기 전을 다스릴 수 있고, 진정한 대의(大醫)는 나라를 고치며 심지어 도를 닦아 장생할 수도 있다. 비단 의학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업종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해 중화문화 속에는 예로부터 수많은 인인지사(仁人志士)들이 도를 추구했으며, 심지어 이를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다. 불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로는 남조의 혜가(慧可), 당조의 혜능(慧能)이 있으며 그 외에도 사실 아주 많다. 도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로는 한조의 장도릉(張道陵), 당조의 여동빈(呂洞賓)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역시 아주 많다. 유가에서도 3년 동안 뜰을 내다보지 않은 한대의 동중서, 죽을지언정 투항하지 않은 당대 안진경, 남송 말의 충신 문천상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많다.

유가에서 수많은 인인 지사가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며 도달하기를 바랐던 것은 《주역•문언•건괘》에서 말한 그런 고심한 경지였다. 즉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더불어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한다”는 것이다. 사실 《주역》의 건괘에서 가리키는 것은 바로 우주다. 이 경지는 도가 수련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고심한 경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화문화에는 자고로 “도(道)”와 “법(法)”에 대한 추구가 존재해 왔으며, 이러한 전통은 매우 심후하다. “도”는 중화문화 속의 역대 인인지사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고대하고 기다려온 것이다.

1992년부터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대사께서 중국에서 파룬따파를 널리 전하셨다. 《파룬궁》에서 리훙쯔 사부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물질로 구성된 외에 또 그것의 특성이 존재하는바, 개괄하면 곧 세 글자로서, ‘真(쩐)·善(싼)·忍(런)’이라고 한다. 도가의 수련은 주로 ‘진(真)’을 깨닫는 것으로서,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며, 返本歸真(판번구이쩐)하여 최후로 진인(真人)이 되는 데에 도달한다. 불가의 수련은 ‘선(善)’에 중점을 두고 큰 慈悲心(츠뻬이씬)을 베풀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 법문은 ‘真(쩐)·善(싼)·忍(런)’을 함께 수련해서, 직접 우주의 근본특성을 수련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우주에 동화(同化)한다.”

사실 리훙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의 특성인 쩐·싼·런은 중국 전통문화가 반복해서 추구해온 그 “도”, “법”, “천지의 덕”, “지고무상한 도”이다. 즉 중화민족의 수많은 인인지사가 꿈속에서도 그리며 추구해온 궁극적 진리이자 최종적인 “대도(大道)”이며 “대법(大法)”이다.

이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왜냐하면 중화민족의 역대 인인 지사들이 줄곧 추구해 왔음에도 예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이 도와 법의 실질적인 내용을 직접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도의 내용에 대해 노자는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해 자를 도라 한다(吾不知其名,字之曰道)”라고 했다. 석가모니도 만년에 “나는 평생 어떤 법도 말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역대의 성인(聖人)들은 법(法)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리훙쯔 대사께서는 가장 평이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명명백백하게 인류에게 알려주셨다.

“우주의 특성이 바로 쩐(真)·싼(善)·런(忍)이다”(《전법륜법해》)

“대법(大法)은 창세주(創世主)의 지혜이다. 그는 하늘과 땅을 열고(開天闢地), 우주를 만든(造化宇宙) 근본으로, 내포가 지극히 크고 미세하며, 부동(不同)한 천체 층차(層次) 중에 부동한 펼쳐보임(展現)이 있다.”(《논어》)

“좋은 사람이 되려할 때 이 공간 중에 존재하는 요구는 바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 등등이다. 그것도 모두 真(쩐)ㆍ善(싼)ㆍ忍(런) 중에서 분화(分化)되어 나온 것으로 아주 많은바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스위스 법회 설법》) 등이다.

중화민족의 역대 선현들이 힘써 추구해온 것, 인류가 자고로 기다려온 것이 지금 이미 왔다! 사실 이것은 역사의 안배다. 이 날은 이미 도달했다.

