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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태자가 호법신이 된 이야기

암경(岩輕)

【정견망】

당조(唐朝) 문헌 《개천전신기(開天傳信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선무외(善無畏 무외삼장)라는 고승이 천축(지금의 인도)에서 멀리 찾아왔다. 조정 관리가 그를 궁으로 인도하여 당 현종을 알현하게 했다. 현종은 그의 풍모가 비범한 것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간절히 물었다.

“대사께서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어느 곳에서 쉬고 싶으신가요?”

무외삼장이 대답했다.

“제가 천축에 있을 때, 대당 서명사(西明寺)의 선율사(宣律師)께서 계율을 지킴이 엄격하여 당대 제일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의지하며 수행하고 싶습니다.”

현종은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

서명사의 도선(道宣 선율사)은 엄격한 계율 수행으로 유명했으며, 수행이 정진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생활이 청정하여 물듦이 없었다. 그러나 무외삼장의 행보는 그와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으며 언행이 솔직하고 거침없었다. 심지어 자주 취한 뒤에 소란을 피웠고 머무는 곳도 깨끗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선율사는 마음속으로 상당히 불만스러웠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어느 날 깊은 밤, 선율사가 몸에 있는 이를 잡아 눌러 죽여서 버리려 하고 있었다. 이때 무외삼장이 반쯤 취한 상태였음에도 갑자기 연달아 외쳤다.

“율사! 율사! 부처님 자식을 때려 죽이는가?”

선율사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상대가 결코 범인(凡人)이 아님을 깨달았다. 즉시 의복을 정돈하고 예를 갖추었으며, 이때부터 스승의 예로 대접했다.

선율사는 수행이 매우 정진하여 자주 깊은 밤에 도(道)를 행했다. 한번은 그가 계단 가를 걷다가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떨어질 뻔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두 발을 받쳐주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한 소년이 있었다.

선율사가 급히 물었다. “너는 누구냐? 왜 이 깊은 밤에 여기에 있느냐?”

소년이 대답했다. “저는 범인이 아니라 비사문천왕(毗沙門天王)의 아들인 나타(那吒)태자입니다.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까닭에 줄곧 남몰래 스님을 보호해 온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선율사가 겸손하게 말했다.

“빈도의 수행에 태자를 번거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신통이 광대하니, 만약 서역에 불사(佛事)에 쓸만한 보배가 있다면 수고스럽지만 가져다주기를 바랍니다.”

나타태자가 대답했다.

“제게 마침 부처님 치아(佛齒) 사리가 하나 있습니다. 머리와 눈도 오히려 버릴 수 있는데, 이러한 보물을 어찌 감히 바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불치를 바쳤다. 훗날 이 불치는 후세 사람들이 봉안하는 성물(聖物 전해지기로는 숭성사崇聖寺 부처님 치아 사리)이 되었다.

이 나타태자가 사람들이 흔히 아는 ‘바다를 소란스럽게 한 나타(鬧海哪吒)’와 관련이 있는지는, 아마 이름만 같을 뿐 반드시 동일 인물은 아닐 수도 있으며 이는 본문의 중점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불가(佛家)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흔히 호법신(護法神)이 남몰래 수호하고 있다. 역사상의 많은 수행자나 나아가 어떤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도 흔히 신령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그 목적은 그들이 각자의 책임과 사명을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유구한 역사 과정 속에서 많은 안배는 오늘날의 정법(正法)을 위해 길을 깐 것이기에, 비로소 서로 다른 층차의 보호와 안배가 있는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알려주셨다. “만약 대법제자가 바르게 행한다면 아직 수련이 완료되지 않은 표면 부분일지라도 아무나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 하나는 구 생명도 구 우주의 법을 감히 난잡하게 할 수 없으며, 또 하나는 당신들은 사부가 있고 호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들이 표면 사람 일면의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사부와 호법신은 난처해진다. 만약 정념이 강하다면 사부와 호법신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이든 모두 할 수가 있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라고 하셨다.

이를 통해 보건대 대법제자 역시 호법신의 보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중생을 구도하고 각자의 천체를 구원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자연히 층층의 수호를 받게 된다.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再次成爲神)》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신령이 광명(光明)을 둘러싸고 행하며 각자의 직책을 다한다. 어떤 이는 인간 세상에 전생하고, 어떤 이는 다른 공간에서 수호하며 모두 호법의 작용을 발휘한다.

세간의 관점에서 볼 때 한 사람은 아마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아마도 중생의 희망을 짊어지고 있을 수 있으며 호법신의 존재와 수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정념이 부족하다면 설령 호법신이 있더라도 작용을 발휘하기 어렵다.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호법신’이란 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만약 한 사람의 행위가 법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호법신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행위는 반드시 법의 원칙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호법신이 구해주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히 스스로의 행위와 심성(心性)이 법에서 벗어남으로써 가호를 받을 조건을 잃었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850