하지만 중공이 이미 중화 전통문화를 극심하게 파괴하고 별도로 중국인에게 중공에 속하는 당문화(黨文化)를 만들어주어 당문화가 도처에 가득 찬 환경을 조성했기에, 중국인들은 파룬따파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듣기 매우 힘들게 되었다. 비록 파룬따파가 말하는 우주 특성은 언어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해하기 매우 쉽고, 이것이 바로 중화민족의 역대 선현들이 힘써 추구한 도와 법, 대도, 대법, 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공산당 문화가 사람들의 사상의식을 봉쇄했기에 1992년 리훙쯔 대사의 설법 이후 2년 동안 여전히 파룬궁과 파룬따파가 도대체 무엇인지 정말로 명확히 아는 수련생이 드물었다.

수련생들은 그저 “파룬궁이 좋다”고만 느꼈고, 특히 파룬궁이 질병을 제거하거 몸을 건강하게만드는 신기한 효과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을 뿐, 이 대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말해내지도 못했다. 1994년에 이르러서야 일부 제자들이 마치 갑자기 깨달은 것처럼 인류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수련의 목적이 바로 우주 특성인 쩐·싼·런에 동화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파룬궁 수련생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파룬따파가 중공의 박해를 받은 이후 더욱 뚜렷해졌다. 중공의 전통문화 파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파룬궁 수련생들이 수련을 견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파룬궁이 좋은 건 알겠는데 왜 꼭 견지해야 하는가? 다른 기공을 연마해도 되지 않는가? 왜 공산당과 맞서는가? 박해를 당하는 건 그럴 가치가 없다!”

또한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 제자들이 왜 진상을 알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흔한 의문은 “파룬궁이 좋다면 그냥 집에서 연마하면 안 되는가? 왜 밖에 나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가?” 하는 것이다. 즉 많은 중국인들이 파룬따파가 말하고 수련하는 것이 우주의 근본 대법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우주가 존재하는 근본이며 나아가 모든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이다. 한 사람으로서 대법을 얻고 대법을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러니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다시 역사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중화 역사상 자비롭게 중생을 제도하는 불법(佛法)이 통치자의 잘못된 대우를 받아 법난(法難)을 겪은 시기가 많았다. 이때도 여전히 많은 세상 사람은 불법(佛法)을 매우 경외했다. 비록 통치자가 박해하는 순간에도 수련을 견지하는 승려들을 매우 잘 이해했고, 그들에게 암암리에 각종 도움을 제공했다. 한편으로는 수련자가 법난을 넘기도록 도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통치자의 잘못된 행위가 가져올 악과(惡果)를 최대한 낮추었다.

하지만 파룬따파가 중공의 박해를 받을 때, 중공이 전통문화를 철저히 파괴했기에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가 도대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박해 앞에서 어리석게도 파룬따파 제자들이 겪는 각종 박해를 지켜보면서도 자신이 대법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많은 세상 사람이 공산당의 비방과 모함을 믿고 자신도 모르게 중공을 따라 신불(神佛)을 비방하고 대법을 비방하여 자신을 위험에 빠뜨렸다. 동시에 대법이 구도할 기연을 놓치고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이미 “파룬따파가 무엇인지”를 아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기만당한 세상 사람에게 진상을 명확히 알려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佛法) 진도(真道)가 이미 내려왔다”는 인류에게 가장 중대하고 근본적인 경사를 새로이 인식하게 해야 한다.

공산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면서 지휘하고 이용하며 도구와 앞잡이로 삼은 것은 우리 주변의 동포들이다. 그들은 당원 신분이거나 공산 이론을 주입받았을 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낳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산당의 기만과 위협 아래 저지른 일은 ‘쩐·싼·런’ 우주 대법을 박해하고 하늘을 거스르며 도를 배반한 큰 나쁜 짓이며, 하늘과 땅, 사람과 신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깊은 죄악이다. 그러므로 이미 “파룬따파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아는 수련생이라면 반드시 박해자들에게 “박해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악행은 반드시 악보(惡報)를 받는다”라는 법칙을 알려주어 그들의 악행을 제지해야 한다.

요컨대 공산 이론이 중화민족에게 가져다준 가장 근본적인 해악은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들어도 알지 못하고 이롭고 해로운 것을 모르기에, 어떤 이들은 중공의 박해 속에서 앞잡이와 도구가 되었고, 어떤 이들은 중공의 박해를 보고도 못 본 척 방관하며 객관적으로 중공 박해의 동조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중화민족과 자신 및 자손에게 거대한 재앙을 초래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재앙은 한 걸음씩 현실로 실현되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5)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교육받은 중국인들이 중화문화를 대표할 수 없게 만든 것

중화문화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중원 대륙과 부근 토지의 인민을 대표로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지금의 하남(河南), 산서(山西) 지역을 중국(中國)이라 불렀는데, 그 함의는 중앙의 나라다. 이 지역은 문명의 대표인데, 왜냐하면 이 지역의 군주와 인민이 모두 복희, 신농, 황제 등 역대 성왕들이 확립한 문명의 법도를 경건하게 전승해왔기 때문이다. 황제, 요임금, 순임금 등은 모두 당시 사납고 호전적이며 도덕이 패괴하고 교화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머나먼 황량한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나중에 중화 문명이 날로 보급됨에 따라 ‘중국’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지역 범위가 날로 확대되어 점차 중원 왕조가 통치하는 전 구역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원 왕조의 통치 구역 내에서 중화 전통의 유(儒)·도(道)·불(佛) 문화의 교화를 입은 모든 곳을 중국이라 불렀고, 또한 개화된 땅이라 불렀다. 반면 중화 제국 경내에 있는 일부 외진 국부 지역으로서 여전히 미개하고 야만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전통적인 유·도·불 문화의 교화를 입지 못한 곳은 여전히 만이(蠻夷)라 불렀다. 중화 대지 위에서 만이의 땅과 문명 개화의 땅은 서로 뒤섞여 있었으며, 상호 간에 명확하고 고정된 경계는 없었다.

그러나 중화 조정은 황제, 요순, 하상주(夏商周)로부터 명청(明淸)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화 상고 성왕들이 남긴 도통(道統)과 문화 전통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영광으로 여겼으며 사업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 조정과 그 통치 및 교화 아래 있는 민중은 중화 문명의 대표가 되었다. 이 조정과 국토, 인민은 예의지국, 천조상국(天朝上國)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서 큰 존경을 받았다.

청말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지의 백성들은 여전히 중화문화의 대표였지만 ‘동아시아의 환자’(東亞病夫)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고찰해보면 단지 중국이 대외 전쟁에서 누차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환자’라는 지칭은 우선 당시 대량의 중국인이 아편을 흡입하여 병든 모습이면서도 스스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자국민을 해치는 아편 무역을 합법화한 중국 정부를 풍자한 것이었다. 즉 ‘동아시아의 환자’라는 명칭이 풍자한 것은 전쟁에서의 패배뿐만 아니라, 당시 대청(大淸) 정부가 너무 나약해 본국 인민의 심신 건강을 지키지 못한 점을 주로 가리킨 것이다. 국가가 나약하고 인민이 지치고 병들었기에 ‘환자’라 불린 것이다. 중화와 중화 인민의 국제적 지위가 명조(明朝) 시기 존경과 흠모를 받던 것에서 청말 멸시와 능멸을 받게 된 것은 사실 모두 각 시기 조정과 일부 백성의 행위로 인한 것이다.

1949년 이후 공산 이론이 중국을 통치한 후 교육을 받은 이들은 모두 공산주의 전사(戰士)와 후계자들이다. 중국 대륙 정권의 표현 및 각 지역에 파견된 공무원들의 표현은 모두 공산주의 전사다. 그래서 이때의 중국과 중국인은 붉은 정권의 대표로 변했다. 중국은 결국 5천 년의 연속된 문명을 지닌 고국(古國)이기에 국제적으로 중국 문화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 대륙에서 전통문화는 ‘사구(四舊 4가지 낡은 것)’으로서 타파의 대상이었다. 오직 붉은 정권의 대표라면 그럼 전통문화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과 교육 아래 성장한 중국인은 중국 전통문화를 대표할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중공의 전통문화에 대한 태도에 표면적인 변화가 생겨 전통문화를 중국 이미지를 보여주는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중공 통치하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중국인은 여전히 중국 전통문화를 대표할 수 없는 듯하다.

첫째는 중공의 수십 년간의 정치 투쟁 모델과 경제 건설 모델이 중국인의 도덕 수준을 매우 심각하게 패괴(敗壞)시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국 대륙에서 나가는 관광객이나 중공 교육 아래 성장한 각종 사람의 언행이 상대적으로 거칠고 저급해 예의지방(禮儀之邦)인 중화 전통과 중화민족의 심오한 문화를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볼 때 세계에서 언행이 중화 전통의 풍모를 더 갖춘 이들은 대만인, 일본인, 한국인 등인 듯하다. 이는 단지 여행이나 나들이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부분에서 나타난다.

둘째는 공산 이론이 마르크스주의를 최고 신앙으로 삼고 중국 전통문화는 단지 보충과 장식, 부속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중공이 임명한 공직자들은 모두 명확하게 자신을 공산주의 정권의 진정한 대표로 여기지, 자고이래 전통 중국 문화의 진정한 대표로 여기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대만, 일본, 한국의 민간과 정부는 진정한 중화 전통에 대한 존중 정도가 중공 및 그 통치하의 중국 대륙을 훨씬 초과한다.

셋째는 공산 이론이 정권을 장악한 중국이 명확하게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를 자신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중화민족 인민이 전통 도덕을 자발적으로 견지하고 권선징악의 신앙을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나 중화 대지에서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전통문화에 대한 추구를 중공은 늘 무신론과 공산당 조직이 통제하는 범위 내로 국한하려 애쓰며, 이 범위를 벗어나거나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추구를 중공 통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간주하여 엄격히 봉쇄한다. 이는 이미 적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문화의 또 다른 중요한 표현 형식인 예술을 예로 들어보자. 중화 전통문화는 ‘선악유보(善惡有報)’의 신앙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그 문화와 예술의 내함, 표현 형식은 도를 닦아 제고한다는 함의에 부합한다. 중공 통치하의 중국에도 고전 음악, 고전 무용, 고전 연극이라 칭하는 예술 형식이 존재하긴 한다. 이러한 예술 형식이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반드시 마르크스주의 통치에 복무해야 하며, 실질적인 내용에서 오직 투쟁 철학과 무신론을 찬양할 수밖에 없어 중화 전통문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실질적 내용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예술적 표현에서도 중화 전통문화의 도를 닦아 제고한다는 함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 실질은 겉모양만 흉내 내는 것이자 불완전하고 어색한 것이며 각종 예술의 표면 형식이 혼합된 잡탕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6년 이후 해외에서 설립되어 흥기한 션윈(神韻)예술단은 파룬따파 수련을 근본으로 하기에 중화 전통문화의 도를 닦아 제고한다는 함의와 완전히 일치한다. 또한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연원을 갖추고 있어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의 체현이다. 게다가 션윈예술단은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를 회복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기에 예술 수준이 빠르게 국제 일류, 나아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아 진정한 중화문화의 대표적인 공연이 되었다. 이에 중공은 명확하게 션윈을 자신의 적으로 삼아 세계 각지에서 외교 기관 등을 이용해 온갖 비열한 수단으로 션윈 공연을 방해하고 있다.

중공은 자신이 대표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임을 명확히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중화 전통문화를 자신의 적으로 삼고 있는데, 중공과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중화 전통문화의 대표가 될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